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달토끼야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30
문승연 글.그림 / 길벗어린이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달'하면 '토끼' 와 '떡방아'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그런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어린시절을 서울서 보낸 나는, 토끼가 방아를 찧는 달을 본 적이 없다.

하늘의 별도 마치 이벤트처럼 시골이나 내려가야 볼 수 있는 것일뿐.

32개월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아이가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시장보다는 마트, 집은 모두 네모 반듯한 아파트, 외출을 할때는 당연히 자가용, 밤을 밝히는 건 달과 별이 아니라 아파트의 불빛, 간판의 불빛, 가로등, 그리고 교회의 십자가인 삶.

자연과 벗하도록 키운다고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아이는 블럭으로 주차장 차단기를 만들어 놀기를 좋아한다.

쿵더쿵 쿵덕. 노래하듯 읽어주니 아이는 신기한 듯 관심을 보인다.

뭐하는 거야?

응, 방아를 찧어서 떡을 만드는 거야, 라고 대답하고나선 아차 싶었다.

이 아이가 몇 살이나 되어야 방아를 찧어서 떡을 만드는게 뭔지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습을 과연 어디서 보게 될까? 체험학습장? 텔레비전? 만화? 박물관?

방아?

응. 이거.

씁쓸한 기분으로 손으로 방아를 가리켜주니 아리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책은 더 보지도 않고 일어선다.

...좋아하는 것 같더니만...

책을 치우고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치우는 데 아이가 다다다다 하고 뛰어온다.

아랫집에 시끄러우니까 뛰지 말아야지, 하고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오는 데, 문득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이 눈에 들어온다.

마늘과 깨를 찧을 때 쓰는 손절구.

같이 사시는(우리가 얹혀사는 것) 친정엄마가 내 어릴 적부터 쓰시던 아주 오래된 손절구와 방망이다.

이거, 방아. 방아.

그러더니 뽀로로 인형으로 떡방아를 찧게 시킨다.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순간 어쩐지 안심한다.

삭막한 환경에 둘러쌓여 있지만 아이들은 그럼에도 자란다는 것을.

이 아이가 자라서 과연 토끼가 방아를 찧는 달을 볼 수 있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권의 따뜻한 동화책이 아이와 내가 본 적 없는 달토끼를 이어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달에는 토끼도, 뱀도, 거북이도 그리고 친구(아들은 인간 아이들을 그렇게 부른다)도 모두 모여 방아를 찧고 떡을 나누어 먹겠지.

세상이 변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들은 남아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가 본 적도 없는 달과 달토끼와 떡방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일으키는가보다.

 

책은 파스텔 톤으로 일러스트가 아름답다.

쿵덕쿵 덩더쿵 슥슥, 등  아이에게 읽어주기도 좋다.

토끼와 뱀, 친구가 모두 둥글둥글한 얼굴에 쉬이 그려져 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종이의 질감도 부드럽고 가볍다.

밤에 잠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은은한 불빛을 벗하며 읽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우리집은 아직 잠자는 시간이 전쟁통이라 그런 여유는 동화책에나 나올 만한 풍경이구나 싶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를 천문대라도 데려가서 달을 보게 하면 거기서 아이는 달토끼와 방아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달이 어떻게 생기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분화구와 크레이터, 그런 것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속에는 파스텔톤으로 슥슥 그린 아련한 꿈같은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내 아이가 지금보다 더 커서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 이 책은 알라딘 도미노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어볼 수 있었다. 좋은 책을 접하게 해 주신 알라딘과 출판사에게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차 ㄱ ㄴ ㄷ 비룡소 창작그림책 7
박은영 글.그림 / 비룡소 / 199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글을 빨리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아들놈이 기차를 참 좋아해서 골라든 나름 유명 동화책입니다.

그림의 색감이 알록달록, 거친듯 하면서도 밝습니다.

남편은 추상화 같다며 이걸 애가 좋아하냐고 묻지만

아들놈의 눈은 금새 해와 산, 기차, 자동차와, 다리와 나무를 찾아냅니다.

처음엔 그냥 읽어주었는데

기역 니은 순으로 진행되는 각 장의 글들이

결국 멋진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아채고 나니

절로 리듬이 붙더라구요.

 

기~다란 기차가 나무옆을 지나 다리를 건너...

 

그러다 칙칙 폭폭을 넣어봅니다.

 

기~다란 기차가 칙칙폭폭 나무옆을 지나 칙칙폭폭 다리를 건너 칙칙폭폭...

 

자동차가 나오면 뛰뛰빵빵도 해 주고 나무가 나오면 짹짹, 비바람이 불면 휘잉휘잉..

그런 식으로 살을 붙이니 읽어주는 저도 재미있습니다.

창문을 닫으면 칙칙폭폭 소리를 작아지고 터널에 들어가면 무시무시하게 시끄러워 집니다.

 

아들은 아직 한글은 커녕 말도 다 깨우치지 못한 30개월이지만,

글이고 말이고 다 던져버리고 읽는 재미가 있어 읽어주는 저도 즐겁고

아들도 자꾸 이 책을 꺼내옵니다. 기차 칙칙폭폭 책 읽어줘!하면서요.

 

아기들에게 책은 왜 필요할까요? 두뇌개발? 공부하는 버릇들이기? 독서교육?

저도 엄마라 팔랑귀가 솔깃할 때가 있지만

산과 들, 강과 나무, 미끄럼틀과 그네, 뽀로로와 치로처럼

하루하루가 새로운 아기의 매일을 채워고 꾸며나갈  

즐거운 놀잇감으로 또 하나의 경험으로 그리고 운이 좋으면 오래 남는 추억이면 족하지 싶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엔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의 추억 하나 쯤은 있을텐데,

그 추억의 책이 항상 멋지구리한 권장도서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런 추억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가끔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죠.

전 저의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을 선물하고 싶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칙칙폭폭 음향효과 넣어가며 이 책을 읽어줍니다.

 

다만 고민은... 아직 우리 아들 기차를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

 

봄이 되면 기차는 몰라도 기차 박물관이라도 데려가보고,

그 때  이 책을 다시 읽어주려고 합니다.

그 땐, 이 책이 어떤 의미로 우리 아이에게 다가올까요?

저는 그게 정말 궁금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른바 '신본격'은 추리물 중에서도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종류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황금시대의 추리'인데, 사실 신본격을 좋아하는 것도 신본격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신본격에서 황금시대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 그런 셈이다.  

엄격한 물증의 존재를 그닥 요구하지 않는 심증과 정황증거와 (이상하리만큼 술술 잘도 내뱉는) 자백이 제 몫 이상을 하는 세계.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을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현실로부터 5cm정도 떨어져 존재하는 일종의 가'장'현실. 실제론 존재할 수도 없는 트릭들도 오로지 논리만 맞다면 목적을 이룰수 있는, 작가와 독자간의 치열한 두뇌 게임을 위한 무대.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황금시대추리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을 위시한 현대 수사기법이 픽션과 논픽션을 가리지 않고 일반에 널리 홍보됨으로서 이젠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박제동물처럼 되어버린 장르기도 하다. 포와로의 회색 두뇌와 홈즈의 변장술, 밴스의 현란한 말빨은 DNA와 범인상분석, 현대 수사체계가 도래함과 동시에 그 빛을 잃고 '과거'라는 시간 속에 갇혀있다. 황금시대 추리물은, 그래서 이제 일종의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옛날 옛적에 회색의 뇌세포를 가진 탐정님이 살았어요..'로 시작하는.  

때문에, 황금시대추리처럼 독자와 작가간의 공평한 게임과 정교한 트릭을 지향하는 현대의 이른바 '신본격'는 자칫 신기루를 쫓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나는 신본격을 많이 읽지만, 좋아하는 신본격 작품이 드문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옛날 이야기는 말을 타는 왕자님과 드레스를 입는 공주님이 나와야 재미있는 법이고, 람보르기니를 타는 왕자님과 최신 명품으로 몸을 휘감은 공주님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누추한 느낌을 주니까. 다시 말하자면 포와로와 헤이스팅스가 특급열차 일등칸을 타고 놀러가다 눈속에 갇혀버린다는 건 그럴듯한 모험의 시작처럼 보이지만, 대학의 미스터리 클럽원들이 누군가의 친척이 가지고 있다는 '이상한 건축물이 있는' 무인도에 고립되어 버리는 일은 매일아침 케이블 채널들에서 CSI나 크리미널 마인드를 방영하는 지금에 있어선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유치해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본격에 실망도 자주 느끼곤 한다. 또한 때로는 허무하다. 아침뉴스만 챙겨보아도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끔찍한 사건들을 하루에 몇건씩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현실, 깊은 산 속 숨겨진 저택이나 무인도의 별장이나 어딘가에 있다는 성 같은 곳에 굳이 찾아가서 연극처럼 잘 꾸며진 연쇄살인과 맞설 필요가 있을까. 추리소설이 아무리 도피문학이라지만 그에서 아무런 현실감도 찾을 수 없다면 그건 문학이 아니라 그저 게임이나 퍼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 소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을 처음 접할 때의 마음도 비슷했다. 꽤 괜찮은 신본격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또 제법 기이하다는 덧붙임까지 접한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지만 기대만큼 '이번에도 또 실망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회의적인 독자의 눈 앞에 일본작가가 펼쳐놓은 것은 미국의 어느 시골 동네, 장의사, 펑크 커플이었다. 게다가 '시체가 살아나고 있다!'니. 비현실적 설정이라도 이 정도면 극까지 밀어붙인 셈이다. 무인도나 산속, 눈밭 위의 '그 이후엔 다시 찾을 수 없었던' 저택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또 시작인가'라는 생각대신 '뭐지? 이 물건은...?'이란 느낌이 들었다. 우선은 조금도 쉬지 않고 퍼부어지는 유머감각이 꽤 괜찮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복수와 한이 서려있는 점잖은(?)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편의 거대한 소동극에 가깝다. 이 소설의 유머감각을 딕슨 카에 비견하는 사람도 있는데, 유머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 다음에 든 생각은, 시체가 살아난 이상 CSI도 할 일이 없겠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제대로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과학수사에 자주 등장하는 표어 중의 하나는 '죽은 자는 말한다'라는 것인데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죽은 자가 '말을'하니. 그리고 이 소설은 그렇기에 묘하게 현실적이 된다. 기존의 본격추리가 그곳이 무인도든 산 속이든 간에 어쨌든 현실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수준에서 모든 것이 진행되는 반면에 이 소설은 그 끈을 끊어버림으로서 역으로 나름의 타당성을 획득한다. 자연사박물관에 용가리가 전시되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잘 만든 것이라고 할 지라도 무척 튀어보일테지만, 놀이공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는가. 그래서 더 이상은 '지문은? 혈흔은? DNA는?'이라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 이상 떠들면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이 소설에선 정말로 '필요가 없다'.  

심지어는 일본인이 미국 무대인 추리소설을 쓴다-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약점과 불안에도 작가는 답할 필요가 없다. 소설속의 미국이 현실의 미국과 다르면 어떤가, 일본인이 현실과는 다른 미국을 묘사하면 또 어떤가. 어차피 시체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세상인 것을.  

물론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사학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는 부분은 그리 지루할 수가 없다. 하지만 유머감각을 무장한 다른 부분은 책장이 그야말로 날아가듯 넘어간다. 그리고 다른 신본격들처럼 복잡한 설계도를 앞에 놓고 풀어나가는 느낌은 거의 받을 수 없는 것도 나름의 단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대신 거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자잘한 소동들을 톡톡튀는 문체로 묘사한 부분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머릿속으로 문제를 푸는 대신 끊임없이 영사기를 돌려야 하는 종류의 소설인 셈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매우 영리하고 상당히 독특하며 제법 찰진 소설이다. 과학시대에 본격추리는 어떻게 현실성을 담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약간 입꼬리를 올리고 '그렇게 바둥거릴 필요가 있어?'라고 대답하는 데, 썩 괜찮은 답인 듯 싶다. 물론 유일한 정답은 아니지만. 그리고 읽는 입장에서야 새로운 답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 아니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이비 토크 - 만 0~4세 하루 30분 말걸기 육아
샐리 워드 지음, 민병숙 옮김, 주현실 감수 / 마고북스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후조리(라고 쓰고 '젖먹이는 것'과의 전투라고 읽는다...)를 끝내고 여유가 생겼을무렵, 우연히 가입되어있는 동호회에서 리뷰가 올라온 것을 보고 접하게 된 책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름 유명한 육아서였다... 다만 그 때는 '아기와의 대화법'이라는 주제가 맘에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무렵이... '아기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라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고 체험하던 때였으니까. 아기를 기르는 일이 내가 임신중에 각오하거나 기대했던 일과는 꽤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였고.

그리고 그로부터 5개월쯤 지난 지금, 여전히 원칙조차 세울수 없을 만큼 무지하고 혼란스런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그 5개월의 기간동안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앞으로의 세월동안 엄마로서의 나를 키우고 도왔던, 그리고 도울 좋은 책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뭐든지 시작하면 덮어놓고 책부터 읽고 보는 버릇 때문에 육아에 있어서도 이런 저런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한권만 꼽자면 바로 이 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물론, 우리 아기는 아직 말이 아니라 소리를 내는 다섯달짜리 아기라 '얼마나 효과가 있냐?'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겠지만, 다만 그런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되돌려 주고 싶다.  

 '무슨 효과가 필요한가?'

물론 모든 육아서엔 이 육아방법은 이런 효과를 나타낸다고 사례등으로 증명하려고 애쓰고 이 책도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를바 없지만 생각에 부모가 읽어야 하는 부분은 효과가 아니라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의 이유다.  

좋은 육아서는 그에 있어서 거의 비슷하다. 아기를 한 인간으로서 인격체로서 대우하고 존중해 주라는 것. 그리고 이 베이비토크에서 아기에 대한 존중은 '대화'의 강조로 나타난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겨우 몇 가지의 소리만 낼 줄 아는 아기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대화상대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대우해 주라는 것. 눈을 맞추고, 자주 웃어주고, 자주 말 걸어주고, 아기가 다가올 때 잘 받아주라는 것.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막상 엄마가 되니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이 책을 들춰본다. 몇번씩 읽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이 되곤 하는 건, 역시 엄마 되기가 정말 힘들다는 반증일까?  

기본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훌륭히 풀어냈다는 것 외에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이 책의 구성이다. 0개월 신생아부터 네살 아이까지 발달 단계에 따라 각각 매달, 석달, 여섯달을 기준으로 대화법과 놀이법이 소개되어 있는 구성은 이 책의 강점이다. 아기 뒤치닥거리에 혹은 바쁜 일상에 책 한권 제대로 읽기 힘든 엄마들에게는 아기의 월령 부분만 읽을 수 있으니 좋고, 한번 사두면 네살까지는 두고두고 읽힐 책이라 경제적이기도 하다. 또 대화법과 놀이법을 소개하기 전에 간단한 월령에 따른 발달 사항이 소개되어 있어 아기의 발달을 체크해 볼 수도 있다. (사족 : 물론 아기에 따라 소개된 것보다 약간 빠르기도 혹은 늦기도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삐뽀삐뽀 119보다 조금 빨리 제시된 발달사항들이 있다. 무엇보다, 아기의 발달에 대해서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인내'와 '감사'가 아닐까. 발달이 조금 빠르거나 늦다고 해서, 너무 많은 기대를 아기에게 하거나 마음 졸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놀잇감이나 동화책도 아기의 월령에 맞게 소개되어 있다. 다만 그런 건 부차적이고, 뭣보다 읽어야 하는 부분은 '아기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라는 부분 이다. 
 

이 책의 효과...는 뭐 정말 눈을 많이 맞춰주고 많이 놀아주고 많이 웃겨주고 많이 이야기를 걸어준 날엔 아기가 더 사랑스럽고 떼도 덜 쓰고 잠투정도 덜하다고 '느껴진다'는 것 정도가 지금의 한계다...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일지도. 혹시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으려나? 아직은 초보 엄마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이 책은 물론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 특히 아기를 '키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추천하고 싶다. 주변에 아기 가진 친구들에게 기회가 나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임신 중의 태교라는 것은 뱃속 아이의 아이큐 어쩌고를 높이고(난 지능에 관해선 유전자의 굴레와 유전자의 신비를 믿는 편이다) 뭣도 뭣도 잘하는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것... 아기라는 낯선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돌봐줄 것인가를 다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1장, 0-1개월은 임신중에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늦게 알아서 0-1개월은 적용해볼 겨를이 없었는데, 퇴원하여 집으로 올 때부터 말을 걸어주라는 책의 내용이 매우 공감이 갔고 그렇게 해 주지 못해 조금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좋은 이야기만 썼는데 별이 하나 모자른 이유는 아직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자신있게 평가할 만큼 아기가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아기가 자라는 데 있이 이 책에서 도움을 얻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탓이야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1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으로 소박하고 섬세한 일상 미스터리로도 알싸한 뒷맛과 제법 묵직한 반전을 독자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던 와카타케 나나미의 기다리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제목까지 <네 탓이야>다. 평범한 일상에 스민 독,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서늘한 악의를 다루는 데 있어 발군의 실력을 보인 작가의 작품집으로서 매우 적절한 제목이다. '네 탓이야.' 악랄하고도 공포스러운 말이 아닌가.

<네 탓이야>는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처럼 공통점을 가진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단편들은 미스테리한 인물이 숨겨진 의도에 따라 사보에 기고한 작품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네 탓이야>는 두 명의 인물-마치 만능사원 오오마에의 프리터 버전처럼 여겨지는 히무라 아키라와 무능한 얼굴로 다가와서 사건의 핵심을 짚어내는 고바야시 경위가 겪는 사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같이 두 작품은 단편들 사이의 연결고리의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두 작품의 차이 역시, 이러한 연결고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여러모로 뛰어난 작품이었던 것은 물론 단편들의 작품의 질에도 있겠지만 그 단편들을 아우르는 '연결고리로 부터의 마지막 한 방' 때문이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단순한 연결고리로서 기능하는 줄 알았던 단편들 사이의 공통점이 진짜 사건이며, 와카타케 나나미 글의 특징으로 이야기되는 '서늘한 뒷맛'을 직접적으로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추리소설 독자로서의 기쁨은 대단했다. 추리소설 독자는 늘 작가에게 도전하지만, 동시에 완패 당하는 것 역시 바라고 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독자를 기분좋게 완패시킬만한 소설이었다.

이처럼, 훌륭한 데뷔작의 여운을 인상깊게 간직하고 있는 독자로서, 나는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생각하며 <네 탓이야>를 선택했다. 아마 나 말고도 몇몇 분이 마찬가지의 기대를 안고 이 작품을 보셨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네 탓이야>의 연결고리는 그다지 재기발랄하지도 않고 그 속에는 숨겨진 의도 같은 건 없었다. 소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두 인물이 겪는 사건이 반복되다가 마지막 순간에 하나의 사건에서 만난다는 것이 전부다. 전작과 같은 공통점에 독자가 두 번 속을리도 없고 항상 기발한 연결고리를 생각해 낼 수는 없으며 게다가 두 명의 주인공 중 히무라 아키라 시리즈는 계속되는 모양이므로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같은 공통점을 기대할 수만은 없지만, 기대치가 높았던 나로서는 약간 안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사보에 기재된 단편소설의 모음이라는 전작의 설정과 달리 두 인물이 겪은 사건의 모음이라는 이번 작품의 설정은 창작의 범위를 일정부분 제한한다. 전작에서는 기담풍의 소설도 있었고 그야말로 아기자기한 일상 미스터리도 있었지만, 이번 작품의 사건들은 그보다는 범위가 좁다. 단편마다 화자를 탐정 혹은 범인으로 달리함으로서 읽는 재미는 살렸지만, 그다지 다양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어떤 편이든 와카타케 나나미 특유의 서늘함은 여전하고 일상미스터리의 감칠맛도 제법이다. 몇 작품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제법 하드보일드한데, 작가의 재주는 어디가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네 탓이야>는 대책없이 느슨하거나, 중구난방이거나,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 그런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전작을 기대했을 때는 확실히 허무하다. 마치 소포모어 징크스처럼. 어쩌면 당연하다. 기대는 쉽게 정도를 더 해갈 수 있지만, 창작물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결국 내가 아쉬움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 작품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 기대에 대한 것일테다. 그 기대를 접는다면, 읽기 나쁘지 않고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이저휙휙 2008-07-1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명고냥이님 리뷰 제목에 공감합니다. 주위에서 너무 추천을 많이 받아서 너무 기대하고 읽었던 탓에 조금 실망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