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타고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광용 옮김 / 해문출판사 / 198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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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aken at the Flood, 1948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부유한 자산가 고든 클로드가 2차 대전 때 있던 런던 공습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이제 남은 것은 엄청난 재산과 얼마 전에 결혼한 연하의 부인 로절린, 그리고 그의 돈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유산을 받을 거라 생각했던 친척들이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그의 뒷바라지로 살아왔던 친척들은 이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로절린의 죽음뿐이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로절린의 첫 번째 남편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친척들은 로절린과 클로드의 결혼이 무효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 증거를 갖고 있다는 남자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모든 증거는 로절린의 오빠인 데이비드를 가리킨다. 이때 포와로가 개입하는데…….

 

  읽으면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책이었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와로가 왜 이딴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을 상대해야하는지 기가 찼다.

 

  클로드의 친척들이 너무도 뻔뻔스럽고 재수가 없어서, 끝까지 읽기가 싫었다. 대충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게 눈에 보여서 더 싫었다. 평생 자기 힘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그들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고든 클로드를 사랑하고 고마워한 게 아니라, 그의 돈이 고마웠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하고 불쌍한 고든 클로드. 친척들이 그에게 잘해준 건, 그들에게 그가 생활비를 대주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그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돈을 로절린이 갖게 되자, 화가 났다. 게다가 로절린의 오빠 데이비드는 고든과 달리 그들에게 생활비를 대주지 않았다. 그러면 각자 알아서 살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로절린이 죽기를 빌었다. 아주 그냥 개념이라고는 없는 족속들이었다. 진짜 짜증났다.

 

  게다가 그나마 쓸 만한 머리와 개념을 가졌다고 생각한 린마저 후반부에 가서는 이상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처음에 로절린에게 기대려는 친척들을 부끄러워했다. 스스로 뭔가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오, 얘가 가문을 일으키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가졌다.

 

  그녀는 전쟁에 참가하고 제대를 한 여성이다. 그래서일까? 전쟁을 피해 시골에서 농장을 말아먹고 있는 사촌이자 약혼자인 롤리의 무사태평함과 무사안일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위험해 보이는 나쁜 남자 스타일의 데이비드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롤리는 절대로 그녀를 뺏길 수 없다며, 그녀를 공격한다. 남에게 주느니 아무도 못 갖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녀의 목을 조른다.

 

  그런데 포와로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그녀는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대사를 롤리에게 내뱉는다. "난 그때야 비로소 내가 당신의 여자라는 걸 알았어요! 이제 나는 당신의 여자예요, 롤리!" 그 부분을 읽으면서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이 집안은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유전자가 흐르는 모양이다. 아니, 이 무슨 미친 X같은! 병신 같은 호구력도 그 집안의 유전인가보다. 설마 린은 SM 플레이를 좋아하는 여자였나? 맞으면서 흥분하고 쾌감을 느끼나? 그래서 그런 거야? 롤리의 목 조름이 엄청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응?

 

  게다가 사건의 해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연히 사고로 사람이 죽은 게 장난인가? 과실치사라는 게 그 당시는 없었나? 아니 왜 그 사람은 안 잡아가지? 뭔가 이상했다. 이건 크리스티가 공정성을 잃고 적은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살인만 죄는 아니잖아? 과실치사도 죄고, 사기공모도 죄잖아? 왜 그 사람만 잡아가는 건데!

 

  등장인물의 성격도 그렇고 사건의 진행도 그렇고, 무척이나 읽기 힘든 책이었다. 거기에 후반부에 나오는 린의 이해 불가능한 대사는 정점을 찍었다. 아,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크리스티에게도 포와로에게도.

 

  그나마 건진 건, 포와로의 이 대사뿐이다.

  '강해지지 않으면 세상은 살기가 더욱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는 겁니다.' -p.202

 

 

 

  오타 발견

  64페이지 밑에서 네 번째 줄, '걱정하해요.' 걱정마세요라고 적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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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터데일 미스터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인숙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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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Listerdale Mystery and Other Stories, 1934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총 10개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포와로나 미스 마플, 배틀 총경은 물론 톰과 터펜서 부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도 있으며, 또 다른 것은 살인은 일어나지 않지만 범죄가 일어나긴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남녀가 만나 로맨스가 싹트기도 한다. 그러니까 솔로가 만나서 커플로 끝나는, 모 포털 사이트의 표현법에 따르면 배드 엔딩으로 끝나는 공포 이야기모음집이다.

 

  『리스터데일 경의 수수께끼』는 수수께끼처럼 사라진 리스터데일 경의 저택에서 살게 된 한 빈센트 부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의 아들인 루퍼트가 과연 리스터데일 경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을지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 아, 로맨스에는 나이구별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은 이야기다.

 

  『기차에서 만난 아가씨』에서 조지는 우연히 기차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한 아가씨를 도와주게 된다. 그런데 이후 그에게 위험이 닥치는데……. 아니, 상대가 어떤 사람인줄 알고 도와달라고 하면 그냥 덥석 수락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난생처음 보는데 말이다. 역시 여자는 예쁘고 볼 일인가보다. 쳇.

 

  『6펜스의 노래』에서는 왕실 변호사인 팰리저 경이 오래 전에 알았던 한 소녀의 부탁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사건의 해결에 힌트를 얻은 식당 이름이 '스물네 마리의 검은 지빠귀'인데, 이곳은 포와로도 가끔 오는 곳이다. 어쩌면 두 사람은 식당에서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에드워드 로빈슨은 사나이다』는 퀴즈 응모에 당첨된 돈으로 멋진 차를 산 에드워드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유약했던 그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을 때, 그의 애인인 잔소리꾼 모드의 반응이 볼만하다.

 

  『취직자리를 찾는 제인』에서 제인은 일자리를 찾다가, 황녀의 대역을 맡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납치를 당하는 것과 동시에 함정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사건의 해결이 좀 흐지부지한 느낌이 드는 에피소드이다. 남자와 키스하는 걸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일요일에는 과일을』은 장에서 산 과일 바구니 밑에서 발견한 목걸이에 관한 이야기다. 마침 그 때, 값비싼 목걸이가 도난당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도로시와 에드워드는 이 목걸이가 그 목걸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데……. 아, 참으로 깔끔하고 귀여운 이야기였다.

 

  『이스트우드의 모험』도 역시 생면부지의 예쁜 여자가 도움을 요청하자 냉큼 수락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설마 남자들이 여자에게 홀라당 넘어가는 일이 많으니까, 그걸 미화시키기 위해 '신사의 나라' 어쩌고 하는 걸까? '우리나라 남자들은 호구에 병신이에요.'라고 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신사라서 레이디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답니다.'라고 하는 게 더 보기엔 그럴듯하다. 그렇다고 내재된 호구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황금의 공』은 내가 이해하기에 난해한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가 나온다. 그와 그녀가 아는 사이라고 나온 적이 없는데, 단지 외로워 보인다는 이유로 길에서 그를 헌팅하고 청혼을 한다. 이 여자 뭐지?

 

  『라자의 에메랄드』는 줄을 기다리기 귀찮아서 몰래 들어간, 해수욕장 개인 탈의실에서 발견한 보석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문득 '인실좆'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 공연』은 무척이나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오페라 '토스카'의 노래와 같이 들으면 더 슬프다. 어쩌면 크리스티가 '토스카'를 약간 각색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읽으면서 '허허'하고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그냥 허무해서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티의 기발한 상상력이 드러나긴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야기가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은 단편집 중에서 제일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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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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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leeping Murder, 1976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아가일 때 뉴질랜드로 건너가서 성장한 그웬다. 남편 가일스와 영국에서 살 집을 구하는데, 마침 눈에 들어오는 해변 저택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곳을 수리하니 잠긴 문이 나오고, 이 방에는 어떤 무늬가 어울릴 거라 생각하고 벽을 뜯으니 자신이 생각한 무늬의 벽지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친구들과 연극을 구경하러 간 날, 그녀는 봉인되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집에서 아기였던 그웬다는 살인을 목격했다. 그 곳은 바로 아주 오래전에 그녀와 아빠, 그리고 새어머니가 살았던 집이었다. 물론 그녀는 너무 어려서 아무 기억도 못하지만 말이다. 그웬다는 가일스와 함께 자신이 본 기억이 진실인지, 행방불명되었다는 새어머니와 병으로 죽어간 아버지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집필한 때와 발표한 시기가 다르다. 이 책은 1976년, 그러니까 애거서 크리스티가 사망한 다음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그녀가 집필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깨어진 거울 The Mirror Crack'd from Side to Side, 1962’에서는 몇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 밴트리 대령이 아직 살아있다고 나온다. 그녀가 왜 이 작품을 숨기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놓기엔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고치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잘 썼다는 느낌에 마지막까지 아끼느라 그랬는지는 아마 며느리도 모를 것이다.

 

  크리스티의 시리즈를 읽다보면, 그녀가 창조한 탐정에 대해 이런저런 표현을 적어놓은 걸 볼 수 있다. 포와로에 대해서는 너무 나이가 많다거나 자아도취에 빠져있다는 평이 나온다. 미스 마플 역시 동네의 소문을 몰고 다니는 늙은 고양이라는 평이 있는데, 이번 책에서 나온 말이 재미있었다. “적어도 세 군의 경찰서장을 손 안에 쥐고 좌지우지한답니다. 우리 서장이야 아직 그런 꼴이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그 서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사건을 척척 해결해주는 지원군을 얻은 것이니까 운이 좋다고 해야겠다.

 

  19년 전, 다른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 여인, 불륜을 저지른 부인을 자기가 죽였다는 망상에 빠져 자살한 남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시기했던, 악의로 똘똘 뭉친 한 남자. 와, 읽으면서 열 받아 죽는 줄 알았다. 개XX라고 욕하고 싶었지만, 그건 개한테도 욕이 될 거 같아서 겨우 참았다. 개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딴 놈과 동급이 되야 한단 말인가! 이건 개에 대한 모욕이다. 집착과 사랑은 한끝차이라고 하지만, 이놈은 거기에 ‘미친’을 더해야한다. 아주 그냥 계획적으로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데 와 진짜, 내가 욕을 못 배운 게 이렇게 한이 될 줄 몰랐다. 음, 욕을 좀 배워놓아야겠다. 그래야 이런 상황에서 아주 그냥 죽여주게 해줄 수 있을 테니까.

 

  그웬다가 사건을 처음 파헤치기로 결심했을 때, 미스 마플은 그리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친구인 헤이독 의사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잠자는 살인은 내버려두라.’ 이게 두 사람의 의견이었다. 헤이독 의사는 몰라도, 미스 마플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의외였다.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 아니었던가? 하지만 젊은 커플이 여기저기 들쑤시는 바람에 범인이 불안함을 느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걸 보니, 미스 마플의 생각도 옳은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애꿎은 사람이 살해당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마치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충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나쁜 미친놈이 죗값을 치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운 채 편하게 살아가는 건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그런 놈은 잡혀서 사형대에 세워져야한다. 미스 마플이 그놈을 잡아서 다행이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나야하는 법이다. 그게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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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발 4시 50분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심윤옥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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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4:50 from Paddington, 1957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 마플의 친구인 맥길리커디 부인은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기차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지만, 기차역이나 기찻길 그 어디에서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추리 소설을 읽다가 꿈을 꿨을 거라 생각하지만, 미스 마플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녀는 절대로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도와 기차에 대해 잘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미스 마플은 시체가 숨겨졌을 가장 그럴듯한 장소를 찾아낸다. 자신이 직접 뛰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프로 가정부인 루시를 그곳으로 보낸다. 저택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주변을 뒤지던 루시는 마침내 시체를 발견하고…….

 

  역시 집안의 재산을 틀어쥔 노인과 그를 간병하며 살고 있는 딸, 범죄와 연이 닿아있는 아들, 괜찮은 집 여성과 결혼하여 겉으로는 건실하게 살아가는 아들 그리고 제멋대로 살아온 또 다른 아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중심으로 사위와 손자, 딸과 연인관계인 의사, 그리고 시체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여인이 얽히고설키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과연 죽은 그녀는 누구이며 왜 그 집안에 숨겨져 있었을까?

 

  미스 마플은 크래독 경감과 루시의 조사를 토대로 사건을 추리해간다. 확실히 그녀는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하긴 나이가 있으니 젊은 사람들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힘들 것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미스 마플의 수족이 되어 움직인 사람은 루시 아일리스배로라는 아가씨이다. 외모나 머리 회전이 남들에 뒤지지 않고, 청소면 청소, 요리면 요리,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여성이다. 미스 마플의 황당한 부탁, 대저택과 그 인근 부지를 뒤져서 시체를 찾아달라는 제의에 호기심을 느끼고 사건에 뛰어든다. 물론 사건 해결보다는 가정부라는 직책에 더 책임감을 느낀 것 같지만 말이다. 그녀는 저택에서 일하며 무려 세 남자에게서 프러포즈를 받는다. 특히 한 소년은 그녀에게 자신의 새어머니가 되어달라고 간청을 하기까지 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미스 마플과 크래독 경감은 그녀가 과연 누구를 선택했을지 얘기를 나눈다.

 

  나 같으면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자기만의 생활을 계속 즐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세 남자 다 그리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애인이 아니라 보모 내지는 엄마 같은 존재니까. 엄마 같은 존재를 원하면 그냥 엄마랑 계속 살 것이지, 왜 애꿎은 젊은 여자를 엄마의 대체물로 만들려는 건지 모르겠다. 제발 그녀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기를 빌 뿐이다.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은 미스 마플의 친구에 대한 믿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평소 부풀리기 좋아하는 그 사람의 성격 때문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맥길리커디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진짜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루시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하며 시체 찾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미스 마플은 맹목적으로 친구라고 두둔하는 사람이 아니다. 알고 지내온 기간 동안 상대가 해온 말이나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니 미스 마플이 전적으로 말을 믿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동안 실없는 소리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주고 아니고는 평소에 내가 내뱉는 말과 보여주는 행동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야겠다. 그렇다고 평상시에도 진지진지열매를 먹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하고, 하지 않아야할 때는 말을 삼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런데 191쪽에서 끝에서 네 번째 줄, ‘위장장해’가 아닌 ‘위장장애’가 맞는 표기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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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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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夢幻花, 2013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감상문에는 줄거리를 요약해서 적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은 등장인물과 그 관계가 약간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마다 각각 갖고 있는 사연도 한두 개는 되고, 어떤 것은 연결되는 것도 있고 겹치기까지 한다. 그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자리를 찾아가면서, 책은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자살한다. 얼마 후, 그의 할아버지가 살해당한다. 한 집안에 연이어 일어난 불행한 사고로 볼 수 있지만, 노인이 기르던 노란색 나팔꽃 화분이 사라지면서 사건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신분을 숨기며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청 공무원 요스케. 죽은 노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형사 하야세. 할아버지의 화분에 담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행동하는 손녀 리노. 그리고 아버지와 형이 숨기는 비밀이 뭔지 밝히려는 청년 소타. 이들이 따로 또 같이 행동하고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자연 상태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노란색 나팔꽃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와 동시에 3대에 걸친 두 집안의 원죄와 같은 가업과 50년 전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도 파헤쳐진다.

 

  이 작가의 다른 추리소설을 여러 권 읽어봤지만, 이번 책은 좀 당황스러웠다.

 

  유가와 교수가 등장하는 단편들이야 최신 과학 기술을 광고하는 느낌으로 읽었고, 가가 형사가 나오는 소설들은 사건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라든지 숨겨진 사연들이 더 부각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들 자연스레 사건에 그것들이 녹아들면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 책은 중반까지는 그런 흐름을 잘 이어가다가, 갑자기 결말로 뛰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노인을 죽였냐가 아니라, '노란 나팔꽃의 정체가 뭔가?'여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을 죽인 사람을 찾아 헤맨 것은 엄밀히 따지면 형사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꽃의 행방을 알고자 하거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형사는 메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머리를 땋을 때 세 가닥으로 나눈 머리카락의 양이 비슷하지 않으면, 완성된 머리는 상당히 이상하다. 한 가닥이 너무 많으면 당연히 다른 가닥이 적기 마련이라, 땋은 머리가 가지런하지가 않고 울퉁불퉁하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은 이야기도 그렇다. 당연히 메인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겠지만, 이 책에서 각각의 인물들에게 분배한 분량은 꽤나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많은 가닥들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튀어나오는 부분 없이 매끄러운 땋은 머리가 완성되었다. 그 복잡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어떻게 그것들을 흔들림 없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모을 수 있는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범인을 밝히는 부분이 지금까지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가,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오른 느낌이라, 아쉽기만 했다. 꽃의 정체에만 너무 집중해서 범인을 제대로 찾을 힌트를 놓쳐버린 걸까? 설마 이게 작가의 의도? 그런 거라면 작가의 트릭은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이 꽃에만 집착을 하다 보니, 범인을 찾는 형사에게는 당연히 시선이 덜 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형사도 나중에는 꽃에 관심을 가졌으니……. 음, 작가가 나쁜 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등장하는 사람들마다 아픈 사연이 한두 개씩은 다 있었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가면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고발도 같이 하고 있다. 하야세와 그 아들을 통해서는 이혼 가정이 겪는 갈등과 그 극복에 대해서, 리노와 소타의 경우에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그리고 요스케의 입을 통해서는 책임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요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받아들여야 한다. 속된 말로 하면,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요스케에게는 가업처럼 된 노란 나팔꽃이었고, 소타에게는 전공인 원자력이었다. 일본과 원자력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있다. 후쿠시마. 소타는 다들 기피하는 원자력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어쩌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황하는 일본인들에게 작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욕망과 책임감이 정비례하지 못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책이었다. 욕망에 사로잡힌 누군가는 금단의 꽃을 피워냈고, 그것에 책임을 진 다른 누군가는 뒤처리를 해야 했다. 어쩌면 작가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 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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