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는 작은 사이다 페트병을 홀짝거리면서 자주 Pet Shop Boys의 음악을 듣는다. (그러니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사이다 병나발을 불며, NewYork City Boy~를 흥얼거리는 작자가 있으면 저라고 생각하시길.) 가볍고, 쉽고, 밝다. 그것만이면 충분하다. 좀 다른 얘기겠지만, 이 Pet Shop Boys의 음악들은 어느 소설의 한 부분을 늘 연상시킨다. 그 부분은 그 소설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 그렇게 공들여 쓰여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늘 그 부분이 생각나니 신기한 일이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의 한 대목.

 

옆에선 라디오 소리가 들려 흘끗 보니 남자아이가 트랜지스터를 꺼내 귀에 대고 있었다. 막 다섯 시를 알리면서 음악이 울려나왔다.

"시작할 땐 언제나 밝은 음악이 나와요."

그의 표정도 음악처럼 밝았다. 긴장이 풀리는지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내 포근한 잠자리가 그리웠다. 이젠 집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눈을 비비곤 웃음지었다.

"여태 같이 있어 주어서 고마워."

"누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좋겠어요.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새벽 다섯 시에 라디오가 처음 시작하면 흘러나오는 밝은 음악. 나에게는 그게 Pet Shop Boys의 음악들이다. 새벽 다섯 시, 꿈이 깨어지는 시각,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시각, 아마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시각. 그리고 술이 깨야만 하는 시각. 술이 깨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 강석경의 <숲속의 방>은 고등학교 때 교지편집부 담당 선생님이 단합MT 때 토론하자며 읽어오라던 책이다. 교지편집과 <숲속의 방>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서 꽤나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토론은 이루어졌냐고? 물론 예상대로 나 외에 아무도 그 소설을 읽어오지 않았고 <숲속의 방>에 대한 토론은 숲속의 방에서 몰래 마시는 술로 대체되었다. 하긴 MT에서 무슨 독서토론이랴. 나는 단지 그 연상작용이 이상스러울 뿐이다. 술-Pet Shop Boys-숲속의 방-교지편집부.

 

2.

가끔 술을 같이 마시곤 하는 선배는 말버릇이 하나 있다. "중요한 게 뭐냐면..."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그 중요한 얘기는 단 몇 마디로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 시간이 넘게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떠들었으면서 "사실 중요한 게 뭐냐면..."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단 몇 마디로 끝내 버리다니. 그렇다면 정작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길게 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짧게 마쳐버리는 셈이니,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라고 그 선배가 사주는 소주와 오뎅탕과 꽁치구이 같은 것을 마주 앉아 먹으면서 생각하는 것도 참 송구한 일이긴 하나, 문득 다른 생각들이 들었다. 어쩌면 이 말버릇이라는 것에는 자신이 결코 해낼 수 없는 것, 혹은 자신의 아킬레스건 같은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예전 회사(라고 해두자)의 모 동료 하나는 거래처와의 통화시에 자주 "솔직히 말하면요..."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 뒤에는 늘 그 전화통화에서 가장 솔직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요..."라는 그의 말버릇은 이제부터 거짓말을 좀 할께요,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었고, 어느쪽 펜스로 공을 넘겨버릴 것이라고 투수에게 호언장담하는 예고홈런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말버릇은 어떤 게 있을까. 말버릇은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글에는 종종 그런 말들을 쓰는 것 같다. "음..뭐.." 같은 것. 뭐, 라는 말에 붙어서 가장 어색하지 않은 말은 '어때'나 '괜찮다'와 같은 말들이다. 뭐 어때, 뭐 괜찮아. 그러니까 사실은 나는 괜찮지 않은 것이고,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3.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예를 들어 일종의 강박증 같은 것이다. 가벼운 강박증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내 강박증이 그런 필수요소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아니면 그 범주를 벗어나, 일상생활을 방해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가끔 그런 강박증이 강하게 인지되는 때가 있다. 예를 들어 CD 정리를 할 때. 나는 음악 CD를 뮤지션의 ABC, 혹은 가나다 순서로 놓기 때문에 새 CD를 사게 되면, 다시 하나하나 배열을 맞춰야 한다. 그것은 어지간히 귀찮은 일인데, 왜냐하면 CD를 일일이 빼서 다시 꽂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리하다가 가끔 생각이 멈추기도 한다. Verve가 그냥 Verve더라, 아니면 The Verve더라..

 

그것은 온라인 상에 글을 쓸 때도 묘하게 발휘되는 것 같다. 나는 퇴고하는 것을 어지간히 귀찮아해서, 한번 쭉 읽어보고 눈에 보이는 몇 가지를 고친 후 그냥 올려버리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계속 어딘가에서 오타들, 잘못된 맞춤법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일단 글을 올려놓고 매번 수정 버튼을 클릭해서 창을 띄운 후 오타를 고치고, 맞춤법을 바로잡고는 한다. (물론 내 맞춤법 실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그 수정작업은 완벽하지 않으며, 계속 후속작업들을 동반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예전 글들에도 적용된다는 것. 가끔 예전에 썼던 리뷰들을 읽어보고는 하는데, 그 때마다 새로운 오타와 맞춤법들이 발견되어 나를 괴롭히곤 한다. 물론 그것을 이제와서 고쳐야 할 이유는 없다. 2009년에 썼던 글을 이제 누가 볼 것인가. 그러나 그 오타와 맞춤법은 화면상에서 점점 확대되어 기어이 내 손목을 붙들고, 수정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왜 오타들은 늘 뒤늦게 발견되는지. 물론 가장 고마운 것은 뒤늦은 수정 시에도 예전에 글을 올렸던 시간이 그대로 보존된다는 사실이다.

 

4.

이러한 강박증은 예를 들어 무엇인가를 요리할 때도 그 빛을 어느정도는 발하는 듯 하다. 뭐 요리라고 해도 거창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고, 끽 해봐야 간단한 반찬 같은 것들이지만, 그 강박증은 이상한 지점에서 발휘가 된다. 나는 레시피 요리의 신봉자라 항상 아주 간단한 반찬을 할 때도, 인터넷에 널려있는 수많은 레시피들을 참고하는 편이다. 그런데 레시피에서 가끔 이상한 요구들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계란찜을 한다고 해보자. 갑자기 어떤 레시피에서 계란을 풀고 그 액을 체에 걸러야 한다는 일반적이지 않은 요구를 한다. 물론 나는 그 요구에 따를 마음이 없으며, 더군다나 체도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 부분을 건너뛰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강박증은 이때부터 슬슬 시작된다. 그 레시피가 미심쩍어진 나는 다른 레시피를 찾기 시작한다. 물론 레시피는 얼마든지 있다.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했다. 이 레시피는 계란을 풀 때 체는 커녕, 거품기 대신에 과감히 숟가락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아주 마음에 드는 레시피다. 그런데 이 단계를 넘어가니 또 난관이 생긴다. 이 레시피는 계란을 푼 다음 거기에 다시마를 삶은 물을 섞을 것을 주장한다. 오 마이 갓. 아니 계란도 숟가락으로 푼 주제에 무슨 다시마 삶은 물이람. 다시 레시피를 찾는다. 이번에는 레시피를 찾는 조건이 좀 복잡해졌다. 체와 거품기도 없어야 하고, 다시마 삶은 물도 없어야 한다. 몇 십분을 찾은 끝에 용케 새로운 레시피 발견.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번에는...

 

에라, 계란후라이나 먹자.

 

5.

그래도 알라딘이니까 책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그래서 시작은 강석경의 <숲속의 방>으로 시작했건만), 뜬금없이 요리 이야기와 급기야는 계란후라이로 빠지고 말았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오자. 오늘 저녁부터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충동구매한 엘러리 퀸의 <그리스 관 미스터리>를 읽고 있다. 이런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오랜만이다. 책도 옛날 느낌이 나고, 한 때 셜록홈즈니 미스 마플이니 에르큘 포와로니 하는 것을 즐겨 읽었던 아주 오래전이 생각이 난다. 읽은 것은 아직 초반부까지인데, 여러 등장인물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들이 끝나고 사건이 본격적으로 머리를 들려는 찰나, 그러니까 엘러리 퀸이 등장인물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지하철은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책을 집어서 가방에 넣고는 술을 마시러 갔다.

 

다만 아직까지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다. 아마도 읽는이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추리를 어렵게 하려는 작가의 심산이겠지만(등장인물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범인을 맞출 확률은 낮아질테니), 이런 류의 책을 오랜만에 보다보니 책 앞의 나오는 사람들 목록과 저택 평면도만 보아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사촌이니 집사니 가정부니, 갤러리 관리인이니 주치의니 이웃 사람이니 한명한명씩 내가 누구입니다, 라고 등장할 때마다 등장인물 엄청 나오는 사극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때마다 맥이 딱딱 끊겨버리고 만다. (사실 개인적으로 대하사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하사극에는 꼭 누군가 한 명 등장할 때마다 그 밑에 자막-그러니까 간단한 인물소개가 붙는데, 이것을 볼 때마다 왠지 몰입감이 뚝뚝 떨어진다. 이거 드라마야, 다큐야.) 물론 아직 초반이니까 그럴테지. 그리고 나올만한 양반도 어느정도 다 나온듯 하고.

 

이왕 시작한 김에 책 얘기를 조금 더하면, 이번에 영화와 관련된 책을 한두권 구입할까 생각 중이다. 갑자기 어떤 책이 흥미를 끌었다기 보다는 그저 단지 메일로 날아온 예술도서 관련 이벤트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럴 때가 가장 고민이고 동시에 가장 위험하다. 책과 수중의 돈과 이벤트 금액을 놓고 벌이는 삼각의 저울질. 저울의 균형을 맞춰보려 하지만, 저울은 늘 불균형하고, 저울질하는 사이에 책을 읽고 얻게 될 마음의 양식 따위는 이미 하늘 저 멀리 어딘가로 날아가버린다. 그래도 한 권은 사야지.

 

6.

그러니까 다시 책에서 영화얘기. 딴 건 몰라도 이번 주 개봉하는 <두 개의 문>은 봐야지 싶다. 지난 용산참사를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에서 다루었다고 하는 다큐다. 그러므로 영화를 본 뒤에는 '무엇이' 객관적인지, '어떻게' 객관적인지, 혹은 '객관적'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도 물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본다고 해서 (나의) 무엇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거나, 내가 무엇인가 좋은 방향으로 조금 나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의 영화가 한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그것은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도 훨씬 나쁜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는, 나에 국한된 사실 뿐이다. 물론 이는 이 영화 <두 개의 문>을 놓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영화'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그저 몇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영화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안좋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예상이라는 것은 늘 현재의 자신이라는 것의 범주, 혹은 한계 안에 들어있으므로 장담할 수는 없다.) 내가 영화에 감사하는 점은 단지 그 뿐이다.  

 

7.

조금 더 버텨서 유로게임을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금 오늘은 유로게임이 없는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글을 더 연장할 이유는 없다. 쉐브첸코의 국가대표의 마지막 게임은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되었다. 첼시로 이적한 후 그가 보여준 모습들은 상당히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게임이 그런 게임이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TOP밴드도 그렇고, LG도 그렇고, 내가 응원하는 팀은 왜 늘상 그 모양인지. 그러니 역레발. 잉글랜드 우승에 한표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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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6-2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간에 잠시 깨서 물 한잔 마셨던 것 같은데... 유로게임을 기다리셨구나.
'솔직히 말해서'라고 강박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의심이 가요. 그렇다고 제가 솔직히 말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내는 재능도 없는 것 같고. 좀 둔한편이랄까 무신경하달까 그래요.
어떤 소설에 자주 쓰는 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명사나 형용사 부사가 아니라 조사, 자주쓰는 문장 형태와 남발하는 조사들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그 소설 속 작가는 자괴감에 빠지던데. 일테면, 어쩌면, 00아닐까. 저는 이런 말을 잘 쓰네요. 확신있게 밀어부치고 싶은데 한톨의 확신도 없는거죠. 또, 막, 정말이란 말을 자주 쓰는 걸로 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밀어부치려는 의지같은건 있는 것 같고 ^^
저 역시 표준법과 문장이 개판이지만 그걸 또 막 고치려고 안 해요. 은근한 나르시즘은 나름 자족적인 면이 있어요. 안 그러면 저는 한줄도 못썼을텐데. 맥거핀님의 잠이 안 와서 쓰는 글에선 오타나 비문은 안 보이는데요. 물론 제 기준은 헐렁합니다요.

맥거핀 2012-06-22 01:06   좋아요 0 | URL
아니 분명히 오타와 비문은 넘쳐나겠지요. Arch님이 제 글에 호의적이기 때문에 눈에 잘 안띄는 거겠죠. 아마도 분명히 계속 발견될겁니다. 근데 아무튼 바꿔도 바꿔도 끝은 없죠. 뭐 띄어쓰기 같은 거라면 말할 것도 없구요.(띄어쓰기는 한국인이 가장 약한 부분이긴 하니까.)

저도 위에 좀 쓰기는 했지만, 제 말버릇이나 글버릇은 정확히 모르겠어요. 사실 민감한 사람이라면 금새 잡아내겠지요. (어쩌면 말버릇같은 것은 도리어 뭔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약간은 있는 것 같아요. 글에는 '약간은 있는 것 같아요'라고 쓰면서 웃기죠.) 아무튼 저는 그런 말버릇과 사람들의 실제행동이 충돌할 때 재밌습니다. 물론 그사람이 저보고 재밌으라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암튼 제 이론에 따르면 Arch님은 도리어 확신이 있는 쪽 같은데요. OO아닐까..이런 말버릇이라면.

2012-06-2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이 안 와 쓰는 글.. 시리즈화되는 군요. 계속 써 주세요. ㅎㅎ
강석경의 숲속의 방, 듣자마자 환기되는 기억이 있는책이름입니다. - 나름 추억의 책이지만, 읽지는 않았어요. / 인터넷 레시피 체험담. 상당히 실감나는 디테일이 재밌어요. 제 동생은 진짜 그거 보고 달걀을 체에 내리고 다시마 우린 물을 만드는 타입이고 전 인터넷에 검색어 넣는 자체를 기피해서 모르는 건 못해먹고 마는 타입인데요. 그 극과 극 사이엔 사연있는 계란후라이가 있겠군요.
영화관련 책 읽으신 후 리뷰 또는 단평, 부탁합니다~.

맥거핀 2012-06-22 01:10   좋아요 0 | URL
저는 되도록이면 레시피 그대로 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레시피에 가끔 애매한 표현들이 들어있으면 좀 그래요. '소금 한 줌' 이런 거 말이죠. '한 줌'이란 건 도대체 어느정도일까 생각을 하죠. 차라리 소금 5g 이런거면 괜찮을텐데..늘 생각하죠. 그러니 강박증 환자들을 위하여 레시피를 쓰시는 분들이 신경좀 썼으면 좋겠어요.;

강석경의 숲속의 방은 그 이후에 몇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그 소설은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들이 많아요.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괜히 소설을 본 느낌을 망가뜨릴까봐.

으하하..제가 과연 영화관련 책을 읽고 뭔가를 쓰게 될까요. 노력해보겠습니다.^^

Shining 2012-06-2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한 가지 발견 한 것 같아요. 맥거핀님이 잠이 안 와 쓰는 글은 술을 마신 날 올라온다는 거.. 그러니까 맥거핀님은 술 마시고 귀가 후 잠이 안 와, 쓰는 글을 쓰는 것_- 맞죠?ㅎㅎ

제 말버릇은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입니다_- 진짜 이 말 자주 해요; 이런 말을 하기 그렇다는 것을 알릴만큼 소심하고, 그렇지만 말하고 마는 직선적인 성격탓이죠_- 물론 이런 말해도 괜찮을, 사이에만 씁니다ㅎㅎ 아, 글 쓸때는 '랄까'또는 '인 듯 하다'에요. 생각한 걸 말하고는 싶은데 장담하기는 싫고.. 안 좋은 버릇이죠.

전 올해 출간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웃음).

맥거핀 2012-06-22 01:18   좋아요 0 | URL
아..사실은요. Shining님의 잡담 시리즈에 영향을 받아....라는 건 농담이구요. 음..술을 약간 마신날이라고 해두죠. 많이 마시면 글이고 뭐고 잘잡니다. 하하. (예전에 다른 블로그에서 술을 좀 꽤 마시고 쓴 글을 나중에 보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얼굴이 화끈거려서..다음날 아침에 광속삭제했습니다.)

음..그 말이 사실 재밌네요.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그 말은 결국 그 말을 하겠다는 거니까. 랄까 같은 것은 저도 많이 쓰니까요. 요즘 인터넷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검열이 필수적이고,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두어야 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안 좋은걸까요. 글쎄요. 잘 모른다랄까.

아..읽어보시고 재밌는 부분 있으면 나중에 소개부탁해요. 제가 진지하게 읽겠습니다. 이래봬도 이스트우드 영화는 꽤 좋아하니까.

카스피 2012-06-2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런던 올림픽대비 체력을 미리 보충하고자 밤에는 열심히 자고 있습니당^^

맥거핀 2012-06-22 01:19   좋아요 0 | URL
저는 올해 올림픽은 어째 좀 시큰둥한데요. 나이들수록 올림픽에는 어째 덜 열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올림픽에는 야구도 없고. 나중에 마라톤은 챙겨서 봐야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꽃도둑 2012-06-2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문장의 길이로 봐서는 밤을 꼴딱 샌거 같은데...
에효~ 이 생각 저 생각 잡생각들로 넘치군요. 맥거핀 님이 이렇게 변하다니...
예전에 진지모드 그 자체였는데... ^^

중요한 게 뭐나면....음,,
중요한 게 뭐나면,.,.이 말은 이 방을 떠나도 귓가에 계속 남을 거 같아요..
어쩌면 중요한 게 없는 건지도....알아도 말 할 수 없는 것인지도..


2012-06-27 23:57   좋아요 0 | URL
꽃도둑님.. 저는 꽃도둑님 댓글 팬이에요. ㅎㅎㅎㅎ
ㅋㅋㅋㅋ

그나저나 "중요한 게 뭐냐면" 이 말은 술 많이 취한 사람들이 잘 하는 말인 듯 해요. 이 말 해 놓고, 중요한 얘기 제대로 하는 경우, 한 번도 못 봤어요.
글 속에서 이 말을 접하는 순간, 내 뇌의 빈 공간에서 울려퍼지면서, 엄청 기시감이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술자리에서 영양가 없이 꽤 듣지 않았었는가 사료됩니다..후후후...
(꽃도둑님 마지막 말이 여운으로 울려 퍼지네요...)

맥거핀 2012-06-28 23:37   좋아요 0 | URL
저는 여전히 진지합니다. 아하하.

저도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알고 싶어요. 술자리에서 하는 그 긴 얘기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인지..(하기는 뭐 제 서재에서 하는 수많은 얘기들도 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죠. 그냥 다 맥거핀입니다. 하하하.) 뭔가 계속 이야기하다보면 중요한 것을 언젠가 잡아낼 수 있을까요?

감은빛 2012-07-1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어느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지적에 의해 깨달았습니다.
"감은빛님 말씀하실 때는 늘 '솔직하게' 말씀하셔야만 하는 군요"
즉, 제가 '솔직하게 말하면'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는 뜻이었습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제가 그런 표현을 쓴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그 지적이 있었을 당시에 제가 한 말은 '정말'로 솔직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잘 생각해보았더니,
저는 '솔직하게 말하면'이란 표현을 할때는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조금 과장하거나 적당히 디테일을 빼거나,
잘 기억나지 않는 사실을 마치 정확한 것인양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거 나중에 글로 한번 써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Pet Shop Boys에서 시작해서 술버릇, 강박, 레시피, 추리소설, 두 개의 문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솜씨가 놀랍습니다!

맥거핀님의 '잠이 안 와 쓰는 글'의 팬이 될 것 같습니다! ^^

맥거핀 2012-07-18 21:50   좋아요 0 | URL
음..근데 '솔직하게 말하면'이라고 말하면서 정말 솔직하면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물론 걔중에는 저처럼 괜히 삐딱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말을 쓰면 도리어 저거 뭔가 꿍꿍이가 있나..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러고보면 참 말(소통)을 한다는 게 어려워요.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하는데도 상대방이 그렇게 안받아들이면 그만이니까. (근데요. 사실 자기 말버릇은 정말 자신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기는 한데, 충격을 받을까봐 주저하고 있습니다.^^)

칭찬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조금 더 영양가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사실 위의 내용들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나오는대로 쓴거라..(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써야 더 나을지도..)

궂은 날씨네요. 건강관리 잘 하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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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책들에서도 그랬지만, 마이클 샌델은 여러 가지 풍성한 사례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그가 말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여러가지다. 1장에서는 이른바 '새치기 할 수 있는 권리'다. 우선 탑승권, 진료 예약권, 무료로 배부되는 방청권들을 돈으로 구매하려는 행위 등에 대한 비판이 주로 이루어진다. 2장에서는 '인센티브'와 관련된 항목들이다. 불임시술을 장려하기 위한 현금보상, 상금으로서 어떤 좋은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 벌금이 그 행위를 하도록 허가하는 일종의 요금으로 변질되는 것들이 이야기된다. 3장에서는 시장이 점차 도덕을 밀어내는 현상에 대해 말한다. 대리 사과 서비스와 결혼식 축사의 판매, 현금으로 선물을 하는 것,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에 돈의 문제가 개입되는 것 등이다. 4장에서는 삶과 죽음과 관련된 문제가 전면에 나선다. 타인의 생명보험 증서를 거래하는 '말기환금'의 문제, 유명인사의 죽음을 놓고 벌이는 내기인 '데스풀', 시장에서 테러를 예측하고자하는 테러리즘 선물시장 등이 도마에 오른다. 마지막 5장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명명권'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경기장에 차별적인 자리들이 생겨나는 것, 모든 것으로 가능한, 심지어는 신체 일부를 사용하여 이루어지는 광고들, 특정의 지명이나 명명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 등이 이야기된다.

 

좋은 얘기다. 이 이야기들을 놓고 어떤 비판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옳음이나 좋음의 문제, 아리스토텔레스나 롤스, 칸트 등이 이야기했던 공동체와 개인의 정의의 문제, 공화주의인가 공동체주의인가의 문제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실 이와 같은 것들은 오랫동안 '돈으로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의 범주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새치기의 권리, 생명보험, 명명권 등은 시장과 시장주의의 공세가 어느정도 위세를 떨치게 된 이후에 시장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시장 이전의 세계, 그러니까 현재에는 가장 거래해서는 안된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목숨에 대한 권리가 공공연하게 거래되는 세계(예를 들어 노예제)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는 여기서 말하는 시장지상주의와 관련된 문제보다는 인간의 기본권리와 연관된 문제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인권신장과 관련된 인류의 역사를 되짚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현재에도 노예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즉 이것들은 시장지상주의에서 새롭게 생겨난 거래항목들이다. 예전에 돈(재화)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새롭게 거래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때, 그것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도덕적) 가치들과 충돌을 일으킨다. 따라서 마이클 샌델의 이 세심한 논의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내 질문의 몇 가지는 이와는 약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이다. 바로 지금 미국 혹은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돈으로 거래되어서는 안되는) 가치들의 거래. 즉 그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즉 그는 시장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있는 시장지상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 시장이 왜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러한 타락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물론 그것은 이 책의 주제를 넘어설 수도 있고, 그것은 샌델 외의 다른 논의자들의 몫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만, 그런 전후 맥락이 없이 이루어지는 이 이야기들은 (본의 아니게) 특정의 한계들을 이 논의를 읽는 사람들에게 덧씌우고 있다. 즉 이 시장은 우리들에게 이미 주어진 상수이고, 그것의 근본적인 한계는 이 책의 관심영역이 아니다. 즉 시장에서 '거래해서는 안되는 어떤 것을 거래하려는 행위'가 문제일 뿐, 그 시장에는 혐의를 씌우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문제가 그 시장 자체라면? 시장의 근본적인 한계가 바로 그러한 거래행위를 권장하고, 부추기고 있으며 그러한 거래행위 자체를 막는 것이, 그 시장의 근본적인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어떨까.

 

이를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아마도 샌델은 인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 대놓고 자주 나오는 단어들은 시장, 재화, 가치와 같은 단어들이지만, 은근히 출현하고 있는 단어들은 회복, 훼손, 변질과 같은 단어들이다. 시장의 회복, 공공선의 훼손, 가치의 변질. 즉 좋은 시장이 있고, 좋은 공공선이 있고, 좋은 가치가 있다. 그것을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것은 일부 정신나간 경제학자들이고, 정치인이며, 시장지상주의에 물든 사람들이다. 그것은 이러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거래하는 행위에 관련되어 비판을 할 때 주로 제시되는 두 가지의 중심축과도 연관된다. 그 하나는 공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부패이다. 즉 어떤 특정의 가치가 거래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구매할(혹은 판매할)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은 동시에 그 가치를 다른 것으로 변질시키기, 부패시키기 때문에 그렇다. 즉 우리가 이러한 특정가치들의 거래를 막았을 때, 우리는 공정한 우리로, 부패되지 않은 가치를 지닌 본래의 우리로 '돌아간다'. (아마도 이것이 샌델이 그래도 여전히 시장에 어느정도의 믿음을 보이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시장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그 시장을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누군가가 문제지. 우리는 도덕적이고 선한 인간으로 돌아가 공공선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에게는 도덕적인 인간은 없다. 오로지 경제적인 인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은 못된다. 이렇게 시장지상주의의 늪에 깊게 빠져있는 미국과 FTA를 하며 신자유주의의 넘실대는 파고에 흥겹게 올라타고 있는 우리사회에 샌델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그리고 경제지 '한국경제신문'에서 '왜 도덕인가'라는 샌델의 책이 출판되고, 보수적인 신문들에서마저 샌델의 이야기들이 화두가 되며, MB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공정사회'를 제창했다는 해프닝을 보며 가졌던 어떤 의심이 이렇게 꼬리를 드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들에게는 마이클 샌델은 그래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은 잘 지켜주는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설혹 샌델의 주장이 실현된 세계가 되어도 그것은 그리 나쁘게 보이지는 않으니까. 시장은 여전히 굳건하고, 시장은 여전히 이 사회에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을 다시한번 일깨울 것이므로 그다지 손해볼 가능성은 없다.) 실패해도, 하버드 교수의 주장을 수용했다는 이미지는 남는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그런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샌델은 2장에서 도덕적 가치들에 적용되는 인센티브의 폐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막장인 나는, 그 폐해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오..이런 것에도 인센티브를 주네..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연히 주어야할 다른 과업과 관련한 인센티브마저도 떼먹는 우리의 회사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그런 인센티브도 없는데 무슨 도덕적 가치에 따른 인센티브. 우리가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인센티브를 논하는 사이에, (과업에 따른) 정당한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그럴리야 당연히 없겠지만) 이때다 싶은 이 회사의 CEO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가 그래서 인센티브를 안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물론 이는 농담이다. 그러나 아무튼 우리는 주어야하는 인센티브마저도 당연한 듯이 없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무슨 도덕적인 행위에 주어지는 인센티브랴. 핵폐기장도 '유치'되고 당연히 주어야 하는 보상금도 떼먹는 사회에서, 무슨 '핵폐기장이라는 폭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도덕적인 선택에 반하는 평균 월수입을 훌쩍 넘는 보상금의 부도덕성'인가.

 

어쩌면 이 책의 비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What Money Can't Buy'라는 이 책의 제목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정한다는 것은 역으로 다른 모든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정하는 사회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정하는 사회, 어느 쪽이 더 나아보입니까. 막장인 나는 그런 것보다도, 그저 이번에 내한한 마이클 샌델의 강의의 방청권은 얼마에 거래되었을까, 그게 더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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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6-1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서평단 하시는군요....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정한다는 것은 역으로 다른 모든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라는 문장이 맘에 와닿습니다. IMF 지원받기 전에는, 일을 잘하든 못하든 회사에서 비슷하게 돈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요. 물론 일년에 몇명 뽑아서 포상금을 주기는 했습니다만, 지금처럼 수시로 평가받는 시대는 아니었던거 같아요. 일을 더 잘하라고 평가받고, 그 평가는 금전적 이득으로 이어지지만..... 과연 이런 시스템에서 일을 더 잘하는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기본적으로 평가, 즉 타인이 잘했다 못했다 라는 비판, 무의식 중에 판단,
이런게 좋은걸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답도 없는, 그저 의문일 뿐이지만요~ ^^

맥거핀 2012-06-19 12:57   좋아요 0 | URL
뭐 그런 것이 샌델이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대가로 돈을 주는 것...그게 좋은걸까? 그게 샌델의 물음이죠. 근데 결국에는 그게 별로 효과도 없을 뿐더러, 효과가 있다하더라도 공부라는 것의 가치를 변질시킨다는 겁니다. (근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질문은 있죠. 과연 그럼 공부라는 것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점. 예를 들어 우리나라 학생들은 왜 공부를 열심히하는가. 학문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글쎄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것,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도 공공연하게 말해지니까요.)

근데 직장에서의 인센티브를 이야기하는 것도 참 거시기한게 우리나라에서는 인센티브는 커녕 있는 임금도 떼어먹는 판이니까요. 제때 임금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가치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센티브를 거부하라(없애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2012-06-20 0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1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델이 왜 위험하지 않은지(왜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향이 높은지) 잘 알려주는 글이네요. 셋째 문단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얘기하지 않고, 현재만 본다면('현재'를 상수로, 전제로 치면) 그 한계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린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샌델을 읽기보단 동생이 갖다준 폴라니를 읽을까나? 싶어지네요.ㅎ

맥거핀 2012-06-21 02:47   좋아요 0 | URL
샌델 씨의 논의들 나름 의미있고 좋아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많고, 우려되는 점들도 많습니다. 근데 그 논의들을 죽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논의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게 뭐지..? 모든 일의 맥락이란 게 과거와 미래가 있는 법인데, 그렇게 된 원인이나 해결책 같은 것은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아마도 샌델은 그것은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도 싶은데, 그러니 논의들이 공허해지고 맙니다.

오..폴라니. 동생분이 그런 것도 주는 군요. 저희 누나는 기껏 주는 게 폴라티인데. 목도 안 들어가는 폴라티..(헉..죄송합니다. 그래도 여름은 더우니까요. 잠깐이나마 시원해지시라고..-_-)

2012-06-28 00:00   좋아요 0 | URL
헉. 폴라티.. 저도 상당히 주변을 시원하게 해 주는 편인데, 맥거핀님도 만만치 않으심.ㅋㅋㅋ
- 네 저는 동생이 그런 책 주는 여자입니다. 움하하하.. 그러나 읽지도 못하고 반납하게 생겼지요. 요즘 저는 한 달에 책 두 권 겨우 읽어요. 그것도 쉬운 걸로~.

맥거핀 2012-06-28 23:39   좋아요 0 | URL
진짜 그런 교양있는 동생분을 두셨으니.. 저도 요새 서평단 책 소화하기만도 벅찹니다. 최근에 책 두어권을 사긴 했는데, 이것도 틈틈이 보긴 해야하는데..(저번에 얘기한 그 영화책요.^^)

2012-06-29 00:27   좋아요 0 | URL
동생도 뭐 자의로 구입했다기보단 스터디하느라고.. 근데 그 스터디 그룹은 이상해요. 한길문화총서를 종류대로 다 사서 보고 있더랑게요. 뭐 그렇게 두껍고 어려운 책만 하는지?!ㅋㅋ
여튼 영화책 읽고 꼭 평 써 주세요. 궁금궁금해요.^^

맥거핀 2012-06-29 01:03   좋아요 0 | URL
아니..대단한 스터디그룹인데요. 그 한길사에서 나온 시리즈 겉에만 봐도 헉..싶던데. 암튼 열심히 읽고 가능하면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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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몇 개의 키워드가 맴돌고 있는 책이다. 시, 시인, 시대(정신), 인문(정신), 자유, 자기 힘으로 도는 팽이, 단독성, 행동, 불온함, 그리고 김수영. 처음 나열한 키워드들과 마지막 '김수영'이라는 키워드는 이 책에서 무게가 같지 않다. 아니 무게가 같지 않다기 보다는 모든 키워드는 결국 '김수영'으로 수렴된다. 그러니까 김수영은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사람이며, 그래서 시인이고, 엄혹한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자기 힘으로 도는 팽이가 되고자 했으며, 일반성/특수성의 공식에 매몰되지 않고 단독성을 지키려고 했으며(그럼으로서 보편성이 되었고), 생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려 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불온했으며, 그래서 자유와 불온함으로 표상되는 인문정신의 구현자가 되었다. 즉 강신주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에 따르면, 이 모든 키워드들은 김수영이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가치들이자, 김수영의 다른 이름들이며, 인문정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 책을 보고서는 뭔가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표지의 바탕과 글씨, 그리고 내부의 속지, 그리고 책날개에 실려 있는 '김일성만세'라는 시가 모두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굳이 붉은색일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책을 보니 그럴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가독성'이라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모든 글씨를 붉은색으로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마지막 장의 제목이 '불온함은 긍지다'로 귀결되는 것처럼,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김수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키워드, 그것은 '불온함'이기 때문이다. 불온함은 자유와 행동으로 완성된다. 자유 하나만 놓고서는 결국 불온함에 이르지못한다. 머리 속으로만 행하는 자유, 생각에 그치는 자유는 결코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 자유로움은 권력과 우상에 반하는 자유로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즉 누군가가 줄로 감아서, 혹은 채찍질로 도는 팽이가 아니라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로운 궤적을 그리며 도는 팽이. 그것이 불온함이며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인문정신이다. 김수영의 경우에는 그것이 시를 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김일성만세'와 같은 시를 쓰는 것. '김일성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중략)/나는 잠이 깰 수 밖에.

 

물론 불온함이 꼭 붉은색일 이유는 없다. 불온함과 붉은색. 발음이 언뜻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것에는 어떤 태생적인 연관성은 물론 없다. 우리가 불온함에 언뜻 붉은색을 연상하는 것(그리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의 표지가 붉은색이 된 것)은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며, 같은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역사와 관련된 김수영의 두 번의 전환점이 나온다. 첫 번째는 한국전쟁과 그에 이어진 거제포로수용소의 경험이다. 김수영은 북한 의용군에 징집되어 끌려갔으나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곧 그는 다시 잡혔고, 묻어두었던 인민복과 총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다시 남한 경찰에 체포되어 인민군 첩자로 낙인찍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졌고, 포로수용소에서 친공포로임도 반공포로임도 내세우지 않는, 회색인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두 번째는 1960년 4월 학생혁명이다. 그는 초기에 학생혁명을 지지하며 집회와 시위에 참가하고 여러 시들을 발표하였으나 곧 그 혁명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 되는지를 목도하여야만 했다. 그것은 위에 이야기한 '김일성만세'라는 시에 여실히 나와있는데, 4월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장면 정부 역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던 이승만 정부와 전혀 다를바가 없다는 점. 즉 방을 없애자고 혁명을 하였지만, 그저 단순히 방이 바뀐 것에 불과하다는 점, 자신(과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은 친공이냐, 반공이냐의 이분법적 도식만이 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힌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불온함을 붉은색으로만 내세우는 이 책의 표지가 사실은 도리어 어떤 씁쓸함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불온함에 붉은색을 연상하여야만 하나.)

 

김수영이라는 인간에게 있었던 이 두 번의 전환점은 물론 그의 시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의 시에도 두 번의 전환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첫 번째 전환은 그가 휴전협정이 되던 1953년에 발표한, 그의 첫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했던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팽이가 돈다/팽이가 돈다. 너도 나도, 그러니까 각자 스스로 도는 팽이, 공통된 무엇을 위하여가 아니라 스스로 도는 팽이. 북한이니 남한이니, 친공이니 반공이니, 정치나 이념이니 하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모두 각자 스스로가 혼자 힘으로 도는 팽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는 그래서 4월혁명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알게 된다. 시 '육법전서와 혁명'. 혁명을-/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그대들인데/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시를 통해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는 비탄함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힘, 그러니까 불온한 자유의 목소리를 놓지 않았다. 불온한 자유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외부의 정치적 억압과 내부의 노예적 습성에 대해서 말하며 행동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전환이다. 시 '푸른 하늘을'.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 '하......그림자가 없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우리들의 전선은 됭케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보이지는 않는다/(중략)/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하......그림자가 없다.

 

..................

 

뭔가 좀 묘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라 생각했다. 일단 이 책은 정확한 형체를 알 수가 없다. 김수영의 전기나 평전도 아니고, 시작(詩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철학에 대해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는 책도 아니다. 김수영의 시를 읽은 개인적인 느낌에 대한 글이라고 보기에도 약간은 이상한 점이 있고, 그렇다고 김수영 시에 대한 비평문도 아니다. 더구나 전체적으로 글의 온도는 시종일관 높다. 책의 앞과 뒤에 붉게 열을 가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저자의 김수영에 대한 사랑 혹은 찬양의 온도는 시종일관 높아 종종 딴죽을 걸고도 싶어진다. (특히 가장 압권은 에필로그로 실은 저자 자신과 김수영에 대해 이야기할때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많은 분들도 약간은 느꼈겠지만, 그렇다면 김수영만이 시인인가, 다른 시인들은 모두 가짜시만 써낸 허위의 시인들에 불과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 따르면 순수시도 참여시도 아닌 김수영의 정신을 가지고 써낸 시, 즉 자신의 시마저도 끊임없이 새롭게 넘어서려는 시(그것도 단지 형태만이 새로운 시여서는 안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제스처로 써낸 시만이 올바른 시니까. 순수시도 아닌, 참여시도 아닌 각자 자신만의 제스처로 각자 도는 각각의 시.

 

어쩌면, 바로 그것이 묘한 불편함의 원인이 아닐까. 즉 이 책에서 결국 원하는 것은 각자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 도는 팽이가 가득한 사회다. 즉 각자의 중심을 가지고 도는 팽이가 각각 토해낸 시가 자유롭게 어우러져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시인이라는 특이한 존재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아니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시인이므로. 모두가 자신만의 자유로운 시를 써내는 사회이므로. 그러므로 이 책은 김수영에 대해서만, 혹은 그의 시에 대해서만, 혹은 시쓰기나 철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김수영에 대해서 자세히 알거나, 그의 시쓰기를 모방하게 되거나, 특정의 철학사조를 전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모든 것에 대해 자신만의 제스처, 자유와 행동이 결합된 불온을 우리 각자 스스로가 얻는 것이므로 말이다. 그러니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불편할 때만이 우리는 움직이므로. 편할 때의 우리는 결코 불온해질 수 없으므로.

 

시끄러운 여름밤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김수영의 기일이다. 불온한 그대여. 시를 써라.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도록.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천둥이 번쩍인다

여름밤은 깊을수록

이래서 좋아진다

 

 

- 시 '여름 밤'(1967.7.27)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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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6-1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느라 유로 게임 날리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아직도 전반. 쉐바 한 골 넣어줘요~.

맥거핀 2012-06-17 16:32   좋아요 0 | URL
네..결국 억지로 쓰게 되는군요. 자발적으로 좀 쓰고 그래야하는데..^^ 한사람님이 읽으시면 긴장해야겠군요.

조금 기획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없잖아있죠. 사실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는 경향도 짙고...강의를 책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굳이 10개의 챕터로 나눌 이유도 없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아무튼 강신주의 김수영에 대한 애정만큼은 생생히 알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알아듣기 쉽게 차분히 이야기하는 능력도 돋보였구요. 저 같은 경우는 김수영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김수영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딧불이 2012-06-1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의 정신에 감염되고 싶습니다. 김수영에 대한 글은 하도 많아서 무얼 또 보태려하나 싶어 뜨악해하고 있었는데 저자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글을 써주셨네요. 맥거핀님 덕분에 또 공부했습니다.

맥거핀 2012-06-17 16:36   좋아요 0 | URL
강신주의 논의대로라면 김수영처럼 사는 것은 계속된 자기반성과 자기를 초월하려는 움직임이 뒤따라야하므로 매우 고난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고난한 일인만큼 기쁨도 맛볼 수 있겠지만요. 저도 김수영의 정신에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012-06-2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불쾌했어요. 너무 김수영을 자기 식으로 끌어다 해설해 버리니까.. (그래서 김수영의 연애 이야기까지 읽고 책갈피 꽂아 책장에 넣고 여태 묵혀두었지요. 어쨌든 마저 읽어야겠지요..)
예전에 김수영과 자유를 주제로 '불온함=자유=시정신' 뭐 이런 도식의 강의를 할 때는 재밌고 좋았는데, 그걸 책 한 권으로 써 놓으니(온통 그렇게 자기 논리로 김수영의 삶을 재단해 놓으니) '하나의 해석'이란 걸 넘어서서 '진짜 김수영이 이럴까' 싶은 것이, 불쾌해졌어요. 그래서 맥거핀 님도 '종종 딴죽을 걸고 싶어지'신 게 아닐까 싶네요.

어쨌거나 이 글의 마지막 문단과 인용, 맘에 듭니다.

맥거핀 2012-06-21 02:51   좋아요 0 | URL
아..그랬군요. 강신주 씨의 강의도 들으셨나요? 하긴 좀 보면 너무 한가지 주제로 밀고나가며 모든 것을 다 그 틀에 맞춰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요. 아마도 김수영 시인이 아직 살아계셨으면 불벼락을 내리셨을듯도 싶은데..

그래도 저는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어요. 확실히 글을 쉽게 쓰는 능력이 있고, 조금 어렵다 싶은 이야기도 쉽게 푸는 능력이 있더라구요. 그의 해석에 100%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해석능력에는 어느 정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홍상수, 2012

 

 

(영화의 전체 줄거리가 들어있음)

 

 

 

홍상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특히 최근작에 들어서 그런 경향이 좀 짙어지는데, 과거로 돌아가 하나하나 다시 되짚어나가는 시간(지난 여름에 좋았던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의 <하하하>와 '일기'의 형식으로 되어있는 <밤과 낮>)과 증폭되거나 급속하게 축소되어 있는 시간(영화의 어떤 부분들이 영화 속 인물인 옥희가 찍은 영화임을 암시하는 <옥희의 영화>와 영화의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리게 해놓았던 <극장전>. 결국 영화란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다)을 보여주다가 <북촌방향>에 이르러서는 이 시간의 흐름은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이 영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표면상으로 이 이야기는 원주(정유미)가 쓰는 세 개의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이 시나리오는 각각 완전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 개의 시나리오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비교적 비슷한 흐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즉 이 세 개의 시나리오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모항이라는 곳에 온 안느(이자벨 위페르)라는 외국여자가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모든 이야기는 이 모항의 펜션과 그 주변에서만 이루어지며, 이 안느는 안전요원(유준상)이라는 공통의 인물을 만나며, 그와 대화를 나누고, 영화감독 종수(권해효)와 그의 부인(문소리)를 만나고 이들과 어떤 관계가 이루어진다(이 부부는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뒷모습이 살짝 비치며, 대신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영화감독 종수 대신에 이름도 비슷한 다른 영화감독 문수(문성근)가 등장한다). 그리고 안느는 이 각각의 시나리오에서 '등대'를 찾는다.

 

즉 어떻게보면 이것은 세 개의 평행한 시나리오이며, 세 개의 비슷한 세계이다. 이것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몇 가지 것들을 미세하게 바꾸면 아마 두 번째 시나리오가 될 것이고, 그것에서 또 몇 가지를 미세하게 바꾸면 아마 세 번째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세 개의 평행우주이다. 같은 인물, 같은 공간, 같은 상황들. 그것의 하나의 힌트는 이 세 개의 시나리오에서 이 각각의 인물들의 성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세 편의 시나리오에서 공통적으로 안느는 호기심이 많고, 어느정도 포용력이 있고, 타인과 대화를 하고자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다른 인물들도 어느정도의 공통성이 보이는데, 안전요원은 때로는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순진하고, 조금은 비현실적인, 현실에서 붕 뜬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며, 펜션의 여주인(정유미)는 친절하고, 영화감독 종수의 부인은 술마시고, 여자를 밝히는 종수를 못마땅해한다. 그러므로 이 전체 이야기를 세 개의 평행우주, 세 개의 다른 나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내가 살고 있는 이 세 개의 다른 나라들. 이 각각의 다른 나라에서 미세한 몇 가지가 어그러졌을 경우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것인가.

 

 

전체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어떤 느낌들을 읽어보니 대체로 유쾌하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는 의견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왠지 쓸쓸했고, 서늘한 감정이 남았다. 물론 홍상수의 이야기에서 이것은 그리 특별한 케이스는 아니다. 홍상수의 이야기는 상당수 찌질한 남자들이 찌질한 짓거리를 벌이는 코믹스러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운데에서 늘 불안한 기운들이 맴돌고 있었고, 전면적인 죽음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홍상수 영화들의 가장 놀라운 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영화를 본 어떤 이는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불안하고 불길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는 이 사실. 이 넓은 스펙트럼이 가능한 영화는 많지않다.) 그것은 이 <다른 나라에서>의 이야기의 흐름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아마도 홍상수의 영화들 중 영화내내 가장 미소를 짓게하는 장면이 많은 영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흐름은 동시에 왠지 수상쩍은 부분이 있다. 같은 인물, 같은 공간, 같은 상황들. 그러나 세 개의 시나리오에서 인물은 점점 나쁜 위치에 빠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안느의 변화.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안느는 잘나가는 영화감독이지만, 두 번째에서는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불륜행각을 벌이는 여자이고, 세 번째에서는 한국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프랑스여자가 된다. 다른 인물들은 어떨까. 먼저 세 편 모두에 등장하는 안전요원의 경우를 보면, 첫 번째 편에서는 안느를 위해 사랑스런 노래도 불러주고, 약간 무모해보이기는 하지만, 안느에게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세 번째 시나리오에 이르러서는 아무 생각없는 무뇌의 캐릭터, 상당히 수동적인 인물이 되어버린다. (단적으로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안전요원이 고기를 구워주는 장면과 세 번째 시나리오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장면을 보자. 첫 번째는 조금은 막무가내지만,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한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세 번째에 이르러서는 수동적인 리액션에 머물고 만다.) 그리고 영화감독 종수와 그의 부인의 경우, 첫 시나리오에서 이들은 술자리에서 티격태격하지만, 결정적인 파국에 이를 가능성은 그다지 없어보인다. 그러나 세 번째 시나리오에 이르러서는 그 파국은 상당히 현실에 가까워진다.

 

이것을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이 이야기는 원주가 모항의 펜션에서 쓰고 있는 세 개의 시나리오이다. 왜 원주는 여기에서 이 이야기들을 쓰고 있는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원주와 그녀의 어머니(윤여정)의 대화를 본다. 이들은 다른 누군가의 사업실패, 혹은 보증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이 펜션에 갇혀있어야만 하는 신세이다. 즉 원주가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함이기도 하며, 한편으로 현실을 잊고자함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녀가 쓰는 첫번째 시나리오에서 그녀는 최대한도의 꿈을 담는다. 여주인공은 잘나가는 영화감독이며, 어느 낯선 곳에서 로맨틱한 남자를 만난다. 이것은 첫 번째 이야기. 그러나 이후 우리는 두 편의 이야기를 더 본다. 한가지 질문. 왜 첫번째 시나리오 이후에 비슷한 두 개의 이야기가 계속 쓰여졌는가. 원주는 왜 두 가지의 이야기를 더 쓰는가. 그것은 첫번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이제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처음부터 완전히 다르게 쓸 요량은 없다. 그러니 그녀는 몇 가지의 설정을 바꾸기로 한다. 여주인공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여자가 되고, 이야기는 꿈과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인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두 번째 이야기.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은 원주는 세 번째 이야기를 쓴다. 여주인공은 다시 이혼당한 여자가 되고, 할 수 있는 일은 술을 마시고, 누군가와 잠깐의 섹스를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세 번째 이야기.

 

즉 처음에는 꿈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두 번째에는 꿈과 현실의 중간에 있는 이야기가 되고, 마지막에는 이야기는 급기야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꿈에서 현실로의 추락. 첫 번째 시나리오를 결국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 그것은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에는 안느는 물에서 수영을 하고 막나온 안전요원에게 물이 차갑지 않느냐고 물었고, 안전요원은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지으며 전혀 춥지 않다고, 따듯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 번째 이야기에 안전요원은 춥지 않느냐는 안느의 말에 대답한다. 춥다고, 물이 차갑다고. 그 차가워진 현실의 온도, 꿈이 깨어져버린 차가움. 등대는 어떨까. 이곳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등대. 안전요원에게 안느는 그것에 대해 묻지만, 안전요원은 모른다(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기는 한다. 안느의 꿈 속에서). 어딘가에 있을 그 꿈의 등대는 그러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자그맣게 축소되어 안전요원의 손에 들려있다. 이거 등대잖아요, 작은 등대. 그 작게 축소된 현실에서의 꿈의 존재. 이 쓸쓸한 모항에서 이루어지는 쓸쓸한 이야기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안느와 다른 인물들에 의해 '아름답다'고 이야기되는 모항이지만, 나는 그 모항의 쓸쓸한 이미지들만 보였다. 항구 옆에 덩그러니 서있는 펜션, 포구에 매어있는 빈 배들, 잿빛의 바다, 홀로 수영하는 안전요원, 화장실 옆의 단 하나의 텐트.)

 

물론 이것은 그저 내가 만들어낸 어지러운 도식이다. 그 도식을 보는 홍상수는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영화 속 안느와 스님의 대화. 왜 이렇게 슬픈가요. 당신이 슬퍼하기 때문이지요. 왜 무서운가요. 당신이 무서워하기 때문이지요. 말장난하시는 건가요. 아니, 모든 것이 그래요.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것 뿐이지요. 결국 도식이란, 그렇게 보고자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 그렇게 느끼고자 하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쓸쓸함이란 내가 만들어낸 쓸쓸함일 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세 개의 시나리오, 세 개의 평행우주. 이것은 정말 '다른 나라'인가. 꿈과 현실은 그토록 다른 것인가. 홍상수는 몇 개의 힌트를 던진다. 세 번째 시나리오에서 안느가 해변에 던진 깨진 소주병은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돌아오고, 처음 안느가 길가에 꽂아두었던 우산은 중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안느에 의해 되돌아온다. 꿈 속의 현실, 현실 속의 꿈. 이 세 개의 평행우주는 결국 다른 것일까, 같은 것일까.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것. 이것은 가능한 다른 나라의 하나일뿐.

 

당신의 '다른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덧.

영화가 끝난 후 이어졌던 홍상수 감독과의 대화에서 홍상수의 태도는 그 자신의 영화를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보였다. 답은 없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마 답일 거에요, 허허허. 아마도 홍상수의(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영화들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정답을 상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답이 있는데, 그 정답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 그러나 무엇이 정답인가. 감독의 애초 의도에 가까운 해석이 정답인가. 감독의 의도에 최대한 맞춘 답, 그 답은 아마 나의 답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홍상수의(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답일뿐. 그러므로 가장 웃기는 것 중의 하나는 영화의 완전해석판이니, 이것이 답이니, 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이는 '영화'에 국한된 태도만은 아니다.

 

덧2.

이 영화에 대한 (그간 다른 홍상수의 영화들과 비추어볼 때) 외국에서의 더한 호평은 언어적인 뉘앙스와도 많은 관계가 있는 듯 하다. 사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언어적인 뉘앙스는 매우 중요한 문제니까. 외국의 관객들에게는 그 언어적 뉘앙스를 바로 포착할 수 있는 첫번째 영화다. 반면 도리어 우리 관객들에게는 이는 약간은 역으로 작용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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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1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오래간만에(제가 오래간만^^) 영화글 반갑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보셨다는 글귀, 와닿네요.
안느가 또다른 길을 가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지자, 스님과 여교수가 허둥지둥
안느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전 몹시 우스꽝스러웠어요. 다른 장면들에서 웃음이 많이
나왔지만요. 어쩌면 우리는 각자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말'을 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니 서로 말장난이나 하는 것으로 들리고요.
종우가 안느를 굳이 뻘로 데리고 들어가 둘이서 그러다 들키는 장면에서도 웃다가
문득 좋은 데 데려간다더니 뻘로?? ㅋㅋ 이런 생각 들었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생각할 게 많이 드는, 웃지만은 못할 홍감독 영화^^

맥거핀 2012-06-14 00:49   좋아요 0 | URL
네..최근에 영화를 별로 보지 못해서, 글도 좀 뜸했네요.^^ 그래도 홍상수의 신작이 나왔으니 봐줘야죠. 하..그 장면 좀 많이 웃기긴 했죠. 하필 그 타이밍에서 걸려서, 뭐 사실 그다지 별다른 걸 할려는 건 아니었던듯도 싶었는데..

홍상수의 영화는 늘 흥미로워요. 여전히 또 모호한 지점들을 안고 있구요. 그래서 또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만, 약간은 비슷한 것이 반복되다보니 조금은 저로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싶다는 느낌은 좀 있었어요. 즉석에서 쓰는 시나리오, 예기하지 않고 만드는 촬영방식이 홍상수의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지만, 트레이드 마크라는 것은 또 한편으로 정체를 동반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GV에서도 그와 관련된 질문들이 조금 나왔던 것 같고..) 물론 저는 홍상수 감독이 보여줄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6-13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맥거핀님이 주말에 보신 영화! (저는 주말에 영화 안봤답니다, 그냥 뭐 뒹굴놀이~)
리뷰 못보고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아마 극장전, 밤과낮? 이후로 홍상수 영화를 볼 생각도 없어져버렸지만 이자벨 위페르라니, 오오, 담번엔 인도에 가셔서 영화 찍으실 것 같아요.

지금 제 다른 나라는 '요리'입니다ㅋㅋㅋ 김치김밥 말았는데 김을 펼치니까 밥을 어디까지 깔아야 할지 모르는 그런 초보자의 무한요리세상ㅋㅋㅋ

맥거핀 2012-06-14 00:55   좋아요 0 | URL
근데 홍상수+이자벨 위페르..우와 하고 가졌던 기대감만큼은 조금은 덜한 것 같아요. 물론 홍상수 감독이 배우빨(?)로 영화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다지 새로운 느낌은 주지 못했다고 할까요..말씀하신 것도 재밌어보이기는 하네요. 홍상수가 만드는 발리우드? 하..근데 이 영화에도 귀여운 노래가 나오기는 합니다.

저도 요즘에 어찌어찌하다보니 혼자 밥을 해먹는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근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늘 살짝 걱정되기는 해요. 김치김밥 같은 건 시도도 못하구요. 아직은 그냥 간단한 찌개끓이는 정도. 요즘의 고민은 찌개를 끓일 때 야채를 일차로 살짝 볶는게 좋은가, 아닌가,입니다. 블로그들에 가득한 레시피들은 대체로 볶으라고 하는데.. 귀찮아요.ㅋ

아이리시스 2012-06-14 13:49   좋아요 0 | URL
음..맥거핀님은..애긴데?! 계란말이랑 고기볶음으로 해결!
아..찌개 끓일 때 야채를 볶아야 한다면 차라리 볶음밥을 먹고 말겠어요. 무진장 귀찮은 거 아니예요?ㅜㅜ(운다) 생각만으로도 귀찮아ㅜㅜ

김치찌개할 때 고추기름 낸다고 볶다가 태워먹은 적 여러 번 있어요. 그나저나 저는 남자가 요리하는 거 아직도 너무 신기한 여자ㅎㅎ 마인드가 이래요. 내가 해야한다 뭐 이런 건 아니고 남자가 밥도 하는구나..뭐 이런 신기함.

맥거핀 2012-06-16 02:57   좋아요 0 | URL
응? 허허..아이리시스님 의외로 보수주의ㅋㅋ 요새 밥 정도는 해야 집에서 안 쫓겨나요.-_- 당연히 계란말이가 더 좋은데요, 그넘의 귀차니즘 때문에..찌개는 한 번 끓이면 그냥 3일 정도는 그것만 먹어요. 그니까 맛보다는 귀찮음에 굴복한 셈.

Shining 2012-06-1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내일 보러 가요, 리뷰는 다녀와서 읽을게요 :-) 그러니 저는 딴 얘기만 할게요
ㅎㅎ 올해 칸에 간 영화들 중 개인적으로는 하네케와 크로넨버그의 것이 제일 궁금합니다.

아, 저는 어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맥거핀님은 이 영화 보셨을까? 혹은 보실 예정일까? 무심코 생각하게 될 때. 스스로 신기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꼭 영화 페이퍼 써주셔야 해요(결론ㅋㅋ)_-*

맥거핀 2012-06-16 03:07   좋아요 0 | URL
네..신의를 지키시는 Shining님이시기 때문에 저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허허..하루에 시를 두 개 베껴 쓰는 날도 있네..)

아무튼 이 밤에 하네케의 영화와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찾아봤음. 으..예상대로 두 영화 모두 쉽게 볼 영화가 아니군요. 특히 크로넨버그 씨 '젊은 자산관리사가 강박증에 빠져 보내는 24시간'이라니..또 보는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할려고 그러시나..그러나저러나 덕분에 크로넨버그 씨의 또다른 새로운 영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네요! 무려 비고 모르텐슨 나오는 '이스턴프라미스'의 속편이라니....@.@

마지막 말씀은 저로서는 무어라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고마운 말씀이네요.^^ (저 사실 Shining님이 (장르)소설에 대해 글 쓰실 때 '과감히 패스'하는 경우도 있는데 죄송하네요.;;)

Shining 2012-06-19 12:12   좋아요 0 | URL
네, 전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므로ㅋㅋㅋ 토요일에 보고 왔습니다, 하지만 여지껏 그의 영화에 제가 늘 그랬듯 첨언을 하지는 않겠어요^^;

크로넨버그 영화 주인공이 로버트 패틴슨이라는 것도 좀 놀랐어요(전 아마 이 배우에게 깊은 편견이 있나봐요, 매번 놀라는 걸 보니;;). 저도 속편, 그 영화 기다립니다. 사실 <코스모폴리스>보다 더 궁금하기도 해요ㅎㅎ

죄송하긴요~ 맥거핀님이 고른 영화에 관심이 있는거지, 맥거핀님 글이라서 일부러 읽는 건 아닌걸요^^ 각자 읽고 싶은 글을 읽고 싶을 때에 읽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아, 다만 그렇다면 제 글 중에 맥거핀님이 관심 가질만한 글이 몇 개 없을거라는 생각은 드네요ㅎㅎ

맥거핀 2012-06-19 13:02   좋아요 0 | URL
아마도 분명히 홍상수씨는 이런 리뷰를 보면 허허허, 참 잘도 갖다붙여놨네...그럴 겁니다. 이동진씨와 한 관객과의 대화를 보니, 이동진씨가 홍상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줌의 활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긴 의미를 붙인 질문을 했는데, 홍상수의 답은 한 줄이더군요. "그 때 왠지 줌을 당기고 싶더라구요.."

아니에요. 그래도, 소설 글 꽤 봤어요.^^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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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해의 기록 / 조은 / 또하나의문화

 

조은의 영화 <사당동 더하기 22>는 기념비적인 다큐였다. 1986년 사당동 철거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난 한 가족의 삶에 22년간이나 카메라를 들이댄 끝에, 그는 깊은 성찰을 남기는 이 다큐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후 3년이 지났고, 빈곤은 여전히 지속 중이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사사키 아타루 / 자음과모음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다만, 여기서의 책과 혁명은 별개가 아니라 책을 읽고 쓰는 것, 책 그 자체가 곧 혁명이라는 말이다. 모든 책 읽는 자들을 위한 변론, 그리고 서시. 어떤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지금 혁명을 행하고 있다. 

 

 

잔혹 영화 / 앙드레 바쟁 / 현대미학사

 

바쟁 曰 "비평가의 임무는 있지도 않은 진리를 편리하게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지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작품이 주는 충격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 1995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도시 예술 산책 - 작품으로 읽는 7가지 도시 이야기 / 박삼철 / 나름북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 앞 거대한 <해머링 맨>을 보면서 왜 이것은 여기에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가,를 늘 생각하곤 했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한번쯤 읽어볼 때가 되었다. 오늘도 예술작품을 보고, 그 옆을 지나가고 있으니까.

 

 

미하일 바쿠닌 / E.H.카 / 이매진

 

바쿠닌이 세력을 얻고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소비에트는 달라졌을까, 아니면 탄생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것은 애초 불가능한, 모순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나. E.H.카의 평전이라면 믿을만 하겠지. (<68년, 5월 혁명>이라는 만화를 놓고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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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6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2-06-0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을 추천했는데, 여담이지만 혁명이라는 말은 참.. 묘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항상.

맥거핀 2012-06-06 22:49   좋아요 0 | URL
대장님, 바쁘시네요. 이번에는 대장님이 추천하신 책이 한권쯤 선정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이리시스 2012-06-08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심지어 표지도 없는 책이..영화..쭉 밀고 나가요, 영화!!!
오랜만에 안부 물어요^^

2012-06-08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9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9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