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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3
서머싯 몸 지음, 송무 옮김, 나현정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평소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정작 난 그렇게 살질 못한다. 어떤 열정에 사로잡혔다가도 현실을 깨닫는 순간 바로 주저앉는다. 지금 나에게는 돌봐야 할 아이도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주변사람들도 있으니까라는 핑계를 대며.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용감했다. 가족과 부인에게 설명도 없이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정만을 간직한 채 모든 것을 버렸다. 그럴 땐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그래,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가능했을 것이야.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술가만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셈이다.
지금 나이쯤에 이 책을 읽었다면 '청소년 시기에 읽고 지금 다시 읽으니'라는 말을 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청소년 시기에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게라도 읽었다는 것일 게다.
만약 서술자가 스트릭랜드 부인이었다면 분명 스트릭랜드를 이기적인 불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술자가 작가인 '나'로 되어 있고 그도 어느 순간 스트릭랜드의 매력에 빠지는 것을 보며 독자도 스트릭랜드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남의 평판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삶을 영위하는 그를 보며 어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괴롭다. 불친절하고 남의 의견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니 당연하다.
영혼을 위한 삶을 사는 달, 스트릭랜드(물론 명예를 버린 의사도 있다.)와 그 외 현실적인 삶을 사는 나머지 사람들의 생활을 대조시킴으로써 진짜 중요하고 풍요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각각 인간 부류를 대표하는 듯하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남편이 떠난 것을 알았을 때 왜라는 생각보다는 당장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더 두려워하고 남편을 증오한다. 그리나 나중에는 남편이 유명해지자 자신이 부인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를 세속적이거나 속물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 대체적인 인간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트로브는 정작 본인은 천재의 그림을 보는 안목을 지녔음에도 과감히 현실을 떨치지 못해서 그저 그런 그림만 그린다. 아마 그에게 열정이 있었다면 스트릭랜드 못지 않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긴 능력 있는 비평가가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긴 하다만. 문득 스트로브에 내 자신을 대입해 본다.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하며 혹 내 결점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가진 않았는지. 현실과 타협하면서 옳은 길, 잘된 길을 알면서도 잘못된 길을 가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그래서 더욱 스트로브가 제 길을 찾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고갱을 모델로 썼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적 허구를 차용했다는 <달과 6펜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시리즈는 뒷편에 나와있는 작품 해설과 다양한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가끔 내용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데 억지로 짜맞춘 듯한 팁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나저나 언제 기회가 되면 타히티에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