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가우디다 - 스페인의 뜨거운 영혼, 가우디와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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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터키를 다녀오고 난 후 다음 여행 장소로 점찍은 곳이 스페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냐고 묻는데 전혀 아니다. 우리집은 딱 네 개의 채널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긴 터키를 갈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난 그냥 순수하게 터키를 다녀왔을 뿐이고 다음은 스페인을 가고 싶을 뿐이다.

 

  스페인을 간다면 당연히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싶을 테고 보고 올 것이다. 스페인 여행에서 가우디를 빼놓을 수 없을 테니까. 가우디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아이들 책을 통해서다. 간단하게 설명된 책이었지만 어찌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지 그 후로 절대 잊지 못하는 이름이 되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자연물을 본따 건물을 짓고 곡선을 이용해 지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보여주기 위한 건물이 아닌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을 지을 때조차 곡선을 이용했다니 얼마나 기발한가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니.

 

  이 책을 통해 가우디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건축가가 본 건축가 이야기이므로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른 눈으로 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스페인이 가우디를 통해 얻는 관광수입을 보며 가우디라는 인물을 키워낸 스페인이 대단해 보였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가우디라는 인물이 있어서 스페인에게 큰 행운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작 시 당국은 카사 밀라가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내렸고(물론 가우디는 따르지 않았다.) 벌금을 내라고 했다지 않은가. 하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3년이나 공사를 강행한 가우디의 고집도 보통은 아니다. 나중에는 카사 밀라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여 시정명령을 취소했다고. 게다가 밀라 부인은 가우디가 죽은 후 실내를 로코코 양식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원래 의뢰인의 취향과 주변 환경, 역사 등을 고려해서 건물을 짓는다는 가우디의 방식이 밀라 부인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밀라 부인의 사고가 지나치게 경직됐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후세인인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밀라 부인이 시대를 읽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누군가의 칼럼에서 우리네 서울의 건물들은 주변의 건축물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혼자만 잘났다고 우뚝 솟은 건물이 아니라 주변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가우디는 진정한 건축가가 아닐런지.

 

  터키를 다녀와서 그와 관련된 책을 꽤 읽었다. 다녀온 후 기억을 되살려가며 읽는 맛도 좋지만 다음에는 가기 전에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지금은 스페인에 대한 책을 열심히 수집하고 있다. 2년 후에 가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지인에게 터키에서 찍은 사진을 나는 무척 뿌듯하고 감동적인 기분으로 보여줬더니 그런다. '나는 그냥 책에서 보는 사진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 이 책에도 사진이 많이 나오지만 내가 그 사진을 보는 느낌이 딱 그만큼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차이를 말해 무엇하랴. 여행은 보는 것 이상으로 그 곳의 공기와 바람과 햇살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에페소의 바람과 공기를 기억하고 파르테논 신전의 따스했던 햇살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유명하고 위대한 건축가라고만 알고 있던 가우디의 건축인생을 그가 지었던 건축물 순서대로 살펴보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쉽게 잘 읽힌다. 물론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우디가 위대하긴 하지만 건축비 때문에 고민하고 고집불통에 부자들의 건물만 짓는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인간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타가 많고 급하게 펴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편집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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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8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상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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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작가나 작품배경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생 텍쥐페리야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그 자신이 비행사였던 경험을 살려 다양한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파비앵과 생 텍쥐페리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파비앵이 결국 돌아오지 못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나서는 이것이 생 텍쥐페리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안심했던지.

 

  밤에 비행을 못한다면 어떨까를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금 걱정을 한 적은 있겠으나 비행기가 다닌다면 당연히 언제나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어떤 일이든 개척할 때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 출발해도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어딘가에서 밤을 거쳐야만 하는 상황이 되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분명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다큐로 생각되어지는 것은 왜인지. 얼마 전에도 비행기가 실종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런지.

 

  리비에르는 어찌보면 냉혈한 같은 사람같지만 이런 사람이 있기에 우리가 조금씩 편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속으로는 정이 깊고 부학 직원을 무척 걱정하지만 겉으로는 엄격하고 오로지 일 밖에 모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웬지 모르게 정이 간다고나 할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리비에르에게 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비리에르의 실제 모델이며 헌정 문구에도 나와 있는 디디에 도라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그리든 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린 왕자>가 아니고는 일부러 찾아 읽지 않았던 생 텍쥐베리의 다른 작품을 읽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비록 파비앵의 실종이 안타깝고 신혼의 단꿈을 꾸기도 전에 아픔을 겪은 시몬의 상황이 눈물나게 안타깝지만 이건 소설이니까, 허구니까 괜찮다. 게다가 이게 생 텍쥐페리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안을 준다. 실제로 실종되었다가 나타났다고 했으므로. 이거 원 내가 소설을 읽은 건지 그의 자서전을 읽은 건지 헤매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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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가족의 조건 라임 청소년 문학 5
줄리아 도널드슨 지음, 김선희 옮김 / 라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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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첫 부분을 읽으면 불량한 청소년들이 개과천선을 하거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라 생각될 정도로 소재가 좀 그렇다. 계획적으로 가출을 하는 레오와 손에 시커먼 메니큐어를 바르고 눈화장을 한 핀레이 이야기가 나오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핀레이는 남자다. 두 이야기가 서로 다른 지점에서 펼쳐지지만 곧 하나로 만나리라는 것을 지금까지 읽었던 여러 책들을 통해 쉽게 짐작 가능하다.

 

다짜고짜 레오가 가출하는 장면부터 나와서 그렇지 사실 레오의 상황을 알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예술가 부모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던 레오가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으니 그 충격은 오죽할까 싶다. 보통 그런 상황이 되면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힘들텐데 레오에게는 그보다 더 심한 걱정거리가 있어서 가출을 결심한다. 이모 집에서 얹혀 사는 것도, 사촌들이 은근히 괴롭히는 것도 힘든데 이모부의 이상한 눈빛은 특히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식의 결혼을 극구반대하다 결국 의절하고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나서게 되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가출이 되어버렸다.

 

사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그냥 가족을 찾아 헤메다 만나는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레오가 글래스고에서 만난 메리 할머니와 함께 며칠 지내는 상황을 보며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길거리에서 만난 레오를 선뜻 집으로 데려와 이것저것 챙겨주는 할머니가 레오에게 감정이입한 독자의 입장에서 무척 고맙지만 그 뒤의 행동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할머니가 이상한 사람들-아마도 알콜중독자와 정신이상자인 듯한-과 어울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할머니도 점점 이상해진다는 점이다. 작가는 할머니의 병명을 이야기해주지 않지만 여러 상황으로 봐서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럴 때 핀레이가 도움을 많이 준다.

 

핀레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렇게 착한 학생인데 왜 학교에서는 계속 벌점을 받는지, 왜 엄마는 믿지 못하는지 의아하지만 핀레이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엄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만약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핀레이를 관찰한다면 그야말로 불량학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툭하면 거짓말에 약속 안 지키고 숙제도 안 해가며 옷차림이 요상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핀레이의 마음을 알고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진작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면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레오는 할아버지와 사촌을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핀레이도 신뢰를 회복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 비록 메리 할머니는 병원에 가고 퇴원을 하더라도 계속 약물치료를 받겠지만 메리 할머니의 친절이 없었다면 레오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뒷표지에서 가족에 대해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고 되어 있지만 글쎄 그 정도까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메리 할머니가 레오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생활했다면 이렇게도 가족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레오는 친척들과 함께 살게 되었으니 전혀 새로운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서로 걱정해주는 것이 사는 맛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레오와 핀레이, 메리 할머니는 제대로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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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2084 라임 틴틴 스쿨 1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박종대 옮김 / 라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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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작가의 책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문득 생각한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냥 미래를 그리는 이야기겠거니 했다. 대개의 책에서 그리는 미래가 디스토피아라는 점이 이제는 새삼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아니, 당연한 것처렴 여겨진다. 다만 어떤 새로운 기계가 그려지는가가 관심거리라고나 할까. 헌데 책을 조금 읽다 보니 무언가가 떠오른다. 바로 조지 오웰의 <1984>다. 그때보다 정확히 100년 후의 더 황폐화되고 자연이 파괴된 지구의 모습을 그리는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동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최첨단 기술에 의지해 나약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초첨을 자연에 맞췄다. 솔직히 다른 책들의 내용은 그냥 이런 기술이 있구나 내지는 이렇게 발전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이 책은 그리 낯설지 않게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내 세대는 못 만나는 시대지만 자식 세대는 바로 직면하게 될 미래인데, 아주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2013년에 16살과 17살의 경계에 살고 있는 노라가 2084년 자신의 증손녀인 노바로 살고 있는 꿈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인지 헷갈려서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냥 미래와 현재가 교차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원래 그런 식의 이야기가 많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노라가 꿈을 꾸는 것들이 너무 생생해서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급기야 심리 상담사에게 치료를 받기로 한다. 노라는 자꾸 다른 세계에서 수신한 듯한 느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가면 왜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알고 보니 우마라고 불리는 미래의 노라가 자신들의 잘못을 되돌리기 위하여 마지막 반지의 소원을 빌었던 것.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 테지만 이야기를 처음부터 따라가다 보면 나중에는 하나씩 맞춰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도 누구나 생각하는 문제인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노라와 같은 청소년이 있다면 아마도 2084년의 지구는 훨씬 괜찮을 것이다. 노라와 요나스가 이야기하는 문제들이 사실은 현재 각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총량제를 제안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또한 돈이 있으면 다른 나라의 배출량을 사서 그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얻는다는 문제도 있어 결국 별다른 의미가 없는 제도가 되어 버렸고 그나마도 유야무야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어떤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게 사실이다. 솔직히 나도 엄청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미래를 너무 낙관한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금방 알 텐데.

 

노라와 요나스의 이야기나 벤야민 박사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벤야민 박사의 딸과 노라가 통화하는 내용도 그렇고. 글쎄, 동화적인 요소로 따진다면 그다지 훌륭한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그보다는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철학적 신념이 많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는 점이 더 끌린다. 솔직히 이 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작가소개를 읽다 보니 <소피의 세계>를 어찌나 칭찬하던지 내친 김에 그 책을 샀다. 만약 작가가 이야기로 철학을 들려주는 책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 책을 엄청 재미없게 읽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조지 오웰의 작품을 생각하며 한 작품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인문학을 대중화시켰다는 극찬을 받는 <소피의 세계>를 읽어볼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소피의 세계>는 어떻게 다가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번 여름방학 독서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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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끼를 키우는 자유학기제 -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이야기
자유학기제 연구학교 교사 모임 지음, 김학수 그림 / 라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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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선뜻 집어들지 못하다가 아무래도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에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건만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나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이미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또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결국은 현재의 대입제도 아래에서 변질되고 말 것이라는 자조가 어디 하루이틀이냐 말이다. 집중이수제를 도입하면서도 좋은 이유에 대해 온갖 것을 갖다 부쳤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말이나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정말 좋은 제도인지 의아했던 경험도 한몫했다. 만약 밖에서 학부모로서만 바라봤다면 이 자유학기제라는 것이 무척 좋아보여서 책을 받자마자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교와 한 발 비켜서 있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학교라는 곳을 조금 들여다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 현장은 차이가 많이 난다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금 깨달을 뿐이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독서수업을 하면서도 느낀 바에 의하면 나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비록 중간 과정이 약간 흡족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어도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면 잘 마쳤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내가 비판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요즘 교육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혁신학교니 창의지성학교니 하는 것들을 듣고 그에 관련된 것들을 주워 들으며 의아해했던 마음이 이 책을 선뜻 집어들지 못하게 한 또 다른 이유다. 학생이 많건 적건 상관없이 동일한 예산을 주는 것도 뭔가 맞지 않는 것 같고 과연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든다. 일회성, 단발성 기획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결국 얼마 안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니까.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혁신학교 선생님이 사례발표를 하면서 '꿈꾸던 교사를 실행하게 해 준 제도'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자마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사례발표는 어떤 권위적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발표가 아니라 그야말로 순수하게 동료들에게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기에 더 믿음이 갔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보여지기 위한 단발성 기획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방향은 그게 맞는 것이 아닌가하는. 마찬가지로 자유학기제도 결국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책을 읽고 바로 리뷰를 쓰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온 사례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낸다는 얘기는 아니다. 책으로 펴내고 결과물을 보니 그럴듯해 보이는 부분도 분명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교육방식이 이런 식으로 간다면 지금보다는 나아보인다. 그러기에는 현장의 교사들이 무척 고생하겠지만. 현재는 자유학기제 연구학교를 시범운영한 것이지만 앞으로 점차 확대될 것인가 보다. 만약 그렇지 않고 몇몇 학교만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면, 그리고 그러다 교육감이 바뀌고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흐지부지된다면 또 다시 불신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사실 몇몇 학교만 이런 제도를 운영한다고 해서 무언가가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장 고입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할 테니까.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내면서 예전의 대입 때 겪었던 것을 지금은 고입에서부터 겪는구나 싶어 씁쓸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결국 제도 전체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고 꾸준히 시행될 수 있어야 학부모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제도의 변화를 시도했으나 제대로 변화된 것이 없는 걸 보고 경험했기에 자유학기제도 이 책의 내용만 보고는 어떤지 판단하지 못하겠다. 한계와 현실을 지적하는 여러 경험담을 읽으며 그것이 개선은 되겠지만 제도적으로 꾸준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는 사실 또한 뻔하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의 내용처럼만 운영되었다면 중학생들에게 더 없이 좋은 경험을 제공한 것이고 훌륭한 교육을 실행한 것이기에 교육부에서 그들의 의도대로 기획된 책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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