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남의 일이 아니야 -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서 인성교육 보물창고 2
베키 레이 맥케인 지음, 토드 레오나르도 그림,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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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부모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 왕따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무엇보다 친구들과의 관계에 신경쓰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친구 사귀었냐는 것이다. 따돌림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더 무서운 어감인 왕따라는 말로 치환되었다. 사실 예전에도 따돌림이라는 것은 있어 왔는데 유독 요즘에 문제시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름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은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보고 듣는 것이 더 많아지는 반면 사회는 점점 개인주의로 흐르기 때문이 아닐런지... 내가 어릴 때는 우리 동네 뿐 아니라 이웃 동네, 심지어 사방 몇 킬로미터 이내의 어른들은 대부분이 알고 지내니 나쁜 짓을 해도 금방 부모님 귀에 들어가지만 지금은 이웃도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니 자기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남의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없다. 실제로 집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정반대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내 아이라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직설적인 제목에 당황했다. 판형은 그림책인데... 그렇다면 대부분 은근슬쩍 화제를 던져 준다거나 여운을 남기며 끝내는 것이 보통인데 뭔가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목 아래를 보니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서'라고 되어 있다. 음... 목적이 확실히 드러나는구나. 그러면서 한 장 한 장 읽었다. 처음에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왜 지침서라는 말이 들어갔는지 알 것 같다. 이 책은 감동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읽고 나면 마음이 환해진다. 또한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한 홀가분한 마음도 든다.

선생님이 안 보는 동안 몇 명의 아이들이 레이를 괴롭힌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모른 척 하거나 여럿이 뭉쳐 있으면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뿐이다. 화자인 나는 그 아이들을 말리려고 하지만 아니 말리고 싶지만 그런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말리러 가는데 여자 아이가 소매를 잡아 끄는 그림은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솔직히 말해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황이면 대부분이 그럴 테니까. 그러나 화자인 나는 결국 선생님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먼저 레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못된 아이들이 괴롭히려고 하는 순간에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나타나서 현장을 목격한다. 여기서 그림이 재미있다. 한 아이는 레이의 공을 뺏으려고 하고 선생님을 발견한 아이는 차려 자세로 있으며 다른 아이는 선생님이 온 줄도 모르고 공을 뺏으려고 하는 아이의 등을 쿡쿡 찌른다. '야, 선생님 오셨어.'라고 하듯이. 그 후로 아이들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일은 잘 마무리 된다. 

현실에서도 이런 풀이법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가해 학생의 부모가 더 큰소리 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만약 아이 반에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있다면 내 아이에게 그 친구에게 네가 친구가 되어주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왕따 문제를 최소화시키려면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학교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야만 한다고 본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노력해서 해결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이런 문제들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면 어떨까.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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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를 아십니까 책읽는 가족 53
장경선 지음, 류충렬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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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운명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은 결정론적 관점에서 보는 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론적 관점에서 본 운명이든 처음부터 결정지어진 운명이든 이게 혹시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었다.(뭐... 운명이라고까지 거창하게 이름붙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다만 워낙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제암리라는 곳은 그저 지역 이름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난 삼일절날 갔다 왔다는 말을 듣는 정도라고나 할까. 헌데 며칠 전에 집으로 오는 중에 이정표를 보면서 오느라 유심히 살폈더니 제암리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거리도 14킬로라니 멀지도 않았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주변 도로를 모르는지라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제암리가 비로소 가깝게 다가왔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지나서 이 책을 보게 된 것이다. 혹 이런 것이 운명 아닐까...

그리고 책을 읽기 전에 휴일이 끼어서 제암리를 갔다 왔다. 제암리 유적지라는 표지를 보고 따라가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궁금할 만하면 다시 이정표가 나오곤 했다. 마지막에 잠깐 헤매긴 했어도 유턴하는 일 없이 찾아갔다. 제암리로 들어가는 길은 지금까지 달려 왔던 길과는 달리 아주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비록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큰 도로가 났지만 1919년 당시는 정말 시골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찾아간 제암리에서 영상물과 자료들을 보면서 삼일 운동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이 얼마나 부분적이고 얕은 것이었나를 느꼈다.

제암리는 전체 33가구 중 2집만 빼고 모두 안씨 성을 가진 전형적인 씨족 마을이었다고 한다. 책에서 연화네가 안씨인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비록 못 먹고 힘겹게 살지만 서로를 위할 줄 알고 또 옳은 행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민초들이 일으킨 작은 몸부림이 바로 삼일 운동의 기본인 것이다. 알려진 몇몇 사람만이 일으킨 운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암리 주변에서는 주로 장날에 시위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도 장날이면 특히 경계를 했던 것이다. 

책에서는 연화와 사사끼의 아들인 나까무라의 눈을 통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린 눈으로 볼 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막상 상대방을 만나서 그들의 입장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혼란을 나까무라의 입과 마음을 통해 이야기한다. 비록 아버지는 일본의 충견이 될지언정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용국이의 모습에서 미래의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어른들은 잘못을 할지언정 다음 세대를 책임질 아이들이 제대로 산다면 상처는 더 이상 곪지 않고 흉터로 남겠지.

셀제로 제암리에는 일본인들이 모금해서 교회를 지어주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곳에 기념관을 지은 것이고... 나까무라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는 뜻으로 그런 것이리라. 전시관을 나오는 곳에 어느 할머니의 사진과 그 위에 써 있던 말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과거에 집착해서 무조건 배격하거나 날선 눈으로만 보면 안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일본 태도를 그냥 묵과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록이나 이야기로만 전해 들어서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잊혀진다면 그것은 또 다른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모두 역사로 받아들이고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역사가 여기서 끝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책으로라도 남겨서 아이들이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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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출렁 기쁨과 슬픔 아이세움 감정 시리즈 1
허은실 지음, 홍기한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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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동일한 잣대, 틀에 박힌 고정관념으로 키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교적 자유롭게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향이 그래서일까. 여하튼 '여자가...' 또는 '남자가...'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되도록이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 말을 아예 안 듣고 키울 수는 없다. 

둘째는 남자 아이인데도 유난히 눈물이 많다. 많이 혼내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혼이라도 내면 금방 눈물을 글썽인다. 워낙 어려서부터 그래왔기에 나는 별 반응없이 그러려니 하는데 남편은 그게 너무 싫은가 보다. 며칠 전에도 아이가 조금 눈물을 보이자 굉장히 화를 내며 나무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내가 남편에게 뭐라고 하면 괜히 감정 싸움만 될 것 같아 참았다. 마침 이 책을 보고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나서 퇴근한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에 있는 '부모님과 함께 읽어 보세요' 코너를... 겉으로는 그런 적 없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느낀 바가 있겠지. 

감정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출하는 방법이나 다스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감정은 어렸을 때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어렸을 때부터 그것에 대해 바로 알고 알맞게 대처해야만 커서도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은 지금의 어른도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엄두를 못낸다. 그런 면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단순히 기쁨과 슬픔이 어떤 것이라는 서술 형식을 취하지 않고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림도 경직되지 않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보면 <재주 많은 손> 시리즈와 구성이나 그림이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특히 마지막 문구가 마음에 든다. '어떤 감정을 갖느냐는 네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넌 그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니까!' 이 말 한 마디에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에 대한 믿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두 꼭 필요한 감정이며 그것을 감추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시종일관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기쁠 때는 몸이 더 좋은 반응을 하지만 그렇다고 슬픔을 회피하거나 숨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슬픔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아이를 어른이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보려 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따뜻하고 뿌듯했나 보다. 

그리고 뒷부분에 나오는 '배꼽쏙 눈물쏙 웃음보따리'에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웃기던지... 아이가 웃기다며 읽어주는데 얼마나 웃긴지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모처럼 배꼽 빠지게 웃었다. 이 글을 읽어준 댓가로 나도 그 중 한 가지만 소개해야겠다.

[금붕어의 불만]

당신들 말이야! 수족관에서 나를 키우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달랑 두 마리 집어넣고 물레방아 하나 설치하는 건 좀 심하잖아?

그리고 말이야.

당신들은 내 기억력이 3초라고 말하는데, 당신들이 시간 재 봤어?

에... 또, 그리고 말이야.

당신들은 내 기억력이 3초라고 말하는데, 당신들이 시간 재 봤어? 재 봤냐고?

음, 또 뭐였더라, 아! 그리고 말이야.

당신들은 내 기억력이 3초라고 말하는데, 당신들이 시간 재 봤어?

음, 할 얘기가 또 있었는데. 음... 맞다!

당신들은 내 기억력이 3초라고 말하는데, 당신들이 시간 재 봤어? 재 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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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 연필 페니의 비밀 작전 좋은책어린이문고 2
에일린 오헬리 지음, 공경희 옮김, 니키 펠란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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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술 연필 페니>가 나왔을 때 붙어 있던 연필을 가지고 둘이 싸웠었는데 이제는 공평하게 하나씩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왜냐... 똑같은 연필이 하나 더 생겼으니까. 아이들은 페니가 있으면 진짜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그래도 아이들은 페니가 있으면 기분은 좋은가보다.

작가의 상상력이란 참으로 기발하다. 누구나 가져 보았던 혹은 가지고 있는 필통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대개의 사람들은 연필이나 지우개가 없어지면 그냥 어딘가로 가버렸구나라고 생각하지 이처럼 연필들이 자발적으로 무슨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필통 속의 개체들이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아이들이 들어오면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는데 작가는 아주 간단하게 마무리한다. 바로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전편에서는 연필이나 색연필들이 수동적이었는데(즉 사람이 옮겨야만 움직였는데) 여기서는 적극적이다. 그래서일까. 읽는 동안 스스로 못 움직이는 한계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었던 것이.

언제나 어디서나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슬픔도 있다. 페니는 이제 랄프의 필?으로 돌아와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영원한 행복은 없는 것일까. 항상 랄프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페니에게 맥이라는 샤프가 등장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난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인자였으면 모르겠지만 일인자였다가 밀려난 그 심정은 아마 겪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그래도 맥은 그리 나쁜 친구만은 아니었던 듯 나중에는 모두와 친구가 된다. 사실 처음에 읽을 때는 맥이 악의 축에 속하는 줄 알았었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과 대립각을 세우는구나 생각했는데 작가는 이런 나의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악역을 등장시킨다.

같은 반 친구인 버트는 틈만 나면 랄프와 사라를 괴롭힌다. 그것도 직접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속여서 랄프가 곤경에 빠지기도 하고 선생님께 혼나기도 한다. 특히 버트가 검은 매직펜으로 장난 친 것을 보고는 직감적으로 예전의 그 원수임을 안다. 이 때부터 페니와 친구 폴리의 검은 매직펜 혼내주기 작전이 시작된다. 때론 곤경에 빠지기도 하고 때론 통쾌하게 혼내주기도 하면서... 결국은 선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니를 비롯한 랄프 필통 속 친구들과, 폴리를 비롯한 사라 필통 속 친구들이 모두 힘을 합쳐 이뤄낸 성과다.

어린이책에서는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라 동식물이 주인공인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이처럼 무생물이 주인공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바로 잡기 위해 무생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런 종류의 이야기와는 다른 시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생물들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사람은 단지 조연에 그치는 구성은 거의 못 보았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신기하면서도 가끔 나의 이 경직된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그림을 흘끗거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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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 씨와 파란 기적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7
파울 마어 지음, 유혜자 옮김, 우테 크라우제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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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마어라... 그의 작품 <안네는 쌍둥이가 되고 싶어요>를 읽으며 아이들과 웃었던 기억이 나서 일단 웃음부터 머금어졌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 특히 독일어권 문학은 간결체에 직설적이어서 읽는 동안 스멀스멀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명쾌하고 유쾌하다고나 할까. 어디 그 뿐인가. 등장인물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화적이며 풍자적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생각거리도 많고... 

우선 이 책을 읽은 후유증이 너무 크다. 집에 있는 강아지가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사람 말을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계속 생각하니 말이다. 지금 우리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는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훈련도 안 되어서 사람 말을 알아듣기는 커녕 제 이름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름을 불러도 멀뚱멀뚱 딴 짓만 하고 있으니. 그러니 벨로와 같은, 아니 벨로 씨와 같은 강아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책을 보면 대개 표지를 보고 내용을 대충 짐작하던가 제목을 보고 알아차리는데 이 책은 전혀 감을 못 잡았다. 그만큼 내가 상상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밖에 결론이 안 난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표지와 제목이 너무 잘 지어졌으며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니 말이다. 옮긴이가 말하기를 상상력을 발휘하는데도 재료가 있어야 한다는데 내겐 그 재료가 너무나 없나보다. 표지와 제목으로 내용을 전혀 유추해 내지 못했으니...

이 책은 구성이 독특하다. 여러 명이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하나로 만나는 것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다른 특이함을 느낀다. 바로 화자의 시점이 자꾸 바뀐다는 점이다. 물론 주된 주인공은 막스지만 간혹 막스의 시선을 벗어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된다. 그래서 더 특이하며 재미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또 등장인물들이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삐그덕 거릴 것 같으면서도 서로 잘 맞는 바퀴처럼 제대로 굴러간다. 특히 슈테른하임과 에드가 씨. 둘은 친구인데 가까우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의를 차리는 그런 사이라고나 할까. 

사실 이 책을 읽는 데는 그들의 관계나 성격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다만... 그 파란 기적이 중요할 뿐이다. 엄마는 이혼하고 멀리 떠나버리고 아빠와 사는 막스는 개를 기르고 싶지만 첫 눈에 필이 꽂히는 개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벨로라고 이름 지어준 떠돌이 개를 만나서 첫 눈에 맘에 들어서 키우기로 한다. 물론 아빠인 슈테른하임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결국은 엄마 없이 키우는 아들의 정서를 위해서 허락하고 만다. 약사인 슈테른하임은 실험하는 것을 즐기며 약이며 젤리 등도 만들어서 판다. 친구인 에드가 씨(본인이 꼭 그렇게 부르기를 강요한다.)는 숫자에 유난히 집착하는 농장 경영자다. 

슈테른하임의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파란 물약을 먹은 벨로와 그 약을 뿌린 풀을 먹은 농장의 닭과 토끼가 사람으로 변해서 벌이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황당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러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벨로 씨가 개였던 시절에 귀동냥해 들었던 사람의 이야기들을, 나중에 사람이 되어서 써 먹는 것을 보면서 혹시 우리 강아지도...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론 비록 강아지에게지만 말조심을 하게 됐다. 

대개 우리 작가 책들은 결론 부분이 되면 그동안 헤집어 놓았던 사건들을 마무리 하느라 바쁜데 이 작가는 그냥 둔다. 에드가 씨가 그 사실(파란 물약을 먹으면 동물이 사람으로 된다는 사실)을 믿든 안 믿든 그냥 그대로 두고, 물약을 주고 간 이상한 할머니(실은 원래 개였던... 그것도 족보 있는 개)가 B-배였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시침 뚝 뗀다. 그리고 오로지 막스와 그의 아빠에게만 집중한다. 후반부에는 슈테른하임의 사랑을 찾아주기 위해서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슈테른하임은 때론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래도 막스의 아빠라는 점을 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막스도 아빠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혹시... 하며 의심하게 만드는 결론을 보면서 역시 대단한 작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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