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갈 때마다 고양이를 만난 적이 많았다. 고양이는 골목길에 있는 자기 집 부근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곤 하였다. 고양이의 집은 동네 사람들이 만들어 줬다고 하는데 라면 박스에 천을 깔아 둔 것이었다. 동네 사람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는 잠을 꼭 그 라면 박스 집에서 잔다고 한다. 내 느낌일 뿐이지만 고양이는 자기 집을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놓은 꽉 찬 쓰레기봉투에 생선 찌꺼기라도 들어 있는지 그 쓰레기봉투에서 먹잇감을 찾으려던 고양이와 내 눈이 마주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 고양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데로 가 버리는 시늉을 한다. 그때 고양이는 ‘당신 때문에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없잖아. 빨리 지나가.’라는 생각을 할 것만 같았다.
그 고양이를 보면서 개와 다르다고 느꼈는데 고양이는 어딘지 모르게 도도하고 거만한 면이 있어 보였고 그 점이 난 싫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고양이는 눈을 다른 데로 돌려 버리는데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당신한테는 관심 없어.”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끌려는 점이 고양이에게는 없었다. 길에서 살면서도, 자기를 보호해 주는 주인이 없는데도 당당해 보였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데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재건축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사를 가기 시작해서 마침내 친정집이 이사를 가는 날이 왔다. 이미 많은 집이 이사를 가서 동네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날이었다. 친정집의 짐을 실은 트럭이 떠나고 내가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친정집 안을 점검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려는 시간이었다. 골목에서 그 고양이와 내가 딱 마주쳤다. 떠나는 사람은 나였고 남는 것은 고양이였다. 이번엔 고양이가 나와 마주친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고 쳐다보았다. 고양이를 지나서 걷다가 뒤돌아보니 그때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더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그때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다들 어디로 떠나는 거야? 동네가 텅 비었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그날 고양이를 남겨 두고 돌아서야 했던 내 발걸음에 속도를 낼 수 없었던 건 도도하게만 보였던 그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고양이의 슬픈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한테도 정이 들었나 봐. 떠나는 당신 뒷모습을 보는 건 슬픈 일이군.”
살다 보면 당시에는 그저 스치는 바람처럼 가벼운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이 이야기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그 고양이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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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보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레닌은 옛날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그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부질없는 문제에 대하여 박학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60~61쪽)
사실, 어떤 절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그러기 위한 모범으로써 한 마리의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61쪽)
이사를 가야 했으므로 어머니와 나는 물루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는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불쌍한 물루야, 우리가 떠나게 되면 너를 잃고 말겠구나. 집과 짐승을 한꺼번에 다 잃다니」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물루는 맛있는 고깃덩어리를 얻어 먹곤 했다.(63쪽)
- 장 그르니에, <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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