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虛ろな十字架, 2014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어린 커플이 있다. 중학생 때 만난 그들은 풋풋한 사랑을 일궈가며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치는데…….

 

  한 부부가 있다. 11년 전, 그들의 어린 딸이 강도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리고 현재, 이혼한 부인인 사요코마저 살해당한다.

 

  부인을 죽였다고 자수한 범인은 어느 노인으로, 돈을 빼앗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딸을 잃은 후, 부인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범죄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면담하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중독에 빠진 사람을 돕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물 장례사를 하고 있는 남편 나카하라는 부인의 살해에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왜 그녀가 살해당해야했는지 밝혀내기로 마음먹는다.

 

  십자가라고 하면 예수가 매달린 형상이나 큰 죄나 고난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십자가에 공허하다는 말이 붙으면, 큰 죄나 고난이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일 거라 추측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쓰였는데, 난 공감하기 힘들었다. 종교적인 의미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이 한 일은 아니지만 타인을 대신해 죄나 고난을 떠맡겠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뜻하는 십자가는, 죄를 지은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감수해야할 처벌을 받는 것이다. 설마 예전 로마 시대에 죄인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그런 의미로 쓴 걸까?

 

  하여간 책 제목인 공허한 십자가는 효과가 별로 없는 형벌제도를 뜻하고 있다. 또한 사요코가 자신이 작성하던 기사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과연 그 처벌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냐고 그녀는 말한다. 나카하라와 사요코의 어린 딸은 가석방 상태인 남자의 손에 살해당했다. 애초에 엄한 법집행을 해서 가석방을 주지 않았거나, 확실히 그가 반성하게 만들지 않았기에 재범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사요코의 논리였다. 또한 피해자들에게도 그들이 받는 처벌의 양은 택도 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피해 가족들에게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길이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지, 사요코는 묻고 있다.

 

  ‘이건 뭐야. 말도 안 돼! 솜방망이 처벌이야, 가해자 인권만 있고 피해자 인권은 없어.’ 재판 결과를 다룬 뉴스를 보면서 종종 드는 생각이다. 한 가정을 망가뜨리고, 한 인간의 남은 평생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처벌은 꼴랑 집행유예……. 과연 그런 판결을 받은 사람 중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중대함을 깨닫고 반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애초에 죄를 뉘우치거나 반성할 심성의 소유자라면 그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법의 형평이 일반 사람이 생각하기에 맞지 않아, 예전에 이런 얘기가 돈 적이 있다. 강간이 망가를 유포시키는 것보다 형이 가벼우니, 차라리 강간을 저지르는 게 낫다고. 거기에 음주 상태면 형이 경감되니 술 먹고 하면 된다고. 강간에 대한 형이 가벼운 것은, 그걸 만드는 입법부나 판단하는 사법부 관련자들이 그런 죄를 많이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그냥 우스갯소리라고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그런 내용들이다. 이런 이야기가 떠돌 정도니, 과연 사람들의 법의 집행을 믿을 수 있을까? 아, 그래서 사람들이 ‘덱스터 Dexter’에 열광했나보다.

 

  이야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분위기답게, 휴머니즘적으로 흘러간다. 발각되지 않았지만 그 죄의 중대함을 깨닫고 반성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등장시켜,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속죄인지 말한다.

 

  내 생각에 법의 처벌을 받고, 형기를 마친 다음에 속죄하면서 살아가는 게 제일인데.

 

  그러고 보니 첫 줄에만 등장하고 존재감이 사라진 어린 커플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겠다. 게이고의 다른 작품인 ‘동급생 同級生’에서도 비슷한 연령대의 커플이 나온다. 보면서 풋풋하고 귀여웠지만 한편으로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다르지만, 두 커플 다 비슷한 시련을 겪었다. 이 멍청한 것들아, 콘돔을 껴라! 응? ‘콘돔주세요’라는 말이 부끄러워서 못 살 거면, 섹스를 하지 마, 이 병신아! 애새끼들이 성교육을 AV로 받았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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