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오멸, 2012

 

 

 

최근 어떤 글에서 허문영은 세르쥬 다네의 말을 빌려 세상의 영화를 역사적 영화와 지리적 영화로 구분지었다. 허문영의 설명에 따르면 역사적 영화는 사건의 영화이고, 지리적 영화는 장소의 영화이며, 예를 들어 서부극이 미국의 건국신화라는 설명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서부극이 역사적 영화라기보다 지리적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비슷한 구분법을 영화 <지슬>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지슬>은 역사적 영화인가, 지리적 영화인가.

일단 영화 <지슬>은 역사적인 요소와 지리적인 요소를 둘다 가지고 있다. <지슬>은 흔히 4.3사건이라 불리는 1948년부터 시작된 미군정과 우리군에 의해 저질러진 제주도민 학살사건, 혹은 그에 맞선 민중들의 항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동시에 이는 제주도라는 좁고 한정된 고유의 지역성을 크게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지슬>이 역사적 영화이자 지리적 영화라고 답한다면 굳이 이 구분법을 끌고 들어온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지슬>은 지리적 영화다. 이는 역사적인 이 사건이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동시에 이 영화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감독 이하 제주도 사람들이 만든 제주도 말로 진행되는 영화라고 하는 말도 아니다. 그저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싶다. 이 영화에서 역사적인 배경을 지울 수는 있지만, 그래서 4.3사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전혀 알지 못하고도 이 영화를 관람하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이 영화에서 지리적인 배경을 지울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제주도 방언으로 진행되고, 표준어 자막이 계속 밑에 따라붙는 특이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제주도를 지운다면, 즉 예를 들어 이 배우들에게 표준어로 연기하도록 했다면, 이 영화는 어떤 형태를 띄었을까, 아니 이 영화가 존재할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거나,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N사이트 같은데서의 20자 평에는 지리는 없고 역사만 있다. 아니 역사는 없고, 이념만 있다. 그것도 이상한 이념만 있다. 지독한 인간들.)

앞에서 허문영의 구분을 따르자면, 그러므로 이는 사건의 영화가 아니라 장소의 영화이고, 그러므로 보아야 할 것은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라, 이어지는 일련의 장소들이고, 장소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군인들이 있는 집과 이들이 있는 동굴의 대비 같은 것 말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제기(祭器)들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 보여주듯이 군인들이 머물고 있는 이 집은 제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집이다. 그리고 군인들은 태연하게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시체 혹은 원혼의 옆에서 태연하게 과일을(아마도 제사상에 올라가 있었을 과일을) 깎아서 먹는다. 시체와 원혼과 군인들이 함께 머무는 집. 그래서 이 집은 한없이 으스스하고, 그들이 설혹 귀신들린 행동을 해도(예를 들어 이 부대의 지휘관인 김상사는 마약에 취해 흙바닥에서 헤엄를 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귀신 들린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카메라는 때로 의도적으로 인물의 포커스를 지워버리고, 그들을 종종 흐릿하게 보이도록 한다. 즉 이들을 일종의 영화적인 유령으로 만든다.

반면 이들이 숨어 있는 동굴은 제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영화는 형식적으로 신위-신묘-음복-소지라는 전통 제사의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음복을 하고(무동 할머니가 죽으면서 남긴 감자를 나누어 먹고), 소지를 한다(군인들이 동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날려보내는 매운 연기는 소지의 연기이고, 동시에 울기 위한 것이다. 어쩌면 실제의 제사에서 소지를 하는 것, 그러니까 죽은 이를 적은 신위를 불사르는 것은 동시에 울기 위함이 아닐까). 물론 이는 앞서의 으스스한 집과 다르게 공동체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곳에서 감자를 나누어 먹고,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힘을 북돋운다. 그것은 감독이 이 좁은 동굴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이 동굴에서 인물들은 길게 늘어 앉아있고, 카메라는 그들을 각각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모두 꽉 들어차도록 잡으며, 그들 모두에게 포커스를 배분한다(딥포커스). 그것을 그들이 감자를 나누어 먹으며, 대화하는 씬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이 때는 대화를 이루어내는 몇 개의 무리를 잡되, 그 대화의 상대자가 매번 바뀌며, 앉는 위치도 미묘하게 달라져 있고, 카메라는 마치 끝없이 계속 패닝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이 때의 카메라는 이 좁은 동굴을 무한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마법을 부리고 있으며, 그것은 이 좁은 공간에 가득 담겨진 그들의 공동체성, 그 무한의 힘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두 가지의 비교를 변성찬은 영화와 연극으로 나누어 보았는데, 그것 역시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 있다. 변성찬의 구분에 따르면 군인들의 장면은 영화적인 장면들이고, 주민들의 동굴에서의 장면은 연극적인 장면들이다. 기법상으로 보면 이는 영화적인 기법을 주로 활용한 군인들의 장면과 연극적인 기법을 많이 활용한 주민들의 장면이라는 대비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어떤 죽음과 관련한 은유들(유령들이 뛰노는 스크린과 죽어 있는 관객들)과 연극이라는 매체의 어떤 살아있음의 대비로 볼 수도 있다. 즉 <지슬>은 하나의 제의이자 연극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이 제의이자 연극은 죽은 영화 속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우리 관객들)이 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제의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이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제의는 온전히 죽은 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살아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죽은 혼령을 달램으로써 살아 있는 후손에게 나쁜 기운이 아니라 좋은 기운을 보낸다는 관점에서도 그렇고, 동시에 제의는 죽은 이들이 우리와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점을 일깨우고(죽은 이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남은 하루하루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즉 제의는 죽은 이와 우리를 연결지으면서도 동시에 선을 그음으로써, 우리에게 삶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케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로 이루어지는 제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고, 동시에 그것은 지슬(감자의 제주도 방언)이기도 하다. 그것이 아마도 이 영화의 제목이 '지슬'인 이유일 것이다. 지슬은 누구에게나, 즉 주민에게나 군인에게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동시에 <지슬>이 역사적인 영화가 아니라 제주도라는 땅에서 나는 지리적 영화, 아니 감자적 영화이고, 동시에 역사로서의 과거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현재를 다루는 영화이기도 한 이유다. 삶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으니까. 그러므로 제의(祭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
이 말은 덧붙이고 싶다. 이 영화의 이미지는 때로 아름답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살인, 학살의 장면 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까 자연의 모습을 마치 한편의 수묵화처럼 비춘다(물론 살인 장면도 그다지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 혹은 오멸 감독의 '어떤 태도'라는 것일 터이다. 동시에 그것은 한편으로 아무도 이 죽음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이 자연, 자연의 정령만큼은 이것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처참함 이후에 이런 아름다움을 보아도 좋은 것일까. 아니 처참한 것을 아름답게 찍어도 되는 것일까. 처참한 것은 처참하게 보이도록 찍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남았다.

그것은 예를 들어 이 영화 전체적으로도 그렇다. 사실 우리는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처음에 보인 거의 모든 주민이 죽을 것을 안다. 그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4.3 사건이라서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대로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제의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이 영화가 이들에게 바치는 제의가 되려면 그전에 이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어떤 우스꽝스럽고 순박한 모습을 보면서도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마치 이들이 진짜 죽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제의 제주도 사투리를 쓰고, 자막을 넣는 것이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배우를 쓰는 것은 이 영화를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이게 했으며, 더욱 웃음을 짓지 못하게 했다. 곧 죽을 사람들을 보는 것, 혹은 그들의 죽음을 실제처럼 받아들이는 어떤 불편함이 나를 지배했으며, 그것은 어떤 실제의 죽음 혹은 학살을 보는 것, 혹은 그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쇼아)를 다룬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에서 실제의 자료화면(죽음의 장면)을 쓰는 것을 '외설스런 짓'이라며 피하고, 오로지 인터뷰만으로만 영화를 구성하는 것, 혹은 그 반대로 전쟁 다큐 <아르마딜로>에서처럼 의도적으로 실제의 죽은 시체, 혹은 죽어가는 인간을 보여주는 것 - 등에 담겨진 질문들과 나오지 않는 답을 생각해보게 했다.

앞에서는 제의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라 말하고, 그것을 보라고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거기에서 죽음이 먼저 보이나 보다. 이렇게 이성과 감정의 거리가 머니 제대로 영화보기는 아직도 멀고도 멀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13-04-18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논란의 대상에 올라설 수밖에 없는 영화의 한 자리에 위치해버렸네요.

영화를 영화로만 이해하고 그 후 해석을 해도 늦지 않을텐데 지나치게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제법 많더군요. 여전히..(과연 네오나치와 일본 극우세력들과 이땅의 속칭 "일베"들과의 차이점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맥거핀 2013-04-18 23:18   좋아요 0 | URL
논란의 대상이 되도 본 사람들끼리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게 좋을텐데요. 뭐 하긴 늘 말이 많은 사람들은 안 본 사람들이긴 했습니다만...

그들의 전략이 꽤 나름 성과를 거두는 것 같아요. 그런 세력들이 주류언론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교과서를 고치고, 국사를 축소시키고, 아무튼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MB정부 때까지 꾸준히 노력을 해왔고, 그의 일종의 성과가 예를 들어 '일베'같은 것이겠죠. ('일베'를 일종의 돌연변이나 같은 세력으로 보는 것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꾸준하고 나름 세밀한 전략의 결과죠.) 아무튼 이제 그런 세력이 정치판에도 점점 발을 들이고 있구요. 분명 이번 정권 하에서 안좋은 방향으로 세력을 넓힐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이런 논란은 꾸준히 그리고 더 큰 폭으로 이어질 것 같아요.

Shining 2013-04-18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이 마지막 상영이었는데 결국 시간을 못 내서 못봤어요ㅠㅠ
여태껏 그랬듯(아직까진 저 약속 어긴 적 없죠?ㅎㅎ) 영화 보고 난 후 이 글과 씨네21(영화 보고 읽으려고 잡지 사두고 접어놨거든요;) 둘 다 읽고 댓글 달게요 :-]

맥거핀 2013-04-18 23:20   좋아요 0 | URL
아..그랬군요. <지슬>이 더 상영관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가능하면 오멸 감독의 전작들도 좀 찾아서 보려구요. 전작들을 보고 보는 것이 또 많이 느낌이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영화보시고 읽어주시면 고맙구요.^^

아이리시스 2013-04-2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영화보러 가고시퍼요.오오오오.
맥거핀님, Shining님 저 놔두고 무려, 2박3일이나, 여행갔어요! 이거 혹시 저만 아는 거였어요? 다 소문낼거예요, 혼자갔다고. 화내겠죠? 어쩔 수 없죠.힝힝.

경주(경주 맞나? 전에 자랑(!)했잖아요)갔던 얘기 해주세요. 저는 봄여행 못가요ㅠ.ㅠ

아이리시스 2013-04-23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맥거핀님 아직까지 안왔어요?(안왔군, 흠, 쳐들어가볼까;)(아니야;)(좀 더 기다려)(곧 올거야)(그래?;)(그래--;)

비와요, 비 맞지 말고 살아요, 맥거핀님.

맥거핀 2013-04-25 00:54   좋아요 0 | URL
요 며칠간은 좀 정신이 없네요. 지금도 뭐하다가 잠깐 들어와서 댓글 달고 있음.^^; 어차피 서울에 벚꽃이 펴도 볼 수가 없어서 얼마 전에 경주에서 벚꽃보고 와서 다행이예요. 아이리시스님은 봄여행을 못 갔으면 여름여행을 가면 되죠. 그래도 요새는 밖에 나가면 공기가 따스한 걸 느껴요. 곧 여름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나중에 아이리시스님 글도 읽으러 갈께요. 잘 안들리는 아이리시스님이 저보다 글은 더 쓰는 듯.^^

아이리시스 2013-04-26 14:57   좋아요 0 | URL
오, 여름여행!
사람없는 곳으로 한적하게,
따스한 공기속으로.

그런데 여전히 침대위에 전기매트를 켜고 잔다는 게,
아직 여름도 봄도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어요.

아..일어나보면 막 등에 땀이나..있는데도 끄고 잘 수가 없어요, 어쩐지..

글 더 쓸 거예요, 4월이 가기 전에 리뷰 세 편쯤?ㅎㅎㅎ

2013-04-27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6-1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고,
(지슬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봤습니다.)
심지어 공동체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해
시작부분을 못봤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좀 답답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어느정도 감독의 의도가 읽히고,
영화와 이 글에 대해 공감이 갑니다.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3-06-15 15:08   좋아요 0 | URL
아..보셨군요. 제의라는 형식을 영화에 도입함으로써,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영화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저도 듭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오멸 감독의 영화들을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감상에 이 리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즐겁습니다. 저도 감은빛 님의 글들을 보며 늘 배우고 있어요.^^
 

 

 

(<안나 카레니나>,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스포가 들어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조 라이트, 2012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알랭 레네, 2011  

 

  

 

 

 

  

 

 

 

 

        

 

1.

아마도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번역에 따라서 약간 뉘앙스가 다르기는 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문학동네 버전) 그리고 이 영화 <안나 카레니나>는 이 이야기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레빈의 고뇌에 찬 질문에 대한 일꾼의 뭐 그런 것을 묻느냐는 식의 간단한 답과 함께 끝난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지요."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조금 바꿔서 이야기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실은 불행한 가정에 나름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행복한 가정에도 나름나름의 이유가 있다(혹은 사실은 둘다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름나름이 아니라, 고만고만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행복에는 아무도 그 이유를 캐묻지 않기 때문이다. 즉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어떤 자세가 그 행복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거나, 그 불행을 불행한 것으로 만든다. 불행한 사람이 더욱 불행해지는 것은 그 불행에 무엇인가 이유를 계속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불행한 자는 그 불행의 근원을 찾아,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하려 하고, 대부분의 불행은 사실 해결할 수 없거나, 사실은 이유가 없기 때문에(즉 본인이 이유라 생각한 것은 대부분 이유가 아니므로) 그런 생각은 그를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악순환에서 겨우 벗어나게 된 실마리를 찾게 된 레빈과 달리 안나 카레니나(키이라 나이틀리)는 그 불행의 이유를 찾는 것이 더욱 불행이 되는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을 끝끝내 찾지 못했고, 결국 뱅글뱅글 도는 기차바퀴에 몸을 던졌다. 그가 왜 나를 사랑하는지, 혹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에서 계속 ''에 방점을 찍고, ''가 또다른 ''를 낳는 순환지옥, 끊임없이 뱅글뱅글 도는 악순환의 기차바퀴. (이 영화에서 계속 이 돌고도는 이미지가 반복됨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것이 내가 이해한 이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이다.

 

 

2.

물론 이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는 이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들도 들어있으며, 그 이야기 자체 외에도 주목할 만한 형식적인 부분이 있다. 많이 이야기되었듯이 이 영화는 연극 기법의 많은 부분을 차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를 통해 영화의 어떤 것을 생각해 보게 하며, 따라서 이 영화를 도리어 일종의 영화적인 텍스트처럼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즉 이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부재시키거나, 다른 방식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우리가 영화라는 것의 작동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야기가 전환될 때 카메라와 배우는 그대로 둔채 무대 배경을 바꾸거나, 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배경이 펼쳐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을 씀으로써, 영화에서의 씬의 전환, 즉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씬과 씬의 연결의 기이함(즉 예를 들어 우리는 영화에서 누군가 집 안에서 잠자리에 들고, 바로 다음 장면에 그가 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더라도 그것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즉 그가 잠자리에 든 다음에 일어나는 장면이 없더라도, 그가 당연히 일어나서 집밖으로 나왔겠거니 하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혹은 충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씬과 씬의 연극적인 연결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도 펼쳐지는데, 예를 들어 무도회 장면에서 안나와 브론스키(애런 존슨) 커플을 부각시키거나, 극장에서 안나가 여러 사람들의 경멸어린 눈초리를 받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영화에서라면 한 커플을 부각시키는 방법은 카메라를 활용한다면 그렇게 문제될 것은 없다. 원경에서 줌으로 잡거나, 혹은 클로즈업을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관객의 눈에는 줌 기능이란 없고, 그러므로 연극에서라면 다른 방식을 써야할 것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그 커플에만 조명을 주거나, 이 영화에서처럼 다른 커플을 정지시키고 안나 커플만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안나가 극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경멸어린 주목을 받게 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의 경멸적인 수군거림과 안나의 미세한 떨림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의 방법이라면, 이 영화에서는 대신 다른 사람을 정지시키고, 안나의 히스테리컬한 반응만이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을 쓴다. 이는 물론 '실제'가 아니지만, 훨씬 더 극적이고, 적어도 보는 이를 자극시킨다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다.

 

 

3.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종종 바깥으로 멀찍이 물러나 이 영화가 연극 무대라는 하나의 공간 위에서, 계속 사실은 하나의 연극으로서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명이 둘러져 있는 단 위의 무대, 그 안에서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와 카레닌(주드 로)은 위태로운 치정극을 펼친다. 그리고 카메라는 종종 뒤로 물러나 그것이 하나의 무대임을 다시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치정극 속의 주인공들만은 아니다. 그 무대 바깥에 위치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는 기차 객실 안이라는 무대 안의 공간과 그 바깥에서 안나가 마주치게 되는 검댕을 잔뜩 뒤집어쓴 기차 화부의 대비. 즉 그 무대 안에 안나와 브론스키와 카레닌이 있다면, 그 무대 밖에는 그 치정극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있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가 흥미로운 것은 무대 안의 이들을 보여주면서도 그 무대 밖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레빈과 같이 일하는 레빈 집의 일꾼들이나 레빈에게 낮은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충고하는 아마도 사회주의자이거나 혹은 공산주의자일 듯한 레빈의 형과 같은 인물이 그들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와 브론스키와 카레닌의 이야기를 무대 위로 올림으로써 그 무대 밖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들을 상기시킨다. (<씨네21>에서 보니 제작비 및 기타 문제로 러시아 현지 로케이션이 무산되자 감독 조 라이트가 주요 배경을 (스튜디오에서 찍을 수 있는) 극장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이는 도리어 영화에 상당한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 즉 무대 위에 이들 구체제의 귀족들이 있다면, 그 무대 바깥에는 그 무대에 오르지 못한 러시아 하층민이 있다. 즉 이들 러시아 하층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처절한 치정극은 있는 자들의 한판 연극이며, 환한 불이 켜진 무대 위에서 펼치는 한편의 꼭두각시놀음이다. 영화에서도 잠깐 스치듯 지나갔지만, 낭만적 사랑, 혹은 한껏 격식을 갖춘 사랑놀음은 구체제의 유물이다. 사교계의 어지러운 밀당은 하층민의 입장에서 보면 있는 자들의 감정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브론스키가 죽은 화부에게 건넨 한움큼의 돈은 한순간의 시혜이고 가난한 자들이 아주 잠깐 보는 화려한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연극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간 끝난다. (안나의 오빠는 카레닌에게 이혼은 하더라도 식사는 하고 가라고 한다. 그렇다. 이혼은 해도 식사는 해야한다, 누구나.) 영화를 보다보니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치정극이자, 혁명극이기도 하다.

 

 

 

 

4.

물론 그 무대의 바깥에는 러시아 하층민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연극을 혹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이 있다. 무대 위에 귀족들의 사랑싸움이 있고, 무대 밖에 그것과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는 하층민들이 있다면, 그 더 바깥에는 스크린 밖의 우리들이 있다. 즉 우리는 사실 무대와 혹은 영화와 거의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아까 씬과 씬의 연결, 혹은 숏과 숏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므로 숏과 숏의 연결은 한편으로 무대 밖의 우리를 어떻게든 참여시키려고 하는 영화의 전략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의 대화를 본다고 했을 때 우리가 아주 최선을 다해 좋은 위치를 잡아도 두 사람의 옆모습을 볼 수 밖에 없고, 우리는 그 대화의 바깥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영화는 대신 당신에게 숏과 반응숏(리버스 숏)을 제공한다. 어떤 반응숏을 보여준다는 것은 여러가지 효과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그것을 보고 있는 당신이 그 반응에 반응하라는 것이다. 이런 노골적인 반응숏 외에도 아까의 예를 다시 가져와본다면 누군가가 잠을 자고, 그 다음에 그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씬을 붙인다면 영화는 이 때 당신에게 그 중간에 당신이 참여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즉 그가 일어나서 신발을 신고, 집밖으로 나가는 장면에 대한 당신의 상상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눈속임이고 미봉책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그 영화에서 분리되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당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영화는 계속 씬을 이어나갈 것이고,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영화관은 당신에게 나갈 것을 요청할 것이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5.

그것의 하나의 대답은 알랭 레네의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와 같은 것이 아닐까. 저명한 극작가 앙트완이 죽고 생전에 그의 연극 '에우리디스'에 참여했던 여러 배우들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을 요청받는다. 그들을 모아놓고 대형화면에 등장한 앙트완은 그들을 이자리에 모이게 한 이유가 있다며, 그들이 그의 유작인 젋은 배우들로 새롭게 구성된 연극 '에우리디스'의 리허설을 보고 이것을 무대에 올려도 괜찮을지 판단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촬영된 연극 '에우리디스'가 스크린에 상영을 시작하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 참석한 배우들이 상영하는 화면에 맞춰 연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이 화면과 참석한 배우들의 연기가 혼합되고, 배우들이 앉아있던 장례식장은 연극 '에우리디스'의 무대로 확장되고, 없던 공간들이 생겨난다. (이와 비슷한 것을 <안나 카레니나>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문이 열리고, 없던 눈밭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것은 이와 거의 유사하다.) 즉 이 앙트완의 장례식장에서 상영되는 연극의 관객이 될 것을 이 배우들은 요청받았지만, 이들은 단지 관객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이 연극의 배우가 됨으로서 관객의 지위를 벗어난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으로 영화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모순된 지위를 부여한다. 위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영화는 관객이 영화의 무엇인가에 개입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 개입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즉 그 개입은 영화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어떠한 영화감독도(동시에 어떠한 옆자리 관객도) 주인공의 대사에 맞춰서 당신이 연기를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관객은 영화에 들어올 것을 끊임없이 유혹받지만 동시에 그 영화에서 물러날 것을 끊임없이 요청받는다. 그러므로 스크린 위에서 존재하는 것은 유령들이다. 우리는 환영들, 유령들을 보며, 두 시간 동안 그 유령들의 움직임에 빠져있고, 사실은 그 두 시간 동안 그 유령들의 움직임에 홀려 거의 죽어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일종의 임사체험이다. 영화가 끝난 후 밖으로 나왔을 때 뭔가 세상이 이상하게 보인다면, 당신이 그 사이에 잠깐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당신 안에 있던 무엇인가가 당신이 그 유령들의 움직임에 홀려 있던 사이에 스멀스멀 기어나왔다가 겨우 다시 기어들어갔기 때문이다.

 

 

6.

그러므로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시작은 거의 임사체험의 시작이다. 알 수 없는 상대방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목소리를 듣게 되는 이 반복의 시작은 임사체험을 알리는 포고다. (그 화면은 참으로 으스스하다.) 그리고 그들은 앙트완의 장례식, 현계와 선계의 사이에 있는 듯한 오묘한 공간에 들어와 죽은 자의 환영을 받는다. 자 나는 유령일세, 자네들도 나처럼 유령이 되어보지 않겠는가. 유령이 되어보라는 것은 이 영화의 관객이 되라는 말이다. 관객이 되어 이 유령들이 펼치는 향연을 맛보는 유령이 되어달라는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참석한 배우들은 앙트완의 청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연기를 하기 시작하고, 곧 그들은 이 영화의 관객이 아니라, 이 영화의 배우가 된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지금 죽음에 대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 번 죽어보라는 요청에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필사적으로 연기를 함으로써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붙이면 더 재미있다. 바로 이들이 벌이는 연극이 '에우리디스'라는 것. 흔히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로 알려져 있는 그 이야기. 저승의 신 하데스가 데려간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를 감복시켜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나오는데 성공하지만, 거의 지상에 다다랐을 무렵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약속을 어겨 다시 저승으로 에우리디케가 영영 사라져버린다는 슬픈 이야기. 어쩌면 우리가 여기에서 방점을 찍어야 되는 것은 그들의 슬픈 사랑이나 그 얼마를 참지 못한 오르페우스의 인내심 부족이 아니라 혹시 '돌아본다'는 사실은 아닐까. 그 본다는 것. 우리가 돌아보았을 때 다시 환영이 되고 마는 무엇인가에 대해. 아무튼 그랬다. 오르페우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발놀림이었지, 결코 보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면 조금 이상한 질문. 혹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가 갑자기 무서워진 것은 아닐까. 자기 손을 잡고 따라오고 있는 이것이 혹시 괴물은 아닐까 무서웠던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에우리디케인지 뭔지 모를 그것을 저승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일부러 뒤를 돌아본 것은 아닐까. 아무튼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서 앙트완은 저승에서 귀환했지만, 그는 결국 다시 저승으로 끌려들어갔고, 어쩌면 앙트완이 주최한 임사체험에서 달콤한 죽음의 유혹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친 이들은 앙트완의 장례식장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저렇게 가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러나 안심은 이르다. 스크린 속의 유령은 그들의 옆에서 몰래 몸을 숨기고 있으니까.)

 

 

7.

알랭 레네는 말한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이것은 아마도 두 가지 중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 곧 놀라운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 하나, 아니면 영화를 다 본 당신에게 건네는 조소. 당신은 무엇인가를 보기는 했으나, 사실은 아직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당신이 바보처럼 그 곳에서 넋놓고 앉아있는 동안 사실은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당신은 그저 잠깐 죽어있던 것 뿐인걸.

 

영화는 2-3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깜깜한 극장에서 좁은 의자에 앉아서 봐야한다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진다. 그러므로 영화는 보는 이에게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의 마법을 쓴다. 예를 들어 플래쉬백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이고, 분할화면으로 여러 공간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은 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일종의 마술, 눈속임일 뿐,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공간은 극복되지 않는다. 알랭 레네는 시간과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것은 기억과 상상이다. 기억은 과거의 시간을 당신에게 돌려놓으며, 상상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공간을 당신에게 제공해준다. 그리고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이 기억과 상상을 당신에게 요청하는 영화, 죽음으로 유혹하지만, 그 죽음에 발버둥치라고 이야기하는 영화다. 아직도 기억하고, 상상할 것은 많으니까. 우리는 그럼으로써 무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13-04-0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편집기가 바뀌었구나..근데 줄간격 먹이는게 제멋대로인듯?

프레이야 2013-04-0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저도 이번 안나카레니나를 특별한 감흥을 가지고 봤어요.
기대 이상인 점도 있고 기대보다 못한 점도 있고,
아무튼 기대는 저의 주관적인 것이었으니 차치하고요.
꽤 감각적이었어요. 레빈과 키티, 안나와 브론스키를 내용상 두 축으로 두자면
'이유'를 찾는그들의 모습을 돌아보아 맥거핀님의 글이 와닿습니다.
사랑엔 이유가 없다고 대답한 브론스키, 모든 일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 레빈에게 반박하는 농노의 말 등이요.
무엇이 선일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마무리한 점은 원작의 내용에 충실하고자
한 것 같아요.
키이라는 정말 새로운 안나였어요.
카레닌의 마지막 모습도 여운이 있더군요.

맥거핀 2013-04-04 13:36   좋아요 0 | URL
<안나 카레니나>가 등장인물만 해도 150명이 넘는 소설이라고 하니까요. 단순히 연애, 치정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보기 보다는 당대의 풍속을 세밀히 묘사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습니다. 안나나 카레닌, 브론스키도 인상적이었지만, 저는 그래서 영화의 다른 인물들이 더 흥미로웠고,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서 같은 느낌으로 보았다고 할까요. 영화의 어떤 감각적인 부분이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은데, 저는 그것이 영화의 어떤 주제의식과도 연관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었고, 괜찮게 보앗습니다.^^

저는 예전 버전의 안나 카레니나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 영화의 카레닌은 예전 영화의 카레닌들과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사실 저는 처음에 주드로를 못 알아보고 주드로 나온다던데, 왜 안나오삼, 이러고 있었어요.


2013-04-12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뭔가를 쓰고 싶은데, 쓸만한 건덕지가 없다. 이럴 때는 아무 것도 쓰지 않은채, 쓰고 싶은데 바빠서 못 쓰는 것처럼 기믹을 하는 것이 상책이겠으나, 그래도 명색이 일주일에 뭐라도 하나 쓰자는 것이 목표였는데, 왠지 이렇게 여유있을 때 뭐라도 안 하면 기믹이 현실이 곧 될 듯하다.

 

그래서 써보는 '즐겨찾기를 털어봐요' 1탄. 내 파폭 브라우저 즐겨찾기에 있는 몇 사이트를 정보 소개 차원에서 그냥 끄적거려본다. 서재 컨셉을 보면 아시겠지만, 다 영화에 관련한 사이트이니 영화 쪽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은 패스. 물론 이미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만한 내용이나, 그래도 또 몰랐던 누군가에게는 아주 조금이라도 미미한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1. 인디플러그 (http://www.indieplug.net/)

 

먼저 예전에 얘기했던 것부터. 독립영화 다운로드 사이트인 '인디플러그'다. 이 사이트의 장점은 말 그대로 극장에서 잘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 일반 다운로드, 웹하드 사이트 등에서 잘 찾을 수 없는 독립영화, 예술영화들을 다운로드하여 감상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많이 알려진 독립영화부터 거의 관객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사라진 영화, 혹은 극장에 개봉을 하지 못했던 독립영화들도 서비스하고 있는데, 이 참에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맛보시는 것은 어떨는지. 가격은 편당 500원에서 3000원 정도(현재 개봉하는 영화 - 예를 들어 <가족의 나라> 같은 경우 - 를 동시 다운로드 서비스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이례적으로 10,000원 정도 하는 경우도 있다). 수익금 중의 일부는 민간독립영화전용관 건립 기금으로 적립된다고 한다.

 

 

 

 

2. 유에포 (http://www.youefo.com/)

 

여러 단편영화들을 바로 감상할 수 있는 사이트인 '유에포'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일종의 습작 형식의 단편부터 현재 충무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감독의 오래전 단편(예를 들어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요리> 같은 것)까지 상당히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자랑하는데, 이 모든 작품을 로그인만 하면 바로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일종의 감독과의 대화인 '숏컷'이라는 단편영화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5018)를 최근 시작하고 있는데 감독의 창작론이라든가, 촬영상의 여러 에피소드를 들을 수도 있어서 재미있다. 어느 단편 영화의 첫 팬이 되어보시는 건 어떨지. 혹시 아는가, 그 감독이 미래의 대가가 될지도.

 

 

 

 

3.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 (http://www.artpluscn.or.kr/jsp/main/index.jsp)

 

전국의 예술영화관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다. 2013년 현재 전국의 21개 극장, 25개의 상영관이 참여하고 있는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는 주로 예술영화관 등에서 개봉하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작은 영화들의 개봉관을 살펴볼 수 있고, 바로 예매할 수도 있으며, 또 그런 작은 영화관들에서 자주 펼쳐지는 작은 영화제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대부분이 거대배급사에 의해 와이드릴리즈 개봉하는 영화들에 대한 소식인 경우가 많은데, 이 사이트를 통해 소외된 영화들이 어떤 영화들인지 확인할 수 있다.

 

 

 

 

4. Top Documentary Films (http://topdocumentaryfilms.com/)

 

조금 색다른 사이트를 하나 소개해보면, 주로 미국의 다큐멘터리들을 볼 수 있는 'Top Documentary Films'라는 사이트가 있다. 건강, 미디어, 범죄, 철학, 예술, 과학, 성, 스포츠, 기술 등 여러 카테고리의 다큐멘터리 필름들을 볼 수 있는데, 장점은 부분이 아닌 전체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자막이 없으며(뭐 미국 사이트니까 당연하다), 꽤 짤린 영상이 많다는 점(그럼에도 아직 상당수의 다큐는 볼 수 있다). 뭐 자막이 없는거야 음성 대신 화면에 집중하는 것으로 카바(...)할 수 있는데, 짤린 영상들은 어서 복구해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5. 한국영상자료원 (http://www.koreafilm.or.kr/index.asp)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보물섬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는 '한국영상자료원' 사이트다. 이 곳의 장점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각종 영화 회고전, 특별전이 상시 열리며, 이 곳의 티켓 가격은 무료다. (티켓은 현장에서만 발권가능하며, 상영 이틀 전부터는 현장예매도 가능.) 참고로 현재는 故 박철수 감독의 추모특별전이 열리고 있으며, 4월 6일(토)에는 장국영 10주기 추모 특별전이 계획되어 있다. 둘째, (이거뭐 서울 사람들만 좋겠구먼, 하는 분들을 위해) 유투브에 '한국고전영화극장 채널'(http://www.youtube.com/user/KoreanFilm)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지나간 한국영화의 명작, 예를 들어 <오발탄>, <바람 불어 좋은 날> 등의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약 70여 편이 서비스 중이며, http://www.kmdb.or.kr/vod/에서 더 많은 자료를 감상할 수 있으나, 여기는 유료다.) 셋째, 이곳에서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웹진 '영화천국'은 웹진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실제 책으로 받아볼 수 있는데, 사이트의 '구독신청' 버튼만 눌러 주소를 입력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내준다. 단순히 홍보지가 아니라, 여러 평론가들, 기자들의 좋은 글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지난 30호의 특집 주제는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를 말하다'로 여러 영화평론가들이 자신이 발견한 시네아스트들 - 벤 휘틀리, 크리스티 푸이유, 정재훈 등등 - 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지나간 호들의 내용 및 구독신청은 여기 http://www.koreafilm.or.kr/webzine/webzine_list.asp. 넷째, 이곳에서 자매품으로 운영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사이트에서는 한국영화들에 대한 정보 외에도 여러 좋은 영화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는데, 최근 정성일 평론가가 올해 연말까지 임권택 감독의 영화 101편에 대해 각각의 글로 정밀분석하는 '임권택x101'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헉헉 힘들다. 근데 avast는 여기 영상자료원 사이트에만 들어가면 위험이 발견되었다고 삑삑거리고 난리람. 예끼, 니가 더 위험하다, 애 떨어질 뻔 했네.)

 

...............................

 

 

저도 여기 알라딘에서 여러 고마운 분들에게 늘 좋은 책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기에 이 또한 누군가에게 혹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봤습니다. 좋은 영화들 많이 관람하시길.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13-03-2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최근 정보성 블로그로 탈바꿈.

2013-03-25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3-03-2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좋은 정보네요^^

맥거핀 2013-03-26 17:52   좋아요 0 | URL
도움이 조금 되셨나요?^^

Arch 2013-03-2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멸 감독님 인터뷰 읽다가 artpluscn 알려주려고 다시 로그인 했는데, 와, 저 첫화면이 왜 낯익나 했네.

2013-03-26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6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6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hining 2013-03-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국영상자료원과 인디플러그, 만 즐찾 되어있는데. 이런 보물을 공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의 관심과 애정은 있어야는데. 헐랭하게 살아온 지난 날(?)을 반성...

맥거핀 2013-03-26 18:04   좋아요 0 | URL
네 오백원만 내세요.^^ 근데 예전에 보니 Shining님도 뭔가 비밀스런 정보를 잔뜩 알고 계시던데, 원래 진짜 고수보다는 조금 아는 사람들이 입이 가벼운 법이죠.

넙치 2013-03-2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꼼꼼하게 영화 관련 정보들을 살펴보시네요. 더불어 맥거핀님이 지닌 영화에 대한 열정에 감탄을.^^

저는 <씨네21>도 거의 안 읽는데..ㅜㅜ 저는 여러 영화 잡지 폐간에 일조한 관객이에요. 예전 알라딘 영화 상영정보 블로그가 제게는 딱. 이리저리 서핑하는 거 완전 귀찮아해서 영사자료원과 아트시네마 정도만 주기적으로 들락거려요. 것도 상영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맥거핀 2013-03-26 18:09   좋아요 0 | URL
근데 위에 번지르르하게 썼지만, 저도 막 정보를 찾아보고 본다기 보다는 충동구매, 아니 충동관람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찜해논 영화 보러갔다가 다른 영화보는 경우도 허다하구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충동적으로 보게 된 영화가 더 좋은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들은 막 시간 맞추고 기대하고 본 영화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훨씬 좋았어요.

씨네21은 정기구독 중인데, 쌓여가는 잡지를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좀 읽어야 하는데...잡지를 늘 표지만 감상해요.;;

꽃도둑 2013-04-0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하고 있는데 영화에 대해 잘 몰라요,,
이해되세요?,,,으흐흐 그래도 합니다 무대포 정신으로다!!!
영화도 책 읽듯 하는거죠...ㅋ
두 군데 자료 찾으러 들락거리긴 했는데.. 나머진 죄다 낯선 동네에요,
사이트 정보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어요.,,^^

맥거핀 2013-04-02 18:32   좋아요 0 | URL
오..그런 시민평론단 같은 거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시험 보고 막 그러나요?) 뭐 원래 다 잘 모르는데 그러는거죠. 언제는 리뷰 같은 것도 잘 알아서 쓰나요. 그냥 막 쓰면서 자기 글에 도취되고 그러는거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기쁘군요.(뻔한 말.) 좋은 정보 있으시면 저도 나중에 좀 알려주세요. 상부상조합시다. (이건 진심.^^)
 

 

 

 

 

 

무비위크는 2001년 11월 창간했다.

2013년 3월 22일 발행된 무비위크 공식적인 마지막 지령 571호의 주제는

'우리가 사랑한 엔딩 신 100'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579453.html

<혜화, 동>을 만들었던 민용근 감독의 글 "읽지 않는 시대와 작별하는 ‘무비위크’"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리시스 2013-03-2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위크, 안녕-
못 읽어줘서 미안하다-엉엉엉ㅠ.ㅠ

맥거핀 2013-03-25 17:37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이 못 읽어줬네요. 미안한 마음을 이 짧은 글로 대신.

아이리시스 2013-03-27 20:32   좋아요 0 | URL
가끔 서점 들러도 씨네21을 많이 샀던 것 같긴 해요. 그것도 서점에 갈 때 얘기지만, 요즘은 오프에 서점도 많이 없고 참고서 구경(!)할 때나 가는 게 다라서 그것도 산 적이 없고, 사이트에서 훔쳐서 읽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 거는요, 발간되고 1주일 지나면 기사를 볼 수 있잖아요. 잡지에 실린 모든 기사가 다 오픈되나요?(이런 질문 한다..창피해@.@) 그러니까 한겨레21, 무비위크 전부 다?(반말이라도 용서해줘요..) 읽을 거리에 비함 잡지가격 진짜 싸지 않아요? 패션잡지에 비하면요. 돈을 더 받았어야 돼..........

맥거핀 2013-03-27 23:06   좋아요 0 | URL
한겨레나 씨네는 제 경험상 볼 때 모든 기사가 온라인에 실리지는 않는것 같아요. 잡지에서 분명히 본 기억이 나는데, 온라인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온라인에도 공개되는 게 한 2/3쯤 되지 않을까..

근데 씨네의 경우는 중요한 기사는 거의 온라인에도 나오는 것 같기는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이상하게 온라인에서는 오래 못 읽겠더라구요. 읽어도 잘 집중도 안되고..씨네 같은 경우는 모바일에서도 볼 수 있는 모바일잡지를 내던데, 저는 아직까지는 종이책이 더 좋아요.

패션잡지 쪽은 요새 보니 책이 부록이던데..어떻게 잡지사를 운영하나 싶을정도.

Shining 2013-03-2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위크엔 정을 붙인 적이 없어서 거의 읽지 않았는데 막상 폐간된다니까 꼭 내 탓 같은 이 기분은 뭘까요.... 씁쓸하네요. 키노, 스크린, 필름, 무비위크, 다 없어졌군요.

맥거핀 2013-03-26 18:14   좋아요 0 | URL
프리미어, 씨네버스, 로드쇼에도 같이 애도를..영화잡지를 보던 그 독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씨네21도 그렇게 사정이 좋지만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Shining 2013-03-27 11:58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로드쇼, 씨네버스, 프리미어도 있었군요. 전 주로 세 개를 봤기 때문에(역시 인간은 자의적...) 떠오르지가 않았어요; 이번 호 씨네 21을 샀습니다, 뭐랄까, 이거라도 지켜야하는데 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 비밀스러운(!) 정보 별로 모르는 사람인걸요 맥거핀님ㅎㅎ 500원 갖고 되겠어요?! 2500원!!(사이트 하나당 500원ㅋ)

저는 필름 폐간되고 가끔 씨네21, 프리미어 돌아가면서 사다가 적응이 안되서 접은 케이스인데..(지금은 가끔만 사요, 기차나 고속버스 탈 때 아님 편의점에서 넘겨보다 맘에 들면!) 근데 정말 독자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잡지 경영진 뿐 아니라 외,내부 필진들은요?

맥거핀 2013-03-27 23:18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주로 키노, 필름, 프리미어 이 정도를 조금 많이 봤던 것 같고...씨네21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봤습니다. 무비위크는 좀 가벼운 느낌이 있어서 별로 안봤는데, 폐간한다고 하니 저도 괜히 미안하군요.

이들 잡지들의 전성시대가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였는데, 저는 이런 잡지들이 한편으로는 수많은 영화키드들의 양산에 크게 한 몫을 했다고 봐요. 그리고 한국영화의 어떤 르네상스와도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고요. 영화라는 게 많이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니까. 당시 영화잡지들이 외국의 어떤 이론들이나 영화독법, 영화글쓰기 같은 부분을 꽤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담론의 형성에도 꽤 공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아무튼 전체적으로 이렇게 영화 저널들이 사라지는 것이 앞으로의 영화산업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꽤나 끼칠 것이라고 봐요. 아무리 개인미디어의 시대고, 모두가 영화평론가인 시대라고 하지만, 각개전투는 한계가 있는 법이죠.

Shining 2013-03-28 12:02   좋아요 0 | URL
여러번 말했다시피 저는 필름, 의 열혈독자였는데 필름이 폐간된 후로 충격과 상실감으로....(하하) 그래도 그땐 프리미어, 무비위크, 씨네21 다 있어서 그냥 배신감 비슷한 걸 느꼈지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아요.

맞아요, 영화키드, 씨네필, 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사조에 일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말 거의 안 쓰잖아요, 두 단어 뿐 아니라 영화광에 대한 어떤 비슷한 명명도. 영화가 그들을, 동시에 그들이 영화를 보고 읽고 쓰고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역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체 영화의 위치란 어디인가, 싶은 생각까지... 천만 영화가 한 해에 두 편씩 나오고 관객수 일억명을 돌파했는데 영화잡지의 수명 하나 보장하지 못한다는 현재가요.

Shining 2013-03-28 12:05   좋아요 0 | URL
그런데요. 윗 글이 <즐겨찾기를 털어봐요> 1탄이라고 하셨으니까 2탄도 나오는거죠?ㅎㅎ (잘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더니 숭늉까지 뺏어먹겠다는 심산..)

맥거핀 2013-03-30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탄요? 1탄이 있으면 당연히 2탄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제가 반전을...은 아니고, 나중에 또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얼마든지 쓰겠습니다. 저는 관대하니까요.ㅋ

근데 아무튼 영화를 다루는 매체들이 최근에 특히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고 일종의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영화를 글로써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예전과 같은 방식의 씨네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다른 방식의 그러니까 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찍어보자는 식의 씨네필들은 또 점점 늘어나고 있구요. (물론 여기에 디지털의 보급이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영화를 '읽고', '쓰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글쓰기, 새로운 영화읽기에 대해 여전히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제 어떤 글을 읽다가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의 한 구절을 읽었다. 내용이 음미해볼만한 부분이 있어서 몇 번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다가, 예전에 여러 글에서 이름과 간단하게 요약된 내용만 접한 책이어서 이 참에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라딘과 여러 다른 인터넷 서점을 뒤져 보았는데, 싸그리 절판이다. 요것봐라, 싶어서 검색 안테나를 총동원하여 여러 인터넷 중고서점과 헌책방 검색사이트를 뒤져보니 원래 책 가격인 6,800원의 4-8배 정도인 최저가 24,000원에서 49,000원 정도 사이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듯 하다. 절판된 책의 가격이 원래 가격의 수배로 뛰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나, 막상 읽으려고 생각한 책이 이러고 보니 '깊은 빡침'이 생겨 중고책이라도 살까 했던 마음을 접고 알라딘에는 재출간 알림 신청을 하고, 여러 가까운 도서관을 뒤져 보다가 잠이 들었다. (덕분에 좋은 다른 정보를 하나 알게 되기는 했다.) 

 

오늘 낮, 멍하니 있던 도중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싶어, 출판사인 '현실문화연구'에 전화를 걸어 책에 대해 문의했다. 그러니 왠걸, 직원이 재고가 있으며 구입에 문제가 없다지 않은가.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 모두 절판인걸요, 했더니 자기가 인터넷 서점에 조치하고 다시 전화를 준댄다. 잠시 후에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하는 말이 이게 출판사 저작권이 만료되어 서점을 통해서 팔 수가 없댄다. 그럼 아무튼 책은 있다는 건가 싶어서 개인적으로 읽으려고 하는데, 한 권만 보내줄 수 없겠느냐고 하니, 그럼 택배비와 책값을 보내면 책을 보내주겠단다. 아싸라비야 싶어서 마음 바뀌기 전에 재빨리 입금.

 

그런데 오늘 저녁에 뜬금없이 알라딘에서 문자가 왔다. "알림 신청하신 <스펙타클의 사회>가 입고되어 판매를 시작합니다." 응? 싶어서 알라딘에 들어가보니 말 그대로 판매 시작. 근데 이상한 건 교보나 YES24는 아직도 절판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알라딘에서는 현재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 이 책 구매 가능합니다. 혹시 읽으시려다가 중고책 가격을 보고 저처럼 '깊은 빡침'을 경험하셨던 분은 마음 바뀌기 전에 재빨리 구매하시길.

 

 

덧.

혹시 이 참에 사서 재테크 하시려는 분들은 제발 넣어두시고요.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ch 2013-03-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 이곳저곳에서 '제목만' 들어봤는데 ^^
도서관에는 드문 책인가봐요. 검색 풀가동했는데 없네요.

2013-03-23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습니까 ? 전 중고가격 보고 신나서 잠을 못 잔 1인입니다.
다시 발매되면 안 되는데..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중고책 가격 시세 중 가격 대비 가장 비싼 책은 카메라루시다'였어요.
초판은 1700000인가 거래가 되더라고요. ( 아닌가 ? 제가 잘못 보았을 수도..ㅎㅎ )

맥거핀 2013-03-23 14:25   좋아요 0 | URL
제가 본의아니게 곰곰생각하는발님의 사업구상을 방해했군요.ㅋ 근데 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뭐든지 실물을 손에 쥐어야 안심하죠.ㅋ

저도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알게되었는데, 비싼책들이 참 많더군요. 옛날 라이트노벨이나 로맨스소설 같은 거 절판된 책들 중에 정말 비싸게 거래되는 것들이 꽤 있어서 놀람. 그래도 설마 170을 정말 실거래 목적으로..?

드팀전 2013-03-2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소식이네요.몇 달 전에 지하철에서 한 학생이 재본한 거 들고 다니는 거 본 적 있는데. 제가 본 책이랑 표지가 다르긴 합니다. 노란 색인데 언제 나온 건지.. 집에가서 한번 확인해봐야겠군요ㅎㅎ 토요일인데 인제 퇴근이네요.홍홍홍

맥거핀 2013-03-25 00:45   좋아요 0 | URL
오..드팀전님의 이름을 제 서재에서 볼 줄이야. 토요일날 이리 늦게 퇴근하셨는데, 일요일은 잘 쉬셨는지 모르겠군요.

저도 도서관에서 몰래 빼돌려서 제본이라도 해야되나 싶었는데, 뭐 이렇게 읽게 되어 다행입니다.

드팀전 2013-03-25 10:47   좋아요 0 | URL
즐찾이었는데...인사가 늦었습니다. 꾸버억.3월 마지막주가 시작되었군요.제가 사는 부산은 이번 주면 벚꽃 절정이 될 것 같습니다.

맥거핀 2013-03-25 15:04   좋아요 0 | URL
저도 드팀전님 즐찾이었는데, 저야말로 인사가 늦었습니다. 부산의 벚꽃은 역시나 좀 빨리 오는군요. 서울에는 아직도 멀어보이는데, 벚꽃이 찾아오면 가까운 여의도라도 나가봐야겠습니다.

넙치 2013-03-2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있어요, 라고 자랑고싶네요.ㅎㅎ
절판된 책을 구할 수 없을 때 찾아드는 의욕과 오기로 책을 손에 입수한 후 정작 그 책을 애타게 찾았던 게 소유욕 때문인지 지적 호기심 때문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어요. 얼마 전에는 서점에서는 이미 절판이고 아트시네마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책을 냉큼 샀는데 그 책 제목도 기억이 안 난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제가.ㅠ

맥거핀 2013-03-25 00:52   좋아요 0 | URL
으하하. 저도 이 책에 대한 넙치님의 리뷰를 이미 봤습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보려던 책의 몇 권에서 이미 넙치님의 리뷰를 몇 번 봤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그래요. 맞아요. 이게 일단 수집하고 나면 독서의 쾌감이 수집의 쾌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면서 읽지도 않았는데, 이미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이 태반이구요. 이거 병이죠, 병. 차라리 그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먹었으면 살이라도 찌지...아트시네마에서 사신 건 스즈키 세이준 책? (저도 얼마전 영상자료원에서 비슷한 이유로 하길종 전집 샀는데 아직 하나도 안 펴봤음.-_-)

넙치 2013-03-26 14:38   좋아요 0 | URL
네, 스즈키 세이준 책 맞아요. 댓글 달고 책을 찾아봤어요.ㅋ 스즈키 세이준 영화는 거의 안 봐서 책이 무용지물일 듯;;;
전집을 지르시다니 통 크시군요.하하.

맥거핀 2013-03-26 18:16   좋아요 0 | URL
근데 전집이라봤자 달랑 3권이예요.^^ 그것도 뭐 할인받아 샀으니까. 원래 책 사는 목적이 안 보고도 본 척 하려고 사는 겁니다. ㅋ

cyrus 2013-03-2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 학기에 회화과 현대미술론 수업을 듣고 있는데(전공은 행정학입니다 ^^;;) 수업교재 내용 중에 드로브의 인용문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드보르라는 이름이 생소했고 국내에 번역된 책이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저의 궁금중의 답을 맥거핀님의 글에서 찾았네요 ㅎㅎㅎ 책이 또 언제 절판될지 모르니까 얼른 장바구니에 담아 봅니다. ^^

맥거핀 2013-03-25 00:56   좋아요 0 | URL
근데 왜 행정학 전공 학생이 회화과 수업을 듣나요? ㅋㅋ (저도 예전 학교 다닐 때 맨날 전혀 상관없는 타과 수업 듣고 그래서 동질감 느껴서 하는 말입니다. 교수님들이 그럴 때 묻는 거 짜증나지 않아요? 자네는 이걸 왜 듣나? 그럴 때는 교수님을 야릇하게 보면서 교수님이 좋아서요, 그러세요.)

뭐 cyrus님의 지식충족욕구에 조금이라도 부응했으면 만족합니다.^^ 졸업반이시라는 얘기 언뜻 봤는데 요즘 여러모로 정신없으시겠네요. 힘내세요.

아이리시스 2013-03-2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저는 보고싶을 때 품절이면 맥거핀님 책을 빼았으면 되겠어...라고 안심. 제 사전에 품절될까봐 미리(!) 구입해놓는 그런 호사는 없으니까..

맥거핀 2013-03-25 17:39   좋아요 0 | URL
으하하..아이리시스님에게 양심껏 지인DC하여 두 배로만 팔겠습니다. 흠..그렇다면 저도 품절된 책을 읽고 싶게 되면 아이리시스님에게 연락을 드리면 되겠군요. 아마도 저보다는 품절책이 훨씬 많으실 듯 하니.

아이리시스 2013-03-25 20:05   좋아요 0 | URL
빼았으면 -> 빼앗으면

이봐이봐 맞춤법도 틀렸어.. 없을걸요, 품절책. 저는 이제부터 제대로된 책을 좀 사볼까 하는데요. 서른이전에 산 건 쓸데없는 책 뿐이에요. 진짜라니까요. 어쩌면 이렇게 심미안이 없어, 사람이!

맥거핀 2013-03-26 18:18   좋아요 0 | URL
그럼 이제 좋은 책 살 일만 남았군요. 쓸데없는 책을 많이 사봤으니 이제 안사겠죠.^^ 저도 잔뜩 있는 앞으로 절대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알라딘에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고만 있고, 결단을 못 내리고 있네요.

응..근데 '빼앗으면'이 맞아요? 난 몰랐음.

아이리시스 2013-03-27 20:36   좋아요 0 | URL
뺏으면이겠죠, 빼앗으면 자체가 이상한 맞춤법이긴 해요. 되게 많이 틀리는데 저는 항상 맞춤법 국어사전 검색해보는 버릇이 있어서, 공부도 해야 하고, 여러가지로 국어는 진짜 어렵죠. 예전에 KBS 입사할 때 필요한 거 있잖아요. 한국어인증시험. 무급이 나왔어요. 아니, 내가 한국어문학부에서 글쓰겠다고 문창과(국문과도 있었음)에 다녔는데 제일 하급도 줄 수 없다며 무급수를 주는데 어찌나 어이없던지요. 심지어 일본어도 급수자격증이 있었는데 으흙흙.

맥거핀 2013-03-27 23:24   좋아요 0 | URL
미안한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웃어도 됩니까..? 무급, 이거 왜 이렇게 웃기죠. 근데 아이리시스님이 그렇다는 건 왠만한 한국사람이면 그럼 다 무급 나온다는 얘긴데..도대체 그럼 그 시험에서 급수를 따는 사람은 누군가요? 아나운서들? 그들도 그렇게 국어실력이 좋아보이지는 않던데.

맞아요. 국어가 조금 파고들면 어렵죠. 저도 국어교육 부전공해서 잘 압니다. 진짜 제대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려워지는 게 국어...

근데 말씀하신 '빼앗으면'을 생각해봤는데, '빼앗다'라는 말이 '뺏다'와 '앗다'가 합쳐진 말 아닌가요? 그러니 '빼앗으면'의 준말을 '뺏으면'이라고 봐야하는 게 아닐까..그러니 두 개 다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확신이 없어요. 찾아봐도 마땅한 정답을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