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두세 시간쯤 되어 눈이 피로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눈 건강을 위해 책을 덮고 일어난다. 이때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눈이 피로하지 않다면 얼마든지 독서를 할 수 있을 텐데 싶어 손해 보는 인생을 사는 듯해서다. 

 


  그 손해란 두 가지다. 첫째, 워낙 독서를 좋아하는데 눈 피로로 중단해야 하니 억울하기 때문이다. 둘째, 책을 읽어 아는 만큼만 글을 쓰는 거라고 믿는 내게 독서를 중단해야 하는 건 글을 잘 쓸 수 없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눈이 피로하지 않다면, 난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을 수 있으니 즐거울 뿐만 아니라 독서량이 많아 글을 잘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 독서를 할 수 없다는 게 불행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좋은 점을 찾아냈다. 긴 시간 동안 책상에 같은 자세로 앉아 독서를 하다 보면 어깨에 통증이 생길 수 있는데 눈 피로로 독서를 중단함으로써 어깨뿐만 아니라 몸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장시간 고정된 자세를 유지하는 게 건강에 나쁘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므로 눈 피로는 건강을 해치지 않게 몸이 보내는 신호인 셈이다. 

 


  체호프의 작품 중 ‘로실드의 바이올린’이란 단편 소설이 있다. 주인공 야코프는 아내와 둘이 가난하게 사는 노인이다. 관 짜는 일로 돈을 벌고 일거리가 들어오면 바이올린 연주로도 돈을 번다. 야코프는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쉬는 날에 돈을 벌지 못함을 손해로 여겨서다. 계산해 보니 1년 중 돈을 벌지 못하는 날이 200일이나 되는 게 그는 불만스러운 것이다. 

 


  내가 야코프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차피 인생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1년 365일 중 165일이나 돈을 벌 수 있고 200일을 쉴 수 있으니 참 좋다고 여기라고. 바이올린 연주로 부수입이 생기는 날도 있으니 운이 좋은 거라고.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 솜씨를 가져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위안거리인 거라고. 

 


  인간은 두뇌가 우수하여 좋은 일이 생겨도 불만거리를 찾아내듯이 노력하기로 작정한다면 나쁜 일이 생겨도 위안거리를 찾을 줄 안다. 앞으로 나에게 나쁜 일이 생길지라도 그것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자 한다. 생각이 삶을 이끈다고 믿으므로.(5.8매)

 

 

 

 

 

 

 

 

 

 

* 이 글과 관련된 책 *

 

 

 

 

 

 

 

 

 

 

 

 

 

 

 

 

 

『야코프는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항상 끔찍한 손해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일이나 축일에 일하는 것은 죄가 되니 일을 할 수 없고, 월요일은 힘든 날이니 일할 수 없다. 결국 이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팔짱을 낀 채 쉬어야 하는 날이 200일이나 되는 것이다. 얼마나 큰 손해인가! 또 만일 누군가 도시에서 악단 없이 결혼식을 올리거나, 샤흐케스가 불러 주지 않으면 이 역시 손해였다.

(중략)
특히 밤이 되면 야코프는 손해에 대한 생각에 시달렸다.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으로 기어들 때면 침대 곁에 놓아둔 바이올린 줄을 퉁기곤 했다. 어둠 속에서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면,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131쪽, 로실드의 바이올린)
- 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에서.

 

 

 

 


오늘 뽑은 글입니다.
찌는 더위 속에서 빗줄기를 기다리며 2020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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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6-23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서 아쉬운 것 같아요.
어떤 좋은 것은 또 다른 아쉬운 것이 되고, 아쉬운 것은 또다른 좋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페크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날씨가 많이 더웠어요.
페크님,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0-06-24 00:0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는 나이가 들수록 더 알차게 살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젊은 날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아서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아마 그땐 늘 젊을 것 같아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 같아요.
서니데이 님은 젊으신 데도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들어 좋습니다.
오늘 저는 저녁 때 나가서 친정어머니가 하시는 걷기 운동에 동참해 걸었어요.
당뇨병이 있으셔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걷기를 한답니다. 저보다 더 열심히 하세요. 그래서 병이 있는 사람들이 장수하나 봅니다.

내일은 비가 온다니 기대하며 잠을 청하겠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그러시길...ㅋ

테레사 2020-06-24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기 산책로인가? 어딘지 따라 걷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비가 와요,비가..이렇게 계속 순하게 와주면 좋겠지만......순한 것들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지는 나이인지라....ㅎㅎ

페크pek0501 2020-06-24 15:05   좋아요 0 | URL
테레사 님,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ㅋ
저 사진은 서울 현충원 안이랍니다. 좋은 풍경이 많아요.
아직도 비가 오네요. 오랜만에 비 오는 게 반가운데 장마로 수재민이 발생해선 안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순한 것들이 소중하네요.
반가웠습니당~~~

테레사 2020-06-24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집에는 자주 들락거립니다.ㅎㅎ 맘도 몸도 여유가 없는 생활이지만...서재친구분들 집에는 들르고 있지요. 페크님은 늘 제게 좋은 이웃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0-06-25 14:3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몰랐어요. 한동안 보이시지 않길래 근황이 궁금했어요.
그러다가 북플에서 테레사 님의 글을 보게 되어 반가웠어요. 제가 워낙 로그인을 하지 않는 날이 많은지라...ㅋ

누군가가 제 글을 잊지 않고 봐 준다는 건 응원과 같은 것이지요. 감사드립니다.

희선 2020-06-25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 때문에 괜찮은 게 있다는 걸 찾는다면 좋을 텐데 쉽지 않은 일이에요 좋은 일이 일어나도 바로 그것 때문에 언제 안 좋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는군요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구나 하는 게 가장 좋겠지요

날마다 일하기보다 쉬는 날이 있는 게 더 좋을 텐데, 야코프는 그건 생각하지 못했네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건데, 그걸로 돈까지 번다니... 바이올린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는군요 마음속으로는 아는 듯하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0-06-25 14:39   좋아요 0 | URL
불만을 말하면 주위에서 그러죠. 복에 겨워 그런 거라고.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 같아요. 지나고 나면, 아 그때가 좋았구나, 할 때가 있어요.

야코프가 나오는 그 소설은 주제는 다른 데에 있어요. 그냥 제가 주목한 것에 대해 써 봤답니다. 쉬는 날이 적으면 인간은 또 쉬는 날이 적다고 투덜대겠죠. 체호프의 작품을 읽으면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존경스러워요. 시대를 초월합니다.

오늘도 희선 님에게 좋은 하루를 선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