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것처럼 그렇게 남에게도 관대하다면 모든 다툼의 반 이상이 해소되지 않을까?
<담론>의 저자는 자신이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일 때에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그곳에선 화장실을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다. 문틀과 문짝이 이가 맞지 않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꽝 하고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밤중에는 소리가 더 크다. 그런데 밤마다 꽝 소리를 내는 젊은 녀석이 있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욕먹으면서도 밤마다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그에게 찬찬히 타이르며,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놓지 말고 천천히 나와야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가 “그걸 누가 몰라요? 다 사정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요.”라고 말하더란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야간 절도 전문으로 주로 후생주택단지를 주 무대로 삼고 있었는데, 들키면 일단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에서 지붕으로 달아난다. 지붕을 여러 채 건너뛰어 쫓아오는 사람을 확실하게 따돌린 다음에 땅으로 뛰어내린다. 그런데 뛰어내리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그 자리에서 잡힌 것이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지금까지도 앉았다 일어나면 다리에 마비가 오고 통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마비된 다리를 끌고 나오다 보면 늘 변소 문을 놓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정을 이야기하지 그러냐’고 했더니 그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라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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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개 먹물들은 자기의 사정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변명까지 합니다. 못 배운 사람들은 변명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짧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냥 단념하고 욕먹으면서 살 각오를 합니다. 나는 그의 그러한 태도가 바로 춘풍추상이라는 고고한 선비들의 윤리의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정은 잘 알지 못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세심한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 그렇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고 자기에게는 춘풍처럼 관대합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이란 금언은 바로 이와 같은 자기중심적 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변소 문 꽝 닫는 사람의 경우도 그 행위만으로 단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불가피한 사연이 있으리란 춘풍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325~326쪽)
- 신영복, <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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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참 좋다. 그런데 과연 남을 대할 때 춘풍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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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입니다.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반대로 합니다. 자기한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까다로운 잣대로 평가합니다.(324쪽)
- 신영복, <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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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두고 싶은 글이네. 소설을 한 권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서너 개 얻는다면, 에세이를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삼사십 개 얻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소설보다 에세이를 주로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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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자기는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생각을 단념해야 합니다. (...) 구구절절 자기 사정 늘어놓는 사람치고 썩 좋은 사람 별로 없습니다. 자기변명 없이 욕먹으면서도 침묵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326쪽)
- 신영복, <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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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론 하나 제기하고 싶다. “반대로 자기는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생각을 단념해야 합니다.”라는 구절에 대해서다. 나는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오해가 없기 때문이다.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여기는 건 금물이다. ‘침묵은 금이다.’로 보지 않고 ‘침묵은 오해를 낳는다.’로 본다. 설명하지 않아서 상대가 모를 땐 설명하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다음 한 줄의 문장으로 알아봤다. 이 책의 저자는 유머가 있는, 낙천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그리고 이 한 줄의 문장으로 저자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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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소문난 골초다. 담배를 피우다 죽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49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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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 최소한 건강염려증엔 걸리지 않겠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가 건강에 관한 한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다. 나는 무슨 병인지 알아보기 위해 검사하러 병원에 갈 때마다 간이 콩알만 해지는 사람이라서. 건강염려증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이라서.
건강 문제에 대해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사람은 그 한 가지 면에서만 보면 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 같다.
그런데 혹시 저자는 건강에 관한 한 겁쟁이여서 두려움을 떨치려고 괜히 한 번 이런 글을 써 본 것은 아니겠지?
3.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 인생은 무엇이냐고?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이런 것을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사는 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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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의사인 아들에게 인생이 무엇이냐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자 닥터 보니것은 늙어빠진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요.”(69쪽)
-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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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기 : 얼마 전 TV를 통해 실내 동물원에서 아이들이 토끼와 거북이와 새를 만지며 노는 장면을 봤다. 아이들이 동물을 안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이런 체험학습이 교육 효과가 크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보다 동물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걱정했다. 우리도 누군가가 건드리면 싫을 때가 있는데 동물들이라고 해서 사람이 만지는 게 늘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다. 동물들도 졸릴 때가 있겠고 쉬고 싶을 때가 있겠고 짜증이 날 때가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동물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불시에 인간에게 놀잇감이 되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런 글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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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번에 가족들과 충주호에 갔을 때, 딸아이가 벌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자꾸 쫓아냈다. 나는 농담 삼아 “이곳은 벌의 땅인데 네가 왜 벌한테 그러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처럼 우리는 월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월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우리가 사는 땅이 조금은 더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208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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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5.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다른 것 : 어느 날 당신에게 만 원이란 돈이 생긴다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만 원에 대해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겠다.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만 원이 어디예요? 우리 애 참고서 한 권 살 수 있는 돈인데.”라고. 그는 학부형이었던 것이다. 피자를 즐겨 먹는 사람은 “만 원이면 피자 한 판의 돈이네.”라고 말할 수 있겠고, 사우나를 즐겨 하는 사람은 “만 원이면 사우나를 가서 음료를 마시면 딱 될 돈이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알라디너라면 “만 원이면 책 한 권 값의 돈이네.”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만원의 가치를 달리 매기는 것은 만 원을 보는 이의 위치(또는 처지)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있는 컵을 그림으로 그리려고 하면 내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컵 모양을 다르게 그리게 된다. 내가 컵의 왼쪽에 있느냐 오른쪽에 있느냐에 따라 컵의 모양이 달라지고, 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느냐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느냐에 따라 컵의 모양이 달라진다.
다음의 글을 읽고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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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언덕을 두고 보는 위치에 따라 ‘오르막’이라 하거나 ‘내리막’이라 하듯이 그것이라는 ‘비밀’ 또한 드러난 차원에서는 ‘있는’ 것이 되고, 숨겨진 차원에서는 ‘없는’ 것이 된다.(195~196쪽)
-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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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드러나면 비밀이 있는 것이 되고, 비밀이 숨겨지면 비밀이 없는 것이 된다. 그 반대로 말해도 되지 않을까? 비밀이 드러나면 (이미 비밀이 아니므로) 비밀이 없는 것이 되고, 비밀이 숨겨지면 비밀이 있는 것이 된다.
6.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이유 : 초록빛 나뭇잎들이 내 눈에만 예뻐 보이나 했는데, 며칠 전에 놀러 온 친구가 요즘 나뭇잎이 예뻐서 한참 들여다봤다고 말한 걸로 보아 우리 나이엔 그런 게 느껴지는 모양인가 보다 했다.
나뭇잎이 예뻐 보이다니...
젊었던 이삼십 대엔 몰랐다가 나이 들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아마도 두뇌가 한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삼십 대엔 아름답게 여겨지는 게 많았다가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가 아닐까? 이삼십 대엔 멋있어 보이는 이성이 눈에 들어오고, 멋있어 보이는 옷이 눈에 들어오고, 멋있어 보이는 자동차가 눈에 들어오고 그랬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들에 시들해지니까 두뇌가 한가해져서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맞는 얘기인가?
(우리 애들만 봐도 알겠다. 자연 따위엔 안중에 없고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으니.)
7.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자 :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물음에 내가 답한다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자’라고 답하겠다. 부유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졌고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외모가 준수하기까지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욕심은 끝이 없는 길에 들어서게 만들어서 만족을 모르게 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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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적으로 찬탄할 수 있는 사람은 치욕을 겪었던, 행복한 사람뿐이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경멸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길어 올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158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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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을 극복하고 행복해진 사람은 행복을 거머쥔 사람임에 틀림없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 행복을 거머쥔 사람이 아니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면 행복한 사람이란 무엇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다.
8. 뭔가 보여 주기 : 나는 대학에서보다 대학원에서보다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에서 문학 강의를 들으며 배운 게 훨씬 많다. 강의를 들으며 다니는 게 재밌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강의를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소설 강의에서 인상 깊게 들은 말이 있다. 뭔가 보여 주기 위해 소설을 써야 한다는 것. 뭔가 보여 줄 게 없으면 소설 쓰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이주일 코미디언이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말과 겹치면서 내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렇게 고쳐 쓸 수 있다. ‘글을 쓰려면 뭔가 보여 줘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글을 쓸 때면 마음이 저절로 무거워질 때가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일부러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싱겁게 써도 괜찮다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창피해 하지 말고 뻔뻔하게 쓰자며 다짐하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에밀 시오랑도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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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책을 쓴다면, 감히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만 써야 할 것이다.(42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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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충격을 주지 않는 책이라면 어떤 독자에겐 시간 낭비가 될 수 있겠다.
9. 뭔가 보여 주는 글이란 : 그렇다면 뭔가 보여 주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 같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
이런 글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것과 다르게 해석한 글.
독자의 고정관념을 깨게 해 주는 글.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려 주는 글.
무엇보다도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 글.
그 예가 될 만한 글을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골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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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들의 문신은 대개 서툴고 조악합니다. 이런 문신이나마 넣는 이유가 벌레들의 문양과 다름이 없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호락호락하게 보이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감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바깥에서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들의 문신은 자기가 험상궂고 성질 사나운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위악’僞惡입니다. ‘위선’僞善과는 정반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266쪽)
- 신영복, <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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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시위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붉은 머리띠, 문신입니다. 단결과 전의戰意를 과시하는 약자들의 위악적 표현입니다.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입니다. 검은 법의法衣의 엄숙성과 정숙성이 압도합니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대조적입니다.(268쪽)
- 신영복, <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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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감방이든 감방마다 ‘싸가지 없는 사람’이 반드시 한 명씩 있습니다. (...) 드디어 그 친구가 출소하고 나면 참으로 행복한 밤을 맞이합니다. 앓던 이 빠진 듯 시원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행복한 날도 며칠뿐, 어느새 그런 사람이 또 생겨납니다. 다시 우리는 그 친구의 만기 날짜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나가면 또 생기고, 나가면 또 생기고...... 여러 사람을 보내고 난 다음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힘든 상황이 그런 표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당사자인 그에게 그만한 결함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가 처한 혹독한 상황이 그런 공공의 적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여러 사람을 보내고 나서 뒤늦게 깨달았던 것입니다.(300~301쪽)
- 신영복, <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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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지만 가치 없는 글은 없다 : 이곳 ‘알라딘’을 좋아한다.
이곳 ‘알라딘’을 좋아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말하면 이러하다.
첫째, 여러 님들의 글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둘째, 책 이야기가 있어 좋다.
셋째, 여러 님들의 글에서 배울 게 많아 좋다. (뭔가 보여 주는 글이 아니더라도.)
꼭 뭔가 보여 주는 글만 써야 할까? 뭔가 보여 주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안 될 땐 글을 쓰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글은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시하다고 할 만한 글을 내가 썼다면 그 글도 가치가 있다.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가질 이가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으니까.
내가 알라딘의 여러 서재를 돌아다니며 느낀 것을 열거해 봤다.
“A 님의 글은 공감을 줘서 좋다.”
“B 님의 글은 위안을 줘서 좋다.”
“C 님의 글은 어떤 자극을 줘서 좋다.”
“D 님의 글은 정보와 지식을 줘서 좋다.”
“ㅌ 님의 글은 생각할 거리를 줘서 좋다.”
“F 님의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해서 좋다.”
“G 님의 글은 재미가 있어 좋다.”
“H 님의 글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들어서 좋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
이 세상 모든 글은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