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화책을 읽었다. 재밌다. 마스다 미리 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라는 책이다. 이 책은 미술로 말하면 색깔을 입히지 않고 스케치를 한 그림과 같다. 음악으로 말하면 반주 없이 부르는 노래와 같다. 간결한 필치가 뭔가 생략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내용이 무겁지 않고 가벼운 일상 이야기의 만화책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1.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 아, 제목이 좋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몰라서 이 책 제목에 끌렸던 것 같다. 누구나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녀는 글을 쓰고 고단해지면 쉬다가, 또 글을 쓰고 고단해지면 잠을 자다가,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매일 그렇게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런 날을 갖기란 쉽지 않다.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하고 청소를 해야 하고 식구들이 들어오면 밥상을 차려야 한다. 또 어느 날은 돈을 벌기 위해 외출해야 한다. 삶이란 게 글쓰기와 휴식만 하면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매일 살아 보았더니 글쓰기에 싫증이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는 당분간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되었던 것. 그녀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또 하나의 예.

 

 

그녀는 남편이 애처가이길 바랐다. 자신에게 관심이 많고 애정 표현을 많이 하는 남편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남편이 자신에게 애정 표현을 많이 하고 늘 옆에 같이 있으려고 하고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하니까 지겨워져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적당히 무관심한 남편이길 바라게 되었던 것. 그녀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결론은 이론과 실제가 다르듯이 상상과 실제 또한 다르다는 것. 자신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2. 나는 늘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고 나면

의미가 달라지곤 한다. 왜 그런 걸까?(3쪽) : 나도 그런 적이 있다. 내가 진지하게 얘기하고 나면 말의 의미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왜 그럴까? 말을 하는 사이 핵심을 잊어 잘못 말했기 때문인가. 언어 표현의 한계 때문인가. 아니면 ‘생각’보단 ‘말’이 가볍게 느껴지는, 말의 특성 때문인가.

 

 

 

 

3. 고모. 되고 싶은 대로 되지 못한 거야?

글쎄~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

그렇지만, 꼭 그렇다고도 할 수 없어.

되고 싶었던 게 꼭 되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19쪽) : 어릴 때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고 해서 꼭 대통령이 되고 싶은 건 아닐 수 있다. 어릴 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해서 꼭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건 아닐 수 있다. 어릴 때 대통령에 대해서, 그리고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올바르게 알고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니까. 또 막상 해 보면 그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을 수가 있으니까.

 

 

 

 

 

4. 되고 싶은 대로 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은 북새통이 될 거야~(20쪽) : 되고 싶은 대로 다 된다면 모두 좋은 직업만 택하려고 할 테니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게 뻔하다. 만약 아무도 쓰레기를 치우는 직업을 갖지 않으려고 하면 세상은 쓰레기 천국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모두 같은 시각으로 보게 된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왜냐하면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면서 좋은 일을 한다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세상엔 있어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고마워해야 한다.)

 

 

 

 

5. ‘그 사람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필요 없다’라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아. 내 인생에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21쪽) : 그 사람만 있으면 먹을 것도, 돈도 필요 없을까? 그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세상을 살아가자면 필요한 게 얼마나 많은가. 또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누군가를 이해했다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그를 오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법이니까.

 

 

 

 

6. 내가 산타클로스에게 받고 싶은 것은.

보장

일지도. 어떤 의미에선.(44쪽~45쪽) : 어떤 보장을 말하는 것일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보장’을 말함일까. 만약 소원을 들어 주는 산타클로스가 실제로 있다면 나는 ‘걱정 없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하겠다.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돈 스트레스가 없고 속 썩이는 가족이 없다면 행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삶이 지루하다든지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든지 하는 정도는 감수하리라. 그 정도의 문제는 있어야 하리라.

 

 

왜냐하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렇다.

 

 

천국이 실제로 있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먹을 것이 많고 웃을 일이 많고 좋은 물건들이 가득하다고 해서 사람들은 행복할까. 서로를 시기하지 않고 싸움을 하지 않고 착한 마음만 있다면 행복할까. 결핍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풍요’를 ‘풍요’라고 느낄 수 있을까. 불행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행복’을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분명히 풍요롭다고 느끼지도 않고 행복하다고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양지가 있기 위해선 음지가 필요한 법이다.

 

 

 

 

7. 원하는 것이 없다는 건

행복한 것인지도 몰라.(49쪽) : 원하는 것이 없다는 건 행복일까, 불행일까.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여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기보다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이 없다는 건 미래 속에 있는 ‘희망’이 없다는 걸 의미할 테니까.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없다는 걸 의미할 테니까. 바꾸어 말해 앞으로 갖게 될 기쁨의 부재를 말함이니까.

 

 

 

 

8. 이 허전한 느낌은 뭘까?

그렇지만, 다들 이렇게 말하지.

‘사치스러운 고민’이라고.(57쪽) : 사치스러운 고민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문제이든 큰 문제이든 누구에게나 고민이란 건 심각하고 절실한 것이므로. 남이 볼 때 사소한 일이지만 그 일로 상처받아 목숨을 끊기도 하는 게 사람이므로.

 

 

 

 

9. 아직 사랑을 해도 된다는 게 부러워.

난, 이제 사랑을 해서도 안 되고

다른 남자와 자서도 안 된다.(72쪽) : 아직 사랑을 해도 되는 미혼자인 친구를 부러워하며 주부가 혼잣말을 한 것이다. 나도 혼자 사는 친구를 보면 그런 부러움을 느낀다. 누구를 만나도 되는 그런 자유로움이 좋아 보이는 것이다. 여자는 일단 결혼만 하면 남자 선배든 남자 후배든 만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어떤 사이든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무조건 남녀 관계로 본다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여자 나이가 몇 살쯤 되어야 남자를 만나도 남녀 관계로 보지 않는 것일까? 내가 60대가 되면 어떤 남자를 만나도 되는 건가? 아니면 70대가 되면 어떤 남자를 만나도 되는 건가? 만약 그런 나이엔 남녀 관계로 보지 않는다면 늙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10. 엄마도 (‘주인’보다) ‘주인공’이 더 좋다고 생각해!(122쪽) : ‘주인’이란 말보다 ‘주인공’이란 말이 낫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 이것은 무슨 뜻일까? 잘 모르겠다. 내가 이해하기론 주인은 ‘권력의 상하 관계’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고, 주인공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해서 ‘주인’보다 ‘주인공’이 낫다는 것 같다. 맞나?

 

 

 

 

 

이 책을 읽고 나서.............................

 

 

* 만화의 글감으로 이런 걸 생각해 봤다 : 추운 겨울에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장수와 큰 기업체 사장의 삶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장수는 매일 돈을 버는 재미와 집에 가면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방과 따뜻한 밥이 있음에 행복해 한다. 사장은 요즘 회사에 문제가 생겨 스트레스 만당이다.

 

 

 

** 이 책에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이 만나는 장면이 있다. 둘은 친구 사이인데, 기혼 여성은 미혼 여성의 자유로운 생활을 부러워하고 미혼 여성은 기혼 여성의 안정된 생활을 부러워하며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선 불평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행복과 불행의 요소들이 섞여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생각했다.

 

 

인터넷을 통해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생 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지랄을 떨지 못한 사람은 늙어서라도 지랄을 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보고 ‘불행 총량의 법칙’이란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것은 누구의 인생이든 불행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서 젊은 시절에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은 늙어서라도 불행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인생이라고 해서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니고 나쁜 인생이라고 해서 불행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좋은 인생이란 젊은 때에 불행을 겪다가 늙어서 행복한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고, 나쁜 인생이란 젊은 때에 행복한 시간이 많다가 늙어서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젊은 때엔 불행을 이겨 낼 만한 힘이 충분하여 회복하거나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는 반면 늙어서는 불행을 이겨 낼 만한 힘이 부족하여 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불행 총량의 법칙’에 따라 누구의 인생이든 행복의 열매만 달려 있는 나무 같은 인생일 리 없고, 불행의 열매만 달려 있는 나무 같은 인생일 리 없다는 것. 그리고 되도록 불행한 일들은 인생의 뒤쪽보다 앞쪽에서 생기는 게 좋다는 것.

 

 

그러므로 지금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일 년이라도 빨리 그런 일을 겪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힘을 내라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해 길게 썼네.)

 

 

 

 

 

작가의 다른 책들.............................

 

 

 

  

 

 

 

 

 

 

 

 

 

 

 

 

 

 

 

 

 

 

 

 

 

 

 

책을 읽지 않는 편인 사람에게

만약 누군가가 책을 선물하겠다고 하면

이런 책으로 선물해 달라고 하면 좋을 듯...

금방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니까.

재밌고 유익한 글을 쓰는 작가의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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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2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글이 깔끔 담백해서 읽지 않은 책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인상이 듭니다.

저는 예전에 '정의 총량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3-10-24 10:24   좋아요 0 | URL
아!!!!!!!!!!!!!! (제가 감탄하는 소리임.)

이렇게 발 빠르게 댓글을 쓰시다니요. 깜짝 놀랐습니다.
참고로, 저는 첫 댓글에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세실 2013-10-24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 총량의 법칙 좋은데요^^
지랄 총량의 법칙은 아이들 어릴때 이미 쓴거 같고~~~~
지금보다는 노후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정말 원하는건? 당장은 아이들 좋은 대학가는거요! 아 속물이라니...ㅎ

페크pek0501 2013-10-24 10:27   좋아요 0 | URL
세실 님.
저도 둘째 아이가 좋은 대학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저 4년제 대학을 가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저도 속물 속물.... ㅋㅋ

불행 총량의 법칙은 제가 만든 말이어요. 괜찮죠?

세실 2013-10-24 13:26   좋아요 0 | URL
좋아요~~ ㅎㅎㅎ
행복 총량의 법칙도 불행 총량의 법칙도 있는듯^^
점심으로 굴떡국 먹었더니 속이 든든합니다.
떡국 참 좋아하는 음식중 하나거든요~~~

페크pek0501 2013-10-25 12:40   좋아요 0 | URL
행복 총량의 법칙? 굿 아이디어...
하지만 행복은 무한대였으면 좋겠어요. 계속 생산할 수 있는...
굴떡국... 맛있겠다~~~
저도 떡국 좋아해요. 겨울에 밥 하기 싫은 날엔 떡국을 끓여요.
제가 떡국을 끓이면 우리 식구들이, 오늘 밥 하기 싫은 날이구나, 안답니다.
쌀로 만든 떡이니 밥과 같잖아요.ㅋㅋㅋ

잘잘라 2013-10-2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불행 총량의 법칙, 들으니까 남은 게 많을것 같아서 불안하기보다는 거의 다 지나간 것 같아서 안심되는 느낌이예요. 에... 결국 나이가 들어간다는 반증일까요? 그것이 불행이든 행복이든 지난 뒤에는 모두 아스라한 느낌으로 남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도 하고 갑니다. 항상 따뜻한 여운을 주는 페크님 서재..

페크pek0501 2013-10-25 12:42   좋아요 0 | URL
저도 거의 다 지난 것 같은데, 제 운명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불행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ㅋㅋ
메리포핀스 님은 닉네임에서 즐거움이 느껴지니까
행복한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나는...ㅋㅋ

2013-10-29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9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