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의 강원국 저자는 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했다.

 

 

 

 

 

 

 

 

 

 

 

 

 

 

 

 

 

 

이 책을 읽다가 저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을 공개한 대목이 인상적이라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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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 한 내가 눈이 좀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두 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한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치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치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 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곳으로 응집력 있게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29.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네.

 

30.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1.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2.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이야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 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 강원국 저, <대통령의 글쓰기>, 2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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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안목에 놀랐다.

 

이 정도면 작가 수준이 아닌가.

 

이 글쓰기 지침은 연설문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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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24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이 부분 읽었어요.
보고 노무현 대통령 다시 보게되더라구요.
하긴 인권 변호사셨으니 글에 대해 예민하실 수 밖에 없었겠죠.

그도 그렇지만 저자도 보좌하느라 고생을 이만저만 했던 게 아니더군요.
없던 병도 막 생기고.
이책 정말 간결하게 잘 쓴 책인데
다른 책에 밀려 아직도 완독을 못하고 있어요.ㅠ

페크pek0501 2018-05-26 17:17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야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랍니다. 출간된 지 몇 년 되었지요.
대통령이 된 분들은 글쓰기에 대해 어떤 노하우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평범한 분들은 아니니까요. 괜찮은 책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독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게 많지 않겠지만 복습한다는 의미에서 일독할 만한 것 같아요.

cyrus 2018-05-24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2번은 정치인들이 기억해야 할 사항이네요. 정치인들은 선거 시즌이 되면 홍보물에 공약을 많이 채워 넣잖아요.. ^^;;

페크pek0501 2018-05-26 17:1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금방 신뢰가 떨어질 일을 왜 하는지... 무조건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일 듯해요.

잘잘라 2018-05-24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왈칵 눈물이 납니다.
햇살이 눈부시구요.

페크pek0501 2018-05-26 17:2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 님, 무척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반갑습니다.
노 대통령의 팬이신가요? 그러나... 편하게 팬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
그래서 그런 불편함 때문에 저도 정치에 관련된 발언은 하지 않으려는 쪽입니다.

햇살이 눈부시죠. 요즘 나가면 봄은 봄이구나, 합니다.
좋은 봄날을 보내시길요...

세실 2018-06-01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면서 놀라웠는데.....다시 보니 역시^^

페크pek0501 2018-06-04 11:31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읽으셨군요.
어떤 분야든 프로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