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다른 빛깔.

 

 

 

 

1. 기분이 나빴다 :
월요일 아침.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기분이 나빴다. 어제 휴일에 비가 올 일이지 왜 오늘 비가 온담. 우산을 갖고 나가는 게 귀찮고 비가 옷에 튀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옅은 색 바지를 입으려다가 빗물이 튀는 걸 생각하고 짙은 색 바지를 입었다. 비가 오니 지하철이 붐비겠지.

 

 

지하철을 타자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럴 줄 알았어.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들이 많아 빈자리가 없다니까. 아무튼 비가 오면 여러 가지로 나쁘다니깐. 지하철에서 가방을 매고 우산을 들고 서 있으려니 앉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곧 내릴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 가 있으려 했다. 그런데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으나 졸고 있는 사람들과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뿐이어서 도무지 곧 내릴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도 스마트폰을 보고 싶었으나 한 손은 우산을 들고 있어야 했고 한 손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비가 와서 아침부터 30분 동안이나 서 있는 고생을 해야 하다니 운수가 나쁜 날인 것만 같았다. 마치 어떤 뽑기에서 자기 혼자만 꽝이 나온 기분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오늘 근무 시간의 내 기분도 꽝일 것이라고. 

 

 

 

 

    

 


2. 기분이 좋았다 :
월요일 아침.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비가 오는 날은 미세먼지가 없다는 걸 뜻한다. 기분이 좋은 것은 맑은 공기 때문만은 아니다. 온 세상이 비에 젖을 때 그녀는 낭만에 젖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우산을 쓰고 걸어갈 때 들려오는 빗소리, 비가 만들어 내는 공기 냄새, 비 오는 풍경. 이것들이 주는 느낌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그녀는 안다. 그리고 비가 고맙기 그지없다. 먼지로 덮인 세상을 비가 청소해 주기 때문이다. 비 덕분에 돈 들이지 않고 인력이 동원되지 않고 세상이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자 앉을 자리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서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비 오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 근무할 테니 이렇게 서 있는 게 오히려 낫지 싶었다. 

 

 

비가 와서 아침부터 운수가 좋은 날인 것만 같았다. 마치 어떤 뽑기에서 뜻하지 않은 행운을 거머쥔 기분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오늘 근무 시간은 낭만적인 기분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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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하찮은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56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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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2-01 14: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분도 상대적인 거라 하루에 총량은 불변 아닐까 하는데요..ㅎㅎㅎ 페크님이 좋아하시는 팡세를 인용하면서 하루를 소감하셨네요. 문장과 소감이 잘 어울립니다..^^;

페크pek0501 2018-12-02 11:22   좋아요 2 | URL
잘 어울린다는 말씀, 기분 좋군요.
요즘 팡세를 읽느라 이번 해에 다 읽어야 할 책이 늦어지고 있어요. 팡세는 빨리 읽을 수 없고 마치 시를 읽듯 그 뜻을 헤아리며 읽어야 하는 책이라서, 게다가 두껍기까지 한 책이라서 이것 한 번 잡으면 시간이 팍팍 가네요. 다른 책들 빨리 읽어야 하는데 말이죠.
팡세를 오래전에 읽었으니 이번에 재독인 셈인데 낯선 문장을 읽다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 부분을 만나면 반갑고 그래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댓글, 고맙습니다.

cyrus 2018-12-01 15: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겼는데, 비가 한 방울도 안 오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땐 괜찮아요. 그런데 분명 그 날에 비 온다는 예보를 듣지 못했는데, 비가 오면 짜증이 나요. ^^;;

페크pek0501 2018-12-02 11:25   좋아요 1 | URL
비 맞는 것 정말 싫죠? 그래서 저는 가벼운 우산을 사서 늘 가방에 들고 다니곤 해요. 날이 화창한 날은 빼고 나머지는 넣어 다닐 때가 많아요.
일기예보가 틀릴 때가 가끔 있더라고요.
좋은 휴일 보내세요. 하찮은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도 한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