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두 권 : 우리 부부는 책 취향이 달라 따로따로 책을 구입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 부분에선 알뜰하지 못하다. 나는 문학, 철학, 심리학의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문학, 추리, 역사의 분야의 책을 좋아한다. 간혹 공통적으로 관심 있는 책을 한 쪽이 사면 같이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 권의 책이 이에 해당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이번 소설에서 김영하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내가 뽑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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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험한 욕을 한 일이 없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욕도 안 하니 자꾸 예수 믿느냐고 묻는다.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 김영하 저, <살인자의 기억법>,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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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인근 도시인 화양시. 인구 29만의 이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발한다. 최초의 발병자는 개 번식사업을 하던 중년 남자. 신종플루에 걸렸던 이 남자는 병에 걸린 개에 물린 이후로 눈이 빨갛게 붓고 폐를 비롯한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을 중심으로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고 삽시간에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눈이 빨갛게 변하며 며칠 만에 돌연사 한다. 응급실의 간호사 수진과 소방대원 기준은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 (알라딘, 책소개)에서.

 

 

 

 

내가 뽑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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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데 김 기자 목표나 들어봅시다. 뭐요. 스타 기자가 되는 거? 국장이 되는 거?”

그녀는 룸미러에 비친 순경을 봤다. 순경은 앞 차창을 내다보고 있었다.

“살아남는 거요.”

재미있어 하는 기색이 박주환의 눈을 스쳤다.

“그런 것도 목표 축에 드나?”

‘살아남기’는 윤주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였다. 그 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

"누구한텐 당연한 일이 누구한텐 목표가 되기도 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깨달은 건데, 난 후자로 태어났더라고요." - 정유정 저, <28>, 448쪽~4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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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구입한 책 두 권이다. 동네 서점에서 샀다고 한다. 남편은 읽고 나서 내게 주었다. 남편은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이 없어서 이제 내 책이 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나도 읽고 싶어 했던 것이라서 좋았다.

 

 

나 : “왜 동네 서점에서 사고 그래? 내가 알라딘 적립금 있다고 했잖아.”

남편 : “사려고 마음먹고 산 게 아니라 그냥 서점에서 책 구경하다가 산 거야.”

 

 

남편은 인터넷 서점보다 동네 서점을 이용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언제 받을지 모를 책을 기다리는 것보다 동네 서점까지 조금만 걸으면 바로 책을 사서 가질 수 있는 게 편해서다. ‘알뜰하지 못함’은 남편의 단점인데, 이것을 좋게 봐 주면 ‘쪼잔하지 않음’이란 장점이 된다. (이것이 장점이 되는 이유는 내게 알뜰하게 살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2. 글감 : 책을 읽다가 글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 ‘책 읽기’는 내게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을 많이 읽어서 글감을 얻는 게 좋겠다. 또 누군가의 서재에서 댓글을 쓰다가 글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 ‘댓글 쓰기’는 내게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댓글을 많이 써서 글감을 얻는 게 좋겠다. 남을 위해서도 댓글을 많이 쓰는 게 좋겠지. (내가 쓴 댓글 또는 답글을 그대로 페이퍼에 넣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3. 읽기와 쓰기 :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 중 내가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잘 몰라서 여러 번 생각해 봤다. 글 쓰는 걸 취미로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책 읽기보다 글쓰기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글쓰기보다 책 읽기를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만약 둘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하라면 책 읽기를 선택할 듯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글 쓰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책 읽기를 지금처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 읽기가 재밌는 건 글쓰기에 대한 관심 때문일 터.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 어떻게 쓰나, 하는 게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책을 읽기 위해서도 글을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엉뚱한 결론인가.

 

 

 

 

 

 

4. 인용문이 많은 책 : 나는 인용문이 많은 책을 좋아한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상하게 인용문이 많다. 책을 구입할 땐 인용문을 보고 구입하진 않는다. 오히려 책을 읽다가 인용문이 많아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명저에 특히 인용문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인용문이 있는 글에 대해 하류로 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엔 인용을 하든 하지 않든 글의 완성도가 중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책이 인용문이 많은 책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5.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 지난 추석 연휴가 끝나자 기분 좋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명절이 지나서 속 시원했다. 이렇게 속 시원하려면 명절 음식 만들 때 꾀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런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없고 찜찜하기 때문이다. 이건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찜찜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예를 들면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급하게 써서 서재에 올린 글은 꼭 후회를 하게 된다. 더 검토해서 올릴 걸 그랬네, 하면서 말이다. 특히 글의 제목을 잘못 쓴 경우엔 낭패다. (아마 제목을 고치면 새로운 글로 등록이 되어서 이전의 글에 달린 댓글도 없어질 듯.)

 

 

 

 

 

 

6. 큰일 날 뻔했다 :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애들은 공부로 바쁘다. 남편은 일터로, 애들은 배움터로 가고 난 뒤에 나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내게 취미가 없었다면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집에서 혼자서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취미 덕분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취미가 없었다면 이 가을이란 계절에 우울할 뻔했다. 큰일 날 뻔했다. (뻥 아님. 요즘 이걸 깊이 느끼고 있음.)

 

 

나처럼 책 읽고 글 쓰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서 삶이 지루할 수 없다는 것을. 고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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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9-2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활 반경에 동네 서점이 없어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하기가 곤란하지만,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행위는, 그것에 얻는 느낌은 제가 등산을 하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체험을 준다는 면에서요. (도서관을 방황하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지만요.)

페크pek0501 2013-09-27 14:45   좋아요 0 | URL
발 빠르신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ㅋ

사실 저도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살 때가 있는데 - 90프로는 알라딘을 이용하고
10프로는 동네 서점을 이용해요. - 그 이유는 서점에서 책을 실컷 보고 사지도 않고
그냥 나오기도 미안하기도 하고, 또 책을 사기도 해야 서점이 문 닫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예요. 인터넷 서점을 많이 이용하긴 하지만 직접 책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는 건 싫잖아요. ^^



oren 2013-09-2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지키고, 거기에 덧붙여 '자기 고유의 뒷방'까지 가지고 있다면 무얼 더 부러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그리고 책을 읽다가 가끔씩 '이런 문장'이다 싶은 대목을 만나서 내 글을 조금이라도 더 장식할 수 있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면 그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일까 싶고요.

* * *

뒷방을 가지고

할 수만 있다면 아내·아이·재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을 가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행복이 거기에 매여 있게까지 집착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남이 침범하지 않는 아주 자기 고유의 것인 뒷방을 가지고, 그 속에 진실한 자유와 은둔처를 마련해 둘 일이다. 여기서 우리 자신과의 일상의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사사로워서, 외부와의 어떠한 관련이나 교섭도 그 곳에는 미치지 못하게 할 일이다.

아내도 어린애도, 재산도, 다른 사람도, 하인도 없는 듯 그곳에서 혼자 생각하며 웃고 지내며, 그런 것들을 잃는 경우에 부딪혀도 그런 것들 없이 살더라도 아무런 별다름이 없게 할 일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들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그것은 자기를 동무삼을 수 있다. 마음은 공격할 거리, 방어할 거리, 줄 거리와 받을 거리를 가졌다. 이러한 고독함 속에서 할 일 없이 괴롭다고 오그라들까 두려워 말자.


이런 문장

어느 날, 나는 이런 문장에 부딪혔습니다. 나는 프랑스어의 핏기 없고, 살이 붙지 않고, 속 비고, 의미 없는 글을 흥미 없이 읽어 가자니, 그것은 확실히 프랑스어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권태를 느끼며 읽어 가다가 갑자기 고매하고 풍부하며 기개가 하늘에 솟는 한 문장에 부딪쳤습니다. 만일 그 내리막이 순하고 오르막이 좀 길게 보였다면, 그것은 변명될 수 있었을 겁니다. 여기 와서는 절벽이 낭떠러지로 깎아지른 듯 첫번 여섯 글귀로 나는 내 몸이 다른 세상으로 날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거기서 나는 전에 읽은 것이 너무나 얕고 깊은 구렁텅이임을 깨닫고, 다시는 그리로 내려갈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내가 이런 풍부한 약탈품을 가지고 내 글 한 장만 장식했다면, 다른 장들이 얼마나 졸렬한 것인지 너무 잘 밝혀졌을 것입니다.

- 몽테뉴,『몽테뉴 수상록』中에서

페크pek0501 2013-09-28 12:43   좋아요 0 | URL
역시 긴 댓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자기만의 뒷방 -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만의 시간- 을 가질 수 있고 건강하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책을 읽다가 가끔씩 '이런 문장'이다 싶은 대목을 만나서 내 글을 조금이라도 더 장식할 수 있겠다 싶은 기분이 든다면 그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일까 싶고요."
- 이런 맛에 제가 책을 읽습니다. ㅋㅋ


yamoo 2013-09-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 건강상 일을 쉬고 계신가 바요? 건강 얼른 회복하시길!

1. 그래도 부부가 공유하고 있는 문학이 있는 게 어딘데요.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분야 잖아요^^ 역사와 철학의 접점인 역사철학 분야도 있구요~ 책 사실 때 복합 분야를 구매하시면 좋을 듯해요. 추리문학은 두 분다 좋아하실 듯~ㅎ

3. 읽기와 쓰기 중에서 저두 읽기를 좋아합니다. 단, 쓰는 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좀 거시기 해요. 써 놓고도 계속 고쳐야 해서요. 전 글을 너무 못쓰는 거 같아요..ㅜㅜ

4. 저는 인용문이 거의 없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트게슈타인이나 지멜의 책을 좋아하는 거 같아욤. 특히 게오르그 짐멜의 주저인 <돈의 철학>은 6500페이지가 넘는데, 단 하나의 각주가 없는 놀라운 책이더군요!
아, 근데 에리히 프롬은 학부 4학년때까지 전집을 거의 다 읽은 듯해요. 한 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사상가였슴돠~^^

페크pek0501 2013-09-28 12:47   좋아요 0 | URL
6. 예, 맞아요. 곧 다시 일하게 된답니다.

1. 복합 분야의 구매, 좋은 말씀이네요. 추리문학은 저도 좋아하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독이 되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어요. 그것보다 제게 공부가 되는 책을 읽으려고요.

3. 저도 글을 쓰고 나면 고칠 게 많아서 그 작업이 고단하고 스트레스가 생겨 글쓰기보다 책 읽기를 더 좋아하게 되나 봐요. 읽는 건 스트레스가 없잖아요.

4. 저는 님처럼 그렇게 전문적이지 못하고요, 책을 읽다 보니 마르크스, 프로이트, 에리히 프롬은 무조건 읽어야 되나 보다, 하고 읽었어요.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들이라서요. 특히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거의 밑줄이 그어져 있을 정도로 흥미로워 열광적으로 읽었어요. 제가 글 쓰면서 인용도 많이 했지요.

상세하게 쓰신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650페이지입니까, 6500페이지입니까?)ㅋ

yamoo 2013-09-28 22:53   좋아요 0 | URL
헛! 오타입니다요^^;; 앞에 6이 없어야 되요..ㅋㅋ 500페이지가 넘는다는 걸 쓴다는 게 앞에 6자를 더 쳤나봐요..ㅎㅎ

페크pek0501 2013-09-29 13:39   좋아요 0 | URL
하하하~~~ 오타 맞군요. 그런데 저는 0(영)을 하나 더 쓰셨는 줄 알았어요.
어쨌든 님이 추가댓글을 쓰셨으니 오인하시는 분들은 없겠죠.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수이 2013-09-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한 결론-이 최고의 결론인 거 같은걸요 페크님 :)

페크pek0501 2013-10-01 12:19   좋아요 0 | URL
앤 님, 잘 지냈나요?
영양가 없는 페이퍼를 읽어 주셨네요.

엉뚱한 결론이라고 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것 같아요.
책 읽기와 글쓰기의 상관 관계라고 볼 수 있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