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여신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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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Nemesis, 1971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한 작가의 전집이 출판된다면 아무래도 연도별로 나오는 것이 제일 좋다. 왜냐하면 앞서 나왔던 인물들이 나중에 또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7년 전에 나온 '카리브해의 비밀 A Caribbean Mystery, 1964'에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내놓은 순서는 뒤에 나온 이 책이 먼저이다.

 

  카리브 해에서 알게 된 부호 래필이 죽으면서 미스 마플에게 약간의 유산과 부탁을 남긴다. 그녀 특유의 악을 감지하고 사건을 재구성하는 능력으로 사건 하나를 재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버스 투어를 떠나는 것이다. 래필이 남긴 여러 가지 조각을 따라가면서 점차 사건의 윤곽을 알아가는 미스 마플. 그와 동시에 여행객 중의 한 명이 죽음을 당한다. 과연 아리따운 베리티를 죽인 것은 마이클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그녀는 왜 살해당해야했는가?

 

  책에서 베리티가 죽은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고, 사랑은 가장 무서운 말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연인인 마이클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베리티를 죽인 것은 사랑이 맞았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다정했던 사랑이 집착과 질투를 동반하다가 증오로 변하면서 폭력적이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죽은 것이다.

 

  그러면 사랑은 진짜로 변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람이 변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처음의 순수한 사랑에 욕심이 덧붙여지면서 질척거리는 욕망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변했다고 보이는 걸지도. 욕망을 벗어버리면 처음의 사랑이 보일 텐데, 그 당시에는 그걸 제대로 알 수가 없나보다. 하긴 마음을 비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제 3자의 입장이라면 훤히 보이지만, 당사자가 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게 사랑이니까.

 

  어쩐지 예전에 미스 마플이 등장했던 '화요일 클럽의 살인사건 The Tuesday Club Murders, 1932'에서 나왔던 에피소드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지 밝히면 안 될 것 같아서 더 이상은 생략하겠다. 성별이 다를 뿐, 범인의 정체와 살인의 동기가 꽤나 흡사했다. 단편을 장편으로 발전시킨 것일까?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는 그런 경우가 꽤 있으니까, 그럴 법도 하다. 아, 제목인 '복수의 여신'은 래필이 미스 마플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던 사람들도 결국 사건이 해결된 다음, 그 별명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동의한다.

 

  감기로 앓아누워있는 동안, 케이블 방송으로 BBC에서 만든 미스 마플 드라마를 세 개 보았다. 거기에 이 소설을 만든 편도 있었는데, 원작과 달랐다. 아무래도 부유한 집안의 망나니 아들과 청순가련한 고아 소녀의 사랑 얘기보다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비행기 조종사와 영국인 수녀 지망생의 사랑이 더 극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극적이다. 그것이 이루어졌건 이루어지지 않았건, 밋밋하고 재미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타 발견!

 

  69페이지 맨 마지막 줄 '첫쨋날 끝.'이라는 말이 나온다. '첫째 날 끝'이 맞는 표현이다. 음, 설마 미스 마플은 오래 전에 교육을 받아서 바뀐 맞춤법에 약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고치지 않은 걸까? 원래 원서에도 틀리게 적혀있을까? 갑자기 이것저것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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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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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전건우

 

 

 

 

  와, 간만에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거의 10년이 넘었고, 환한 대낮에 봤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들은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만족스런 책이었다. 딱 한 번, 뒤를 돌아보게 만든 이야기 하나가 다른 아쉬운 부분들을 다 잊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어찌어찌하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잡지 회사에 취직한다. 그 회사에서는 ‘월간 풍문’이라는 잡지를 만드는데, 주로 다루는 내용이 미스터리, 심령, UFO, 괴담 등등이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선배를 따라 폐가에서 열린 모임 취재를 가게 된다. 선배의 설명에 따르면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모임은 일 년에 한 번씩 흉가에 모여 각자 이야기 하나씩을 들려준단다. 그러면 잡지사의 기자가 그것을 취재하고 기사화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주인공이 그 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는 갑작스레 불어난 물 때문에 계곡에 놀러갔다가 부모를 잃은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주인공이 취직을 하여 흉가에 취재를 떠나기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 이후 다섯 개의 이야기는 ‘밤의 이야기꾼들’ 모임에서 나온 것들이다.

 

  『과부들』은 메리 워튼의 소설 ‘마루 밑 바로우어즈 The Borrowers, 1952’의 호러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제목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뭘 가져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남자들에게는 악몽이 될……. 그러니까 부인에게 잘 해야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도플갱어』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그에게 도플갱어를 보았다는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도플갱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계속해서 성형수술을 받고, 언젠가 살해당할 것이라 두려워한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홈, 스위트 홈』이 바로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 이야기이다. 이사 온 첫날부터 전에 살던 사람의 스토킹 짓에 시달리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제일 편안하고 휴식 공간이 되어야할 집이 가장 두렵고 들어가기 무서운 곳이 되어버린다면? 아, 진짜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면서 엄마에게 언제 들어오시냐고 전화하고 싶었다.

 

  『웃는 여자』는 평생 동안 폭력과 왕따에 시달린 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한 분노를 동물에게 풀던 그녀. 마침내 그녀를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만……. 그 자체로도 흐름이 좋았는데, 왜 갑자기 빨간 마스크 이야기로 바뀌었는지 아쉽기만 하다. 그 전까지의 긴장감이나 집중력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눈의 여왕』에서는 저주에 걸린 마을이 나온다. 예전에 저질렀던 남자들의 행위 때문에 저주를 받은 마을에서 10년마다 여자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다루고 있다. 아들은 집안을 이어야하기 때문에 여자아이를 바친단다. 미친 것들. 저주를 받게 된 계기가 남자들의 일그러진 성욕 때문인데, 그 대가를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들이 치러야한다. 남자아이는 집안을 이어야하니까. 사랑이 두려움과 저주를 이긴다고? 결국 여자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 읽으면서 짜증이 났다.

 

  『그날 밤의 폭우』는 프롤로그와 이어진다. 살아남은 아이가 이후 겪은 경험을 다루고 있다.

 

  『월간 풍문』은 에필로그라고 해야 할까? 취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에게 새로운 임무가 맡겨진다. 2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이다.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다니, 작가의 이름을 꼭 기억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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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양국일.양국명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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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양국일, 양국명

 

 

 

 

  형제 작가라고 한다. 각자 따로 글을 쓰기도 하고, 같이 쓰기도 하나보다. 문득 엘러리 퀸이 떠올랐다. 그들은 사촌이었다.

 

  외딴 산 속에 명문 예술 고등학교가 하나 있다. 그곳에 전학을 오게 된 태인은 첫 날부터 이상한 경험을 한다. 학교로 오는 산길에서 그를 미행하는 것 같은 기분 나쁜 형체를 보기도 하고, 그를 보자마자 이 학교를 떠나라며, 마녀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게다가 자신이 쓰는 침대가 죽은 은호라는 학생의 것이라는 사실에 그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우연히 은호가 남긴 비밀 일기를 발견한 태인은 이 학교에 심상치 않은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차린다. 룸메이트 지원의 소개로 미스터리 클럽 '이니그마'에 가입하게 된 태인은 서서히 위험에 노출되는데…….

 

  시작 부분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비슷한 분위기의 글을 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온다 리쿠의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麥の海に沈む果實, 2000'다. 외딴 곳에 있는 기숙사 학교, 비밀을 숨기고 있는 교직원들, 어딘지 모르게 비정상적이면서 사춘기 특유의 불만과 예민함을 간직한 학생들. 문장은 확연히 다르지만, 설정을 읽는 순간 저 책이 떠올랐다. 하지만 베일에 싸인 기숙학교에 관한 작품은 많으니까…….

 

  이 책은 태인이 전학 와 5일 동안 겪은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이 학교에 일 년을 넘게 다니면서 해결 못한 일을, 그는 주인공 버프로 단 5일 만에 끝내버린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게 된 것에는 태인의 성격이 크게 작용했다. 여러 학교에서 사고를 치면서 전학을 다니면서 닦은 행동력도 있었고, 이번 학교가 마지막이지만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과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영향을 준 것 같다.

 

  학교에서 교장과 개인 면담을 가진 학생들의 얼굴이 비슷해진다는 부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획일화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학생이라는 위치는 참 애매모호하다. 개개인의 적성이나 특기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획일적으로 교육을 받아야한다. 어릴 적에는 당연히 그래야하는 줄 알고 따랐지만, 점차 머리가 크면서 의문이 생긴다. 왜 이걸 배워야하지? 난 이것보다는 저게 더 하고 싶은데! 난 저걸 더 잘하는데! 이런 고민과 갈등이 생기지만, 한국의 교육은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학생들조차 대학 입시 공부를 해야 한다.

 

  이 학교의 수업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아무런 질문도 반론도 없이 교사가 혼자 진행해간다. 얼굴이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 아이들이 조용히 듣기만 하는 수업. 어쩌면 한국의 교육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교장과 면담을 받는 학생들은 거의 다 학교에서 겉돌거나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다양성을 철저하게 죽이고 개성을 말살시키며 통제하기 쉽게 아이들을 만드는 것. 갑자기 잭 피니의 소설 '바디 스내처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1955'가 떠올랐다.

 

  이야기는 태인이 비밀을 밝혀내는 과정을 통해 엄청난 떡밥을 날리면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과연 교장과 선생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라진 아이들은 어떻게 된 걸까? 한 달에 한 번씩 모교를 찾아오는 졸업생들은 도대체 뭘까? 학교 주위를 맴도는 형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떻게 아이들은 면담만 끝나면 싹 달라질까? 그리고 배신자는 누구일까?

 

  나름 추측과 추리를 하면서 읽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아쉬운 점은 학교가 위치한 숲의 전설을 너무 일찍 소개한 것이다. 그게 앞부분에 들어있어서, 교장과 선생들의 정체를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나중에 은호가 남긴 일기라든지 그가 읽던 책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제목인 '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한참 생각했다. 떼어내고 싶은 존재이자,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언제든지 약한 면을 공격할 준비가 된 존재, 악몽을 꾸게 하는 존재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내고 키워낸 존재.

 

  과연 태인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이 맞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 존재는 그가 약해지거나 방심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내 주위에도 내가 만들어낸 악령이 배회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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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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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迷宮

  작가 - 나카무라 후미노리

 

 

 

 

 

  아무 기대 없이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낯익은 향기를 느꼈다. 글자하나하나마다 찍혀있는 점들! 그 순간 작년에 읽은 소설 '왕국'이 떠올랐다. 아, 그 작가구나!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 작품처럼 빠른 전개와 냉소적이면서 가차 없는 성격의 인물들이 등장할까? 역겨울 정도로 가혹한 현실과 시적인 분위기의 문장이 이번에도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주인공 신견은 어린 시절, R이라는 분신을 만든 적이 있다. 어렸던 그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또 다른 자아인 R을 봉인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그럭저럭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나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고 있다. 우연히 중학교 동창이라 기억되는 사나에를 만난 그는, 그녀와의 관계에 차츰 익숙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탐정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뜻밖의 제안을 한다. 사나에가 사귀던 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혹시 그녀가 아는 게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탐정의 태도에 반감을 느낀 주인공이었지만, 결국 그를 돕게 된다.

 

  그러다 주인공은 탐정에게서 사나에가 예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가족 피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농담인 듯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하는 사나에를 보면서, 주인공은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음울함 모두를 분신에게 떠넘기고, 모든 것을 잊은 채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아무리 쾌활하고 밝은 사람이라도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뭔가가 한두 가지씩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흑역사일 수도 있고,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신견과 사나에 역시 그런 비밀이 있다.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어린 나이였기에 그 둘은 서서히 자기 자신을 감춰야 했다. 신견은 R에게 모든 부정적인 면을 떠넘기는 것으로, 사나에는 수면제가 든 주스를 마시는 것으로 그 사실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절대로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 확실히 잊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 어두움은 불현듯 자신이 건재함을 일깨운다. 그러면 그들은 불안해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이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는 것도, 사나에가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비슷한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어둠과 같은 어린 시절을 겪었으니까 말이다. 주인공은 그렇기에 사나에 가족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고자 했고, 사나에는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줄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주인공이 사나에 가족의 비밀을 듣는 순간, 사나에의 어둠을 마주하는 순간, 그제야 그는 잊고 싶었던 자신의 어둠을 받아들인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인간은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눈에 보이지 않게 미뤄두거나 미봉책으로 덮어두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인공은 그제야 행복을 느끼고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나에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은 무척이나 끔찍했다. 어쩌다가 그녀는 그런 일을 겪어야 했을까? 잘못된 만남이 잘못된 인연을 만들고, 그 잘못된 인연이 거짓 포장되어 사랑이라 이름이 붙여지면서부터일까? 아니면 한 사람의 일방적인 집착이 다른 사람의 포기와 좌절을 양분삼아 자랐기 때문일까? 게다가 그 집착은 대를 이어가면서 더더욱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 희생자가 힘없는 어린아이와 여성이라는 점이 제일 화가 났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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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시계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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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Clocks, 1963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속기 타이피스트 셰일라는 고객의 요청으로 어느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것은 신원불명의 남자 시체와 네 개의 시계였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은 타이피스트를 부르지 않았다는 집 주인의 주장과, 현장에 있던 시계가 한 개 사라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게다가 셰일라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다른 타이피스트마저 살해당하자,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결국 우연히 그 사건에 휘말린 콜린이 포와로에게 조언을 요청한다. 그는 배틀 총경의 아들로, 스파이를 잡기 위해 근처를 탐색하다가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읽는 내내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 것인지 궁금했고, 결말을 읽으면서는 놀라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허탈했던 책이다. 거기다 우연이 너무 겹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너무 자세히 밝히면 모든 것을 다 까발리는 거 같아서 패스하려니, 감상을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콜린이 수사하던 스파이와 연쇄 살인이 연관이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토미와 터펜서 부부가 나왔던 ‘N 또는 M N or M?, 1941'과 너무 흡사해질 것 같았다. 물론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흐음.

 

  그러다가 스파이 얘기는 쏙 들어갔다. 아, 이건 상관없는 거구나. 그러다가 잉? 아니 어떻게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건 너무 지나친 우연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포와로의 논리에서 우연이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마지막 콜린의 사건 부분은 아무래도 우연 같다. 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그런 함정을 팠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걸 알 정도면 영국 정보부를 능가하는 건데…….

 

  어쩐지 포와로가 귀엽게 나왔다. 처음에는 자신은 절대로 집밖으로 나와 사건 현장을 둘러보지 않을 거라고 콜린에게 선언한다. 그런데 나중에 사건이 일어난 지역으로 며칠 묵으러 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파트를 수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단다. 흐응, 따, 딱히 너를 위해서 현장 근처로 온 게 아니야. 아파트 수리 때문이라고! 자꾸 물어보지 마! 나도 인간이니까 호기심이 생길 수 있잖아! 츤데레라고 해야 하나? 아, 완전 귀엽다!

 

  그나저나 포와로의 신문에 대한 견해가 흥미롭다.

 

  “의자에 앉아서 신문기사를 읽기만 하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사실이란 정확해야만 하는데 신문기사가 정확한 경우는 극히 드문 법이니 말이오.”-p.279

 

  이 책이 1963년도에 나왔는데, 언론의 정확성에 관한 논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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