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 씨와 파란 기적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7
파울 마어 지음, 유혜자 옮김, 우테 크라우제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파울 마어라... 그의 작품 <안네는 쌍둥이가 되고 싶어요>를 읽으며 아이들과 웃었던 기억이 나서 일단 웃음부터 머금어졌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 특히 독일어권 문학은 간결체에 직설적이어서 읽는 동안 스멀스멀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명쾌하고 유쾌하다고나 할까. 어디 그 뿐인가. 등장인물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화적이며 풍자적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생각거리도 많고... 

우선 이 책을 읽은 후유증이 너무 크다. 집에 있는 강아지가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사람 말을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계속 생각하니 말이다. 지금 우리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는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훈련도 안 되어서 사람 말을 알아듣기는 커녕 제 이름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름을 불러도 멀뚱멀뚱 딴 짓만 하고 있으니. 그러니 벨로와 같은, 아니 벨로 씨와 같은 강아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책을 보면 대개 표지를 보고 내용을 대충 짐작하던가 제목을 보고 알아차리는데 이 책은 전혀 감을 못 잡았다. 그만큼 내가 상상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밖에 결론이 안 난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표지와 제목이 너무 잘 지어졌으며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니 말이다. 옮긴이가 말하기를 상상력을 발휘하는데도 재료가 있어야 한다는데 내겐 그 재료가 너무나 없나보다. 표지와 제목으로 내용을 전혀 유추해 내지 못했으니...

이 책은 구성이 독특하다. 여러 명이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하나로 만나는 것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다른 특이함을 느낀다. 바로 화자의 시점이 자꾸 바뀐다는 점이다. 물론 주된 주인공은 막스지만 간혹 막스의 시선을 벗어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된다. 그래서 더 특이하며 재미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또 등장인물들이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삐그덕 거릴 것 같으면서도 서로 잘 맞는 바퀴처럼 제대로 굴러간다. 특히 슈테른하임과 에드가 씨. 둘은 친구인데 가까우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의를 차리는 그런 사이라고나 할까. 

사실 이 책을 읽는 데는 그들의 관계나 성격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다만... 그 파란 기적이 중요할 뿐이다. 엄마는 이혼하고 멀리 떠나버리고 아빠와 사는 막스는 개를 기르고 싶지만 첫 눈에 필이 꽂히는 개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벨로라고 이름 지어준 떠돌이 개를 만나서 첫 눈에 맘에 들어서 키우기로 한다. 물론 아빠인 슈테른하임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결국은 엄마 없이 키우는 아들의 정서를 위해서 허락하고 만다. 약사인 슈테른하임은 실험하는 것을 즐기며 약이며 젤리 등도 만들어서 판다. 친구인 에드가 씨(본인이 꼭 그렇게 부르기를 강요한다.)는 숫자에 유난히 집착하는 농장 경영자다. 

슈테른하임의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파란 물약을 먹은 벨로와 그 약을 뿌린 풀을 먹은 농장의 닭과 토끼가 사람으로 변해서 벌이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황당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러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벨로 씨가 개였던 시절에 귀동냥해 들었던 사람의 이야기들을, 나중에 사람이 되어서 써 먹는 것을 보면서 혹시 우리 강아지도...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론 비록 강아지에게지만 말조심을 하게 됐다. 

대개 우리 작가 책들은 결론 부분이 되면 그동안 헤집어 놓았던 사건들을 마무리 하느라 바쁜데 이 작가는 그냥 둔다. 에드가 씨가 그 사실(파란 물약을 먹으면 동물이 사람으로 된다는 사실)을 믿든 안 믿든 그냥 그대로 두고, 물약을 주고 간 이상한 할머니(실은 원래 개였던... 그것도 족보 있는 개)가 B-배였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시침 뚝 뗀다. 그리고 오로지 막스와 그의 아빠에게만 집중한다. 후반부에는 슈테른하임의 사랑을 찾아주기 위해서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슈테른하임은 때론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래도 막스의 아빠라는 점을 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막스도 아빠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혹시... 하며 의심하게 만드는 결론을 보면서 역시 대단한 작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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