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시절 자상한 배우자와 사는 이가 부러웠다. 예를 들면 퇴근길에 아내를 위해 여성 잡지를 사 온다거나, 아내의 긴 머리를 좋아해서 머리를 자르지 못하게 하는 남편을 둔 친구가 배우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아 부러웠다. 왜냐하면 내 남편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는 온갖 자상함을 발휘하더니 결혼하고 나자 내가 잡아 놓은 물고기처럼 여겨졌는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결론은 남편이 결혼한 뒤 변한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결혼 전에 보여 준 모습이 남편의 변화한 모습이고, 결혼 후 보여 준 모습이 남편의 참모습이겠다. 섭섭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사람을 잘못 봤으니 내 탓을 할 수밖에.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살다 보니 나의 시각이 달라졌다. 머리 모양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는 배우자라니. 거기에 맞춰 산다면 내가 마음고생이 심할 듯싶다. 자상함이 지나치면 잔소리가 많다고 하니 자상한 옆지기보다 나를 자유롭게 살게 하는 내 옆지기가 오히려 편해서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남편이 자상함을 발휘하는 데는 따로 있다는 걸 훗날 알게 되었다. 퇴근길에 찬거리나 과일을 사 온다든지 음식 쓰레기 버리는 일을 도맡아 하는 것. 이런 점이 맘에 들기 시작했고 눈여겨보게 됐다. 물론 예전엔 이런 점에 주목하지 않았고 그저 장보기가 취미인가 보다, 바깥바람을 쐬러 쓰레기를 버리나 보다 했다. 과거엔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 가령 여성 잡지를 사오지 않는 것 따위에만 주목했다는 얘기다. 즉 때에 따라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같은 사람에 대해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된다는 것을.



이를 잘 나타낸 이야기가 김원중의 <한비자, 관계의 기술>이란 책에 나온다. 옛날 ‘미자하’는 위(衛)나라 왕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의 법에 왕의 수레를 몰래 타는 사람은 발이 잘리는 형벌이 있었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 미자하는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왕은 이 일을 듣고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벌도 잊었구나!”라고 그를 칭찬했다. 다른 날 미자하는 왕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 먹게 되었는데, 맛이 아주 달자 반쪽을 왕에게 주었다. 왕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으니 과인을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모가 쇠하고 왕의 사랑도 식게 됐을 때 한번은 미자하가 왕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자 왕은 “이놈은 옛날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고, 또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으라고 내밀기도 하였다”라고 말했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으나 왕은 전과 다른 시각으로 미자하를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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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칼럼니스트로 쓴 글입니다.

이 글은 경기일보 오피니언 지면에 실렸습니다.

원문은 ⇨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3205







.....이 글과 관련한 책.....


















김원중의 <한비자, 관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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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0-07 0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경기일보 오피니언 지면에 실렸군요 축하합니다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겠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보면 뭐든 좋게 보이지만, 안 좋은 마음으로 보면 별거 아닌 것도 안 좋게 보이기도 하죠 늘 좋은 마음으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페크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1-10-08 11:37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합니다.
긍정적으로 볼 때와 부정적으로 볼 때가 정말 다른 것 같아요.
희선 님도 좋은 하루를 매일 보내시길 바랄게요. ^^

그레이스 2021-10-07 0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부터 쓰레기 버려주고, 시장 봐다 주는 남편 부러워할듯요 . ㅎㅎ
사기열전 노자한비열전의 미자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1-10-08 11:39   좋아요 1 | URL
하하~~~ 제가 딸에게 그런 말을 했답니다. 머리 모양에 간섭하는 사람보다 쓰레기 버려 주는 사람이 남편감으로 좋다고요.
그레이스 님의 닉네임이 멋지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감이 좋아요.
고맙습니다. ^^

그레이스 2021-10-08 17:55   좋아요 1 | URL
닉네임 칭찬까지,,, 감사합니다~♡
원어민 영어공부 시간에 영어 이름 지으라고 해서 만든 거예요
제 이름 안에 이 뜻이 두번이나 반복되서...^^

페크pek0501 2021-10-10 12:2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제가 사기열전에서 옮겨 적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어요. 제가 갖고 있는 사기열전은 김원중 옮김. 이라고 돼 있어요. 김원중 저자가 거기서 빼어 자기 저작에 넣은 거죠. ㅋ

닉네임 좋아요. 닉네임에 깊은 뜻까지 있는 거군요.
원어민 영어 공부까지 하시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