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의 비밀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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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 Caribbean Mystery, 1964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어떻게 보면 ‘복수의 여신 Nemesis, 1971’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 마플이 나오는 소설이다. 미스 마플이 카리브 해에 있는 어느 휴양지에서 해결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대부호 래필과 인연이 닿아, ‘복수의 여신’에서 그의 사후 사건을 의뢰받는다.

 

  카리브 해의 어느 섬에 있는 휴양지. 한 소령이 예전에 자기가 겪거나 보았던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떠벌린다. 연쇄 살인범이라 의심이 되는 남자의 얘기를 한 날, 소령이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령의 소지품을 조사하던 미스 마플은 그가 살해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살해되는데…….

 

  다른 책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이야기의 범인은 진짜 이기적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긴다. 거기다 매너 좋고, 화술 능수능란하고, 연기는 얼마나 잘하는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상을 겪어봐도 넘어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단 한 사람, 미스 마플만 빼고.

 

  이번 이야기 역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BBC 드라마로 본 적이 있다. 거기서는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부두교의 음울함과 신비로움을 더 부각시켰다. 그래서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흑인은 무조건 부두교라는 편견을 더 박히게 만들었던 에피소드였다.

 

  이 책은 사건 자체보다는, 미스 마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 더 생각할 게 많았다.

 

  ‘나 역시 당신에게 내가 세인트 메어리 미드에서 살고 있다고 했지만 당신은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즉, 말하자면 당신은 그곳을 직접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안 그런가요?’ -p.200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뭔가 엄청난 걸 본 기분이 들었다. 과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 중에, 진짜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남이 하는 말을 듣고 나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건 아닌지, 남의 생각이나 의견을 내 의견이나 내 생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그래도 요즘처럼 너무도 많은 정보가 흘러넘치는, 뭐가 쓸모 있고 쓸모없는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조금은 고민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문장이 시선을 끌었다.

 

  ‘실연이라든가 단순한 불안이나 근심 때문에 자살해 버리는 것은 거의가 다 젊은이들이랍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흥미진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코 그러지를 않지요.’ -p.177

 

  저 부분을 읽는 순간, 자살한 노인들에 대한 뉴스가 떠올랐다. 미스 마플의 말이 100% 진리는 아니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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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타 미스터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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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Regatta Mystery and Other Stories, 1939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 단편집은 어딘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책이었다. 포와로, 미스 마플 그리고 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7개이고 나머지 3개는 뭐라고 정의해야할 지 미묘한 이야기이다.

 

  우선 포와로가 나오는 4개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리가타 미스터리』는 간단한 손재주를 이용한 보석 도난 사건을 포와로가 해결하는 내용이다. 사람이 얼마나 겉모습에 속기 쉬운지 보여주고 있다.

 

  『당신은 정원을 어떻게 가꾸시나요?』는 어쩐지 ‘핼로윈 파티 Hallowe'en Party, 1969’가 떠오르는 설정이었다. 부유한 여자가 돈이 많으면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돈에 쪼들리는 조카가 있으면…….

 

  『노란 붓꽃』는 딱 보자마자 ‘잊을 수 없는 죽음 Remembered Death, 1945’이 생각났다. 사건의 전개라든지 설정, 인물의 구도가 그 책과 똑같았다. 단편을 먼저 만들어 보고 마음에 들어서 장편으로 발전시킨 예인가보다.

 

  『해상의 비극』은 ‘나일 강의 죽음 Death on the Nile, 1937’과 흡사했다. 돈 많은 여인과 그녀에게 쩔쩔매는 남편. 장편과는 인물의 성격이 좀 달라졌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하지만 이 단편이 더 늦게 나왔다. 흐음, 장편을 줄여본 걸까?

 

  『클래펌 요리사의 모험』는 음, 어디선가 비슷한 설정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감상문을 작성하기 전에 읽은 책인가 보다. 으음, 기억을 더듬어 봐도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짜증난다.

 

  『마플 양, 이야기를 하다』는 제목 그대로 미스 마플이 자신이 해결한 사건을 얘기하는 단편이다. 한 여자가 살해당한다. 그런데 생전에 너무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뻥을 쳐놓아서 아무도 그녀가 왜 죽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핼로윈 파티 Hallowe'en Party, 1969’에서 살해당한 소녀가 떠오르는 성격이다.

 

  『폴렌사 만의 사건』은 파커 파인의 단편집을 읽었다면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 추측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드는 단편이다.

 

  『어두운 거울 속에』와『날개가 부르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 심령술 모임』은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앗! 세상에 이렇게 기묘한 일이’같은 시리즈를 보는 기분이었다. 심령술이라든지 예언이라든지 예지몽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걸 교묘히 꾸며서 트릭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비롭게 마무리를 지었다. 아마 크리스티가 다른 분위기의 글을 써보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난 별로…….

 

  오타 발견!

 

  그 얼 그리고 날쌔게 아이를 안았다. -p.257

 

  ‘그 얼’ 다음에 도대체 어떤 글자나 문장이 들어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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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개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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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Under Dog, 1929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 전집 후반부에는 신기하게도 단편집이 몰려있다. 얼마 전에 읽은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The Adventure of the Christmas Pudding, 1960’, 조만간 읽을 ‘리가타 미스터리 The Regatta Mystery, 1939’ 그리고 이 책까지 합해서 세 권이나 이달에 읽을 목록에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총 8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있고, 모두 다 포와로가 나온다.

 


  『패배한 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포와로의 고찰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람들의 불안함을 이용해서 범인을 자극하는데, 어쩐지 그 방법이 엘러리 퀸의 단편 ‘미친 티 파티’를 연상시킨다. 그래도 ‘미친 티 파티’의 엘러리 퀸은 진짜 얄미웠지만, 포와로는 그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었다.

 


  여기서 애스트웰 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항상 짖는 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 법이죠.” 하긴 애견 카페에서 들었는데,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짖는 개는 사실 사람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만히 참고 있다가 열 받아서 공격하는 놈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플리머스 급행열차』는 장편 ‘푸른 열차의 죽음 The Mystery of the Blue Train, 1928’과 너무 흡사하다. 마치 이 단편에 여러 가지 살을 덧붙여서 장편으로 만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출판된 연도가……흐음. 보석과 사랑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야기이다.

 


  『승전무도회 사건』은 사람의 시각이 얼마나 부적합한 증인인지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각적 착각으로 완전 범죄를 꿈꾸던 범인이 나온다. 물론 포와로는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는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애꿎은 커플을 죽인 범죄자에게 무척 화가 난 단편이었다.

 


  『마켓 베이징의 수수께끼』는 예전에 읽은 크리스티의 단편과 수법이 비슷했다. 뭔지 제목을 말하면 범인의 정체를 밝히면 범인의 정체가 금방 드러나니까 패스. 사소한 것 하나, 심지어 냄새 하나도 놓치지 않는 포와로가 무서워졌다.

 


  『르미서리어 가문의 상속』은 장남은 가문을 잇기 전에 죽어버리는 저주에 걸린 가문이 나온다. 그리고 그 저주대로 어린 소년의 목숨이 위협을 받는다. 진짜로 20세기에 저주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산을 노린 누군가의 범행인지, 포와로가 나선다.

 


  『콘월의 수수께끼』는 독살당하고 있다는 의혹을 가진 중년 부인이 의뢰를 해온다. 하지만 포와로가 수사를 시작하려고 도착하는 순간, 그녀는 이미 죽은 뒤였다. 그녀에게 매일 조금씩 독을 먹인 사람은 누구일까? 돈 때문에 냉혹하게 사람을 죽이는 진짜 나쁜 인간이 등장한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클럽의 킹』은 살인 사건에 얽힌 아름다운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다. 진짜로 그녀가 사람을 죽인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주장대로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인지. 포와로는 어느 나라 왕자의 의뢰로 사건에 뛰어든다. 여기서 유전에 대해 약간 언급이 나오는데, 좀 웃겼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 같은 것으로도 상류계급 출신인 것이 증명되고 있소.”라니. 아, 진짜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수함의 설계도』에서 영국 해군은 국가 기밀 서류를 잃어버린다. 저번에는 수상도 잃어버리더니! 나라 기강이 좀 엉망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국기 기말 서류를 도난당한 적이 있다. 이 나라, 상습적으로 서류를 잃어버린다. 유능한 탐정이 있다고 방심한 모양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런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스캔들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과거야 어떻든 현재 그 사람이 잘 하고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과거의 일을 문제 삼아 잘하고 있는 사람을 쫓아내야 하는 걸까?

 


  크리스티나 포와로, 그리고 미스 마플은 유전의 힘을 믿고 있다. 그런데 과거는? 어쩐지 모순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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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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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Adventure of the Christmas Pudding and a Selection of Entrees, 1960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원래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6개의 단편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책에 중복되어 수록된 두 개는 빼버렸다고 한다.

 

  특이하게 이 작품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머리말이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녀는 이 책을 크리스마스 요리책으로 생각했고, 각각의 단편들을 요리로 상상했다. 주된 요리로는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과 '스페인 궤짝의 비밀', 앙트레로는 '꿈'과 '그린쇼의 아방궁'을 넣었다. 소르베(셔벗)에 해당하는 작품은 아쉽게도 들어있지 않다.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은 어느 미개국의 왕위 계승자가 도난당한 보석을 되찾아달라고 포와로에게 의뢰하면서 시작한다. 보석을 가져간 여자가 영국 어느 교외에 있는 저택에 머물 것이라는 첩보에, 포와로는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에게 푸딩을 먹지 말라는 경고의 쪽지가 날아온다.

 

  거의 3분의 1 이상이 영국의 크리스마스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인터넷에서는 영국 요리가 맛이 없고 형편없다는 글들이 가끔 올라오는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다. 범인을 찾아내는 것보다, 요리를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가득한 책이었다. 다만 밤에 배고플 때 읽으면 곤란하다.

 

 

  『스페인 궤짝의 비밀』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인이 등장한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된 여인.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남자들의 시선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녀에게 남자들의 구애는 산소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득 예전에 읽은 엘러리 퀸의 단편과 동기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범행 수법은 확연히 다르지만,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면서 노린 것이 비슷했다.

 

 

  『꿈』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였다. 감히 포와로를 이용해서 완전 범죄를 성립시키려고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범죄자였다. 포와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짓을 하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멍청한 범인 같으니라고. 늙었다고 추리력까지 감퇴된 것은 아닌데.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 단편이었다.

 

 

  『그린쇼의 아방궁』은 얼마 전에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로 보았었다. 물론 단편을 1시간 30분이 넘는 드라마로 만들었기에, 책과는 많이 달랐다. 기본 설정을 많이 바꾸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잘한 다른 소재들이 여러 개 들어가 있었다. 미스 마플의 조카이자 작가인 레이먼드 웨스트가 등장한다. 다른 단편집인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서처럼 그는 범인에게 이용당할 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현명한 아주머니인 미스 마플 덕분에 위기를 넘긴다.

 

  나도 조카들에게 미스 마플처럼은 아니어도, 0.0001%라도 닮은 현명한 고모가 되어야 할 텐데…….

 

  조카인 레이먼드가 살인 사건에 대해 가볍게 얘기하자, 미스 마플이 꾸짖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게 다 전쟁 탓이야. 장례식도 하나의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으니."-p.191

 

  흐음, 그래서 한국도 타인의 죽음이나 희생에 무덤덤한 걸까? 자기가 관련되지 않으면 관심도 주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남의 슬픔의 깊이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걸까? 하지만 누군가의 슬픔의 깊이는 그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인데?

 

  어쩐지 마음이 아픈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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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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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虛ろな十字架, 2014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어린 커플이 있다. 중학생 때 만난 그들은 풋풋한 사랑을 일궈가며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치는데…….

 

  한 부부가 있다. 11년 전, 그들의 어린 딸이 강도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리고 현재, 이혼한 부인인 사요코마저 살해당한다.

 

  부인을 죽였다고 자수한 범인은 어느 노인으로, 돈을 빼앗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딸을 잃은 후, 부인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범죄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면담하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중독에 빠진 사람을 돕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물 장례사를 하고 있는 남편 나카하라는 부인의 살해에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왜 그녀가 살해당해야했는지 밝혀내기로 마음먹는다.

 

  십자가라고 하면 예수가 매달린 형상이나 큰 죄나 고난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십자가에 공허하다는 말이 붙으면, 큰 죄나 고난이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일 거라 추측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쓰였는데, 난 공감하기 힘들었다. 종교적인 의미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이 한 일은 아니지만 타인을 대신해 죄나 고난을 떠맡겠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뜻하는 십자가는, 죄를 지은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감수해야할 처벌을 받는 것이다. 설마 예전 로마 시대에 죄인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그런 의미로 쓴 걸까?

 

  하여간 책 제목인 공허한 십자가는 효과가 별로 없는 형벌제도를 뜻하고 있다. 또한 사요코가 자신이 작성하던 기사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과연 그 처벌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냐고 그녀는 말한다. 나카하라와 사요코의 어린 딸은 가석방 상태인 남자의 손에 살해당했다. 애초에 엄한 법집행을 해서 가석방을 주지 않았거나, 확실히 그가 반성하게 만들지 않았기에 재범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사요코의 논리였다. 또한 피해자들에게도 그들이 받는 처벌의 양은 택도 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피해 가족들에게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길이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지, 사요코는 묻고 있다.

 

  ‘이건 뭐야. 말도 안 돼! 솜방망이 처벌이야, 가해자 인권만 있고 피해자 인권은 없어.’ 재판 결과를 다룬 뉴스를 보면서 종종 드는 생각이다. 한 가정을 망가뜨리고, 한 인간의 남은 평생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처벌은 꼴랑 집행유예……. 과연 그런 판결을 받은 사람 중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중대함을 깨닫고 반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애초에 죄를 뉘우치거나 반성할 심성의 소유자라면 그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법의 형평이 일반 사람이 생각하기에 맞지 않아, 예전에 이런 얘기가 돈 적이 있다. 강간이 망가를 유포시키는 것보다 형이 가벼우니, 차라리 강간을 저지르는 게 낫다고. 거기에 음주 상태면 형이 경감되니 술 먹고 하면 된다고. 강간에 대한 형이 가벼운 것은, 그걸 만드는 입법부나 판단하는 사법부 관련자들이 그런 죄를 많이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그냥 우스갯소리라고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그런 내용들이다. 이런 이야기가 떠돌 정도니, 과연 사람들의 법의 집행을 믿을 수 있을까? 아, 그래서 사람들이 ‘덱스터 Dexter’에 열광했나보다.

 

  이야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분위기답게, 휴머니즘적으로 흘러간다. 발각되지 않았지만 그 죄의 중대함을 깨닫고 반성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등장시켜,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속죄인지 말한다.

 

  내 생각에 법의 처벌을 받고, 형기를 마친 다음에 속죄하면서 살아가는 게 제일인데.

 

  그러고 보니 첫 줄에만 등장하고 존재감이 사라진 어린 커플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겠다. 게이고의 다른 작품인 ‘동급생 同級生’에서도 비슷한 연령대의 커플이 나온다. 보면서 풋풋하고 귀여웠지만 한편으로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다르지만, 두 커플 다 비슷한 시련을 겪었다. 이 멍청한 것들아, 콘돔을 껴라! 응? ‘콘돔주세요’라는 말이 부끄러워서 못 살 거면, 섹스를 하지 마, 이 병신아! 애새끼들이 성교육을 AV로 받았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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