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명원 저,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저자, 내가 기대하는 책의 저자이다. 아니, 이미 팬이 많아서 애독자들이 기대하는 저자의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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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물음’을 키워주는 책이다. (…)
그래도 산다는 일이 때때로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쓰린 마음에 소금이 뿌려져 그야말로 소금밭이 되는 일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움큼의 투명한 소금이야말로 가혹한 비바람과 격렬한 태양 아래서 마술적으로 응결된 것, 아니 단련된 것. 사각형의 책들을 순례하면서, 나는 사는 일을 경쾌하게 긍정하는 연습을 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질문을 거듭 던졌다.
그 질문의 뿌리는 어디일까. 가끔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 이명원 저,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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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물음’을 키워주는 책이다.”
맞는 말이다. 답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다. 글쓴이가 다수의 독자들보다 더 현명한 답을, 가장 현명한 답을 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답을 독자에게 맡기는 편이다. ‘단상(81)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될까, 안 될까’라는 글도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독자 스스로 판단하라고 맡기고 내가 결론을 내리지 않고 글을 끝냈다.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므로.
이명원 저,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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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이 업이고, 취미이고, 즐거움’인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이명원이 선택해 읽은 80여 권에 대한 감상을 엮은 독서 에세이.
까칠한 비평가의 고품격 독서 에세이.
김애란, 김훈, 이문열, 이외수, 황석영에 속 시원한 돌직구를 날리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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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제목들이다.
낙서의 아이러니
괴물은 보이지 않는다
아, 포장마차
아버지와 『진보정치』
누이 콤플렉스, 어떤 글쓰기의 기원
내 안의 소금밭
주마간산 책읽기의 묘미
시적 비전과 산문적 폭력
기묘한 아이러니를 가진 흥미로운 에세이
문체와 성정
네 꿈을 펼쳐라
‘파리 올레’를 걷는 사색자
뻐근한 슬픔, 성숙한 소설
발로 차주고 싶은 아쿠타가와상
상처로 빚어진 언어의 연금술_J형에게
심청의 섹스문화 탐사기
가족 파시즘
팍팍한 삶, 뻐근한 감동
잘 만들어진 고통
이 소제목들이 맘에 든다. 어떤 글일지 궁금할 만큼.
특히 밑줄을 친 소제목들은, 내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을 만큼 맘에 드네.
이런 제목으로 바꾸어 쓰고 싶기도 하네.
<내 안의 소금밭>을 → <내 안의 콩밭>으로.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것. 내가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다는 뜻.)
<발로 차주고 싶은 아쿠타가와상>을 → <발로 차주고 싶은 문학상>으로.
<팍팍한 삶, 뻐근한 감동>을 → <뻐근한 삶, 뻐근한 감동>으로.
<잘 만들어진 고통>을 → <잘 만들어진 불행>으로.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을 넣어서 쓴 에세이겠다. 아마 글 한 편에 책 한 권의 이야기를 넣었겠다.
2.
이와 비슷한 형식의 책이 있다. 글 한 편에 영화 한 편의 이야기를 넣어서 쓴 에세이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다. 정이현 저, <풍선>이다.
정이현 저,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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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도 있다’라는 <밀양>의 메인카피가 일종의 사기라는 쑥덕임을 들었다. 흥행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겠으나, 영화의 주제는 종교적 구원과 용서에 대한 것이지, 포스터 사진이 풍기는 이미지처럼 남녀 간의 은밀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다. 아니, 이게 러브스토리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러브스토리란 말인가. 동시에 마주 보고 동시에 입 맞추고 동시에 충만한 사랑만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완강한 등을 보며 비틀비틀 가야 하는 사랑, 보답받지 못해도 애걸할 수 없는, 그런 사랑도 사랑이다. <밀양>은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질문하는 영화인 한편,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도시 밀양의 속물 김종찬이라는 남자의 고통스러운 사랑을 묵묵히 응시하는 영화다.
종찬의 감정이 일종의 허영에서 출발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서울에서 온 신애는 컬러링조차 세련된, 분명 밀양에서 보기 드문 이국적인 존재이니까. 그러나 그 여자가 겪어내는 무시무시한 고난을 내내 함께하고, 그 처절한 내면을 어떻게든 쓰다듬어 주려 안간힘 다하는 종찬의 사랑은, 어떤 순간 스스로의 중력으로 허영의 벽을 뚫고 우뚝 선다.
- 정이현 저, <풍선>, 38~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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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을 수 있는 능력, 훌륭하다. 나도 <밀양>이란 영화를 봤기에 작가의 감상에 동의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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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권의 책으로 글 쓰는 방식을 배워야지.
글의 내용만큼이나 글의 형식도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