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진행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폰으로 가끔 듣는다. 팟캐스트 방송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내가 산 책’이라고 하면서 몇 권을 소개하는데 책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흥미롭게 듣곤 한다. 나도 ‘내가 산 책’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난 김에 쓰기로 한다.
내가 2월에 구입한 책 다섯 권이다.
1. 노엄 촘스키,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에 대한 네 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그 네 가지란 다음과 같다.
1장 언어란 무엇인가?
2장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3장 공공선이란 무엇인가?
4장 자연의 신비: 얼마나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세계의 지성인인 저자에 대해 관심이 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책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이다. 촘스키가 인간에 대해 탐구한 것을 기록한 책 같아서다. 인간에 대한 내용이라면 난 무조건 궁금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이 책에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샀다. 그런데 책을 훑어보니 내 수준에 좀 어려운 것을 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끝까지 읽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2장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와 ‘3장 공공선이란 무엇인가?’는 꼭 읽게 될 것 같다. 아니 248쪽으로 되어 있는 두껍지 않은 책이니까 다 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꼭 읽고 말겠다. 어려운 책일수록 다 읽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2. 래리 영 | 브라이언 알렉산더, <끌림의 과학>
‘사랑, 섹스, 모든 끌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표지에 이런 글도 씌어 있다. ‘뇌과학, 신경과학, 사회심리학을 아우르는 인간관계와 성,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라고.
한때 내가 연애 칼럼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다섯 편의 연애 칼럼을 쓰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연애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구나.’라고. 그렇다면 이런 분야는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이다. 괜히 많이 아는 척하고 썼다가 나의 바닥을 드러내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연애 칼럼을 잘 써 보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뭔가 배울 게 있을 것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연애 칼럼이 잘 써지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가 없지 않았다. 이 책을 훑어보니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이 흥미로운 내용이다. 혹시 연애 칼럼을 쓸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3.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단편 소설의 천재 작가라서일까. 체호프의 단편 중에는 다 읽고 나서도 또 읽게 만드는 어떤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 이 책에 들어 있는 ‘공포’라는 단편 소설도 그렇다. 나는 ‘공포’의 어떤 문장도 다 좋아한다. ‘공포’가 담겨 있어 구입한 책인데 다른 단편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공포'라는 소설에서 내가 화자를 이해해 보려고 열 번쯤 반복해서 읽은 글을 옮겨 본다.
"정확히 뭐가 무서운 겁니까?"
내가 물었다.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 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인류의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인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돼요. (...)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친구,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두렵습니다. (...)“(20~21쪽)
나는 왜 이런 글에 마음이 가는지 모르겠다. 어떤 정신의 경지에 가면 ‘진부함’에 대해 무섭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여러 번 자꾸 읽게 된다. 나는 화자의 생각을 정확히 알고 싶다. 이렇게 쓴 체호프의 깊은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다.
4. 윌리엄 제임스, <선생님이 꼭 알아야 할 심리학 지식>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꼭 알아야 한다는 데 꽂혔다. 아이들의 심리를 아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제목이다.
아주 뻔해 보이지만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을 발견했다.
선생님들이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부분에선 심리학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91쪽)
우리 자신이 이처럼 한낱 습관들의 다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틀에 박힌 생명체이고, 자신의 과거 모습을 모방하고 베끼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나 과거의 모방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렇게 때문에, 선생님의 최대 관심은 무엇보다 평생 동안 가장 유익할 수 있는 습관들의 구색을 학생의 내면에 갖춰주는 데로 모아져야 한다. 교육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위한 것이며, 습관은 그 행동을 채우는 내용물이다.(93쪽)
‘습관은 위대하다.’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우리 인간은 습관의 노예라고 썼던 것 같다. 우리가 습관의 노예인 것은 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잘 살펴보면 습관의 반복일 뿐이니.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데 무슨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시면 알려 주세요.’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좋은 습관을 갖게 하세요.’라고 다 아는 뻔한 대답을 하겠다.
5.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잠언과 성찰>은 매우 잘 구입한 책으로 꼽는다. 그만큼 만족스런 책이다. 아무 데나 펼쳐도 좋은 구절이 눈에 띈다. 꽤 많이 밑줄을 그어 놓았는데 그중 몇 개만 옮긴다.
통찰력의 가장 큰 잘못은 목표에 미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나가는 것이다.(114쪽)
나의 코멘트 : 책을 읽다가 누구나 다 아는 뻔한 내용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면 독서를 엉터리로 하는 게 된다. 우리는 뭘 몰라서 실수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뭘 놓쳐서 실수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사랑이 언제 끝났는지 모른다면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잘못이다.(113쪽)
나의 코멘트 : 이렇게 상황 파악을 못할 만큼 어리석고 둔한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 연애를 해도 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우리의 솔직함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자기가 원하는 측면에서만 자신의 결점들을 드러내려는 욕망이다.(115쪽)
나의 코멘트 : 나의 정곡을 찌르는 이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라 로슈푸코가 나를 웃겼다.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의 열등감에 대해 말할 때 남도 그럴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고백해도 되는 열등감에 대해서만 말한다. 자신의 단점을 말할 때도 남도 그럴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게으름 같은 단점에 대해서만 말한다. 남들이 실망할 만한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꼭꼭 숨긴다.
열렬히 사랑할 때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나 우리는 똑같이 만족하기가 어렵다.(116쪽)
나의 코멘트 : 자신이 상대를 열렬히 사랑하면 상대는 자신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거나 질투로 괴로워한다. 그러니 이럴 때의 불행의 총량은 사랑하지 않을 때와 똑같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허영을 참아줄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허영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117쪽)
나의 코멘트 : 자신도 명품 핸드백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자라면 다른 사람들의 허영을 흉볼 이유가 없겠지.
<잠언과 성찰>은 책장을 너무 많이 넘겨 보게 되어 헌 책이 될지 모르겠다고 예감하게 되는 책이다. 내 마음을 끄는 글이 많다. 나의 얕은 통찰력을 깊게 만들어 줄 것 같아서라도 자주 펼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