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변영로 작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아렴풋이 나는 지난 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빗소리

 

                                                주요한 작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지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볕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두운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혼자 읽기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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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4-12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비 소리는 참으로 듣기 좋아요

페크pek0501 2012-04-12 15: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나를 울려 주는 봄비... 이런 노랫말도 있잖아요. ㅋ

굿바이 2012-04-1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누나!'
우와~ 이런 감성과 관찰력과 표현력은 전생에 뭘 했어야 얻어지는 것이랍니까요!!!!!!
읽고 또 읽어도 좋아요^^

페크pek0501 2012-04-13 14:50   좋아요 0 | URL
그쵸? 그 표현 죽이죠? 저도 그 문장이 제일 좋았어요.
역시 시인은 시인인 거죠. '시인'앞에 '탁월한'이란 말이 생략됐다고 봐요.

굿바이님은 전생에 뭘 했어야 얻어지는가, 하고 썼네요.
저는 잘 쓴 글 보면, 뭘 먹고 살길래 이렇게 잘 쓰는가, 하는데... ㅋㅋ

신지 2012-04-1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처음으로...
공감을 못했습니다 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2-04-14 16:42   좋아요 0 | URL
크하하~~~ 정말 저 이렇게 웃었어요.
으음~~ 제 글엔 대부분 공감을 하시는데, 대작가가가 쓴 시는 공감을 못하겠다고 하시니... 이거 대단한 유머 아닙니까.

아마 신지님의 댓글 중 가장 저를 웃게 만든 댓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ㅋㅋ 좋은 주말 저녁 보내세요.

노이에자이트 2012-04-1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로 주요한...정말 옛날 분들이군요...저런 시는 저도 써보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12-04-14 16:44   좋아요 0 | URL
예, 시 좋지요? 저는 이 시를 읽고나서부터 비만 오면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라는 표현이 떠올라요.
한국의 명시, 라는 책에서 봤어요. 그 책엔 좋은 시가 많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