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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그런가? 자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우물물을 마셔 본 적이 있나?
청년 우물물이요? 아, 아주 오래전이긴 하지만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이 우물물을 끌어다 써서 마셔본 적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철에 할머니 댁에서 마시는 차가운 우물물은 참 꿀맛이었죠.
철학자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물물의 온도는 1년 내내 18도를 유지한다네. 이것은 누가 측정하든지 간에 똑같은 객관적인 수치지. 하지만 여름에 마시는 우물물은 차갑게 느껴지고, 겨울에 마시는 우물물은 따뜻하게 느껴진다네. 온도계는 늘 18도를 유지하지만 여름과 겨울에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이지.
청년 요컨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착각하게 된다?
철학자 아니, 착각이 아닐세. 그때 ‘자네’가 우물물이 차갑다거나 따뜻하다고 느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네.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거지.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주관에 지배받고 있고,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네. 지금 자네의 눈에는 세계가 복잡기괴한 혼돈처럼 비춰질 걸세. 하지만 자네가 변한다면 세계는 단순하게 바뀔 걸세. 문제는 세계가 어떠한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떠한가 하는 점이라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저, <미움받을 용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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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에) 첫눈이 왔다. 똑같은 눈이라도 첫눈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만약 내년 1월에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오는 눈을 봤더라면 눈이 왔다는 이유로 글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이라도 그것을 (첫 번째로 내렸다는 이유로) 귀한 눈으로 보느냐 아니면 (여러 번 내렸다는 이유로) 흔한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눈’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똑같은 우물물이라도 여름에 마시는 우물물이냐 겨울에 마시는 우물물이냐에 따라 ‘우물물’에 대한 느낌이 다르듯이.
‘눈’에 대한 느낌이 마음 상태(눈을 귀하게 여기는지 또는 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다른 것이라면, ‘우물물’에 대한 느낌은 몸 상태(여름이라 몸이 더운지 또는 겨울이라 몸이 추운지)에 따라 다른 것이겠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자유로운 세상을 맞게 되는 사람은 처음 얼마 동안 세상이 천국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고 나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같은 세상을 보더라도 어떤 때엔 천국으로 생각하고 어떤 때엔 천국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가 어떠한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떠한가 하는 점이라네.
문제는 우리가 어떠한 세계에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는 것.
그러니까 세계를 변하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네.
(더 읽어 봐야 정확히 알겠네. 꽤 흥미로운 책이네. 딱 내가 찾는 책일세.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새로운 표현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