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복제물이 진품과 거의 차이가 없어 진품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 진실해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인생의 함정이라 할 만하다. 여기, 인생의 함정에 빠진 여자가 있다.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키티다.
키티는 남편이 있지만 유부남인 찰스의 매력에 빠져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그녀는 둘이 서로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다. 남편이 그녀의 외도를 알게 되자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을 해 달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남편은 이렇게 제안한다. 찰스의 아내가 찰스와 이혼하겠다는 확답을 자기에게 주고, 찰스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자기에게 서면 동의를 한다면 이혼을 해 주겠다고.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사랑하는 찰스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런데 찰스는 뜻밖에도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글쎄, 나는 아이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안 그렇소?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아. 우린 그동안 둘이 잘 지내 왔어. 알겠지만 그녀는 내게 정말 좋은 아내였으니까.”〕 또 〔“그럼 이 세상에 오직 나 말고는 원하는 게 없다는 말은 왜 했죠?”〕 하고 묻는 그녀에게 찰스는 〔“오, 이런,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법이야.”〕 하고 대답한다. 그러곤 찰스는 그녀를 절망에 빠뜨리는 한마디를 내뱉고 만다. 〔“남자는 평생을 같이 보내고 싶은 바람 없이도 한 여자를 아주 많이 사랑할 수 있어.”〕라고. 게다가 찰스는 이 문제를 입막음하지 못하면 자신의 직장 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였다. 결국 그녀는 찰스의 배신으로 상처받고 그들의 사랑은 끝나고 만다.
소설 속의 키티처럼 한 쪽의 외도로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외도 같은 특별한 문제가 없이도 한집에 사는 데 익숙하여 상대 배우자의 소중함을 몰라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는 이들도 있다. 사별한 뒤에야 마음이 허전해져서 배우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사십 대 전업주부인 아내가 직장인인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라고.
과연 없을까? 언제나 평일이면 더 자고 싶은 아침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출근하여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남편인데. 그런 남편 덕분에 식비, 아이의 교육비, 전기세와 수도세, 샴푸 값과 화장품 값 등을 지출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남편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내인 당신이 오늘 로션을 살 때 지출한 돈도 남편이 벌어다 준 돈이다.
사십 대 직장인인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라고.
과연 없을까? 아내가 없는 가정을 상상해 보라. 아내가 없다면 집안은 쓰레기장이 되고, 매일 빨랫거리가 쌓이며, 음식 찌꺼기가 붙어 있는 그릇들이 설거지통에 가득 쌓여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 양육을 혼자 감당하느라 직장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심신이 고달프리라. 그러니 아내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편인 당신이 오늘 입고 있는 흰 와이셔츠만 해도 아내가 깨끗이 빨아 준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서로 감사해야 할 일들이 분명 있을 터. 이걸 상대방에게 꼭 말로 설명해야만 안단 말인가. 이를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고 감사할 일이다. 더욱이 다행스러운 게 있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실의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마음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배우자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모든 부부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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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칼럼니스트로 쓴 글입니다.
이 글은 대구신문 오피니언 지면에 실렸습니다.
원문은 ⇨ https://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6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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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책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