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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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의 또 하나의 걸작 <악마의 공놀이 노래>가 번역되어 나왔다. 근년에 발간된 책으로는 <혼징살인사건>(나비부인 살인사건이 합본되어 있다) <옥문도> <팔묘촌>에 이어 네번째. 아마 요코미조 세이시나 긴다이치 코우스케 시리즈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몇번이나 일본에서 영화화,드라마화 되었던 그의 다른 작품들도 접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본 것은 근래 SMAP의 맴버인 이나가키 고로가 킨다이치 탐정으로 분한 <팔묘촌> <여왕벌>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그리고 곧 출간될 예정이라 하여 기다라고 있는 <이누가미의 일족> 등이었다. 

비록 책으로 접한 것은 세 편이요(나비부인 살인사건은 긴다이치 탐정 시리즈가 아니다) 드라마로 본 것까지 하면 일곱편 정도를 접했을 뿐이이지만, 각각의 편들은 어쩐지 저마다 조금씩 닮은 부분이 있다. 접한 작품이 적고 읽은 것은 더 적으니 감히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월드'라고 말할 주제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긴다이치 시리즈하면 어떤 이미지 하나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비가 내리기 직전의 하늘처럼, 무겁고 가라앉아 있으며 어두침침한 무엇이다. 마치 지금쯤의 날씨와 같다.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하며, 상쾌하지 못하다. 어서 비가 내리든지 날이 개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처럼 어쩐지 막막한 불쾌감이 스며있는 듯하다. ‘음습함’ - 딱 그런 단어가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시리즈 내내 느껴지는 이러한 음습한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 또 한편의 긴다이치 코우스케 시리즈를 읽자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사실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책 속에서도 '옥문도 사건이 생각난다'고 몇 번이나 언급되고 있을 정도로 세이시의 다른 작품들과 닮았다. 사실상 폐쇄되다시피 한 배경,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들을 공유하고 있는 내부자들, 그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 외부자인 긴다이치는 옥문도에서처럼 갇히든 <악마의 공놀이 노래>의 배경인 귀수촌에서처럼 은근히 기대를 모으든 간에 사건 당사자들과의 사이에 맹장지 문을 하나 둔 것 같이 어딘지 모르게 나뉜 느낌이다. <옥문도>의 하이쿠, <팔묘촌>의 마을전설에서처럼 <악마의 공놀이 노래>에서는 공놀이 노래라는 일본풍 소재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 역시 비슷한 점이다. 그러나 배경, 인물, 소재가 닮았다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하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장면 하나를 부득이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것은 여든 살 노파 이오코가 긴다이치들에게 공놀이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이었는데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라던가 그 때 노파의 태도 같은 것, 그리고 그일에 대해 긴다이치가 나중에 설명한 내용이야말로 이러한 음습한 분위기의 원인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악’ 이다. 적극적이거나 공격적이거나 무시무시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 숨겨져 있고 감춰져 있고 소극적인 태도를 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 바닥에 머물고 있다가 그 썩은 내를 피워 올리는 종류의 그런 악 말이다. 악의 근원은 아주 오래전에 어떠한 불행한 사건, 무도한 인물이 저지른 일들로부터 시작된다. 옥문도, 팔묘촌, 그리고 이 소설의 배경인 귀수촌 까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 폐쇄되어 있고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권세라던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여전히 남아있는 신분의 차이 같은 봉건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 마을에서 과거의 사건이 불러온 악이 흩어지지도 흐릿해지지도 잊혀지지도 않고 살아남아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옥문도를 읽고 ‘마음의 감옥’이라는 표현을 써서 감상을 남겼었는데 그것은 이 작품에서 역시 유효하다. 감옥 같은 그 곳에서 직접적인 범인은 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으나, 누가 살인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마다 인물들은 언뜻 자신의 마음속에 품은 비수를 드러냄으로서 독자들에게 서늘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소설들은 꽉 조여진 트릭과 논리로 중무장한 탐정의 해결, 혹은 재빠른 탐정이 선사하는 서스펜스로 독자들을 경악케 하는 편은 아니다. 도리어 흐느적흐느적 나타나 ‘범인을 알고 있었다’와 ‘이렇게 될 줄은…’이라 중얼거리는 ‘사람 죽이는 탐정’ 긴다이치의 태도나 중요한 사실들이 마지막 순간에 ‘뿅’하고 제시된다던가 하는 방식이 어딘지 모르게 공정치 못하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런 면에서 긴다이치 코우스케 시리즈는 탐정 활극으로도, 한 편의 흥미진진한 게임으로도 어쩌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기계적인 트릭이나 범인의 심리에 관한 탐정의 섣부른 연설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것이 이 시리즈에는 있다. 왜, 어떻게, 누가 살인을 했는가? 요코미조 세이시는 답한다. 살인은 인간과 환경이 만들어낸 불협화음 같은 것이라고. 범인을 무조건 비난 할 수도 없지만, 무조건 동정할 수도 없고, 범인과 대비되는 눈처럼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들도 없다. 이 소설에서 변을 당하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희생양들이고, 그것이 특히 마음 아프지만 말이다. 이처럼 긴다이치 시리즈는 작가와 독자간의 게임이라기보다는 작가가 만들고 독자가 공감하는 거대한 비극이다. 그리고 눈처럼 흰 비듬과 순결한 마음을 가진 긴다이치 코우스케가 사람을 그렇제 죽여대면서도 매력적인 것은 비극을 바라보는 그, 나아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측은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시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요코미조 세이시라는 한 거장의 깊이이며, 이야기를 단순한 신파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힘이 아닐까 한다.

아니 이런저런 설명들은 다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독자를 끊임없이 자극시키고 따라갈 수 밖에 없이 만드는 소설 자체의 재미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임을 읽는 이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과연 이름난 작품은 무언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탐정 긴다이치 코우스케의 손자를 뛰어넘는 ‘위험함’과 나사 풀린 듯한 매력 역시 잘 드러나 있다. 어쨌든 백 가지 리뷰가 소설 한 권보다 못한 건 만고불변의 진리 아닌가. ‘웰컴 투 요코미조 월드!’ 좋은 독서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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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ca 2007-07-24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처럼 흰 비듬과 순결한 마음. 리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

투명고냥이 2007-07-24 19: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좋은 책 계속 부탁드립니다. 이누가미의 일족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독사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8
렉스 스타우트 지음, 황해선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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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소설 붐이라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부당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작품들과 작가들이 더 많다. 그 때문에, 그 '붐'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경향이나 어떤 작가들에게 치중된 얄팍한 무언가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곤 하지만, 어쨌든 읽기만 하는 사람이 출판계의 복잡한 사정을 알리도 없고 또 지금 출간되는 훌륭한 작품들과 주요 작가들을 깎아내릴 의도도 능력도 없다. 그저 아쉬움이 남아 투덜거릴 뿐. 그리고 나의 투덜거림에 힘을 실어주는 작가가 바로 렉스 스타우트다.

뚱땡이 탐정 네로 울프와 추리소설 역사상 최고로 말이 많고 최고로 개성적인 조수인 아치가 등장하는 그의 소설은 고전 추리소설같은 정식의 논리적인 추리의 재미보다는 좌충우돌 모험과 빛나는 유머를 가미한 읽는 재미가 있는 종류이다. 특히 아치를 통해 발휘되는 스타우트의 유머 감각은 심각한 살인사건과 더 심각한 네로 울프의 체중 마저도 귀엽게 만들어버린다. 요리로 치면 무거운 정찬이 아니라, 개성만점의 별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스타우트 소설의 매력을 느끼기에 우리나라에 출간된 소설들의 수는 너무 작고, 조금씩 다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라 아쉬울 뿐이다. 제목부터 스타우트 소설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요리사가 너무 많다'는 번역에 문제가 있고, 시그마 북스 시리즈였던 '챔피언 시저의 죽음'은 번역도 작품도 만족스러운 작품이나 절판 상태인데다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꽤 깔끔한 번역에 구하기도 쉬운 '독사'는 정말 아쉽게도, 스타우트 작품 치고는 매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독사'는 스타우트의 첫 작품으로, 그래서인지 두 캐릭터나 스토리나 문체나 모든것이 조금씩 경직되어 있다. 책장을 술렁술렁 넘기게 만드는 그의 유머감각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고 사건 자체도 전형적인데다가 해결 과정이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네로 울프야 워낙 기괴한 양반이시니 대충 묘사된 것만으로도 인상에 콱 박힐 지경이지만, 아치의 매력이 이 책에서 완벽히 발휘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뭔가 허전하고, 어디서 본 듯하고, 심심하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스타우트 소설 중 이 책을 가장 마지막에 읽은 탓이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스타우트의 작품을 이렇게라도 하나 더 만나보았다는 게 즐겁고, 읽을 수 있을 만큼 번역이 되었다는 것에 고맙다. (동시에, 어쩐지 억울하지만...) 일본 작가들과 영미권 근작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지만 동시에 스타우트같은 나름 유명하나 소개가 많이 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도 몇 권만 더, 한국에서 만나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이게 팬심이라면 팬심이겠지만 말이다.

(아, 진짜 별 네개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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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 살인사건 밀리언셀러 클럽 17
S. S. 반 다인 지음, 김재윤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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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추리소설의 탐정들은 원래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인종들이다. 먹다 남긴 호빵처럼 생긴 주제에 자신의 우아함과 자신의 회색의 뇌세포의 뛰어남을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하는 포와로,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듯 타인의 시시콜콜한 흔적들을 염탐하여 별 쓸데없어 보이는 '내 말이 맞지?'놀이를 하는 홈즈, 자신의 뛰어남을 널리 알리고자 탈옥 내기까지 거는 도젠 교수... 마치 자랑할 수 있는 능력과 거리낌 없이 자랑이 가능한 얼굴두께가 탐정의 제1요소인 듯, 그들은 하나같이 경찰과 조수 역할을 자청해 주는 친구와 범인들 머리 위에 자신의 전능함을 뽐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뻔뻔한 자화자찬을 찜쪄먹고도 남을 인물이 하나 있으니, 그 이름 위대하신 탐정 파일로 밴스다.

어찌나 잘난척이 심하신지, 이 파일로 밴스의 자화자찬을 견뎌낼 수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시리즈의 호오가 나뉠 정도이다. 포와로는 그저 귀엽고, 홈즈는 그냥 신기하고, 도젠은 심심할 뿐이다. 끝없이 미학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며, 아울러 무슨 미술품을 사러 간다 등의 말로 넘치는 부를 자랑까지 하며, 범죄수사에 있어 실무자들을 특유의 장광설로 슬슬 놀려먹는 밴스에 대항할 자는 읽는자를 주화입마에 빠지에 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탐정 노리즈미 정도 밖에는 없다. 허나 노리즈미는 밴스의 '나는 다 아는데~메롱~'스킬까지는 갖추지 못했으니, 과연 밴스야 말로 최강이라 하겠다. 하긴 밴스의 창조자 반 다인이 추리소설을 쓰게된 계기가 '다들 나가 있어! 제대로 된 걸 내 보여주지~'였다니, 밴스의 장광설에 묻어나는 잘난척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법 하다.

그나마 반 다인의 첫 작품이자 밴스의 첫 등장작품인 '벤슨 살인사건'은 그 장광설이 덜한 편이다. 적어도 사건의 핵심을 더욱 흐려놓는 듯한 우주 이치나 무슨 시대 항아리의 아름다움이나 수학적 논리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 범인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라 그나마 독자가 따라갈 여지가 있다. 심리수사도 과학수사의 일부가 된(프로파일링같은)지금의 독자로서 밴스의 이야기는 때로 고색창연하고 때로 말도 안 되지만(범죄 기질을 유전학을 빙자한 족보학, 말 할 가치도 없는 두상학, 사기에 가까운 사회학으로 예측하는 것이 그 시대의 최신의 과학적 유행이었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때로는 정곡을 찌르고 있다.

장광설을 빼자면, '벤슨 살인사건'은 사실 추리소설로서 그다지 흥미로운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린 살인사건'이나 잘 알려진 '비숍 살인사건'이 트릭도 잘 짜여진 편이고 반전의 묘미도 더 잘 된 편이다. 벤슨 살인사건은 마치 계속될 파일로 밴스의 앞으로의 활약에 대한 서문격인 소설처럼, 사건이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고 파일로 밴스가 특별히 기가막힌 묘안을 던져주는 것도 아니다. 덕분에 파일로 밴스의 성격이나, 특히 검사와의 관계가 읽는이에게 다른작품에 비하여 잘 드러나 있으니 일장 일단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솔직히, 읽으면서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도 그렇고, 벤슨 살인사건도 그렇고 동 출판사에서 나온 추리소설들 중 기존에 잘 알려져있던  추리소설을 출간한 경우 번역에 차이를 두고 싶어서인지 간혹 익숙치 않은 번역투를 쓰곤 하는데 솔직히 난감할 때가 많다. 탐정의 이름도, 그리고 말투도 읽으면서 솔직히 근질거렸다. 이전의 번역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으나, 이름 같은 경우는 그다지 큰 차이가 아니고 이전의 번역에 큰 오류가 없고 새 번역도 정확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말투같은 경우도, 경어체로 표현되었던 밴스의 검사님 '슬슬 긁기'의 느낌이 더 실감나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뭐 익숙해지기 나름이라면 할 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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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크 - 과학으로 돌아보는 영혼
메리 로취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파라북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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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리스트인 메리 로취는 아마 과학 칼럼리스트들 중에서도 꼽힐 정도로 글을 잘 쓰지 않나 싶다. 유머감각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공존하는 그녀의 글은 매우 먹음직스러운 부페식단 같다. 매우 잘 읽히며, 쉽게 읽힌다. 그리고 전작인 <스티프>에서처럼 매우 인상적이기도 하다.

내가 <스푸크>를 읽게 된 것은 오로지 그녀의 전작 <스티프>때문이었다. 매우 센세이셔널한 소재-시체와 영혼-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신화를 비꼬거나 그 뒤에 숨겨진 과학적 진실을 이끌어내는 그녀의 솜씨는 놀라웠다. 결코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흥미위주의 책도 아니었으며 짧은 에피소드마다 벌어지는 추적의 과정도 농담투로 쓰여 그렇지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잘 쓰인 과학 칼럼 이상의 책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스푸크>는 무척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스티프>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도 있지만, 문제는 그녀가 다룬 소재인 영혼이 <스티프>의 시체에 비해 과학적으로 다루기 무척 어려운 반면에 다소 전통적으로 꾸준히 화제가 되었던 소재여서 식상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로취는 '영과 육'이라는 관점에서 <스티프>에 이어 <스푸크>를 기획한 듯 보이지만, 문제는 육과는 달리 영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사실상 그 존재 여부부터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거의 불가능한 '가치관의 영역'내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로취도 그 점을 생각했는지, 많은 부분을 영혼 그 자체가 아닌 과학의 역사 속에서 영혼을 과학적으로 다루려 했던 시도들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도들 자체가 로취가 굳이 다룰 필요가 없을 만큼 '넌센스'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거나, 그래서 그 가치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거나, 보통 넌센스라고 치부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스티프>와 같이 새로운 영역을 엿본다는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소개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로취의 태도도 문제이다. 아무리 그러한 시도들을 믿지 않고 넌센스라 생각한다고 해도 책을 읽을 때에는 의외의 반전을 기대하게도 된다. 그러나 로취는 일관적으로 그것이 넌센스라는 점을 주장하고, 설상가상으로 유머감각의 발휘는 대상에 대한 탐구를 단지 '실실거리며 비꼬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떤 부분에서 그녀의 조사 방법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다. 그저 르포식으로 잡입취재를 했다 뚜렷한 근거 없이 그저 실실거리는 식이다. 때로는 아예 답을 내는 것 자체를 회피해버린다. 남는 것은 풍물문화소개 다큐멘터리 식의 묘사의 나열 밖에는 없다.

문제는 그녀가 과학칼럼을 쓰려고 했다는 점인 듯 싶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좀 더 진지한 접근을 했더라면, 아니 진지하지는 않아도 폭넓은 접근을 했더라면 좀 더 읽을만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과학'이었던 것 같다. 로취는 너무나 쉽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로취의 의도나 태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영혼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나의 감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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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9
공자의 문도들 엮음, 조광수 옮김 / 책세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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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이 책 외에는 '논어'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동양고전들을 한 번 제대로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은 있지만, 우선 하고 있는 공부와 직접적으로 연이 닿지 않는데다 게으른 품성까지 겹처 계속 미뤄두고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솔직히 이 책의 번역이나 해석이 얼마나 옳은지 혹은 얼마나 인상적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한 논어에 대해서도 섣부른 나름의 해석이나 판단을 내리기엔 이른 것 같다. 특히나 근몇년간 공자의 사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전문 논자들의 논의들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해서 리뷰를 쓰는 것은, 책세상 문고가 가진 이점에 크게 감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하루에 적어도 2~3시간정도 버스를 타는 시간동안 읽기에 좋은 두께와 무게 때문이었다. 보통은 추리소설을 가지고 타지만 사실 어떤 경우엔 그것조차 짐이 될 정도로 짐이 많았기 고민하고 있던 중, 관심있던 논어에 대해 마음에 쏙 드는 판형으로 책이 나와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근 몇년간 양장본 책이 많이 나오는데, 보기에도 이쁘고 튼튼하지만 솔직히 그 두께나 무게가 늘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또한 아주 얇은 책을 편집 기술로 양을 늘여 양장본을 내기도 하는데, 솔직히 하드커버 때문에 추가된 가격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내게 근년의 책 디자인의 추세는 늘 고민거리였다. 그러니, 책세상에서 나오는 이시리즈와 같이 부피와 무게에 거품을 뺀 책들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그 내용이 결코 헐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글들의 번역도 많아 즐거움이 더 한다.

물론 오며가며 버스속에서 읽기에 논어는 결코 적당한 내용이 아니다. 짧은 문장, 일견 간단해 보이는 에피소드 속에 숨은 속뜻을 계속 되새기면서 혹은 나름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바탕이 없는 경우라면, 입문서를 먼저 읽었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고전들이 그렇듯이, 대신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깊이가 있고 또 읽을 때마다의 느낌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독서용으로 읽기에 결코 부적당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나처럼 무지몽매한 자의 마음에도 콱콱 박힐정도의 경구들이 있어 결코 시간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

공자가 나라를 망쳤다는 소리도 있고, 사실 논어에도 고루한 부분은 많다. 하지만, 이것은 몇천년을 넘게 살아 내려온 고전이고 그것에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다. 어떤 고전을 읽을 때 아무런 생각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혹은 그것의 흠만을 들추어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책에는 잘못 없다. 읽는 자에 따라 책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논어처럼 약이 될 가능성이 높은 책들도 어느정도는 그럴 것이다. 책에 먹히지 않고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싶다. 높은 사상을 담고 있는 텍스트들을 단순한 교조적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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