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보다 칼럼 :
페크는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못 쓰니까 칼럼을 쓰는 거야, 라고 누군가가 말했을 때 움찔했다. 정곡을 찌르다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소설에 없는 칼럼의 장점 때문에 칼럼을 쓴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왜 못했을까.
소설은 문학이고 문학은 예술이니 주제를 명확하게 밝혀 놓는 것보다 숨겨 놓아서 ‘독자들이 알아서 주제를 찾으시오.’ 하는 게 더 좋다. 이게 난 싫다. 우선 소설에 주제를 숨겨 놓을 줄 아는 기술이 내게 없어서 싫고 숨겨 놓은 주제를 독자들이 잘 찾지 못할까 봐 싫다. 이것에 비해 칼럼은 주제를 명확하게 밝혀 놓는 장르여서 좋다. 나의 주장을, 나의 생각을 마음껏 전달해도 되는 게 난 좋다. 칼럼을 쓰고 나면 속시원해지는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부럽다.
2. 독서광인 남편의 지혜 :
청소는 힘들어서 남편이 할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건 설거지다. 만약 내가 훗날 파트타임으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나는 음식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싶다.
내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고급 인력이 설거지나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런 유머는 나를 기분 좋게 웃게 만든다. 내가 고급 인력이라니.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걸 보고 미안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남편이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분명히 독서의 효과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독서를 많이 하며 사는 자다운 지혜를 느낀다.
그런데 독서를 많이 하는 나는 푼수짓을 할 때가 있어 돌겠다.
3. 재밌다는 줌마 댄스 :
문학상 공모에서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이 있는, 시를 잘 쓰는 문우가 있는데 요즘 시를 쓰지 않고 줌마 댄스에 빠져 산다. 발레를 배우고 있는 나처럼 운동 삼아 춤을 배우라고 권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월화수목금 매일 춤추러 다닐 줄은 몰랐다. 줌마 댄스가 얼마나 재밌어서 그런 건지 알고 싶어 나도 다닐까 잠깐 고민했다.
그 친구의 재능이 아까워서 “친구야 시를 좀 써라.” 하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줌마 댄스로 마음이 즐겁고 몸이 건강해지니 좋은 일이 아닌가 싶어서다.
4. 나의 발레 :
발레를 더 잘하고 싶어서 4월에 개인 지도 수업 3회를 신청해 놓았다. 발레를 개인 지도 받으면 좋은 점은 발레 선생이 나의 몸동작에만 집중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자세가 교정된다는 점이다. 다만 수업료가 비싸서 개인 지도 수업을 자주 받을 수는 없다.
“목을 쭉 위로 뽑으세요, 키 커지게. 허리를 더 쭉 펴세요, 더 더. 다리를 구부리면 안 되죠.” 라고 내게 계속 말하는 발레 선생 때문에 스트레칭은 제대로 되는데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땀이 쫙 흐른다.
무엇을 취미로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발레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나아질수록 재밌어진다. 그래서 발레 단체 수업은 꾸준히 받을 생각이다.
5. 큰 결심을 할 뻔했다 :
글 쓴 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까지 겨우 고거 쓰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말했다는 게 아니라 이런 뉘앙스가 풍기는 말을 했다고 내가 느꼈다는 얘기다.
나를 무시했던, 그리고 나를 무시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어제 ‘내일부터 치열하게 오로지 글만 써야지.’ 하는 큰 결심을 했다.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소설이 되었든 칼럼이 되었든 서평이 되었든 어떤 장르든지 나는 목적지를 향해 갈 것이다. 어느 날 당신들이 유력 일간지를 보려고 펼쳤을 때 나의 이름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신문에 연재를 하고 있을 테니. 여기가 나의 목적지렷다.
이런 생각으로 이를 갈며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잠깐 스톱! 잠깐 스톱! 그러다가 내 생활이 엉망이 되고 내 건강을 해치게 되면 누구 손해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 큰 결심을 그만두었다.
이번 인생은 이미 늦었으니 여기까지야. 그냥 글쓰기와 발레를 취미로 하며 살아야 돼. 다음 세상을 살게 되면 그땐 20대부터 치열하게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며 살겠어. 다른 것에 기웃거리지 않겠어. 그래서 한 분야에서 뛰어난 프로가 되겠어. 이번 인생은 여기까지야.
이런 생각으로 느긋하게 글을 쓰기로 했다. 큰 결심을 할 뻔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