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밖나가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얼굴에 와 닿는 공기의 감촉에서 봄기운이 느껴져서다. 아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내 허락도 없이 이렇게 봄이 와 버리다니.

 

 

밖에만 봄기운이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집에서도 느낀 게 있다.

 

 

겨울엔 난방을 켜지 않으면 차가워서 양말을 신고 실내화까지 신어야 했던 거실 바닥이었다. 그런데 난방을 켜지 않았는데도 아침에 맨발로 나간 거실 바닥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봄이구나.

 

 

세수를 할 때 따뜻한 물로 씻고 맨 나중에 찬물로 헹구는 습관이 있다. 겨울엔 그 찬물이 꽤 차갑게 느껴져서 불편했는데 이젠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 봄이구나.

 

 

머리를 감고 나서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아, 봄이구나.

 

 

밤에 잠을 자다가 더운 것 같아 침대에 깔려 있는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껐다. 아, 봄이구나.

 

 

현관문도 잠그고 여러 창문도 닫아 놓은 집인데 봄은 어디서 들어왔을까.

 

 

초대하지 않았는데 몰래 온 손님이었다, 봄은.

 

 

 

 

- 이런 봄날엔 책을 읽고 있으면 아깝다.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깝다. 밖에 나가 봄을 만나야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된다. 따듯한 봄 햇살과 따듯한 봄바람을 맞으며 봄 세상을 만끽해야 한다. 봄은 짧아서 놓칠 수 있으므로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 살다 보면 누군가로 인해 화가 나서 분노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두 가지 태도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 하나는 참고 분노를 삭이는 태도이고, 또 하나는 참지 않고 그 상대방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태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마음이 시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노를 삭이면 화병이라는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고, 분노를 터뜨리면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정이 떨어지거나 자신을 나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겨져 그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까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스트레스가 따른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쪽의 태도가 스트레스가 적은지를 판단해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화병에 치중할 것인가, 이미지 관리에 치중할 것인가.’ 화병에 치중하면 분노를 터뜨리게 되고, 이미지 관리에 치중하면 분노를 삭이게 된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 마음의 균형을 잘 잡으려면 우선 ‘시간을 보내 놓기’가 필요한 것 같다. 시간의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 며칠 보내고 나면 화가 많이 풀리기도 하고, 화나게 만든 일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시간을 보내 놓고 뒤늦게 화를 내면 상대는 그동안 참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뒤늦게 화를 낸다는 것은 경솔하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화를 분석한 책이 있다. 세네카 저, <화에 대하여>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읽으면 화를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이다.

 

 

 

 

 

-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과제로 제출하는 단편 소설을 써서 교수님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시로 여러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더니 이젠 소설에까지 능력을 뻗치고 있다. 자랑스러운 친구다. 그 친구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었다며 깊은 사유의 글이 많은 소설이니 꼭 읽으라고 한다. 별로 야하지 않다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이 책을 사 놓은 지 오래되었는데 읽지 않았다. 난 왜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구입할 땐 분명히 읽을 생각으로 구입했는데.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알고 싶어서 구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읽어야지.

 

 

 

 

 

-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고 한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나도 당신을 원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요.”

 

 

시골 주부 프란체스카에게 사진작가 로버트가 고백한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을 오래전에 소설로 읽었는데, 이 대사를 신문에서 보고 이렇게 고쳐야 맞다고 생각했다.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이 우주에서 이런 애매한 감정은 여러 번 오는 거요. 지금은 나도 당신을 원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이 감정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오.”

 

 

만약 사랑이란 감정이 애매하지 않고 확실한 감정이라면 이별하는 연인들과 이혼하는 부부들이 왜 많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 봤다.

 

 

 

 

 

-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읽자마자 내 가슴에 콱 박혀 버렸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대처가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라고 한다. 이 말에 동의할 만큼 내가 경험해서 알아낸 것들이 이 말에 녹아 있어서 감탄했다. 생각이 말이 된 적이 있고, 말이 행동이 된 적이 있고, 행동이 습관이 된 적이 있고, 습관이 성격이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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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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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4-1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가치관에 의한 패러디 ; 확실하다고 착각되는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단 한번뿐이며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되는 이런 감정은 여러 번 오는 거요. 지금은 나도 당신을 원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의 일부분이 되고 싶소. 하지만 이 감정은 확신을 가장한 애매한 감정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오.

착각을 하지 않았다면 연애나 결혼을 시작하지 않았겠죠.

페크pek0501 2013-04-20 15:15   좋아요 0 | URL
오오... 마립간 님 아니었으면 무플일 뻔했잖아요. 이렇게 감사할 수가...요.

님의 패러디, 완벽하네요. 제가 쓴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이 우주에서'라는 말은
우리가 그렇게 느낄 뿐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어요.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 비가 오는 토요일, 신선하게 느껴지는 날이네요. 이런 날은 운동을 해야 할까요, 생략해야 할까요. 이런 날은 배 부르게 먹고 낮잠을 자고 싶어지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


벗바리 2013-04-2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새로운 무의식"을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었는데,
오늘 그동안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들을 주문해볼까 싶어 다시 살펴보았어요.
새로운 무의식이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희미해서 클릭하여 소개를 읽어보다가
pek0501님의 글을 보게 되었고, 여기, 님의 방까지 들어오게 되었네요.

님의 글은-결국은 생각은,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고 공감도 잘 되네요.
그리고 그 끝맛은 깔끔하여 마치 정갈한 한식 같아요.
비싸고 부담스러운 한식이란 느낌 말고,
다시 와서 먹고 싶은 한식이란 느낌요.
요즘은 그다지 여유 없이 살고 있어서(오늘은 쪼금 여유있어서 책보러 알라딘에 왔지만)
식사 시간에 햇볕을 받으며 벚꽃을 쳐다본 잠깐의 시간 동안에도 위안을 받는다 생각했는데,
오래간만에 글 속에서도 그런 따사로운 '느낌'을 받았네요.
님 덕분에요^^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한 글자 남기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3-04-26 14:41   좋아요 0 | URL
새 손님이 오셨군요.
정갈한 한식 같은 글이라... 과찬이십니다.^^

요즘 제 글쓰기에 대해서 스스로 하는 '쪽팔림'의 행위라고 생각하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는 것은 글쓰기를 빼고 나면 삶이 아주 시시해져 버리는 것
같아서예요. 더 좋은 취미를 찾기 전엔 멈출 수 없을 것 같군요.

어쨌든 고무적인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님 덕분에 힘을 얻습니다.
(참고로, 새로운 무의식이란 책은 읽을 만합니다.ㅋ)

아침에혹은저녁에☔ 2017-05-14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하고 애매한 감정을 책을 읽고나니 이해할수가 있을것 같네요
프란체스카와 사랑에서 확실함을 찿고 그녀를 지켜주기위해 애매함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돌이켜보니 그녀의 감정을 느꼈던 기억의 편린들이 언제였을까 생각 하면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는 좋은 기분이 들었던것 같네요

페크pek0501 2017-05-17 18:54   좋아요 1 | URL
이제야 답글을 씁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4년 전에 쓴 글이군요. 오래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책으로 읽었죠. 그 뒤에 영화로도 본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남편을 배신한 아내의 사랑을 아름다운 걸로 감상하기 어려웠어요. 지금 읽는다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인간의 감정이란 게 또 생각이란 게 시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거라서요.
˝이 감정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침에혹은저녁에 님,
좋은 저녁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아침에혹은저녁에☔ 2017-05-1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안 하기는요 별 말씀을
좋은 저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