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124~128쪽)에서 발췌



멕시코시티의 시장 구석에 나이든 인디언이 양파 스무 줄을 매달아놓고 앉아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이 그에게 양파 한 줄에 얼마냐고 묻자, 그는 십 센트라고 대답했다. 그럼 양파 스물 줄을 전부 사면 얼마나 싸게 줄 수 있느냐고 흥정을 붙였다. 하지만 인디언 노인은 그에게 스무 줄 전부를 팔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인이 물건을 손쉽게 팔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마다하는 이유를 묻자, 인디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붉은 서라피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하며 함께 담배를 태우고, 아이들과 곡물에 관해 얘기 나누는 일을 좋아합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내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종일 여기 앉아서 스무 줄의 양파를 팝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모든 양파를 한 손님에게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는 끝이 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124~125쪽)



시튼이 편집한 《인디언의 복음》에서 읽은 양파장수 이야기다. 만일 요즘 이렇게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아마 굶어 죽기 십상일 것이다. 시간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오늘의 시장 원리에 비추어보면 단번에 떨이할 기회를 놓친 인디언 노인은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노인에게 양파를 파는 일이란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시장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매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 나누는 인간적 교감이야말로 그가 종일 시장에 앉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윤이다.(125~126쪽)


⇨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이야기다. 인디언 노인이 삶을 향유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도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작고 소박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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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7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저 첫 문단의 이야기 전에 한 번 들어 본 것 같아요.
맞아요. 사람은 지금을 즐길 줄 알아야 해요.
봄은 지금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계절이죠.
새로 피어나는 꽃이나 나무의 잎사귀를 보면 얼마나 반갑던지.
영낙없는 양파장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런데 저 사진 왼쪽이 언닌가요? ㅎ

페크pek0501 2023-04-07 11:32   좋아요 3 | URL
와우!!! 우리가 텔레파시...
저도 지금 님의 서재에 댓글 달고 왔는데...ㅋㅋ

서니데이 2023-04-07 2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마음도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긴 한데.
수작업으로 만드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는 그런 마음이 조금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많이 판매되는 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건 또 다른 어려움이거든요.^^;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4-10 16:20   좋아요 1 | URL
댓글을 이제야 씁니다. 잘 지내시죠?
삶의 여유는 필요한 것 같고,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어 산책하기 좋은 날이에요. 저는 어제 그제 밖에 나갔으므로
오늘은 쉬려 합니다. 좋은 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3-04-08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사람한테 다 팔면 거기에 있기 어렵겠습니다 양파 파는 사람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좋아하는군요 그렇게 사는 것도 즐겁겠습니다 페크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3-04-10 16:22   좋아요 0 | URL
시장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물건을 많이 파는 것도 좋지만 손님과 나누는
이야기로 즐거울 수도 있을 듯싶어요.
하루하루가 편안하다면 행복한 거겠지요? 좋은 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