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언어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 날이었다. 지하철 안에서였다. 내 옆 좌석에 앉은 대여섯의 여성들이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한 동네에 사는 것 같았고 오십 대로 보였다. 그중 한 명이 "강북 사람들은 왜 강남 사람들을 미워하는 거야?"라고 묻자 다른 이가 "강남 집값이 비싸니까 그렇지"라고 받아쳤다. 처음에 물은 이가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억울하면 강남으로 이사 오라고 해"라는 말을 던지자 모두 까르르 웃었다.
그들이 그런 얘기를 꺼낼 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얘기에서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억울하면 강남으로 이사 오라고 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지난해부터 집값 하락이 지속되었으나 비강남 지역에서 강남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억울하면 강남으로 이사 오라고 해'라는 말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로 들렸다. 이 말은 출세할 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격려로 들리지만 출세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조롱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면 분위기가 한껏 들떠 있어 누구나 말실수를 하기 쉽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지하철 타고 왔니? 웬만하면 차 좀 사라." "아직도 청바지 입니? 난 너 정장 입은 걸 못 봤어." "양주를 마셔 봐. 그다음부턴 소주를 못 마실 걸." 이런 말들은 악의 없는 농담이라 할지라도 듣는 이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특히 경제 사정이 어려운 이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번에는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책 좀 읽어라. 그래야 대화가 통하지." "그것도 몰라? 얘는 뉴스도 안 보나 봐." 이런 말들은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점을 지적함으로써 듣는 이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특히 학력이 낮은 이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사안인 만큼, 올바르지 못한 언어 사용으로 인해 차별을 낳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그런 측면에 주목하여 우리가 삼가야 할 말들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러하다. 자기가 얘기를 하는 도중 누군가 끼어들 때 제지하기 위해 쓰는 '지방방송 꺼'라는 말은 삼가야 한다. 지방에 사는 이들을 무시하는 뜻이 담겨 있어서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쓰는 '정상인'이라는 말도 삼가야 한다. 장애인이 비정상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반대 의미로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좋다. '결손 가정'이란 말도 삼가야 한다. '결손'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불완전하다는 뜻이므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손 가정은 '한부모 가정' 또는 '조부모 가정'으로 바꿔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결례를 저지르곤 한다. 가령 차를 갖고 있지 않은 이에게 차를 어디에 주차했냐고 묻거나, 대학을 가지 못한 이에게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냐고 묻는 것은 결례다. 골프에 무지한 지인에게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클래식에 무지한 지인에게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상대를 곤란하게 하는 것도 결례가 된다.
미국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첫 장에 이러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비판할 때만 그렇겠는가. 평상시 대화할 때도 세상 사람이 다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음을 기억해 두어야 하리라.
상대방에게 악의적 비난이나 욕설을 퍼붓는 것만이 불쾌감을 주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는 것도 불쾌감을 준다. 따라서 말을 할 때에는 청자의 입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나무의 됨됨이는 열매를 보면 알고, 사람 됨됨이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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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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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032301000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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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한차례 몸살을 앓았습니다.
앓느라 이번에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 글쓰기의 어려움!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을 응원합니다.
시어머님이 올해 구순이 되셨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댁 식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갑니다.
여행 갔다 와서 여행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이 글과 관련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