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심리 -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총서 11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총서 11
콜린 윌슨 지음 / 선영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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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심리' 작가인 콜린 윌슨은 그의 20대때, '아웃사이더'로 일대 돌풍을 일으킨 작가이다. '아웃사이더'는 여러 문학작품들에서 그가 '아웃사이더'라고 명명한 어떤 특징을 가진 인물들과 그들의 행동들을 나열하고 분석한 책으로, '살인의 심리'는  이 '아웃사이더'와 서술방식이 비슷하다. 즉, 사건을 나열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윌슨은 FBI나 심리학자 출신도 아니고 그가 독학으로 '아웃사이더'를 완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학이나 사법역사에 관한 어떤 전문적인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이것은 한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살인은 아마추어의 범죄라고 포와로의 입을 빌어 말한 적이 있다. 세익스피어는 작품에서 살인은 나름의 기관을 가지고 말을 한다고 하였다. (둘 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살인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범죄이지만 또한 가장 기본적이고 누구든 저지를 수 있는 범죄이다. 따라서 전문성을 요하는 다른 범죄-절도, 강도, 사기, 위조등-에 비해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라는 질문은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한 분석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깊이를 가진다. 즉,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비전문가인 콜린 윌슨의 책에서 어떠한 정신과학적인 측면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발견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현장에서 일한 전문가들의 그것에 비하면 무척 추상적이고 비전문적일 것이다. 대신 콜린 윌슨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인문학적(?) 태도일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원제가 '살인의 사례집 THE CASEBOOK OF MURDER'인 것을 생각해보면 콜린 윌슨이 의도한 것도 그의 장기인 에피소드의 나열과 그것이 유기적인 연결이었을 법하다. '살인의 심리'라는 번역제목은 말하자면 일종의 과대광고인 셈이다.

하지만, 원래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보아도, 책 전체의 완성도는 콜린 윌슨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분석은 때로는 날카롭지만 보통은 무디고, 쾌락살인이 독일인들의 기질 때문이라고 하면서 늙은 군인의 예를 드는 등 분석이라고 보기에 민망한 편견이 나열되어 있기도 하며(영국인들 또한 연쇄살인의 역사에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세익스피어에 얽힌 미스테리나 영국의 정치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책의 주제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지나칠 때가 있어 전체적으로 아쉬울 뿐이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다지 깊이도 없고, 날카로움도 없다.

물론 가끔 콜린 윌슨을 유명하게 만든 날카로운 서술들이 보이긴 한다. 역사적으로 살인과 그에 대한 형벌을 둘러싼 당대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그의 묘사와 분석은 때때로 인상적이며, 나열한 사례의 양과 질은 탄복할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런 면모들이 읽는 이에게 주도적인 인상으로 남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피상적인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어 아쉽다. 그저 '사례들'을 접한다고 생각하며 본다면 제일 좋은 책은 아닐지라도 읽어볼 만한 책이긴 하다.

별점은 두 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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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 How To Read 시리즈
레이 몽크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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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던 책은 아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마땅한 입문서가 없던 차에 우선은 출간이 반갑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책이나, 전기나, 연구서는 많지만 대부분 다루는 범주가 너무 특정화 되어 있거나 좁거나 주변적이고, 혹은 너무 전문적이고 때로는 너무 개인적인 감상에 머무는 감이 있었다. 연구서와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을 읽는 것에까지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너무 일반적이지도 않고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 정직한 책이 절실했는데 HOW TO READ 시리즈의 비트겐슈타인 편은 내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었다.

널리 알려진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작가답게, 몽크는 많은 사료-편지들, 메모들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비트겐슈타인에 우선 접근한다. 물론 그 사료 중에는 그가 생전에 그리고 사후에 발표했던 저작들도 포함된다. 전자가 많았으면 이 책은 그저 인간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삽화에 그쳤을 것이고 후자가 많았으면 읽기 어려운 책이 되었겠지만, 저자는 그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마치 수수께끼나 계시 같은 <논리 철학 논고>의 그 유명한 첫 일곱 명제를 우선 서두에 들이밈으로서 읽는 이를 주화입마에 빠지게 하는 대신, 비트겐슈타인이 아직 러셀의 영향력아래 있었던 때의 서평을 먼저 보여준다. 이 서평 역시 이해하기 어렵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저작 중에서는 비교적 읽기 쉬운 편이며, 그라는 인물을 요구했던 철학사적 요청과 그의 학문적 배경-가장 일반화된 형태의-을 소개함으로서 그것이 발전되어 가고 수정되고 후에 변혁을 맞는 여정을 마치 연대기적으로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중간중간에 인용된 비트겐슈타인의 실제 저작들, 편지들, 노트들은 '위대한 동시에 수수께끼인' 이 철학자와 그의 사상에 대한 몽크의 분석에 신뢰감을 갖게 해 준다. 또한 몽크는 책의 어느 구절에 대한 분석을 무리하게 시도하는 대신 그의 사상 전체를 아우르는 데 필요한 퍼즐 한 조각으로서 구절들을 다룸으로서 이것을 읽는 독자가 입문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고 그럼으로서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뭉크의 책에서 얼마만큼 옳게, 정확하게 표현되었는가는 확신할 수 없다. (별 하나를 감한 것은, 몽크가 아니라 독자인 나 자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사실 그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신비주의적 면모, 혹은 신비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는 결론을 보면서 가끔은 비트겐슈타인도 자신이 발견해낸 새로운 철학의 세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 자신도 자신이 창조해낸 철학에 먹힌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이는 내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는 철학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진리(로 가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그럼으로서 이후 철학을 지배하였던 위대한 철학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굉장히 어려운 책을 남긴 철학자라는 것도.  이 책만으로 비트겐슈타인을 모두 알게 되었다는 오류와 오만은 범하지 말아야 되겠지만, 적어도 몽크는 이 책을 통하여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철학과 그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이며 알맞은 첫 디딤돌을 놓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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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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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구 문화가 세계를 짓누르기 시작하면서, 이슬람 문명이 무시되거나 오해받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슬람 세계는 여성이나 소수자를 억압하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등 전근대적 가치에 매달리는 듯이 보여지거나, 오일머니로 번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졸부들의 이미지거나, 끊임없이 전쟁과 테러를 일으키고 고집을 부리는 문제적 존재들로 여겨진다. 이슬람 세계와 계속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서 보수주의자들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내 놓은 책들을 보면 그들은 사탄이며,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며, 무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기독교문명으로 대표되는 유럽계 백인들과는 전혀 다른 인종들이며 아무리해도 유럽은 이들을 이해할 수 없고, 이들은 유럽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전쟁과 정복 그리고 말살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의 이런 시각은 십자군 전쟁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바탕을 지니고 있는 저 머~~언 세계인 동북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유럽문화와 이슬람문화는 극과 극이며 서로 배척할 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럽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경계에 선 터키의 작가로서, 파묵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인 베네치아 출신으로 오스만 투르크에 노예로 끌려온 '나'와 그의 주인인 터키인 호자, 마차 쌍둥이처럼 닮은 이 두 주인공을 통해 질문하고 있다. '우리와 당신은 얼마나 다르며, 또 얼마나 닮았는가.' 이 책은 물론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동시에 다루고 있디고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충돌의 여파 중에 가려져 있던 두 문화의 융합과 상호이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그간 접할 수 있었던 시도들이 대부분 유럽계 백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에 반해, 터키인인 파묵은 자신이 발딛고 있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는 점이 무척 신선하다. 유럽인 노예가 화자가 되어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이야기구조는 그 반증이다. 그러나 만약 단순히 노예가 야만인의 문명의 발전된 모습에 교화되었다는 스토리였다면 이 소설 역시 편협함과 자문화 중심주의의 혐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조금 특이한 시각에서 바라본 두 문명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여기서 파묵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자문화 예찬의 함정에 빠지는 대신, 유럽인 노예의 맞은편에 서구를 동경하며 이슬람문화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호자를 배치함으로서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서로가 느끼는 타문화에 대한 동경과 이해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면서 두 문화의 닮은 점만큼이나 다른 점도, 그리고 닮은 것은 닮은 것대로 다른 것은 다른 것대로 놓아두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마치 '나'와 호자가 닮았으되 서로 다르듯이 말이다. 

<하얀 성>은 매우 복잡하지만, 매우 잘 쓰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읽히든, 아니면 유럽문화와 이슬람문화의 관계에 촛점이 맞추어지든 간에, 독자를 깨우고 독자가 깨어있어야만 하는 요소들이 그득하다.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보일 것 같고 전혀 다른 지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감성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림으로서 그것이 마치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인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동시에 읽으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은 참 오랫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번역자이신 이난아 선생님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더 좋은 소설, 그리고 소설을 통한 더 넓은 세상을 많이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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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사 Dr. 스쿠르 애장판 전12권 세트
사사키 노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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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뽑은 만화 50선"이라는 목록을 본 적이 있다. <내일의 조/허리케인 조>라든지 <도라에몽> <유리가면>같은 익숙한 작품들이 상위에 링크되어 있고, 이름을 모르겠는 만화가 한 반쯤 되는 목록이었다. 그런데 그 목록 13위에 정말 생각치도 않았던 만화가 한 권 올라 있었다. 노리코 사사키의 <닥터 스쿠르>였다.

노리코 사사키의 <닥터 스쿠르>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노리코 사사키라는 만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녀만큼 일관성있는 스타일을 가진 만화가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작품마다 그녀가 변화를 주는 것은 배경 뿐 인 것 같다. <닥터 스쿠르>는 수의대와 동물병원, <못말리는 간호사>는 병원, 그리고 최근작 <헤븐>은 레스토랑, 이런 식으로. 배경설명이 끝나면 이렇게 간단하게 그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 십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성격의 캐릭터들은 자질구레한 소동들을 벌이면서 평범하지만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그녀의 만화들의 첫인상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큰 줄거리도 없고, 사건도 없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과연 있을까. 그림체도 상당히 평범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편이다. 슬랩스틱개그풍도 적다. 그러나 그녀 만화가 매력이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할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은 정말로 정말로 매력적이니까. 그것도 두세번, 네번, 그 이상을 반복해서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과연 어디에 그런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노리코 사사키 만화만의 특징을 찾아야 한다. 그녀의 만화만의 무엇을 찾는 일은 쉬워 보인다. 그녀 스스로는 일관성있는 스타일의 소유이지만 만화계 전체로 보면 그녀의 스타일은 오직 그녀만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하면 지나친 평가일까?) 수의대, 병원, 레스토랑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평범한 사건들과 조금은 벗어난 평범한 일상의 비범한 사건들. 아까도 말했듯이 개성 강하고 나름대로 다들 성격파(?)인 등장인물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녀가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대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 세밀한 묘사들.

그 중 그녀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세번째 요소이다.  <닥터 스쿠르>를 보고나면 왠지 수의대를 반쯤은 다닌 기분이 되고 (그래서 쥐에게 주사를 맞출 수도 있을 것 같고 개에게 약을 먹일 수도 있을 것 같으며, 소의 아이를 받는 일이나 동료의 꼬리를 물어뜯는 범인 돼지를 잡는 일도 가능할 것만 같다) <못말리는 간호사>를 보면 종합병원 간호사들의 행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게다가 각종 병의 신기한 특징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헤븐>을 보고나면 이런 저런 일들을 해 주지 않는 레스토랑이 삼류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만화의 "로인 디시 loin d'ici"라는 레스토랑이 과연 일류인지는 다른 문제지만. 상당히 격식은 갖추었지만...품위가... --;;;) 흥미롭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대한 백과사전같은 해박한 묘사, 그것이 상당히 재미있으며 매혹적이다. 그래서 결코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점점 만화에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캐릭터들이다. 한 번 보면 잊혀질 수 없는 상당한 성격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닥터스쿠르>의 주인공 찬우나 <헤븐>의 주인공 이가 칸은 주인공치고는 상당히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지만 주인공이 평범한 대신 정말 빛나는 조역들이 많이 등장한다. <닥터 스쿠르>에서는 (만화를 보신 분이라면 아하!하고 가장 먼저 생각해내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유교수가 있고, 만화 여주요조역 치고는 상당히 과격한 특징과 괴상한 체질을 소유자인 이태영양, 쥐를 무서워해서 교재의 쥐 그림에 "나는 다람쥐"라 써놓야만하는 강민군, 엄격하면서도 엄격하지 않은 할머니, 무신경한 놈인 것 같은 태수, 등이 이 만화의 빛나는 인간 조역들이다. 사실 이 만화에서는 동물 조역들이 진짜이다. 동네의 여대장 나비, 무섭게 생겼으나 담담하고 얌전한 시베리안 허스키 꼬마, 아무생각 없는 모래쥐들, 그리고 닭에 대한 인식을 상당히 바꾸어놓는 마당의 무법자 병순이. 생각해보면 주인공들이 얌전한 사사키의 만화에는 그 빈자리(?) 메꾸고도 몇번은 넘칠 조역들이 그득그득 하다. (<못말리는 간호사>에서는 주인공부터 상당했는데 그 대신 조역들이 상당히 정상적인 인물었다는 재미있는 점이 생각난다.)

그리고 마지막, 배경에 대한 상당한 묘사를 바탕으로 독특한 성격의 인물들이 평범하지는 않지만 일어날법한 사건을 만들어 나간다. 그것이 이 만화에 묘하게 매력적인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친근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을 전해 주는 것이다. <닥터 스쿠르>를 보면 "이 정도 일은 일어날 것 같아"하면서도 수의대라는 곳이 상당히 신기한 곳이 된다. 실제 수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일들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기도 하지만 만화만큼 재미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 역시도 신기하다.

바로 노리코 사사키의 만화는 이렇게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우리가 쳇바퀴돌듯한 일상에서 한 번 꿈꾸는 소심한 탈출감이랄까. 나와 내 주위 사람들과 나의 일은 여기 그대로 존재하면서도 한바탕 웃을 수 있고 잠깐 휴식이 될 수 있는 해프닝들을 구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사키의 만화는 그렇게 일상적인 해프닝들의 연속이다.

상당히 쉬워 보이면서도 꽤 어려운 일이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일상에서 특징적인 해프닝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실 <닥터 스쿠르>말고도 그런 해프닝적 일상들을 다룬 만화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사사키만큼 "평범해보이는" 작가는 만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 저런 것 잊고 아직 <닥터 스쿠르>를 읽지 않으신 분은 한 번 쯤은 읽어둘만은 하다.  모두의 마음에 들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지만, 적어도 꼬마같은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들테니.

ps ; 새로 나온 판형과 종이, 마음에 든다. 근데 제본이 약간 약한 듯... (내것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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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는 동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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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같은 퍼즐 미스테리 외에도 많은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그리 새롭지도 않을 것이다. 미스테리 소설이라도 어떤 것은 전형적인 퍼즐미스테리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스파이물이거나 모험물이고, 어떤 것은 환상물, 게 중에는 심령호러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크리스티는 오래 살았고 또한 오래 활동했으며,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유난히 부침이 많았으니까. 한 때는 전통적인 엄숙주의가 지배했던 적도 있으며, 가짜 과학이 판칠만큼 사람들이 과학을 종교처럼 믿기도 했으며, 대공황이 있었고, 두번의 전쟁을 겪은 후엔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전통적 가치의 전복이 일어났다. 제국주의는 무너지고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등장했으며, 어느 곳에서는 공산주의혁명이 일어났다. 두 세력간의 냉전은 새로운 공포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런 일들이 없었다 해도, 사람의 창작 욕구가 한방향으로만 뻗어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는 '이런 것도 쓰셨나?'라고 생각되는 분위기의 작품들이 꽤 있다.

크리스티의 팬으로서, 개인적인 취향으로도, 나는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크리스티가 역사상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훌륭한 미스테리 소설가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지만, 사실 그녀는 그렇게 트릭 중심주의자도 아니었고 때로는 독자와 공정히 겨루지도 않았다. 기계처럼 정교하고 복잡하며 기발한 트릭이라면 엘러리 퀸이나 반 다인 같은 동시대의 작가들 혹은 그 후대 작가들이 더 나을 때가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에게는 지금도 '영국 여성 미스테리 작가'하면 떠오르는 특유한 분위기을 세상에 널린 알린사람이며, 가장 잘 다룬 사람이며 그렇기에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뛰어난 심리묘사, 드라마적 요소의 강조, 그리고 어딘지 모를 로맨틱한 분위기인 것 같다. 그리고 미스테리의 외피를 조금 벗어던진 크리스티의 작품은 역시나 심리묘사가 일품이고, 로맨틱하며 어딘지 모르게 드라마틱하다. 추리의 여왕이라는 타이틀 뒤에 가려진 또 다른 매력적인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의 1권으로 나온 '빛이 있는 동안'은 국내에 출판된 적이 없을 법한(확신할 수는 없다) 단편 소설들을 묶은 것이다. 대부분이 습작들이며, 행사용 소설도 있으며, 로맨스 소설도 있다. 크리스티의 팬으로서도, 낯선 분위기의 작품들이 섞여 있어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크리스티의 대표작만을 접해본 사람이거나, 그녀의 또 다른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실망스러운 독서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트릭이나 서스펜스를 기대하고 읽을 작품들은 아니니까. 몇 편의 미스테리 작품들도 결코 크리스티 여사의 명작 단편이라 칭할 수는 없을 정도의 완성도이다.

하지만, 크리스티 여사의 팬으로 특히 그녀의 단편소설들이 익숙하거나 포와로의 커플매니저 역할을 내심 기대하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봄 직하다고 생각된다. 허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그저 크리스티 여사의 잘 안 알려진 작품들을 만난다, 그 정도의 의의만 가지고 있다면 제법 흥미롭게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별은 두 개 반. 나는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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