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무관한 이유로 해서 그 사람이 그토록 괴로워한다면, 그건 내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 91쪽.

 

 

 

 

이것을 변형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와는 무관한 이유로 해서 그 사람이 그토록 즐거워한다면, 그건 내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내가 중요하다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가 즐거울 수 없다, 라는 뜻.

 

 

 

 

 

 

나 자신을 당신의 힘과 맞선 또 하나의 힘으로 설정하려 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내게 주는 고통이나 즐거움에 의해서만 정의될 것이다.

 

-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 197쪽.

 

 

 

 

연인이란 고통이나 즐거움의 상징이 아닐까. 왜냐하면 연인으로 인해 고통스럽거나 즐거울 수 있으니까.

 

 

 

가장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어떤 것은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연인의 경우에만 해도 그렇다. 연인은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지만 반대로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존재다. 서로 사랑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만, 이별로 인해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천국에도 갈 수 있고 지옥에도 갈 수 있게 해 주는 게 연인이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가장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는 사람은 식욕이 전혀 없어 ‘음식을 먹는 일’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나도 경험한 게 있다. 아이를 낳은 뒤에 미역국과 밥을 먹어야 할 때 느꼈던 것. 산모로서 내 몸을 생각해서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먹기 싫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먹는 게 아주 고통스러웠다. 이것을 ‘성행위’로 예를 들 수도 있다. 가장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성행위’는 어떤 경우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강간의 경우가 그럴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두 가지 욕구인 식욕과 성욕은 때로는 큰 행복과, 때로는 큰 불행과 연관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행복을 주는 어떤 것은 불행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내게 주는 고통이나 즐거움에 의해서만 정의될 것이다.’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연인이란 극과 극을 오가게 만드는 존재이다.’라고 해석해 보았다. 극과 극은 하나의 길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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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6-2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눈물 흘리게 한다고 하지요.

페크pek0501 2013-06-26 15:09   좋아요 0 | URL
그렇죠. 모르는 사람 때문에 눈물 흘릴 일은 없겠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