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위험하다 - 왜 하버드는 디지털 세대를 걱정하는가?
존 팰프리.우르스 가서 지음, 송연석.최완규 옮김 / 갤리온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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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제목에 속지 말자. 원제는 제목대로 "디지털 세대로 태어나다 - 첫번째 디지털 원주민들에 대한 이해"이다. 마케팅이나 기타 이유를 위해서 번역시 제목을 바꾸는 일이 흔하고 그에 일반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책의 주제를 호도할 수 있는 얄팍하고 값싼 번역 제목에는 언제나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이 위헙하다 - 왜 하버드는 디지털 세대를 걱정하는가?'라니! 심지어 띠지에는 '디지털 키즈는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가 될 수 있다' 라고 되어 있다. 물론 책 중에 등장하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들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려가 아니다. 저 띠지의 섬뜩한 문구에는 정말 중요한 문장들이 생략되어 있다. '반대로 가장 축복받은 세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물론 정확히 책에 나오는 문장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는 바로 내가 말한 뒷부분이다. 게다가 하버드 타령은 또 뭔가. 이 책의 두 사람의 저자 중 한 사람이 하버드 로스쿨 교수기는 하지만, 공동저자가 몸을 담고 있는 스위스 세인트 갤런 법대 무시하나요?  차라리 '디지털 세대의 이해'라는 부제를 달았으면 훨씬 정직하고 훨씬 나았을 것이다. 굳이 마이리뷰 제목을 영어로 단 것은, 이 책의 원제를 꼭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뭐 제목에 대한 불평을 너무 길게 했나 싶긴 하지만.

 

이 책은 두 명의 공동저자가 있다. 두 저자의 공통점 중 눈에 띄이는 점은 그들이 72년생이라는 사실과 법대 교수라는 사실이다. 나는 79년생인데, 디지털 원주민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우리 부모세대 보다는 디지털 환경에 훨씬 능숙하다. 아마 저자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되어 있고 디지털 환경에서 살며, 생활하고, 돈을 벌어야 하지만 한편 디지털 환경에서 키워지지는 않은. 그리고 역시 나처럼, 디지털 환경에서 키워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디지털 환경이란 마냥 경이만은 아니다. 때로는 위협이고, 어느 부분은 기회이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선 도대체 믿을 수 없다. 특히 아이에 대해선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나보다 이른 나이에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고 이용하게 되는 것을 무력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저자의 시각도 비슷하다. 그래서 아이가 디지털 환경에서 입을 수 있는 예상되는 침해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아이가 디지털 환경의 승리자가 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또 하나는 더 두 공동저자는 법대교수이다. 때문에 이 책에는 디지털 환경이 자라나는 아동의 정서적, 신체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나 연구 같은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떤 캠페인적 의도가 두드러지는 부분도 없다. (물론, 어떤 논지는 있지만) 이 책의 주요 부분은 디지털 환경에서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침해, 게중에서도 법적으로 문제될만한 종류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그런 문제들을 논의하는 태도가, 무척 신중하고 중립적이다. 저자들은 대놓고 겁을 주거나 나쁜 사례를 나열하며 디지털 환경을 헐뜯는데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단지 예상되는 침해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침해를 설명하며 예방책과 구제책을 논한다. 물론 그 전에 디지털 세대에 대한 정의나 예시도 들어놓았고 분석도 해 놓았다. 그런 저자들의  태도는, 그들이 연구하고 있는 학문의 성격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환경은 이미 아이들을 기르거나 아이들이 자라는 데 있어 절대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현실인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만 디지털 환경이 너무 급변하고 있으므로 아이가 너무 어린 분들은 이 책에 나온 것과는 전혀 다른 디지털 환경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모두가 지난 겨우 15년 정도 겪은 인터넷 환경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예상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예감하는 것이 과대망상은 아닐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씨등의 보급등으로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환경을 처음 겪는 연령이 자꾸 내려가는 중이니 아이가 어리다고 해도 아주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컴퓨터 안 돼, 인터넷 위험해, 스마트폰은 나빠, 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양육자들이고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를 어느정도 포기해버리는 게 양육자들이기 때문에 (마치 tv문제에서 그러하듯) 한 번쯤은 객관적인 책들을 한 번 읽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지나치게 허용적이지 않도록, 무엇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살아갈 디지털 세상을 조금 뒤에서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말이다. 혹은 아이가 없어도 디지털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육아에 도움받을 목적으로 책을 접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후자의 목적을 달성했다. 즉 좀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감상과 이해를 얻었으며, 나 자신의 디지털 세상에서의 행동 수칙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부디, 한글 번역 제목만큼은 잊어도 좋다고 다시 (집착적으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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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추억 - 노먼 맬컴 <회상록> 개정판
노먼 맬컴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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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이자 코넬대 철학교수였던 노먼 맬컴의 회상록이 번역되어 나왔다. 재번역 출간이라고 하던데, 2001년 경에 먼저 출간되었다던 책을 접해보진 못하였다.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를 번역 재출간한 필로소픽에서 나왔다. 특별히 몽크의 평전을 언급하는 것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몽크의 평전을 먼저 읽거나 몽크의 평전을 함께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회상록'이라는 제목으로도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제자이자 친구인 맬컴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회상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분량도 적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논평이나 해석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최대한 자제한 티가 난다. 실제로 이 책의 시점은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릿지에서 교수로 강의를 한 이후부터기도 하다. 압도적인 두께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개론으로도 볼 수 있는 몽크의 책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몽크의 책을 읽거나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읽을때 보조적으로 독서를 돕는 수준으로 접하면 어떨까 한다. 물론 인간 비트겐슈타인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책일수도 있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삶에 대한 태도 자체가 그의 철학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책 만을 읽는 게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테니 이 말은 사족이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철학자나 예술가 기타 등등의 사람들의 전기를 읽는 것을 썩 즐기진 않는다. 누군가의 사상이나 작품을 파악할 때는 우선 그 자체로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해설서를 먼저 읽지 않는 마음하고 비슷한 것이다. 특히 창작자의 사생활이나 생애는 선입견을 더욱 강하게 심어주곤 한다. 비트겐슈타인처럼 유별난데다 강한 인상을 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은둔, 괴팍함, 강박, 무례함, 날카로움 같은  비트겐슈타인 개인에 대한 이미지는, 그의 때론 병적으로 치밀하지만 동시에 매우 불친절하고 난해한 그의 저서에 덧씌워져 그의 철학을 더욱 더 난해하게 심지어는 (비트겐슈타인이 결코 읽혀지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이) 신비롭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불안을 안고, 또한 비트겐슈타인 개인에 먹혀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 기록이나 전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저작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데다, 해설서를 읽어도 학자들 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뇌까리고 있는 듯한 혼란 속에서,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허나 결론적으로는, 도리어 그렇게 유별나기에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전기는 그의 사상을 접하는 중이라면 한 번 쯤 꼭 읽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을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려 했으며 철학하는 것에 대한 염증, 아울러 실천하는 삶에 대한 중요성을 항상 설파했던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 삶이야 말로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키가 될 지도 모른다는 짐작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특히 후기 저작을 읽으면 비트겐슈타인이 일상 언어에 대해 상당히 집착적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전개야말로 내가 비트겐슈타인을 읽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지만, 그 자신의 삶과 철학에 대한 태도 역시 그런 논리 전개를 그대로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겨우 비트겐슈타인을 읽어가는 중이라 자신있게 말할 것은 하나도 없지만(이 책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괜한짓을 한다는 생각이 아주아주 많이 든다....), 분명한 것은 소위 '철학의 언어적 전회'라고 일컫어지는 일대 사건의 대표자로서-그 자신이 거기 포함되는 걸 원했는가와는 상관없이-비트겐슈타인이 보여준 논리전개 방식, 철학하는 방식, 그리고 철학에 대한 태도에서 보여지는 엄격함은, 그런 방식을 통해 나온 결론만큼이나, 철학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으며, 실제로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 역시 철학전공자는 아니지만, 그런 영향을 조금 얻어갔으면 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그런 엄격함과 치밀함 및 세기를 넘어 그의 책을 읽는 이들 까지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자신과 주위의 온갖 것에 대한 병적인 회의와 자기 검열을 간접 체험하며, 그의 철학 나아가 그의 철학에 어느정도 빚을 지고 있는 많은 현대 철학 및 기타 사상들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면, 노먼 맬컴의 페이지마다 애정과 존경과 경이가 뚝뚝 떨어지는 이 회상록 역시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장점 한 가지 더(또한 내가 이 책을 읽고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는 유일한 감상은),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을 다룬 책들 중에서는 가장가장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이 책속의, 맬컴의 눈에 비친 철학자이자 개인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도 따라하고 싶어하는 추종자들을 몰고 다녔다는 에피소드처럼, 매우 강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의 철학이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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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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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마치 장마철의 하루 같다. 하루 종일 안개비가 내리고,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뒤덮여 있으며,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공기는 텁텁하고, 손에 닿는 것이 죄다 눅눅하며, 발바닥에 장판이 쩌억 달라붙는 그런 날 말이다. 땀이 온 몸을 한 바퀴 휘어감고 있는 기분에 새로 갈아입은 옷도 곧 소용이 없고 세수를 해도 무언가가 자꾸 얼굴에서 흐르는 것 같다. 외출하기엔 소리없이 옷을 적시는 안개비가 부담스럽고, 집에 있자니 눅눅한 물건들이 나를 죄어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기분으로 읽기엔 참으로 부담스런 소설이다. 소설 앞부분에 묘사된 하나와 준고의 집, 특히 벽장의 모습이 이 책을 읽는 나의 상황과 기분이라면 제대로 된 설명이 될까? 어쨌든 그렇게 끈끈하고, 눅눅하며, 어둡고, 습한 소설이다.

 

사실, 소설의 문체나 인물들이나 스토리에서 배어나오는 그런 후텁지근한 느낌은,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와 무척 잘 어울린다. 양아버지 준고와 그에게 11살때 입양된 고아 하나. 그들의 묘한 관계는 마치 누런 장판 구석에 엷게 핀 곰팡이를 바라보는 듯 하다. 가족이며서 가족이 아니고, 연인이면서 연인이 아니고, 하나면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지워버릴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산뜻해 질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약혼자가 상징하는 일상의 평온에 덮힌 그 불쾌한 푸른 자국에 자꾸 눈이 가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 자국을 용인하지 않더라도, 외면하기 어려운 것 만은 사실이니까.

 

소설은 약간 미스테리 형식으로 되어 있고(그러나 결코 흥미를 돋구지는 않는다), 시간이 역순으로 되어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이, 소재가 스캔들로 범람되는 것을 막아준다. 하지만 담담하고도 무심한 전개와 문체가 자못 병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타인의 사랑이나 예술을 상식이나 윤리로 재단할 수 있는가, 라는 거창한 질문하고는 상관없이 작가가 원했던 게 바로 이런 병적으로 끈끈한 느낌이 아닌가 싶다. 사랑인지 존재인지 모를 관계의 묘함에 방점을 찍는 듯한 제목 까지도.

 

다만 두 번 읽지는 못하겠다. 나는 하루종일 줄창 내리는 안개비를 즐기거나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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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싸리 정사 화장 시리즈 2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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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권 '회귀천 정사'에 이어지는 단편집. 단편들의 테마는 꽃으로 장사지내다,이고 테마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작품들이다. 특히 표제작 저녁싸리 정사는 연애소설로도 손색이 없다. 결말이 좀 씁쓸하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왜색은 짙다. 소설의 분위기라던가, 배경이라던가 그런 것을 넘어서 '사고방식'의 다름이 많이 느껴진다. 친한 일본인도 없고, 일본엔 딱 두 번 가본게 전부지만 한국인인 내 사고로 이해되지 않은 어떤 '숨김을 추구하며 그것이 미라고 생각하는' 사고가 짙게 깔려있다. 더불어, 메이지 시기의 여러 집단간의 알력이라던가, 특히 옛 체제를 그리워하며 그것을 명예와 긍지와 나아가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자주 나오는데 일본근대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름답기는 아주 아름답고, 그닥 마음에 걸리지도 않는다. 이건 아련한, 마치 맹장지 너머에 핀 꽃의 새벽 그림자 같은 그런 이야기들이니까.

 

표지는 일급. 뒷 부분에 유머스런 추리소설을 실은 편집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작가의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싣는다는 의도는 이해가지만, 아련한 꿈에서 순식간에 끌어올려져 내동댕이 쳐진 듯한 느낌이랄까. 심각한 일로 급히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엄청 야단스러운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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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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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서적과 헷갈릴까봐, 친절하게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달아놓았다.

 

여행을 테마로 한 미스터리 소설 단편집. 근데 그 여행은 관광하고는 조금 다르다. 책 내에서는 취재,라고 나오지만 일종의 기행 그리고 거기에 미스테리가 덧붙여지며 모험의 느낌이 난다. 사막, 아마존의 정글, 러시아의 수도원, 스페인의 풍차... 그래서 여행 미스터리라는 걸 들었을 때 내가 가졌던 막연한 기대보다는 좀 가라앉은 느낌이다.

 

마지막 편을 일종의 미괄을 의도했던 것 같은데 좀 혼란스럽고 가닥이 잘 안 잡히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외에는 만족스럽다. 일본추리물을 계속 읽어서 조금 질렸달까, 이 작품이 그 작품 같은 느낌이 없잖았는데 이 단편집은 독특하고, 완성도가 좋다.

 

최고의 편은 아마존의 정글이 나오는 편. 범행동기 부분이 매우 낯설고 개성적이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그럴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적어도 학창시절에 지나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아 악의를 지니게 되었다,는 극소심한 범인(사실 범인이란 이상성격자인 경우가 많지만)보다는 이 쪽이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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