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모차르트 : 네 손을 위한 소나타와 소곡 [Digipak]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작곡, 슈타이어 (Andreas S / Harmonia Mundi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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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어와 쇼른스하임. 두 사람 보두 개량되지 않은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포르테피아노 같은 옛 건반악기의 대표적인 연주자들이다. 슈타이어야 재기넘치고 귀가 즐거운 용감한(?)연주로 유명한 사람이고, 쇼른스하임도 나름 히트를 친 하이든 피아나 소나타 전곡집에서 깔끔하고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야단스럽지 않은 해석으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 바가 있다. 이 두 사람이 모차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곡들을 함께 녹음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진짜 주인공은 이 두 연주가가 아니다. 바로 그들이 사용한 악기인 stein vis-a-vis다. 이 악기는 유명한 건반악기 제작자인 요한 안드레아스 스타인이 만든 악기 중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악기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두 대의 건반악기를 하나도 합쳐놓은 것이다. 악기의 모양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긴 직사각형이고, 한 쪽에는 포르테 피아노 건반이 그리고 다른 쪽에는 더블 하프시코드의 건반이 있다. 더블 하프시코드 건반이 있는 쪽에는 그 외에도 반대편 포르테 피아노의 액션을 작동시킬 수 있는 건반이 하나 더 달려 있다. 즉 두 건반악기를 단순히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양쪽의 건반으로 연주되는 하나의 악기인 셈이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악기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이 악기의 신비를 탐구중이다. 저 설명도 옛 건반악기에 관해서라면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전상헌님의 설명을 대충 옮긴 것이다. (좋은 글과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악기의 신기한 형태 만큼이나, 그 소리가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옛 악기들의 신묘한 소리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고 말이다.

역시 나의 기대처럼, stein vis-a-vis는(a위에는 악상이 붙어야 하는데, 찾는 방법을 모른다...) 굉장히 다채롭고 풍부한 소리를 들려준다. 곡마다, 때마다 달라지는 음색은 호기심 강한 나 같은 사람의 귀를 자극시키기에 적당하다. 첫 트랙에서 슈타이어와 쇼른스하임은 약간은 과격한, 몰아치는 듯이 연주하는 데 그것이 소리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 한 마디로 소리가 폭포처럼 내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여담이지만, 이 음반을 틀어놓고는 정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 정도로 소리는 압도적이다) 말 그대로 '소리의 향연'이 소나타와 소곡, 무곡, 변주곡을 넘나들며 약 60분의 시간동안 펼쳐진다. 이 곡들 모두가 원래 네 손을 위한 곡들은 아닌 것 같고, stein vis-a-vis를 위해 편곡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어느 곡도 모차르트를 훼손하지는 않았고 모든 곡들이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아쉽게도 같은 연주를 모던 피아노로는 들어본 적이 없고, 다만 역시 시대악기 연주자인 판 오르트의 모차르트 전집에 포르테피아노 연주로 들어 본적 있다. 그에 비하면 슈타이어와 쇼른스하임의 연주는 템포 변화가 무척 다채롭고, 장식음같은 효과들도 좀 더 풍부하다. 나는 아무래도 오르트의 좀 더 단정한 해석을 좋아하지만, 이 악기에는 이런 연주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런 다채로운 변화들이 연주를 더욱 풍성한 음색으로 채워주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아무래도 이 신기한 악기가 가져다 준 소리의 새로움이라는 것에 폭 빠져있는 상태이므로 당분간은 이 음반을 끼고 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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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커크비의 청아한 음성
Decca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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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커크비의 청아한 음성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 앨범의 영어 제목은 the pure voice of Emma Kirkby 이다. 한국어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좀 더 핵심을 찌르는 것 같다. 'pure' 맑다, 청아하다를 넘어서 우리가 보통 소프라노의 목소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커크비는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인 여성 소프라노라기 보다는 차라리 소년합창단의 보이소프라노처럼 들릴 때가 더 많다. 그렇기에 엠마 커크비의 음성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군가는 '깨끗하고 맑다'고 하고 누군가는 '빈약하다' 때론 '뱀 나온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음성을 가진 그녀가 고음악 운동에서 가장 뛰어난, 아니 그것을 넘어 상징적인 소프라노가 된 것도 역시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엠마 커크비의 청아한 음성'은 메이저 레이블 데카가 고음악 전문 레이블 르와조리르를 합병한 후, 그 레이블에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와 함께 냈던 엠마 커크비의 음반들을 가지고 만든 베스트 앨범이다. 데카가 르와조리르 인수 후에 그 레이블과 함께 했던 시대연주가들에게 보인 태도는 그다지 훌륭한 것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런 앨범이 라이센스로까지 나오게 된 건 데카 레이블의 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데카에서 나왔기 때문에 수록된 레퍼토리 면에서 분명 아쉬운 점도 많다.

이 앨범에는 저녁기도, 엑슐라테 유빌라테같은 모차르트의 종교곡, 모차르트, 헨델등의 오페라, 르네상스 가곡이나 세속가요 등이 실려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오페라는 커크비의 주종목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녀의 음색이나 섬세한 표현력등은 성당이나 교회에서 연주되는 종교곡들에 정말 제격이다. 물론 오페라에서도 그녀만의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표현을 즐길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의 자이데나 헨델의 알치나 보다는 퍼셀의 디도나 에네아스 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베스트 앨범으로도 커크비를 소개하는 음반으로도 고음악이 아닌 오페라를 비롯한 대규모의 곡들이 많이 실린 건 유감이다. 특히 모차르트 곡이 네 곡이나 되는데, 이것이 단순히 모차르트가 잘 알려진 작곡가라서 선택된 것이 아니길 빌자. 

대신 커크비의 매력은 다울랜드의 세속가요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페르골레지의 '살베 레지나'는 북독일 칸타타가 한 곡도 실리지 않은 아쉬움을 그나마 보상해 준다. 그녀가 제임스 보우만과 함께 녹음한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 역시 데카에서 다시 발매 되었는데, 두 위대한 성악가의 조화가 참 멋지다. 듀엣이라 그런가, 이 앨범에 소개되지 않은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같은 데카 레이블의 바바라 보니의 베스트 음반에서는 숄과 듀엣으로 한 '스타바트 마테르'의 첫 곡이 실렸다!) 커크비의 아름답고 '순결한' 음색과 꾸밈없는 창법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신의 숨결위의 깃털'은 하이페리온 레이블이라 실리지 않았을 테지만, 웬지 언급하고 싶다. 그 앨범에서 느꼈던 커크비의 매력을 이 앨범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트랙인 모차르트의 '라우다테 도미눔'이나 영화 '샤인'에서 삽입되어 유명해진 (그건 커크비의 노래는 아니었다;)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같은 노래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비발디는! 또한 영국인 커크비야말로 퍼셀의 노래를 부르기에 적절한 예술가일 것이다. 많은 성악가들이 모국어로 노래부를 때 보통 훌륭한 결과를 냈던 것은 사실이므로. (물론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연주는 할 수 있다. 저 명제의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 커크비가 모차르트가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한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엑슐라테 유빌라테'를 부르기에 적당한 목소리라고 생각되지 않지만 꾸밈음이나 잇단음 처리는 훌륭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언뜻 연약해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음반에도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의 맥락을 우선 무시하고 편집된 성악가들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근데 꽤 가지고 있잖아 -_-;;) 그래도 그 성악가의 장기를 잘 살려 편집된 컴필레이션 음반이라면 괜찮다고 본다. 그건 편집자의 능력, 아니 그 보다는 세심함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엠마 커크비의 이 음반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녀가 르와조리르와 함께 어떤 레퍼토리들을 주로 녹음했는지는 잘 모른다. (생각해보니 주로 인상적으로 생각되었던 레퍼토리는 하이페리온과 함께 한 것이었고, 내가 음악을 듣기 시작하기 전에 르와조리르는 망했다) 하지만 이 레퍼토리로는 커크비의 고음악 운동의 여왕으로서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 아래 쌓인 연주가이자 연구자로서의 정신, 그리고 그녀와 함께 고음악 운동을 함께 이끌었던 수 많은 연주자들의 역사를 맛보기엔 다소 부족한 점들이 있다. 그녀는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하는 부지런한 음악가이기도 하므로, 한 장의 음반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 레이블과 함께한 그녀의 역사라는 점을 생각해 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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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3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음반 있는데 저는 교보문고 에서 직접 구입했던 걸로 기억해요..
너무 좋아서 친구들 올때 틀어놓는데 다들 "누구꺼야 "해요.. 정말 좋죠!! 모짜르트 곡을 너무나 잘 소화시키는 .. 여인 .. !!

고냥이님은 좀 아쉬운점도 있으셨군요 .. !! ~

투명고냥이 2007-07-30 11:48   좋아요 0 | URL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죠. 저는 첫 곡부터 압도당했는데 제 주위에선 하도 "뱀 나온다"해서리...
첩보에 의하면 근년에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는데 드디어 여왕님을 뵙다니,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7-07-30 15:5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가야겠어요... 기대 되네요 ^ ^ 혹시 그 날짜 알게되시면 저에게도 슬쩍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려요.. 고냥이님!!

투명고냥이 2007-07-30 23:41   좋아요 0 | URL
예, 당연하죠. ^^
 
[수입] 비발디 : 니시 도미누스, 모테트
안드레아스 숄 (Andreas Scholl) 노래 / Decca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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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정확한 딕션, 결 고운 프레이징, 섬세한 꾸밈음의 표현과 무엇보다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길고 안정된 호흡. 숄에서 떠올릴 수 있고 또 기대하면서 언제나 배반당하지 않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다. 나는 그 점에 높은 가치를 뒀고, 그래서 숄의 연주라면 덮어놓고 믿어보는 편이다. 그는 내게 선택의 두려움을 지워버린, 몇몇 음악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음을 정확히 집어내고(심지어는 잇단음표나 꾸밈음의 표현에서조차) 또 자신이 그런 연주를 추구하는 듯이 보이는데, 놀랍게도 그 정확함이 조금도 차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학구적인 면모가 돋보이면서도 그의 연주는 설교를 하거나, 귀만 가지고 있는 우리와 전문가인 자신 사이에 선을 그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편안하다. 하지만 또한 영리한 것이, 슬쩍 슬쩍 자신이 가진 재주를 꺼내놓기도 한다. 그게 또 얄밉도록 깔끔하다.

때로는 듣는이를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려 들지 않는 그 목소리와 해석이 둔하다고 느낄 때도 있고 그것은 분명 그의 단점이겠지만, 접하면 접할 수록 그런 둔함 속에서 그가 추구하는 일종의 경지가 느껴진다. 시간과 노력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갈고 닦기에 여념이 없는 그는, 분명 장인적인 카운터테너다.

그리고 그의 그런 태도는 중세와 바로크의 종교 성악곡에 대한 나의 선호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기도는 원래 소리 높여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나는, 겸손한 이성과 한 발 물러선 인간적인 희노애락을 종교 성악곡들에게 찾고 숄이 대개 그러하다. 나는 그의, 통곡이 이어지는 대신 슬픔이 베일 너머로 배어나오는 듯한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와, 푸른 잎새 사이로 내려 쬐이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과도 같은 바흐의 알토 칸타타와, 그리고 속세의 티 하나 묻지 않은 듯 조금의 두려움이나 떨림도 없는 비발디의 니시 도미누스를 좋아한다. 그는 바로크 오페라에도 몇 번 도전하였지만, 역시 손이 자주 가는 시디들은 종교 성악곡들이다. 특히, 카운터테너로서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특징적인 화창함 때문인지 그는 앙상블 연주보다는 독창에서 제 맛을 낸다.    

특히 니시 도미누스에 대해 말하자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느껴지는 표현의 탁월함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가 없으며(무엇보다 그 깨끗한 꾸밈음 처리와 긴 호흡으로 밀어붙이는 메사 디 보체의 표현은 숄이 자신의 장점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얄미울 정도로!) 만족과 아쉬움을 동시에 전해 주는 곡의 해석에선 슬슬 고집도 엿보인다. 보우만과 다니엘스의 같은 연주보다는 심심하고 밋밋하지만 반대로 그 어떤 연주보다도 안정적이면서 쉽게 다가온다. '안드레아스 숄의 음악'이 무엇인지 데카로 옮긴 후 두번째로 내는 이 음반에서 확실히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표현은 독선적이지 않으면서도 무척 고집스럽다. 듣는이와 충분히 소통하고 있으면서도 정수에 있어서는 조금도 물러섬이나 타협이 없다.  

물론 아직은 델러처럼 텍스트의 가장 깊숙한 곳을 읽어내어 듣는 이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납득시키고 동요시키는 충만함은 없지만, 숄은 적어도 방향을 잘못 잡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가 진심으로는 델러의 경지를 바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안드레아스 숄'만의 경지를 찾고 있고, 그렇기에 그에 대해서는 계속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저 파안대소를 보면서 비관적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덧 ; 이 앨범의 정수는 니시 도미누스가 아니라 살베 레지나인 것 같다. 비발디는 기악곡들로 유명하지만, 그가 만든 성악곡들의 아름다움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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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 이 사람 음악이 때론 좋았다가 아니었다가 해요. 이 음반은 좋아요..
집안 새단장하셨네요.. @.@~~

투명고냥이 2007-07-26 22:42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에요. 영 곰탱이 같을 때나 '그래, 니 혼자 놀고 있구나' 할 때나 냉정해서 들여다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 때는 많이 아쉬워요. 예전에 써 놓았던 글인데, 그 때 이 음반을 이렇게 칭찬할 정도로 좋았던 건 아마 비발디 덕도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앨범에 실린 살베 레지나 같은 건 정말 아름답잖아요.
새단장을 했긴 했는데 보기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저 달리 사진을 꼭 쓰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한 것이라....
 
[수입] 성주간을 위한 애가 [Digipak]
키에르 (Maria Cristina Kiehr) 소프라노, 콘체르토 소아베 (Concert / Harmonia Mundi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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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리스티나 키에르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르네 야콥스가 지휘한 칼다라의 오라토리오 '그리스도 무덤 앞의 막달레나'에서였다. 맑고 청순한 목소리였다. 애수 띈 곡조를 깔끔하면서도 냉정하지 않게, 그야말로 청아하게 부르는 것을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던 것 같다. 그 후 그녀의 목소리는 북스테후데, 바흐 등의 종교곡 뿐만 아니라 바로크 오페라에서도 접할 수 있었다. 쫓아다닌 건 아니고 음악을 듣다가 '아, 이 소프라노는 누구지?'하고 찾아보면 키에르인 때가 많았다. 그녀와 함께 작업했던 음악가들이 대체로 내가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긴 했지만.

키에르의 목소리의 중량감은 때로는 날카롭게 들릴 정도로 하늘하늘한 엠마 커크비와 약간 근육질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요하네터 조머르의 중간 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두 사람보다 부드럽다. 나는 커크비와 조머르도 좋아하고, 두 사람다 워낙 세계적인 소프라노이므로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취향이고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소박한 울림을 지닌 종교곡들에서는 키에르는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게을렀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키에르가 독창한 것으로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수록된 곡들은 내게 무척 낯선 것들이었다. 아는 작곡가는 팔레스트리나, 프레스코발디, 마르코렐리 정도? 대부분 17세기 쯤의 노래들이며, '성주간을 위한 애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부활절 전 고난 주간의 3일 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절 전 토요일 동안 조과 미사에서 불려지던 음악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한다. (아직 부클릿을 다 안 읽어서 엉성하다, 양해를...) 그래서 그런지 애수띈 가락은 맑고, 청량하고, 그 울림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처롭게 들린다. 내가 HMF레이블을 우선 선호하는 것은 소속된 연주자의 면면을 믿을 수 있기도 하지만 음향이 특히 내 귀에 맞아서인데(때로는 목욕탕사운일 때도 있지만), 이 음반에서도 그런 잔향까지 깨끗하게 잡아내고 있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들으면 천상에 올라갈 것만 같다. ^^

키에르야 말 할 것 없고, 같이 연주한 콘테르토 소아베의 연주 또한 깔끔하다. 키에르의 목소리와 잘 맞는다는 느낌이다. 비올라 다 감바, 하프, 시타로네, 리로네, 클라비오르가눔등의 고악기들의 친숙하면서도 낯선 그래서 편안하면서도 신비로운 음향은 나와 같은 초보자의 귀에도 전혀 부담감이 없다. 리뷰를 쓸 용기가 보통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으므로 다른 곡들과 비교하거나 그 특징을 정확히 잡아 낼 수는 없지만, 커크비가 연주한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신의 숨결 위의 깃털'과 비슷하면서도 그 보다는 편안하다. '신의 숨결 위의 깃털'에서 거의 신비주의적인 신과의 합일, 혹은 영적 체험이 느껴진다면 이 곡들은 고요한 새벽의 묵상 같은 느낌이랄까. 익숙한 곡들이 아니라 낯설지만, 그런 것 치고는 편안한 느낌이다. 너무 낯선 곡들이라 뭐 추천하고 그런 건 잘 못하겠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충동적으로 샀는데, 잘 한 선택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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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5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음악추천 감사합니다.. 들어봐야 할것 같아요..

투명고냥이 2007-07-25 21:59   좋아요 0 | URL
좋은 음악입니다. ^^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수입] 헨델 : 연인의 번민 (실내 칸타타) - '사랑의 싸움 HMV 82' 중에서 매력적인 아마릴리, 달콤한 시간, 큐피트가 봤을 때 & 나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Digipak]
헨델 (George Friedrich Handel) 작곡, 오타비오 단톤 (Ottavio / Harmonia Mundi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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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아 문디의 스타 중의 한명이며 촉망받는 예술가로서의 시기를 지나, 개화를 꿈꾸었던 메이저 레이블 데카와의 작업을 마치고, 숄은 다시 그를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하모니아 문디로 돌아왔다. 수줍은 미소를 짓으며 청아한 목소리를 뽐대던 청년은 좀 더 고집이 세지고, 좀 더 주관이 뚜렷해졌으며, 좀 더 깊이를 담은 중년의 성악가가 되어 있었다.

그가 하모니아 문디를 떠나있는 동안 그의 스승이자 젊은 성악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었던 지휘자 르네 야콥스는 하모니아 문디에서 성공적인 오페라 음반들을 놀라운 피치로 내기 시작했고, 또한 여러 고음악 레이블은 그와 다니엘스와 아사와가 부풀린 카운터테너 시장에 앞다투어 뛰어들어 많은 카운터테너들을 발굴해내고 키워냈다. 그 동안 데카에서 숄은 하모니아 문디 시절보다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였고, 무엇보다 오라토리오나 오페라 무대에 자주 서게 되었고, 옥타비오 단토네가 이끄는 아카데미아 비잔티나 같은 좋은 악단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는 딱히 집어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을 주었다. 물론 데카의 지원이 없었다면 숄이 이 먼 한국땅에서 리사이틀까지 갖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크리시와 함께 했던 '사울' '솔로몬'(둘 다 아르히브 레이블)같은 녹음에서, 또한 '로델린다' 같은 바로크 오페라 공연에서(크리스티가 지휘한 이 공연은 dvd로 나와 있다. 줄리오 체자레도 곧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숄은 분명 성장의 기미를 보여주었다. 특히 부드럽고 안정적인 발성을 어느정도 포기하고 얻어낸 표현력의 성장과 바로크 오페라에 대한 경험은 분명 훌륭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이어진 것인지, 숄이 하모니아 문디와 다시 계약을 체결하고 내놓은 첫앨범은 헨델의 드라마틱한 칸타타들이다. 첫 곡의 경우, 숄이 아직 무명 카운터테너였을 무렵 크리스티나 키에르와 녹음했던 적이 있는데 그 녹음과 비교해보면 눈에 띌 정도로 드라마틱한 가창이 눈에 띈다. 숄의 양치기는 애원했다가, 원망했다가, 낙담했다가, 분노한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애절하다.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청아함을 조금은 댓가로 내 놓고 얻은 성장이리라.  

분명 야콥스, 헤레베헤, 크리스티 같은 대가들의 보호 아래서 쑥쑥 커가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이제는 그런 대가들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는 한 사람의 '독립된' 음악가로 컸다. 완벽한 음악가는 없다. 숄도 마찬가지어서, 누군가는 여전히 그의 과거를 아쉬워하고 누군가는 그의 단점을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경력과 나이에 걸맞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음악가를 만드는 것은 타고난 재능 외에도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더 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덧 : 이 앨범에서 또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아카데미아 비잔티나가 연주한 소나타다. 매력적인 개성을 지닌 이 악단은 숄과 함께 할 때보다 자신들의 연주를 할 때 좀 더 인상적이란 생각이 든다. 숄과 함께 할 때는 좀 더 숄과 싸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별은 정확히 세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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