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영하 저,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다음의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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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직 딱 한 가지에만 능했는데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자긍심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는 것일까.
- 김영하 저, <살인자의 기억법>,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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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인간의 자긍심에 대해 생각하다가 인간의 열등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인간은 자긍심과 열등감, 이 둘 중의 하나에 치중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열등감보단 자긍심을 더 갖고 있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보단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이 하나라도 없는 사람이 있으랴. 겉으로 보기엔 열등감이 없어 보여도 말이다.
그래서 <살인자의 기억법>에 있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변형해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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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열등감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는 것일까.
- pek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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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몇 달 전, 사촌 동생의 딸 돌잔치에 갔다. 장소는 뷔페식당. 뷔페라고 하니 여고 2학년생인 둘째 아이가 맛있는 것 많이 먹겠다며 따라나섰다. 그곳은 자연히 친척들이 많이 모인 자리가 되었다.
아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보고 김연아 선수를 닮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김연아 선수보단 인물이 낫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칭찬은 과장해서 하는 법이니 곧이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더니 아이는 피식 웃었다. 내가 보기엔 우리 아이보다 김연아 선수가 더 예쁜 것 같다. 그러니 과장해서 말하는 게 맞다.
그리고 아이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와, 완전히 얼굴과 몸매가 소녀시대야.”
이와 비슷한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듣는 터라, 아이는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우리 집에 놀러온 내 친구들이 아이를 보고 모델을 시켜라, 딱 연예인 몸매다, 라고 해도 아이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했다. 아이의 키는 170센티미터, 몸은 적당히 말랐고 얼굴은 작다.
아마 아이는 학교에서도 주목을 받는 모양이다. 자기를 보려고 딴 반에서 자기네 교실로 놀러 오는 아이가 있다고도 했고, 아이가 소속해 있는 연극반에 자기를 보려고 들어왔다는 1학년생 후배가 있다고도 했다.
겸손해라, 하고 내가 아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가 조금만이라도 자긍심을 가진 듯한 태도를 친구들한테 보인다면, 참 재수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의 속마음을 누가 알까.
나와 함께 치과에 다녀온 어느 날, 아이는 엉엉 울면서 내게 말했다.
“난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났어? 예쁜 데가 하나도 없잖아. 눈엔 쌍꺼풀도 없고 코는 높지도 않고 이빨까지 삐뚤빼뚤해서 교정해야 하잖아.”
그러면서 이 교정을 하는 것만 해도 3년 이상 걸린다는데 보기 싫어서 교정기를 어떻게 끼고 사느냐며 울면서 신경질을 냈다.
나는 어이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이 많다고 아이를 탓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그런 것이니까. 인간이란 원래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흔아홉 개를 가졌어도 가지지 못한 한 개에 집중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던가. 그래서 아이를 이해했다.
나 역시 친구들이 “넌 참 팔자 좋은 아줌마야.”라고 말할 때, ‘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많은 걱정거리를 누가 알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상대에게서 자긍심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상대를 미워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리라.
- 상대를 겉모습만 보고 맘대로 판단하는 사람.
- 상대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사람.
- 상대를 상대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는 사람.
물론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또한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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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사람에게선 가진 것을 주목해서 보고, 자신에게선 가지지 못한 것을 주목해서 볼 때가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