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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단다. 제딴에는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둘째가 그럼 언제부터 어른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대답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나으면서부터라고.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모든 것을 내 위주로 생각했고 결혼하고 나서도 무조건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길 기대했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철'이 들었다. 단순히 생각의 기준점이 나에서 아이로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드디어 남을 생각하고 남의 입장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아이를 남으로 치환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통해 남의 아이를 보았고 그로 인해 그들의 부모를 봄으로써 비로소 다른 사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느낀다. 예전의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를.

그림책은 흔히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요즘에는 어른들도 꽤 많이 본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아이에게 보여주다가 우연히 감동을 받는 정도일 뿐 순수하게 어른이 보기 위해 그림책을 찾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 어른도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 즉 대개 엄마들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에게 이런 책을 권하면 어떨까.

1. 은행나무처럼(김소연 글/ 김선남 그림)

가을에 길을 걷다 보면 바닥에 노란 은행이 뒹군다.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예뻐서 가로수로 환영받는 듯하지만 잘못해서 은행을 밟으면 곤욕을 치룬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은행이 안 열리는 나무라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미리 알 수도 없으니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은행나무는 암수 딴그루이며 바늘잎나무도 아니고 넓은잎나무도 아닌 어정쩡한 그룹에 속한다. 게다가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종이라고 하니 신비하다.  

그건 그렇고 이 책에서는 암수 딴그루이기 때문에 은행나무를 소재로 삼았나 보다. 마치 그것이 여자와 남자를 상징하기 알맞으니까. 이 책은 아이들 보다 어른들이 훨씬 감동받는 책 중 하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느끼는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책이기에 아이에게 읽어주다 말고 혼자서 책장 넘기는 것도 잊은 채 글을 곱씹고 그림을 찬찬히 뜯어본다.


책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언제나 마주 보며 서 있었단다." 사실 별다른 정보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그저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겠구나라고 느낀다. 은행나무가 서 있나 보다 하며.


앞에 있는 은행나무 뒤에 어슴푸레 다른 은행나무가 보인다.


이 부분을 읽는 사람들은 잠시 옛 기억을 되돌아본다. 맞아, 그때 그랬지라며. 그리고 언제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하긴 했는지 모를 만큼 메마른 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아련함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살면 여행을 많이 가자고 약속하고 선물도 많이 하자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꼭 지키자고 약속을 하기도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건 지키기 힘든 약속을 뿐이다. 둘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마주 보는 것도 잊고 둘은 하나를 보며 지낸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러다가 은행이 나무를 떠나고 잎들도 모두 떠날 때에야 비로소 둘이 마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듯 엄마와 아빠도 아이를 세상으로 내 놓은 후에야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둘을 발견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특히 모든 것이 아이 위주로 돌아간다. 먹는 것도 그렇고 여행도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간다. 내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가도 결국 아이 옷만 사온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 하면 한편으론 섭섭한 마음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날 것을 각오하고 아이는 결코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수없이 되새기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면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나도 부모에게서 그렇게 떠나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러기에 아이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는 동시에 부모님을 생각한다.

2. 두 사람

역시나 책을 보며 부부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는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란 엄마와 딸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친한 친구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고 많이 공감했던 것은 역시나 부부를 대입했을 때였다. 아마도 부부란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지금도 겪고 있으며) 서로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은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렵습니다."로 시작한다. 한 쪽은 여자 옷, 다른 한 쪽은 남자 옷이 반반씩 단추로 연결되어 있는 그림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그래, 둘은 비록 크기가 다르고 색도 다르지만 그렇게 서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군.  

 

글을 읽다 보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세상 수많은 자물쇠 가운데 단 한 개의 열쇠로 열 수 있지만 가끔 열쇠가 없어지기도 한단다. 특히 열쇠가 없어지기도 한다는 부분에서는 더욱 공감이 간다. 만약 둘이 함께여서 좋은 경우만 이야기했다면 이처럼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둘이 살다 보면 일부러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엇나가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이 말은 또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나란히 똑같은 창문을 보고 있어도 둘이 바라보는 모습은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건만 우리는 종종 이것을 잊는다. 그래서 나와 같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서운해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비난하기까지 한다. 또 어떤 때는 아예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나하나의 말들이 어쩜 이리 가슴을 콕콕 찌르는지.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처럼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과연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힘이 빠지고 못된 이기심을 탓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불완전한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조금씩 바꿔나가려 노력한다.

두 권의 책을 부부가 함께 읽어 보시길 권한다. 물론 대개의 남자들은 이런 그림책을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를 내서 읽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나도 아직까지 그렇게는 못한다.) 그리고 나면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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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온 지 두어 달이 지나면 그 때부터 근질근질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올해부터는 여행을 포기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평일에 체험학습을 내고 다녔는데 이제 중학생이 되니 그러기엔 부담스럽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면 갔다오기로 잠정 합의를 했던 터다. 

사실 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하는 목적과 직접 경험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다. 그래서 주로 역사나 체험을 위주로 가게 되었고 자연히 아이들은 그다지 반겨하지 않았다. 큰 아이는 잠을 푹 잘 수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불만으로 여기며 투덜댄다. 가끔 무작정 떠나서 순수하게 놀다오기라도 하면 둘째는 무척 좋아할 정도였다.  

헌데 요즘은 큰 아이가 주말에 집에만 있으면 허탈하다며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한다. 전 같으면 마지못해 따라나서던 아이가 아니던가. 이제 여행이 습관이 된 것일까. 그래서 몇 달 어딘가를 갔다오지 않으면 뭔가가 허전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모처럼 여행을 가자고 먼저 제안한 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시험이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원래는 1박을 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당일로 잡았다. 장소는 책에서 보았었고 주간지 특별부록에서도 보았던 농다리가 있는 진천으로 잡았다. 

일전에 아우라지에 있는 섶다리를 보고 참 특이한 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들어진 지 천 년이 다 된 돌다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우선 이 책에 나오는 정보를 보며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좋고 유익한 곳을 소개하는 책이라서 그런지 내 취지와 딱 맞는다. 마침 여기에 진천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을 보았던 참이다. 작년에 이 책을 구입했는데 책을 보며 상당 부분 우리가 갔던 곳이라서 반갑기도 했고 우리도 참 많이 돌아다녔구나를 새삼 느끼기도 했었다. 여기서 추천하는 코스인 종박물관과 농다리, 보탑사, 이원아트빌리지를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날 큰 아이가 묻는다. 몇 시에 출발할 거냐고. 워낙 미리 준비하는 딸인지라 출발 시각을 알아야 준비하는 시간을 계산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8시 출발, 7시 20분 아침식사라고 했더니 아무말 없이 알았단다. 전 같으면 쉬는 날인데 너무 일찍 일어난다고 투덜댈텐데... 오히려 쉽게 대답하는 딸을 보며 우리 부부가 의아했다. 대신 둘째가 난리다. 그렇잖아도 1박2일로 갯벌을 갔다온 뒤라 피곤하다는 거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둘째의 의견은 무시.(이러면 안 되는데...)

주말이면 영동고속도로가 막히기 때문에 국도로 향했다. 아는 길을 먼저 가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르지도 않는다. 만약 네비게이션이 생각이 있는 사물이었다면 이랬을 것이다. '지들 맘대로 갈 거면서 나한테 왜 물어 봐!'라고.
 
종박물관 주차장에 들어서니 한산하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겠다.  


밖에는 이처럼 성덕대왕 신종 모형을 만들어 놓아서 마음껏 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웅장한 소리를 들으며 종에 손도 대보았다. 박물관 안에는 음통과 움통에 대한 자세한 설명 뿐만 아니라 음통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소리를 직접 들으며 비교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음통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성으로 잡음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바닥에 움푹 파인 것을 움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소리를 반사해서 여운이 길도록 해준다. 박물관 안에는 시기별로 종을 배치해 놓아 각 시대별 특성과 차이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음통이 없기도 하고 가운데 선을 그었으며 모양도 투박한 것을 알 수 있다. 승아는 왜 안 좋은 것을 받아들이냐고 반문한다. 글쎄, 그게 꼭 안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전통적인 우리의 방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당시의 유행이라는 것이 있지 않던가. 패션의 역사도 지나고 보면 무척 촌스러운 것도 당시는 대단한 유행이었다는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2005년에 개관해서 아직 주변이 어수선하고 규모도 그다지 큰 것은 아니지만 종의 세세한 부분까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농다리로 향했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니 거의 천 년을 저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천 년 전의 사람들이 다녔던 곳을 지금 나도 건넜다니. 다리를 물의 흐름에 맞게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모양이라 농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걸쳐 있는 돌은 커다란 하나의 돌인데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천 년을 버텨왔다니 그야말로 기우겠지. 


농다리를 왔다갔다 하면 건강하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원래 다리밟기도 그런 의미니 거기서 유래된 것일까. 저 길을 건너서 올라가면 산책길이 있다. 지금도 정비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깔끔하다. 작은 언덕을 넘으면 저수지가 나온다.

앞으로는(사진으로 보면 오른쪽) 중부고속도로가 있어서 좀 시끄럽다. 그동안 중부고속도로를 수없이 다녔지만 이런 다리가 있는 줄 전혀 몰랐으니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보탑사다. 원래 길 떠나면 먹는 것이 가장 문제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편이 아니라서(우리의 여행 목적은 먹는 것이 아니기에) 지나가며 괜찮다 싶은 곳을 들어가곤 한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이 마침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맛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고추장삼결살이라는, 둘째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라서 연호는 아주 맛나게 먹는다. 그리고 나올 때 개업선물도 두 개 받아왔다. 식당 가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보탑사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길이 워낙 좁아서 앞에서 차가 오나 안 오나 잘 살펴봐야 한다. 잘못하면 오도가도 못할 수가 있으니. 하지만 그래서 더 조심하는 것도 있다. 차가 오면 미리 넓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과연 이렇게 산골에 있는 절에 사람이 올까라며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웬걸, 차가 무척 많다.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 절 유명한가 보다."

보탑사는 탑과 본당이 같은 특이한 절이다. 즉 저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탑이자 부처를 모신 불전이다. 탑은 목탑이며 더욱 특이한 것은 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밖에서 보면 삼층이지만 안으로 가면 중간에 층이 하나씩 더 있어서 총 5층이다. 올라가면서 딸꾹질을 하던 승아는 사람들이 절을 하는 조용한 1층에 발을 내딛는 순간 딸꾹질을 크게 해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탑 주변은 야생화를 어찌나 잘 가꾸어 놓았던지 사람들이 모두 그 꽃을 보며 감탄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비석이 있는데 비문이 하나도 없다. 설명서에 비문이 없다고 하니 알았지 안 그랬으면 비석을 보고도 모를 뻔했다. 그래서 이 비석을 '무자비'라고도 한단다.  

보탑사를 나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이원아트빌리지로 향했다. 이월성당 사진을 보자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난다. 바로 얼마전에 읽었던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이다. 아, 이렇게 서로 모르던 것들이 연결되어 내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의 기쁨이란. 그래서 여행을 떠나면서 두 권의 책을 챙겼던 터다. 안 그랬으면 낭패볼 뻔했다.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에 씌어 있기를 '내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이원아트빌리지'란다. 그 말이 뭔 말인지 실감했다. 이원아트빌리지는 고사하고 우리 내비게이션에는 미잠리라는 마을 조차도 안 뜬다. 간신히 쌍호교를 지나면 바로 있다는 <베스트 여행지>의 글을 읽고 쌍호교를 목적지로 찾아갔다. 다행히 쌍호교는 나온다. 참고로 우리 내비는 미오다. 아무래도 업데이트 좀 해야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이원아트빌리지. 이 미술관은 원대연이라는 건축가가 지은 곳이란다. 건축가들이 손에 꼽는 이월성당의 설계자라지. 잘 나가던 사무실을 접고 이곳으로 와서 미술관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니 참 안타깝다. 마침 이철수 판화전도 하고 사진전도 해서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두 남자는 어딘가로 휘리릭 가 버리고 승아랑 천천히 둘러보았다. 혹 빠진 것이 있나 꼼꼼히 둘러보는 승아를 보며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 든 것일까. 비록 둘 다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딸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미술관을 둘러보는 그 기분이란...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곳은 개방하는 공간이 3천 평이란다. 건물이 많고 길도 미로처럼 되어 있지만 어디로 가든 모두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길을 잘못 들 염려는 없다. 어느 곳에는 이렇게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뭇가지로 만든 자전거도 놓여 있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수레도 있다. 거기에 담겨 있는 갖가지 꽃은 또 어찌나 예쁘던지.


한쪽에는 색이 칠해진 돌이 놓여 있다. 가만 보아하니 관람객이 가지고 놀라고 해 놓은 것 같다. 연호는 아예 자리잡고 앉아서 자기 이름을 쓰겠단다. 그런데 한 글자 쓰더니 너무 힘들다며 그만둔다. 자그만한 전시관이 곳곳에 있어 발길 닿는대로 가서 구경하도록 되어 있다.


한쪽 벽에는 이런 인형도 놓여 있다. 


상촌미술관이 있는 이원아트빌리지 입구. 건축가 원대연의 그림도 있는데 역시 건축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이월성당 이야기를 하자면 원대연 건축가가 지어준 성당이란다. 건축가들은 그곳을 군더더기를 빼고 자연과 어우러진 편한 건축으로 손에 꼽는단다.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의 저자 이용재의 표현에 따르자면 '어두움과 밝음만 있는 명품'이란다. 그곳도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그냥 왔다.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면서 남편도 승아의 변한 모습에 놀랐단다. 이제야 그동안 우리가 저희에게 했던 교육의 방향을 이해하는 것일까. 며칠 전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내게 큰 고통을 안겨준 기억마저 좋은 경험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집에 오는 중에 수학 문제집을 꼭 사야한다기에 서점을 간신히 찾아갔다. 어차피 큰 기대하지 않는 교내수학경시대회니 그냥 보랬더니 안 된단다. 명색이 반에서 몇 명만 보는 거라 은근히 부담이 되나 보다. 이거 우리집은 부모와 자식이 반대다. 이번 여행은 무엇보다 딸의 변한 모습을 '확인'한 뿌듯하고 감동적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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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많이 보다 보면 그림작가 이름을 모르고 책장을 넘겼더라도 그림을 보는 순간 어느 작가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어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그런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아이가 '이거 무슨 책하고 그림이 비슷해.'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것을 작가만의 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한 가지 방식으로 가는 것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통 사회복지회관에서 작가 강연회를 한다기에 오랜만에 가봤다. 전에 그곳에서 책 읽어 주기를 할 때에는 수시로 드나들었던 곳이건만 특별한 일이 없으니 잘 안 가게 된다. 사서 선생님도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시던지... 이번 작가 강연 주인공은 바로 이억배 선생님이다. 수수하게 생기신 외모에 맞게 말솜씨로 좌중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엔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작가의 그림 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 작가 소개 >>
이억배(1960~ )
1960년 용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조소학과를 졸업했다. 주로 목판화로 작품 활동을 해 오다가 최근에는 어린이 그림책을 만드는 데 전력하고 있다.『솔이의 추석 이야기』,『개구쟁이 ㄱㄴㄷ』,『잘잘잘 1 2 3』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반쪽이』, 『도구의 발견』,『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등의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그림으로 '97 BIB(브라티슬라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 선정되었고,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로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 주관 '1998 어린이문화대상' 미술 부문을 수상했다. 아내이자 동료인 일러스트레이터 정유정 씨와의 사이에 딸과 아들을 두고 안성에서 살고 있다.
(예스24에서 발췌)
 
<< 작품 소개 >>
1. 솔이의 추석 이야기 
작가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추석 때만 되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책. 얼마전에 <모던보이 알렝>이라는 프랑스 그림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을 보며 솔직히 그들의 역사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책에 빠져들 수는 없었지만 그 나라 사람이라면 참 많이 공감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난민생활을 하며 후손들에게 자기 마을의 모든 곳과 사람에 대한 것을 글로 남겨서 전해주고 있다고 한다. 즉 그렇게 일반인들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두 개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도 사라져 가는 많은 것들을 무엇인가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물론 이책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서 말이다.
 
작가도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하는 추석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단다. 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단행본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아이가 커 가는데 읽힐 만한 책이 없음을 깨닫고 직접 책을 만들기로 했단다. 물론 안양에서 그림책의 지평을 연 사람들과 문화운동을 하기도 했으니 아무런 고민없이 시작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었으나 처음엔 비전공자라는 원인도 있었고 처음 쓴 책이아서 쉽게 출판사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그 당시 큰 출판사들은 우리 작가를 발굴하기 보다는 외국의 책을 들여와 쉽게 장사하려고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우리 그림책 시장이 침체기라고 하지 않던가. 어찌 되었든 작가는 짤막한 글로 우리의 명절 추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니 그 안을 조금만 들여다 봐야겠다.
 

가로수가 면을 분할하고 있고 그 안에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명절을 맞이하기 위해 너도나도 바쁘다. 그러나 글은 딱 한 줄씩 뿐이다. 이런 것이 바로 그림책의 맛이다. 글은 달랑 한 줄이지만 그림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 새벽 온 식구가 집을 나선다. 스케치 그림은 나무도 건물도 명확한 선이 아니라 흐릿하게 보였다. 작가가 지금 보면 그 정도의 그림으로도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얼핏 한다. 지금이야 많은 시도들이 있으니까 그런 그림도 받아들여지지만 당시에 그런 불분명한 방식의 그림을 그렸다면 글쎄, 사람들 반응이 어땠을까 잠시 궁금하기도 했다. 강연회에서는 이렇듯 작가의 작업 과정까지 볼 수 있어서 더 생생한 것이다.
 

줄 서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 신경써서 그렸다고 한다. 똑같은 사람도 없고 대충 얼버무린 사람도 없다. 모두들 각자가 살아 있고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기에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고.
 

이거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낭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속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행렬이다. 이런데도 모두들 나선다. 과연 계속 이런 모습으로 이어질까. 어느 때부터는 '옛날에는 이랬대.'라는 말로 치환되지는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이 책의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차례 음식을 만들고 성묘를 하고 농악 놀이도 구경하는 모든 장면을 뒤로 하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마루 벽에 보면 할아버지 사진이 걸려있다. 이게 바로 작가의 할아버지란다. 이런 식으로 사적인 장치를 넣기도 한단다. 그리고 여기서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에서는 주인공으로 등극한다고.
 

겉표지에 나와 있는 선물 목록. 이처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농담을 하셨다. 그림책에서는 이처럼 겉표지까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
 
2. 반쪽이 
요즘 세계 여러나라의 옛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파되었다기 보다 비슷한 이야기가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은 환경에 상관없이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동양화에 깊은 매력을 느껴서 주로 그런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한편으론 느낌이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서양의 그림 방식을 모방하고 숭상할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림도 얼마든지 훌륭하고 운치있다고 강조하신다.
 

우물에서 잉어 세 마리를 잡아다 구워 먹는데 반쪽은 그만 고양이에게 빼앗긴다. 이럼으로써 후에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셋째 아들이 그만 반쪽이로 태어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생선을 나누어 먹은 고양이도 반쪽이 고양이를 낳았다. 사실 글에서는 아무 이야기도 없고 후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살짝 그림으로 보여주니 독자는 웃을 수밖에 없다.
 
3.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글 작가는 장인어른을 생각하며 썼다고 하는데 그림 작가는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가부장적인 면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게 또 우리네 부모들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수긍이 가기도 했다.
 

한때는 이처럼 굉장한 위용을 과시하는 수탉이었으나 세월 앞에서는 당해낼 게 하나도 없다. 좌절하지만 결국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는 이야기. 작가의 할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기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무용담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수탉의 한창 때 모습 중에서 두 페이지에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는데 지금 책이 없어서 사진을 못 찍었다. 그림에서는 하나의 천막이지만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술병이 쌓이는 모습으로... 그러나 음주 캠페인은 절대 아니라고 농담을 하신다.
 
4.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한때 모임에서 이 책을 보며 부엌 살림의 모양이 이상하다고 지적하자 누군가가 이건 조선족의 모습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땅한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에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어느 시골에서 조선족 할머니 집에서 숙박을 하며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자식들이 떠나고 찾아오지도 않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강연에서는 그 할머니의 사진과 집 둘레의 모습까지 모두 보여주었는데 그것을 여기에 옮길 수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게다가 카메라를 안 가져가서 귀한 자료들을 찍지도 못했으니...
 

할머니가 만두소를 버무리기 위해 커다란 그릇을 짊어지고 가는 이 장면도 처음에는 동물들과 다함께 끌고 가는, 약간은 소극적인 모습으로 그렸었단다. 손 큰 할머니라서 처음엔 손을 강조해서 크게 그려보기도 했다고.
 

모닥불 모습도 처음엔 훨씬 크게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큰 것 같아 줄인 것이 이 정도다. 그런데 작가가 직접 시골에서 가마솥에 불을 때 보니 이것도 탈 정도의 세기란다. 모닥불이 훨씬 큰 그림도 채색까지 완전히 마친 하나의 그림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그린다고 한다. 그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어떻게 비슷한 장면을 여러 장 그릴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 장도 벅찰 텐데.
 

질문 시간에 누군가가 다른 동물들은 모두 노는데 왜 소는 외양간에서 묶여 있냐고 아이가 물어봤다면서 이유를 묻는다. 사실 작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았나보다. 그저 앞 부분에서 소는 만두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외양간이 있으니까 소를 그린 것인데 아이는 그것을 예리하게 관찰했던 것이다. 이래서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5. 모기와 황소 
황소가 살아 있는 듯한 그림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소를 그리기 위해, 그리고 옛날 모습을 한 외양간을 그리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다가 충북 영동의 어느 시골에서 간신히 발견했다고 한다. 소의 모습과 모기, 파리를 그리기 위해 단순히 겉모습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절 모습까지, 거의 해부학적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순히 겉모습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구나하고. 그처럼 관절까지 모두 그려봐야 움직임이라던가 생물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이토록 안타까울 수가 없다.
 
구멍 뚫린 나무를 그리기 위해 산을 찾아다니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 한 장면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와 노력이 들어가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런 노력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감탄을 하고 마음을 담아가며 책을 볼 수 있는 것이리라.
 
작가는 특히 동양화에 매력을 느껴 화선지에 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 작업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척 힘들지만 그래도 그것만 할 마음인가 보다. 18세기에 활동했던 변상벽이라는 화가의 동물 그림을 보여주며 서양의 그림만 좋다고 감탄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우리 정서에 맞는 훌륭한 그림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신다. 그 말에 괜히 나도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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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3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귀중한 자료가 숨어 있었네요.
이거 출처 밝히고 옮겨가도 될까요? 어머니독서회 카페로~~ 허락하시면 복사해 갈게요.^^

봄햇살 2008-09-03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세요. 잘 지내시죠?
 

<걱정쟁이 열세 살>을 읽으며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다. 이렇게 톡톡 튀면서 현재의 아이들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해 내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 후로 이 작가의 작품을 몇 번 더 보았고(우연히) 급기야 만나고 싶은 작가 일순위에 올랐다. 결국 강력히 주장해서 회보에 실을 작가로 결정!!

막상 만나고 보니 여린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건 책을 읽으며 그렸던 작가의 모습이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건 비단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같이 갔던 모든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구먼.

<<< 작가 소개 >>>

최나미

동화 작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겨레작가학교’를 졸업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손녀와 할아버지의 관계, 죽음의 의미를 잔잔하게 이야기한 『바람이 울다 잠든 숲』(출판인회의 선정 이달의 책),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들의 관계 맺기와 상처 치유하기를 섬세하게 그린 『진휘 바이러스』를 펴냈다. 최나미의 두 번째 창작집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선정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스24에서 발췌. 인터넷에는 아무리 뒤져도 정보가 제대로 없다.)

최나미 작가는 유난히 열세 살에 집착하는 듯 보인다. 현재 나와 있는 모든 작품의 주인공은 열세 살이다. 왜 하필이면 열세 살일까. 지금 내 딸도 열세 살인데. 마침 최나미 작가의 책들을 하나씩 읽고 있는데 <창비어린이> 봄호에 그에 관한 글(신인 평론)이 실렸다. 요즘 나오는 책들을 살펴보면 열세 살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장수 만세>도 열세 살이 주인공이고 김리리 작가의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주인공도 열세 살, 6학년이다. 

초등학교에서 최고 학년이 되어 자아도 생기고 사춘기를 한창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그 때문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그 이유도 있지만 일종의 마지막 몸부림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최고 학년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최저 학년이 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점도 있지만 그 때는 대입이나 앞날에 대한 생각과 어느 정도 머리도 컸기 때문에 무작정 기분이 들뜨는 상태는 조절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그럴 여유도 없을 테고.

평론에서는 열세 살을 주인공으론 한 동화의 포문을 연 작품이 최나미 작가의 <진휘 바이러스>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어른의 입장에서 계도를 목적으로 한 그런 동화가 아니라 철저히 아이들 입장에서 현재의 아이들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구나. 독자는 자신에게 맞는 책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니까.

<<< 작품 소개 >>>
1. 바람이 울다 잠든 숲
작가의 첫 번째 책. 아직 읽어보진 못했으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이 후의 책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즉 기존의 잔잔한 어린이책을 연상하면 된단다. 작가학교를 다니면서 썼던 작품이라고 한다. 대개 작가들이 처음 등단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반해 최나미 작가는 위기철 선생님 덕분에(당시 청년사에 계셨다고) 쉽게 첫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가학교에서 동화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썼던 작품이기에 색이 달랐던 게 아닐까싶다.

 
2. 진휘 바이러스

평론가가 이 책을 계기로 우리의 동화에서 열세 살이 주목을 받았고 활개를 치게 되었다(이건 내 표현이다. 평론가는 열세 살 바이러스를 퍼트렸다고 표현했다.)고 평한 바로 그 책이다.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은 친구들과의 소통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단편단편마다 주인공은 모두 열세 살이다. 작가는 주로 친구 문제에 천착한다. 따지고 보면 그 즈음이면 가장 중요한 게 친구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현재 아이들의 고민을 정확히 간파한 셈이다. 

[진휘 바이러스]는 딸 친구-친하지도 말고 눈밖에 나지도 말기를 바라는 그런 친구-를 모티브로 했단다. 또한 [청소함 옆자리]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란다. 나머지 한 이야기 [턱수염]은 두 개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3. 걱정쟁이 열세 살
딸이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고 광고하고 다녔던 책이다. 주인공이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 딸은 상우의 누나에 자신을 대입하며 읽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가는 MBTI 성격유형을 중심으로 인물의 성격을 결정한단다. 즉 상우는 무엇이든 계획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신경쓰는 전형적인 ISTJ형으로 설정하고 엄마는 감성적인 NF형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누나는 짐작컨대 ESTP가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상우는 아빠가 자신의 길을 찾아 가족을 떠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빠가 돌아와야 그제서야 '정상적인' 가정이 된다고 생각하고, 엄마는 마당의 감나무를 보며 울 수밖에 없다. 물론 누나는 자기 마음대로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며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J형인 상우가 보기에 P형인 누나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것은 당연하지. 여기서 잠깐 작가의 에피소드를 소개해줬다. 자세한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J형과 P형의 인식차이에 대한 것이었다. 그만큼 둘의 성격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4.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흔히 나이 마흔을 고비라고 이야기한다. 난 아직 마흔이 안 되어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도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마음이 불안하고 뭔가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마흔과 종잡을 수 없는 열세 살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한 지인은 벌써부터 걱정한다. 자신의 나이 마흔이 될 때 아이가 열세 살이 된다며.

둘째 연호네 반에 한 여자 아이가 있는데 축구를 잘 한다고 한다. 남자 아이들과 같이 매일 점심 때 축구를 하나보다. 이 책의 주인공 가영이도 그런 아이다. 그러나 정작 시합에는 나갈 수가 없단다. 왜? 여자니까. 나이 마흔에 자신의 삶을 찾고 싶어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두고 밖으로 나가는 엄마를 온 식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가영이는 자신이 겪은 일을 계기로 조금은 엄마를 이해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의견이 분분했다. 엄마는 꼭 그렇게 식구들에게 설득이나 설명도 없이 집을 나갔어야만 했을까. 작가는 대답한다. 우리나라 남자들, 그리고 어른들은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차라리 그냥 조용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고. 어느 정도 공감은 간다. 사실 여성문제라는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데 작가는 시종일관 경쾌한 문체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그다지 무겁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게 바로 최나미 작가의 특성이자 매력이다.

5. 셋 둘 하나
세 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두 이야기는 친구와의 문제를 다루고 하나는 성장을 다룬다. 여자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 친구와 붙어 다닌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표제작의 경우 단짝이 셋이라서 불편한 경우가 생기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즉 필요에 의해 왕따인 한 친구를 끼워주면서 일어나는 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쩜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이 현실과 똑같을까. 나중에 (어찌보면)경계인이었던 은혜가 셋에게 퍼붓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성장을 다룬 [마술모자]의 경우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효주를 주인공으로 한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중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며 '멋있는 친구네'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만약 우리 아이라면을 대입하면 '절대 안 돼'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아마도 어른인 나는 모든 것을 아이들 입장에서 보려 '노력'하지만 그 기저에는 결국 부모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일 게다.

위에서 살펴본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어른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를 양육하거나 보조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기존의 동화에서 보여줬던 어른이 문제를 해결하고 뒷마무리를 하거나 결말에 가서 급하게 봉합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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