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내 기억으로 두 번 읽었다. 내 기억이 맞는지 ‘독서 목록 노트’를 보니 ‘다시 읽음’으로 돼 있어서 두 번 읽은 게 맞구나 생각했다. 그 밑에 보니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도 씌어 있었다. <금각사>도 읽었던 것. 그런데 이 두 작품을 오래전에 ‘세계 문학 전집’으로 읽었고 지금은 갖고 있지 않다.
<사양>을 두 번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라는 건데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쓸쓸한 분위기와, 어머니와 딸이 나누는 대화 장면이 있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금각사>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최근 팟캐스트로 들어서 내용을 알게 됐다.
2.
내 기억으로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읽었는데 이 두 작품도 역시 ‘세계 문학 전집’으로 읽었고 지금은 갖고 있지 않아 한 달 전에 구입해 놓았다. 다시 읽고 싶어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면 독서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건 아니겠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겠지?’
본문만 524쪽에 달하는 <팡세>를 보니 접혀 있는 곳이 있어서 두 개만 옮겨 본다. 이런 아포리즘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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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들이 존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여야 하는가. 이것은 한쪽 대신 양쪽을 악인으로 만든다.(359쪽)
한 인간의 덕의 능력은 그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일상적 삶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360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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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에 태어난 파스칼이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에 이미 이런 생각을 해 냈다는 게 놀랍고 존경스럽다. 난 이런 사람을 천재라고 생각한다.
3.
분별력이 박살나서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버렸다는 것. 박살난 분별력을 조각조각 주워 모으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 이런 표현이 참 좋아서 여러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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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러다가도 어느 한순간 미스 해비셤네 집 시절에 대한 어떤 기억이 저주스럽게도, 파괴적인 포탄처럼 문득 나를 덮쳤고, 그러면 내 분별력은 박살 나서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버렸다. 박살 난 분별력은 다시 조각조각 주워 모으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게다가 대개는 내가 그것들을 충분히 잘 주워 맞추기도 전에, 우연히 떠오른 어떤 한 생각 - 가령, 미스 해비셤이 아마도 결국에는 내 도제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때 나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 - 으로 인해서 다시 사방팔방으로 박살 나 흩어져 버리곤 했다.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1>,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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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편이 사무실 부근의 숲에서 밤을 주웠다며 어제 폰으로 보내 온 사진이다.
참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아무래도 칭찬 듣고 싶어서 밤을 찍어 보낸 것 같았기 때문.
밤을 쪄서 맛있게 먹었다. 벌레 먹은 밤이 없어서 좋았다.
5.
요즘 날씨가 무척 좋다.
이렇게 좋은 날에 실내에서 책만 본다는 것은
가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산책도 하고,
하늘을 보기도 하며 살자는 뜻에서
하늘 사진을 올린다.
(내가 쓰고 싶은) 태그 :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글을 쓰겠어. 글의 질보다 양에 집중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