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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평점 :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이 책을 읽었을까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는 한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쇄살인범 시점에서 쓰여진 1인칭 소설입니다. 건조하고 혼란스러우며 담담해서 공포스럽습니다. 후기를 읽으니 조이스 캐럴 오츠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미국의 여류 작가라고 합니다. 책을 검색해봤더니 읽기 힘든, 깔깔한 소설을 주로 쓰시는 일흔의 노작가로군요. 제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 소설 주인공의 모델이 되는 어떤 실존 인물 때문입니다. 그 실존 인물의 범죄사실에 드러난 몇몇 가지 점이 좀 특이하다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이 서평에 추천된 것을 보게 되었죠. 뭐 그런데 관심을 가지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누군가는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 저 같은 경우를 설명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값싼 호기심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하더군요. 전 그저 인간이 참 궁금할 때가 있는데 그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 책을 읽기 위해선 강한 심장과, 이런 내용에 대한 맷집이 필요합니다. 음, 요즈음 분위기에선 읽기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자극적인 묘사로 말초를 자극하는 그런 책은 아닙니다. 쉽게 읽히고 잘 따라가게 되면서도 정말 많은 생각을 나게 하는 그런 책입니다. 좋은 소설은 그렇더군요. 그리고 좋은 소설은 사람을 불편하게도 만듭니다. 그래도 이 소설은 주인공에 공감사키는 그런 종류는 아닙니다. 아니... 누가 주인공에 공감을 할 수 있을까요. 철저한 관찰자, 어떤 병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읽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들에서는 오츠가 이 소설을 쓴 이유는 주인공의 행위에서 드러나는 소위 병소가 좀 더 보편적인 상황에도 존재함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가령 이런 부분들이요.
195-196p
"6번 채널에서는 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알몸의 흑인 시체들이 쓰레기장에 널브러진 장면이 나온다. 9번 채널에서는 보스니아라는 곳에 있는 폭격 받은 병원에서 아이들이 울부짖다가 "여러분의 주지사가 말씀드립니다"라는 광고로 넘어간다. 11번 채널에서는 승합차가 바위가 많은 사막에서 덜커덩덜커덩 달리는 광고가 나온다. 12번 채널에서는 미시건과 오대호 주변의 기온이 계속 높겠다는 일기예보가 나온다. 엠티비에서는 섹시한 라틴계 여자가 약에 취한 백인 자식의 젖꼭지를 빨고 있다. 다시 11번 채널로 돌아간다."
247p
"M_K_ 박사는 원자력 위원회의 비밀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 팀을 이끌었다. 어떤 실험에서는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에 있는 학교에서 지적장애아 서른 여섯 명에게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를 먹였다. 다른 실험에서는 버지니아 주의 몇몇 대학에서 죄수의 고환을 전리방사선에 노출시켰다. 왜 이 옛날 뉴스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왔는지, 왜 사람들이 신경 쓰는 척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그저 스쳐지가나는 에피소드고 전체 내용의 흐름과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간절한 마음으로 뭔가 완충지대를 찾아 헤맨 끝에 발견한 구절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힘이 있고, 그 힘조차 내용처럼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스믈스믈 몸 아래에서 뱀처럼 기어오르는 듯 느껴지기 때문에 읽은 후가 참 어려운 소설입니다. 우리는 간혹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들여다볼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 입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엔 뭐가 있을까요? 이 소설을 단순히 어떤 연쇄살인범을 떠오르게 하는 공포소설로 받아들일 건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지평을 발견하게 될지는 독자의 몫이겠지요. 이 소설은 주인공 쿠엔틴이 그저 풍경에 녹아들기를 원하는 것 처럼 독자와 단 한번도 눈을 맞추지 않으려 하니까요. 아, 그러니 정말 잘 쓰인 소설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