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서역국으로 복 타러 가네 최하림 시인이 들려 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17
최하림 지음, 서선미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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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는 워낙 비슷비슷해서 정확히는 알지 못하더라도 읽어보면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도 읽으면서 분명 어디서 읽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는 '원천강 오늘이'이야기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아마 두 이야기 말고도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옛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모두 복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복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고 서천 서역국으로 복을 타러 가는 정 도령의 이야기로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바꾸려는 인물이 나오고, 두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적은 복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며 자신도 모르게 덕을 쌓아 복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정 도령은 자신의 복을 더 타오기 위해 어딘지도 모르는 서천 서역국으로 떠난다. 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원래 옛이야기가 모두 그렇듯이) 그 사람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서천 서역국에서 자신의 복이 그것 밖에 안 되니 지금처럼 살라는 부처님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떼를 쓰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선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무것도 못 얻은 것이 아니다. 지나오면서 부탁받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복이 들어온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복이 없는 박복덕이라 불리는 여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의 복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우연히 저승으로 잡혀간 사또에게 저승 곳간에 있는 쌀을 본의 아니게 빌려주고 훨씬 많은 삼백 석을 받는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 마지막에 사또의 쌀 삼백 석의 출처를 밝히는 부분은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에게서 받아다가 준 것이라니... 그렇다면 부모가 그 정도의 재물이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옛이야기는 생략하고 건너 뛰어도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데 별 무리가 없는 장르 아닐런지. 

주로 옛이야기를 입말로 되어 있는 것을 읽어서 그럴까. 이상하게 이것은 친근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또한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는 흔적들이 오히려 거북했다. '내 복이라도 남은 것이 있으면 드리고 싶은걸.(37쪽)' 이라던가, '저는 복을 더 타지 못했지만 세 가지 부탁을 모두 들어주셨으니 아주 헛된 걸음만은 아니었습니다.'(43쪽) 등의 표현처럼 말이다. 비단 이것이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옛이야기를 읽다가 이처럼 작가의 적극적인 입김이 느껴지는 글을 읽어서 그렇게 여겨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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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나의 고전 읽기 9
김슬옹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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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이건만 선뜻 읽을 수가 없었다. 좀 한가로울 때, 다른 일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읽고 싶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근 두어 달이 되었다. 이제야 겨우 한가하다 싶어 모처럼 마음 잡고 읽기 시작했다. 천천히 정독은 아니어도 놓치는 글자가 있으면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한글은 대단한 글자라는 생각을 깨고 과학적이며(아니 저자의 말대로라면 과학 그 자체다.) 굉장한 글자라는 것을 인정한 지는 꽤 되었다. 원리가 어떻고 세종이 얼마나 고심했었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싸고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세종이라는 인물이 이토록 굉장한 인물인지는 미처 몰랐다. 읽으면 읽을수록 세종의 모든 면이 거대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 책에서 뒷부분에 언급된 훈민정음의 원리와 풀이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터라 그 보다는 앞부분에 있는 이야기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세종은 정치인이면서 음악, 언어학, 과학, 철학, 역사학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훈민정음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백성들을 위해서 백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과 함께 훈민정음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창제를 공식 선언한 이후 집현전 학자들에게 그것을 이용한 책을 만들도록 할 때 함께한 인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성삼문이나 박팽년 등을 사육신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공동저자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면서.

어느 책에서도 최만리의 상소문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의 상식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것을 보며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나기까지 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세종과 최만리의 토론을 추측해 놓은 것을 보니 당시 사회상으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전에 전작권 환수 문제에서 보여줬던 일부 사람들의 태도와 최만리 같은 정통 사대주의들과의 차이점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그 상소문으로 인해 최만리 후손은 두고두고 욕을 먹었단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으로 인해 훈민정음 창제 과정이나 목적 등이 자세히 기록되기도 했다니 일정 부분 공헌을 한 셈이다.

학교 다닐 때 무작정 외웠던 훈민정음 서문. 우리는 단순히 그것만 외웠다. 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웠다. 판에 박힌 듯이... 왜 그것을 썼는지 어째서 그런 글자를 만들게 되었는지 배경은 어땠는지, 당시 학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는 접어둔 채로 오직 외우기만 했다. 어디 그것을 교육의 탓으로만 돌릴까만은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를 했다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하긴 지금 이렇게 이런 책이 있어도 청소년이 읽지 않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외우기만 한다면 달라진 것이 없는 게 되지만 그래도 몇몇은 그러지 않으리라 믿는다. 단순히 훈민정음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지만 그건 아주 일부였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읽기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마주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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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스타 요술 연필 페니 좋은책어린이문고 6
에일린 오헬리 지음, 니키 펠란 그림, 신혜경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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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이라면 일단 제쳐두고 보는 둘째가 유일하게 후다닥 읽는 책이 바로 페니 시리즈다. 혹시 뒷부분만 읽었나 해서 몇 번을 확인해 보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단다. 200페이지가 넘는 것을 혼자서... 결코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전편 두 권을 모두 읽더니 재미있단다. 하지만 5학년인 누나는 별로 재미없다는 투다. 첫 권은 재미있게 읽더니만... 아무래도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인가 보다. 세 번째 시리즈인 이 책이 오자 역시나 먼저 읽는다. 그것도 혼자서 열심히.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리고는 내가 읽는 것을 보더니 자기는 벌써 다 읽었는데 엄마는 이제 읽느냐며 어깨에 힘을 준다.

전편에서는 페니와 폴리 등 필기구들이 소극적이었다면 여기서는 굉장히 적극적이다. 우연히 옮겨지거나 누군가에 의해 위치를 이동했던 전편과는 달리 이제는 스스로 스튜디오를 활보하고 다닌다. 특히 대본을 갖고 오기 위해 감독 사무실에 갔다 올 때는 사람에게까지 들킬 정도다. 즉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조금씩 움직였던 데 비해 사람이 있어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페니는 악당 검은 매직펜에게 혼자 대항해 싸우는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페니의 친구가 아주 많다. 그래서 서로 힘을 합치기도 하고 서로 위로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마음은 훨씬 편했다. 비록 긴장감이 덜 하긴 했지만... 이것으로 페니는 완결된 것인가 보다. 마지막에 '완벽한 결말'이라고 한 것을 보니.

우연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의 주인공이 랄프와 사라 교실에 오게 되고 그 사람이 또 우연히 페니를 갖고 가면서 벌어지는 페니의 모험담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페니는 원래의 주인에게 무사히 돌아온다. 나중에는 심술쟁이 버트 대신 깜짝 조연으로 출연한 랄프가 그 흥을 몰아 배우가 되겠다나. 지극히 아이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드물다고 했던가. 첫 번째 책에서 느꼈던 그런 신비함과 신선한 느낌이 많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이미 구성을 알고 있고 무생물 주인공들의 행동유형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아이가 재미있어 하고 유일하게 읽는 두꺼운 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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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철학, 소크라테스의 변론 나의 고전 읽기 8
플라톤 원저, 나종석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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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분야는 항상 두렵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등한시했던 철학의 심오한 가치를 인정하고 다가서려 했지만 너무 아는 게 없어서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속으로는 철학에 관련된 것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마치 숙제처럼 항상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나마 요즘 몇 권 안되는 책들을 보며 이게 바로 그 철학자가 이야기한 것이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나마도 내가 그러한 것들을 완벽히 이해했다기 보다 그저 '읽었다'는 것을 내세울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내 행동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지식을 가장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소크라테스 입장에서 보자면 한심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읽었다는 뿌듯함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것이 현자인 소크라테스와 평범한 인간인 나와의 차이점일까.

저자도 지적했듯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삶과 철학적 신념을 해석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다행이다 싶다. 해석이 아닌 순수한 그의 변론을 읽는다면 반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이렇게 해석해 놓은 것도 중간중간 난해하고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으니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고발당해서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변론>을 전문가가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가며 풀어나가고 있는데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함께 보니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나마도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기에(아니 쓰지 않았기에) 알려진 게 없을 뻔했으나 다행히 위대한 제자인 플라톤이 스승의 이야기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지금의 소크라테스가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중산층이었던 소크라테스에 비해 귀족 집안의 자제였던 플라톤이 제자로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소크라테스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플라톤에게도 소크라테스라는 스승이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을 수도 있고.

오로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고 평생을 그렇게 살았기에 주위 사람들, 특히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눈엣가시였을 테고 자신들의 권력을 위험에 빠트리게 할수도 있는 존재라고 여겨졌을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 서게 되었고 급기야는 사형을 언도 받고 독배를 마시게 된 것이었구나. 그러나 그의 변론을 읽다보면 자신의 운명을 자초한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생활할 것을 천명했다고는 하나 어차피 그가 추방당하거나 벌금형을 받는다 해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언젠가 다시 법정에 서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았기에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배심원들을 화나게 한 것들을 보며 왜 이순신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가도 정적들에 의해 죽을 것을 미리 알았기에 선두에 섰던 그가...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겠으나 여하튼 문득 둘이 오버랩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으며 과연 내가, 아니 우리가 그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우매한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옳은 것의 가치를 정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원칙대로 살아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도 저자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했건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때로는 편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도 그러니까'라는 변명으로 동조했고 가끔은 내가 생각한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기도 했다. 다수 속에서 내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했던 적도 있다. 기원전 400년대에 있었던 일들이 아직까지도 진행형이라는 것이 그저 두려울 뿐이다. 그러기에 이런 고전은 시대를 뛰어 넘고 세대를 뛰어 넘어 계속 공감을 얻으며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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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체험 학습 5학년 2학기
씨앗들의 열린 나눔터 핵교 지음, 박동국.이예휘 그림 / 아이즐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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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교과서 체험학습 5학년 1학기> 책을 가지고 '신에너지 재생관'을 다녀왔었다. 만약 그 책이 없었다면 그곳이 있는지도 몰랐을 테고 설령 알고있다 해도 금방 잊어서 들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마침 강원도에 갈 일이 있어서 책을 들고 그곳을 들렀고(거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아 책에 나오는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바로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는 목장까지 갔다왔다. 아이들이 좋아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2학기가 되었는데 마침 이 책을 얻었다. 아싸, 신난다~. 요즘 책을 보고 정보를 수집한 다음 찾아가는 것에 재미붙이고 있는 참이다. 놀토의 숫자에 맞춰, 그리고 교과 과정에 맞춰 장소를 소개하는 이 책의 구성에 그저 '좋아 좋아'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단순히 체험장소에 대한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설명도 자세히 해 주고 있어서 하나의 자료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현장에서 얻는 정보와 감동이 보태져야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책을 죽~ 훑어 보니 이미 갔다 온 곳도 있고 조만간 가려고 했던 곳도 있으며 아예 생소한 곳도 있다. 얼마전에 유비쿼터스관에 갔다 와서 아이들이 다시 가자고 졸랐었는데 여기 있는 것으로라도 아쉬움을 달래줘야겠다. 어딘가를 갈 때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어른은 물론이고 이제는 아이들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여기 나오는 곳을 찾아갈 계획을 세우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전에는 그저 어딘가에 갔다 왔다는 것만으로 만족해 했는데 이제는 그런 형식적인 체험 학습이 아니라 진짜 내실 있는 체험 학습을 할 수 있겠다. 이것으로 이번 학기 체험 학습 계획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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