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
데이비드 에드먼즈 & 존 에이디노 지음, 김태환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 이란 조금 기막힌 제목을 달고 있는 재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Wittgenstein's Poker'이다. Poker는 포퍼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포커가 '놀이'의 일종임을 생각해볼때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리게도 한다. 또한 포커라는 게임을 떠올려보자. 상대에게 보여준 패, 내 손 안에 감춘 패, 그리고 내게 보여진 상대의 패, 상대의 손 안에 감춘 패, 그리고 중도에 카드를 던지지 않는다면 주어질 마지막 '숨겨진' 패. 이 책의 두 저자는, 1946년 10월 25일 저녁 8시 30분 케임브릿지 킹스칼리지 깁스 빌딩 회의실 H3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포커패를 분석하듯 독자에게 풀어놓는다.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우리 모두가 몰이해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비트겐슈타인, 우리가 알고 있는 포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포퍼,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를 위시하여 당시 2차 대전후의 유럽에 떠돌고 있던 거대한 생각의 흐름들. 그리고 히든 카드는 바로 그 모든 생각의 흐름들이 허깨비처럼 흩어져버리고 있는 현대에 있어 두 위대한 철학자의 의미이다.

 

사실 원제나 우리나라에서 첫출간 되었을 때의 제목인 '비트겐슈타인은 왜?'를 생각해보면 비트겐슈타인에게 촛점이 맞춰진 느낌이고, 책 역시도 분량이나 밀도를 공평하게 맞추려고 노력한 점은 엿보이나 비트겐슈타인에게 살짝 기울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 나온 성격대로의 포퍼라면, 노발대발 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비트겐슈타인의 이란 인물의 인상이 강력해서일 것이다. 생전에 낸 책 한권 사후에 출간된 책 한 권 이렇게 겨우 두 권의 책으로 이후 철학의 방향을 바꾸어 버렸으며, 심지어 두번째 책이 첫번째 책을 부정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두 책 모두 아직까지도 연구의 대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치된 해석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만 봐도 비트겐슈타인이란 인물은 뭐지, 이사람? 싶다. 거기에 세기말의 빈에서 태어나 2차 대전을 겪은 유대인 지식인이라는 점과 동성애적 성향까지 하면 가쉽거리로 삼기에도 딱 좋다. 그에 반해 포퍼는 그 역시 오늘날까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하나, 살짝 밀리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포퍼가 논리실증주의의 난점을 극복하고자 했던 논리학자였다는 점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 두 학자는 사실 당대를 풍미했던 모두 논리실증주의와 나름의 교집합을 이루는 학자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지깽이 스캔들' 역시 일단은 논리실증주의와 궤를 같이 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1946년 당시 논리실증주의의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명감 같은 건 없었고 포퍼가 공격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이론 역시 당시 포퍼의 이해하고는 다른 것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내심이야 어떻든 (그의 내심의 철학을 그 누가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포퍼가 비트겐슈타인에게 들이댄 공격은, 논리실증주의를 넘어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의도와 얼마나 일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몰고올 철학의 '전회'와 그 흐름이 도착하기 직전의 철학의 전통 사이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당시 인간 비트겐슈타인의 상태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트겐슈타인이 폭발시킨 철학의 새로운 흐름과 그의 철학으로 인해서 부정당할 위기에 처했던 (과연 이 해석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통적인 흐름 모두 살아남아 현대의 사상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여전히 분석과 숭상의 대상이 되고 있어, 이 날의 스캔들은 여전히 진화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논리실증주의 자체가 이해하기 쉽지 않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에 살짝 정신을 놓으면 그 시사점이나 의미보다는 오해나 스캔들에 퐁당 빠져버리기 십상인 것 같다.

 

역시 이 책에서 또한 가장 재미있고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가는 부분은 '사상'보다는 '사건'들을 나열한 부분들이다. 심지어 그 부분이 상당히 잘 쓰여졌기 때문에 퐁당 빠져버릴 위험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건 이 책이 택한 형식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두 거장의 사상과 당시 사상의 흐름을 재구성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데, 그런 꿈을 실현시기키에 사건은 너무 재미있고, 두 철학자의 개성은 너무 뚜렷한 반면, 두 사람의 사상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너무 난해하고 그들이 두고 싸웠던 문제 역시 근원적인 문제가 그렇듯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괴상한 천재 비트겐슈타인과 성질 더러운 수재 포퍼' 그리고 '능구렁이 같은 러셀'만 남을 수도 있다.

 

그런 난점을 이 책의 두 저자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논리실증주의와 두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해석을 충실히 요약 설명함으로서 그런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사실 이 책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설명은 구경꾼인 내가 읽기엔 상당히 적당해 보인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해서도 그 해석의 난장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일치되고 있는 해석을 충실히 적어 놓았다. 입문이라면 입문일테지만, 그냥 두 철학자의 싸움이 어디서 연원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밑밥이라고 해 두자. 감히 말하자면, 밑밥은 상당히 적절하게 잘 깔린 거 같다. 그러나 그 10분이 너무 기가 막히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파트 '최후의 승자'는 꽤 중요하다. 이 파트는 이 책이 단순 스캔들을 복기하는 것이나 스캔들에 철학 입문의 양념을 얹는 것이 아니라면, 왜 그 당시의 일을 꺼내와서 책을 쓰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들의 답과 같다. 사실 우리는 가장 최근의 천재로서 비트겐슈타인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고,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드러난 포퍼의 혜안에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그들이 진정 닿고자 했던 그 무엇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철학의 문제는 무엇인가, 진리를 무엇인가를 두고 벌였던 두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가쉽거리로만 남을 위기에 처해 있다. 역자서문에서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파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두 사람의 사상은 살아남아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 반짝이는 빛은 바래져가고 있고 그건 역자가 이야기하듯 아마 우리 누구도 더 이상 진리를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한숨을 쉬고 싶지는 않다. 저자들이 말하듯이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주의자, 포퍼주의자 같은 말을 여전히 사용하며 그들의 빛나는 개성과 뛰어난 논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더 이상 치열한 논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도 말이다. 이는 한편으론, 마치 진리는 말해질 수 없고 보여져야만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렇기에 누군가에 의해서든 계속 말해져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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