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셀 로버츠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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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목을 받는다는 생각에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하다. 부유함으로 얻을 수 있는 다른 어떤 이익보다, 바로 그런 기분을 느끼어 싶어 그는 부자가 되려고 한다.
스미스는 왜 사람들이 유명해지길 원하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왜 관심을 갖는지 설명한다.
지위와 명성이 높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의 재산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환희를 대리만족하고 싶어 한다. 결국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대중의 관심사가 된다.
- 러셀 로버츠,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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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3일
그러니까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 첫 번째는
부자가 되어 누릴 수 있는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취미 활동이나 여행 등)을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호화로운 저택을 갖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명품을 사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기 때문이라는 거지?
“왜 돈을 버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어서.”라고.
남들이 주목하고 우러러보는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몸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기 위해서,
두 애들 결혼시킬 때 결혼 비용이 모자라는 일이 없기 위해서,
돈 걱정 없이 노후를 편안히 보내기 위해서일 뿐이다.
부자가 되어 남들이 주목하고 우러러보면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이 피곤해질 것 같다.
어느 좌석에 가나 “부자가 계산해라.”라고 할까 봐 싫은데...
티 나지 않는 부자이고 싶은데...
내가 부자의 맛을 알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혹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도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인가? 그런 욕구와 무관하다면 자기만족의 기쁨을 위해서려나?
며칠에 한 번씩 일기를 쓰곤 하는데 그 일기장을 식구들이 볼까 봐 꼭꼭 숨겨 둔다. 그런데도 일기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인정받기 위한 일기가 아님을 말해 준다. 일기를 쓰고 나면 뭔가 덜어내는 작업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마음속이 후련해진다. 이를테면 걱정, 불안, 불만, 쓸쓸함, 후회, 아쉬움 같은 것들을 덜어낸 듯한.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일기와 같은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하다.
2016년 3월 12일
벌써 겨울이 간 것 같아 섭섭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이네. 봄엔 황사나 미세먼지가 있어 싫고 곧 더울 여름이 가까워져 싫다. 여름은 더워서 싫고, 가을은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짧은 길목이라 불안정하여 겨울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겨울이 긴 것은 안정감을 준다. 추워서 창문을 열지 않아 실내에 먼지가 적어 청소를 하지 않는 날도 견딜 만한 것도 겨울의 장점이다.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는 점을 빼면 겨울은 흠잡을 데가 없는 것 같다. 한파로 고생한 적도 있지만 추운 날씨마저도 지금은 상쾌하게 생각된다. 책 읽기에도 글쓰기에도 겨울이 딱 좋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마치 지붕 새는 집에 살아서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생각 없는 사람’ 같다. 가난한 이들에겐 겨울이 지내기 어려운 시간이 될 것이므로.
2016년 3월 X일
친구가 승진을 했거나 친구가 바라던 대로 그의 자식이 어느 대학에 합격했거나 해서 기쁜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소식을 들었을 땐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으면서도 돌아서면 잊고 만다. 그 기쁜 일이 만약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면 잊기는커녕 몇 날 며칠을 기쁨에 찬 얼굴로 지냈으리라.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친구의 행복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 건 시기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제일의 관심의 대상은 자기 자신과 가족이 아니겠는가. 자기의 승진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있어도 친구의 승진 문제로 고민하진 않는다. 자기 자식의 진학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있어도 친구 자식의 진학 문제로 고민하진 않는다. 그러니 친구가 승진을 하거나 친구의 자식이 대학에 합격을 했다는 소식에도 크게 기쁘지 않은 건 당연하다. 타자의 행복에 전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건 시기심 같은 ‘악의’ 때문이 아니라 단지 ‘관심 없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체 카톡방’에서 누군가가 우리 큰애의 취직에 대해 물어서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답장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그중 한 사람이 큰애 취직했냐고 또 묻는다. 내 답장이 기억이 나질 않는 모양이다. ‘관심 없음’이렷다.
그 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016년 3월 X일
매일 아침 청소하던 때가 있었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털고 청소기를 돌렸다.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찜찜해서 외출로 바쁜 날에는 저녁에라도 청소를 했다. 꼭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매일 청소하지 않게 되었다. 이틀에 한 번 청소를 할 때가 많고 어떤 땐 삼일이 지나 청소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하나도 찜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에 한 번 청소하고 나면 매일 청소하는 것보다 더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습관을 바꾸니 새로운 습관에 적응되어 자연스러워졌다. 앞으로 쭉 이렇게 살아야겠다.
화장을 할 때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칠하는데 이것도 습관이 되고 나니 마스카라를 사용하지 않으면 화장하다가 도중에 그만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장을 지우는 세수를 할 때 클렌징 폼을 사용하는데 이것도 습관이 되고 나니 그것이 없어 세숫비누로만 세수를 하고 나면 화장이 깔끔하게 지워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마스카라를 사용하지 않아도, 클렌징 폼을 사용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젠 달라졌다.
한 번 습관이 되고 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들다. 습관이 나를 지배한다. 그래서 위대한 건 습관인가 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면 그것도 습관 때문이고 매일 독서를 한다면 그것도 습관 때문이리라. 어떤 습관을 버리고 어떤 습관을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겠다. 습관이 삶의 질을 좌우하기에.
습관이 무서운 이유다.
(내가 가진 여러 습관 중에 좋은 습관은 무엇인지, 나쁜 습관은 무엇인지 점검해 봐야겠어.)
2016년 3월 X일
우리 식구들이 내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밥 줘.”이다.
“여보, 밥 줘.”
“엄마, 밥 줘.”
너희 세 사람은 좋겠다. 언제든지 밥 달라고 말할 사람이 있어서.
나도 그런 사람을 갖고 싶다. 언제든지 배고프면 “밥 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내 어머니는, 내가 “밥 줘.”라고 말할 수 없는 연세가 되셨다. 올해 79살이시다.
전화로 어머니와 통화할 때 아침이면 “아침 드셨어요?”라고, 저녁이면 “저녁 드셨어요?”라고 여쭙기부터 한다.
나도 한때 “엄마, 밥 줘.”라고 말할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낸다. 곧이어 생각해 낸다. 우리 딸들도 언젠가 나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남자들은 좋겠어. 결혼 전엔 어머니에게, 결혼 후엔 아내에게 “밥 줘.”라고 말할 수 있어서.
그 대신 남자들은 평생 돈을 벌어 와야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그 신세도 아주 편한 것만은 아닌 듯.
그래서 기꺼이 밥 차려 주기로 했다. 남편에게도, 딸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