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A
Caribbean Mystery, 1964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어떻게 보면 ‘복수의 여신 Nemesis, 1971’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 마플이 나오는
소설이다. 미스 마플이 카리브 해에 있는 어느 휴양지에서 해결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대부호 래필과 인연이 닿아, ‘복수의 여신’에서
그의 사후 사건을 의뢰받는다.
카리브 해의 어느 섬에 있는 휴양지. 한 소령이 예전에 자기가 겪거나 보았던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떠벌린다. 연쇄 살인범이라 의심이 되는 남자의 얘기를 한 날, 소령이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령의 소지품을
조사하던 미스 마플은 그가 살해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살해되는데…….
다른 책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이야기의 범인은 진짜 이기적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긴다. 거기다 매너 좋고, 화술 능수능란하고, 연기는 얼마나 잘하는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상을 겪어봐도 넘어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단 한 사람, 미스 마플만
빼고.
이번 이야기 역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BBC 드라마로 본 적이 있다. 거기서는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부두교의 음울함과 신비로움을 더 부각시켰다. 그래서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흑인은 무조건 부두교라는 편견을
더 박히게 만들었던 에피소드였다.
이 책은 사건 자체보다는, 미스 마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 더 생각할 게
많았다.
‘나 역시 당신에게 내가 세인트 메어리 미드에서 살고 있다고 했지만 당신은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즉, 말하자면 당신은 그곳을 직접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안 그런가요?’
-p.200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뭔가 엄청난 걸 본 기분이 들었다. 과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
중에, 진짜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남이 하는 말을 듣고 나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건 아닌지, 남의 생각이나 의견을 내 의견이나 내
생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그래도 요즘처럼 너무도 많은 정보가 흘러넘치는, 뭐가 쓸모 있고 쓸모없는지 구별조차 할 수
없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조금은 고민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문장이 시선을 끌었다.
‘실연이라든가 단순한 불안이나 근심 때문에 자살해 버리는 것은 거의가 다 젊은이들이랍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흥미진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코 그러지를 않지요.’
-p.177
저 부분을 읽는 순간, 자살한 노인들에 대한 뉴스가 떠올랐다. 미스 마플의 말이 100% 진리는
아니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