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이라던가 보수적이라고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물론 사전적 의미를 들이밀 수는 있겠지만 정형화된 틀을 싫어하는 관계로 그 보다는 내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하고 싶다. 역사를 보면 언제 어디서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가치관이 대립하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수 없고, 또 그래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토록 치열하게 대립하는 것일까. 뭐, 그건 내가 걱정하거나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그냥 넘어가야겠다.

가끔 생각한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일까. 성공을 위해서, 혹은 더 근사한 말로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류가 되고 싶어서가 아닐런지. 그렇다면 나는? 글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주류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럴 자신도 능력도 없거니와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그냥 마음 편하게(비록 속은 끓을지라도) 비주류로 살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대개 비주류였던 사람들이다. 체 게바라, 노무현 그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또 그들의 공통점은 제 명대로 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죽은 원인은 제각기 다 다르지만. 소로는 젊은 나이였더라도 병으로 떠났지만 나머지 둘은 자살(노무현)과 타살(체 게바라)이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난 권위적인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크면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가정의 맏딸이라는 제약 때문이었는지 모범생으로 '생활'했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선생님한테 인정받는 그런 학생이었다. 집에서는 집안일 잘 도와주고 공부도 알아서 잘 하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알려주는 대로만 했으니 어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정된 공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부모님이 모두 권위적이거나 억지로 내 삶을 조종하는 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신기하다. 만약 부모님이 권위적인 것을 앞세우는 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렇게 고분고분한 모범생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엄청난 반감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동생도 나와 비슷한 성향인데 의견 일치를 보는 부분이 바로 그거다. 권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잘 자랐다는 것.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다른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열심일 때 난 일부러 중소기업을 기웃거렸다. 대기업의 그 권위적인 분위기가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여하튼 그 정도로 난 권위적인 것을 싫어했고 여전히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유교의 가부장적인 문화로 어디서나 권위주의가 득실거린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아버지는 권위가 있다'는 말과 '아버지가 권위주의적이다'라는 말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권위는 있어야 하고 지켜야 하지만 권위주의는 그다지(전혀 필요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권위주의가 도처에 깔려있으니 내가 현실에 품는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러던 차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권위주의를 무너뜨렸다. 아니, 무너뜨리려고 노력했다. 비록 권위까지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본인이 피해를 보았지만. 나는 그의 시도에 박수를 보냈고 그 한 가지로도 좋아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줄곧 비주류 인생을 살다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 되면 약간은 주류 흉내라도 내고자 할 텐데 그는 안 그랬다.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길만을 고집했다. 여기서 대통령으로서 그의 공과를 평가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를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좋다. 신념을 지키고자 애썼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좋았다. 비주류로서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기에. 그러나 지금 그는 없다.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이토록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슬펐다. 

<체 게바라 평전>

 맨 처음 어떻게 체 게바라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워낙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은연중에 이름이 낯익었는지도 모르지. 그보다 먼저 차(茶)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남편이 회사에서 누가 줬다며 티백으로 된 차를 가지고 왔다. '마테 차'란다. 향이 어찌나 진하던지 가뭄에 콩 나듯이 먹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바로 그 마테 차가 나오는 것이다. 어찌나 기쁘던지. 체 게바라가 천식 때문에 마테 차를 즐겨 마셨다는 사실을 알고 괜히 반가웠다.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연결시킨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체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의사였지만 여행 도중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외면할 수 없어 혁명의 길로 뛰어든 체. 그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다. 그렇게 혁명을 해서 정권을 잡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정권을 잡지는 않더라도 모종의 역할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많다. 물론 체 게바라도 처음에는 혁명 정부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일을 했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란 권력에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게 대부분이다. 또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은 순순히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예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생각이 달랐을 것이라는 점은 안 봐도 뻔하다. 결국 체 게바라는 누릴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민중에게 돌아갔다. 어찌 보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그 길을 택하다니...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닌가 보다. 

체 게바라가 비주류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의사로 살았다면 주류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길을 버리고 험난한 혁명가의 길을 걸었으니 비주류라고 해도 되지 않을런지. 내가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끝까지 걸었다는 점이다. 마치 노무현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잘 생긴 외모를 마케팅에 이용한다지.

<월든>

 내 고향은 아주 한적한 시골이다. 지역적으로는 용인이지만 강원도 오지 보다 더 심하다. 그 곳에 저수지가 두 곳 있는데 한 쪽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으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곳이 좋았다. 해도 일찍 지기 때문에 산책하기도 안성맞춤이었다. 

이 책 <월든>을 읽으며 그 저수지가 떠올랐다. 물론 월든 호수와 우리 동네 저수지는 크기부터 비교가 안 되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 저수지가 연상됐다. 오죽하면 그 곳에서 소로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뭐, 실제로 그렇게 살라면 자신은 없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자신도 없거니와 거기서 혼자 지낼 자신도 없다. 그러나 현실이 너무 버거울 때 어딘가로(그 저수지가 가장 먼저 생각나긴 한다.)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소로도 분명 비주류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단다. 대학을 졸업했으면 근사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다닐 것이지 왜 직접 만든 초라한 옷을 입고 다니느냐며 외면받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숲에 가서 이야기를 해줄라치면 부모들이 아이를 못 나가게 했다지. 그러나 그가 살던 동네에는 훗날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컷이 살고 있었단다. 그녀는 소로우로부터 모종의 영향을 받았을 게다.

시민불복종이라고 이름 붙여진 연설을 하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한참 후에야 인정받았고 지금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거론한다. 소로는 체제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하지 않는다. 옳은 것은 지지하되 잘못된 것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문득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을 짧고 굵게 살았던 비주류들. 왜 나는 그들에게 이토록 끌리는 것일까. 아마도 옳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지만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경하는 것은 아닐런지. 또는 그들도 분명 비주류지만 그것을 핑계로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심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난 뛰어난 인품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단지 비주류라는 이유 때문에 주류로부터 배척받는 사람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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