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비발디 : 니시 도미누스, 모테트
안드레아스 숄 (Andreas Scholl) 노래 / Decca / 200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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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정확한 딕션, 결 고운 프레이징, 섬세한 꾸밈음의 표현과 무엇보다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길고 안정된 호흡. 숄에서 떠올릴 수 있고 또 기대하면서 언제나 배반당하지 않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다. 나는 그 점에 높은 가치를 뒀고, 그래서 숄의 연주라면 덮어놓고 믿어보는 편이다. 그는 내게 선택의 두려움을 지워버린, 몇몇 음악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음을 정확히 집어내고(심지어는 잇단음표나 꾸밈음의 표현에서조차) 또 자신이 그런 연주를 추구하는 듯이 보이는데, 놀랍게도 그 정확함이 조금도 차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학구적인 면모가 돋보이면서도 그의 연주는 설교를 하거나, 귀만 가지고 있는 우리와 전문가인 자신 사이에 선을 그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편안하다. 하지만 또한 영리한 것이, 슬쩍 슬쩍 자신이 가진 재주를 꺼내놓기도 한다. 그게 또 얄밉도록 깔끔하다.

때로는 듣는이를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려 들지 않는 그 목소리와 해석이 둔하다고 느낄 때도 있고 그것은 분명 그의 단점이겠지만, 접하면 접할 수록 그런 둔함 속에서 그가 추구하는 일종의 경지가 느껴진다. 시간과 노력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갈고 닦기에 여념이 없는 그는, 분명 장인적인 카운터테너다.

그리고 그의 그런 태도는 중세와 바로크의 종교 성악곡에 대한 나의 선호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기도는 원래 소리 높여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나는, 겸손한 이성과 한 발 물러선 인간적인 희노애락을 종교 성악곡들에게 찾고 숄이 대개 그러하다. 나는 그의, 통곡이 이어지는 대신 슬픔이 베일 너머로 배어나오는 듯한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와, 푸른 잎새 사이로 내려 쬐이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과도 같은 바흐의 알토 칸타타와, 그리고 속세의 티 하나 묻지 않은 듯 조금의 두려움이나 떨림도 없는 비발디의 니시 도미누스를 좋아한다. 그는 바로크 오페라에도 몇 번 도전하였지만, 역시 손이 자주 가는 시디들은 종교 성악곡들이다. 특히, 카운터테너로서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특징적인 화창함 때문인지 그는 앙상블 연주보다는 독창에서 제 맛을 낸다.    

특히 니시 도미누스에 대해 말하자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느껴지는 표현의 탁월함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가 없으며(무엇보다 그 깨끗한 꾸밈음 처리와 긴 호흡으로 밀어붙이는 메사 디 보체의 표현은 숄이 자신의 장점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얄미울 정도로!) 만족과 아쉬움을 동시에 전해 주는 곡의 해석에선 슬슬 고집도 엿보인다. 보우만과 다니엘스의 같은 연주보다는 심심하고 밋밋하지만 반대로 그 어떤 연주보다도 안정적이면서 쉽게 다가온다. '안드레아스 숄의 음악'이 무엇인지 데카로 옮긴 후 두번째로 내는 이 음반에서 확실히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표현은 독선적이지 않으면서도 무척 고집스럽다. 듣는이와 충분히 소통하고 있으면서도 정수에 있어서는 조금도 물러섬이나 타협이 없다.  

물론 아직은 델러처럼 텍스트의 가장 깊숙한 곳을 읽어내어 듣는 이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납득시키고 동요시키는 충만함은 없지만, 숄은 적어도 방향을 잘못 잡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그가 진심으로는 델러의 경지를 바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안드레아스 숄'만의 경지를 찾고 있고, 그렇기에 그에 대해서는 계속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저 파안대소를 보면서 비관적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덧 ; 이 앨범의 정수는 니시 도미누스가 아니라 살베 레지나인 것 같다. 비발디는 기악곡들로 유명하지만, 그가 만든 성악곡들의 아름다움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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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 이 사람 음악이 때론 좋았다가 아니었다가 해요. 이 음반은 좋아요..
집안 새단장하셨네요.. @.@~~

투명고냥이 2007-07-26 22:42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에요. 영 곰탱이 같을 때나 '그래, 니 혼자 놀고 있구나' 할 때나 냉정해서 들여다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 때는 많이 아쉬워요. 예전에 써 놓았던 글인데, 그 때 이 음반을 이렇게 칭찬할 정도로 좋았던 건 아마 비발디 덕도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앨범에 실린 살베 레지나 같은 건 정말 아름답잖아요.
새단장을 했긴 했는데 보기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저 달리 사진을 꼭 쓰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한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