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의 시대 - 대통령을 만든 미디어 권력
제니스 펙 지음, 박언주.박지우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2월
절판


테라피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이 해방의 약속 이면에 사회통제,즉 "표준화"라는 세련된 전략이 자리한다고 주장한다.이것은 심리학이 의사,정신의학 전문가,형법체계,교육기관 등의 수단을 통해 어떻게 "표준화된 주체"를 양산해내는지에 대한 미셸 푸코의 비판적 토대이기도 하다. 니콜라스 로즈는(44)푸코의 시각을 빌려 19세기 후반부터 소위 '정신수양'의 '이론적,실질적 기술'이 돼온 심리학은 '인격의 형태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정치권력의 행사 방식에도 변화'를 몰고왔다고 주장한다. 심리적 정신수양은 '주관적 해석의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도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1998,11,13).-44쪽

'심리학적 수양'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과학적 합리성을 현실 문제에 적용한다는 진보적 계몽주의 관점 안에서 그 틀을 형성한 뒤, 개인을 사회 구성의 한 요소로 보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에 힘을 입었다. 따라서 심리학적 수양이란,사회질서 유지와 진보라는 과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개인들의 문제에 과학적 지식을 적용시키려는노력에 다름 아니었다.다시 말해 심리학적 수양의 역사는 개인과 사회질서의 관계를 명확하게 표명하기 위한 시도의 연속이었다.-46쪽

이 관계는 주로 단선적 인과관계로 표현하곤 하는데, 추상적이면서 독자적인 과정이(예를 들면 '근대화','문명화','합리화'와 같은 과정)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그 과정에 개인이 순종하고 종국에는적응한다고 보는 경우와 사회를 개인의 특성과 행동의 집합체로 이해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다. 두 경우 모두에게 모든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는 개인이 되고 만다. 즉 모든 사회적 문제는 개인이 자신과 무관한 자연스럽고(또는)불가피한 역사적 과정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했거나 이들의 심리적 결함이 합쳐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역사적 진보를 위협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그래서 테라피 이론과 실천강령들은 개인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조종하려는 데 초점을 맞춘다.이렇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이끌어내면 사회적 문제들이 개선될 것이라는 가정이 밑밭침되는 것이다.-46쪽

회복,레이거니즘 그리고 가족의 위기 : 동반의존 진단은 남녀 갈등을 개인 심리 및 개인 간의 관계에만 한정함으로써 이 갈등을 탈정치화시켰다.그 결과 여성에게 독립성과 능력이 결핍된것은 불평등한 정치경제적 질서의 결과가 아닌 가족병의 결과로 인식된다.회복 패러다임과 레이건 이데올로기가 만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회복운동이 레이건 정부 시절 폭발적으로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회복모델의 골자인 '문제가족'과 상처받은 자아가 레이거니즘 이데올로기의 핵심 논점인 '가족가치의 붕괴'및 '무책임한'또는 '비도덕적'자아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162쪽

회복운동이나 레이거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가정의 비정상적 문제는 모든 질병의 온상이다.따라서 그 치유책은 가족이라는 제도를 소생시키는 데 있었다.즉 가족의 가치를 부활시키고 그 가치가 다시 '문제를 개선하고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만드는 것이다.(중략)그 결과 알코올 중독,약물 남용,각종 중독,이혼,가정폭력, 아동학대, 범죄 심지어 빈곤의 문제까지도 소위 이 문제 가족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간주되었다.-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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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생태학 사상 - 문화, 기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케이시 맨 콩 럼 지음, 이동후 옮김 / 한나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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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쿤스의 후기 산업 사회 예언자들은 사회 내 빠르게 전개되는 기술적 혁신과 확산의 도전과 기회에 관한 일종의 공적 논의에 참여했다. 기술적 혁신과 확산의 속도가 빨라지면서,20세기는 충격적이진 않더라도 다수의 근본적인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변화가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치러야 했다. 세계 환경이 점차 악화되는 것이었다. 천연 자원은 빠르게 고갈되었고,한때 묻지 않았던 수로가 지금은 산업의 화학 유해물로 오염되었으며, 숲과 습지대는 파괴되었다. 더 많은 고속도로가 지어지면서 도시 거리는 더욱 나빠진 교통 상황으로 막히게 되고, 도심의 공기는 자동차와 산업 배기물에서 나온 오염 물질로 가득 찬다. 인간의 희생 또한 확대된다. 예를 들어 미국 자체에만 매년 자동차 관련 사망자가 수십만명이 된다. 이러한 사망자는 산업 관련 사망, 상해, 그리고 온갖 종류의 사회적, 심리적 질환과 같은 수천 명의 또 다른 기술적 사상자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더 열거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20세기 초반에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생겨난 환경적 결과를 삶의 문제와 상호 연결해 생각해 보는 생태학적 -58쪽

패러다임 혹은 방식을 촉진시켰다는 점이다.(58) "전자 혁명"이란 용어는 캐나다에서 맥루언과 함께 가르쳤던 토마스 L.맥파일이 1950년대 부르기 시작한 "전자 식민주의"와 동시에 생겨났다. 맥파일에 따르면, 전자(60)식민주의는 "저개발국이 엔지니어,기술자,관련 정보 규악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하드웨어와 외국산 소프트웨어를 수입하면서 만들어진 서구와의 의존 관계를 나타낸다. 이것은 국내의 문화,습관,가치,사회화과정 자체를 다양하게 바꿔 놓는 일련의 이질적인 규범,가치,기대를 정착시킨다.(61) -58,60,61쪽

요컨대, 1960년대 말 미디어 생태학이 이론 집단 및 이론적 시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20세기가 되면서 시작된 사회적,경제적,정치적,지적 맥락 내 변화와 미디어 기술에 관해 비슷한 관심을 공유하던 사상가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생겨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학제적 측면 혹은 이론 집단의 갈등 모델의 시각에서 살펴볼 때, 그것은 비판학파가 북미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반대해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지배적인 주류(매스 미디어 내용)효과 전통에 대한 일종의 대응이었다. -63쪽

감각 환경으로서의 미디어 : 생리-지각적 수준에서 우리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감각 환경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대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감각을 사용해 당면한 환경을 지각한다. 우리가 생리적 수준에서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 우리의 환경을 지각하는지는,부분적으로 우리가 물려받은 감각 기관에 의존하게 된다. 다른 감각 기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을 다르게 지각(78)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들의 감각이 주변 세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예를 들어,시각 장애자는 보통 시각의 부재에 대한 보상 작용으로 강화된 청각,촉각,후각 미각을 갖게 된다.-78,79쪽

맥루언(1964)이 지적했듯이,커뮤니케이션은 우리의(감각의)확장이다.모든 미디어는 일련의 감각적 특성을 구현한다.각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사용할 때,사용자는 이러한 미디어의 특성이 정의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감각을 쓰게 된다.읽기 행위는 우리의 시각을 확장하거나 중시한다.라디오를 청취하는 행위는 우리의 청각을 확장한다.비디오 게임은 시각,촉각,청각이 결합된 것을 확장시킨다.다르게 표현하자면,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느끼거나 재/구성하는 현실은 우리가 환경과 우리 중간에 놓인 무언가로서,미디어의 지각 기관적 특성에 따라 여과된 현실판이다.-79쪽

물론 이 점은 변화된 감각을 보상하려는 시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우리가 라디오의 야구 경기를 시각화하려고 하는 것)그렇지만 특정 미디어를 사용하는 행위는 우리의(생물학적으로 정의된)감각 기관을 재구조화한다.이것은 맥루언(1964)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관찰한 근본적인 지각 수준이다.이러한 경구를 통해 맥루언은 미디어의 변화가 어떻게 우리의 감각 기관을 재구조화하는지,그리고 그러한 감각 변화로 인해 우리가 주변 세상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감각적 정보를 수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가리킨다.이러한 수준에서 환경으로서의 미디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특히 우리의 미디어(혹은 주어진 미디어)가 부호화 혹은 해독화하는 감각 정보로 구성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우리가 미디어를 사용할 때 관여하는 감각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다.-79쪽

상징 환경으로서의 미디어 : 두 번째 상징적 수준엣,우리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일련의 독특한 부호와 구문으로 체계적으로 구성된 상징 환경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준 성문 영어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사용하기 위해,우리는 단어(즉 그것의 상징과 지정된 의미)와 문법(의미의 구성을 지배하는 문장 구성의 규칙과 규정 등)을 습득해야 한다.'능숙한'영화 제작자가 되기 위해,우리는 영화 언어 및 문법의 시청각적 요소에 정통할 필요가 있다.하지만 이러한 미디어 또는 어떤 다른 미디어를 습득하게 될 때,우리는 미디어 자체의 상징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우리가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 등을 통해 주변의 물리적 세계를 느끼지만,미디어의 상징 세계로부터 그것을 생각하고,지각하고,이야기하거나 재현하게 된다.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우리 언어의 한계가 우리 세계의 한계이다.언어 내부의 상징적 구조 혹은 논리는 규정 요소로서,우리는 이 안에서 우리 주변 세계라고 믿는 것,즉 우리가 '생각하는'세계와 '아는'세계에 대해 개념화하고 생각하게 된다.-80쪽

위와 같은 시각에서,작가에게 세계는 책처럼 '쓰여 있고' 영화 제작자에게 세계는 일련의 병치된 이미지와 소리처럼 '보인다'. 이렇게 '환경으로서의 미디어'를 미시적 상징 수준에서 이해해 본다면,우리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사용'할 때,그것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그 한가운데 있게 된다. 이 점에서 미디어 생태학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본질적인 상징 구조가 인간의 지각,의식 또는 생각 과정에 맡는 역할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예를 들어 특정 쓰기 체계가 사용자 경험의 개념화와 표현 방식을 어떻게 구조화하거나 정의하는지에 관심을 보인다.-80쪽

현실에서 사람들이 정보를 수집하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미디어를 사용할 때,감각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을 항상 의식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따라서 상징적 수준의 연구는 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미디어를 두 가지 종류의 환경(감각 환경과 상징 환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구성하는 데 이 두 환경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81쪽

환경을 미디어로 이해하기 : (전략)전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학자가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디오,신문,텔레비전,영화,녹음기,컴퓨터 등과 같은 정보 기기를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미디어 생태학은 이런 것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지만,사회적 환경과 같은 환경의 상징적 구조가 인간의 상호 작용 또는 문화의 생산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이와 같은 수준에서 환경은 이론상 미디어로 간주될 수 있다.포스트먼의 말을 빌리자면,학교라는 제도는 독특한 언어와 규칙은 거기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일하는 방식,서로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러한 환경 바깥의 모든 것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 등을 특정 짓는다.(중략)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극장,참배장소,사교클럽,침실 등과 같은 사회-상징적 환경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미디어로 개념화해 볼 수 있다.-82쪽

첫 번째 개념은 커뮤니케이션 학문의 정규 과학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주로 라디오,tv,신문,cd 플레이어 등과 같은 정보 기기로 이야기한다. 반면,두 번째는 미디어를 환경으로,또는 환경을 미디어로 이해하는 미디어 생태학적 개념이다.이러한 개념에 따르면,우리는 미디어의 상징적 구조 안에 놓이게 된다.즉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목적을 위해 미디어에 관여하게 된다.-83쪽

"환경으로서의 미디어"에는 세 가지 서로 연결된 이론적 명제가 있다. 이론적 명제 1 : 우선 미디어 생태학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자료나 정보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중립적이거나,투명하거나,객관적인 연결 도관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대신 미디어 본래의 물질적 구조와 상징적 형태가 정보의 부호화는 내용 및 방식 또한 해독되는 방식을 구체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이러한 이론에 있어,미디어의 상징적 형태는 정보가 제공되는 부호의 특성(예로 들어,유추적 상징 대 디지털 상징)그리고 상징이 결합되는 구조(예를 들어,명제적 구조 대 표상적 구조)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물리적 구조는 부호를 운반하는 기술의 특성과 정보의 부호화,전송,저장,회수,해독화,유포 등을 위해 필요한 물리적 조건을 가리킨다.-83쪽

이러한 이론적 명제가 중요한 이유는 미디어의 구조가 정보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주장하면서 미디어 생태학 패러다임의 주된 측면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영화가 잘못 각색했다고 불만스러워 하는 독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은 각색이 영화의 극작가,감독,제작자,배우 등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불평하거나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이 합리적인 설명일지 모르지만,미디어 생태학의 첫 번째 이론적 명제는 소설과 영화라는 두 미디어에 담긴 것을 똑같은 정보라고 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제안할 것이다. 대신 소설과 영화는 서로 다른 상징적 물리적 구조나 형태를 구현하고 있고,따라서 이들이 똑같은 정보원(소설 속에 담긴 이야기)에 기반을 하더라도,수용자,독자,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일련의 서로 다른 정보 혹은 현실이다.-84쪽

이론적 명제 2 : 본질적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개념과 발전 뒤에는 항상 어떠한 인간적 근거와 의도가 있다.그리고 이러한 인간적 근거와 의도는 문제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물리적,상징적 형태의 결정을 돕는다. 이론적 명제 3: 두 번째 명제의 연장선상에서,미디어 생태학은 미디어의 본질적 편향성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결과가 촉진된다고 가정(85)한다.이러한 이론적 명제는 미디어 생태학의 주요 이론적 쟁점 중 하나인 기술과 문화의 관계(혹은 그 반대의 관계)특히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론적 연속체: 연성 결정론, 기술/문화 공생론.경성 결정론 참고.-85,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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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3-3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캐리 : 문화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의식(ritual)으로서의 미디어 / 닐 포스트만 : 미디어 생태학, 미디어에 대한 도덕주의적 관심 / 해롤드 이니스 : 커뮤니케이션 편향성(bias). 이것은 편견이 아니라, 적응의 의미.
 

2010년 3월 30일, 미국 시간으론 3월 29일 밤. 미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로 기록될 사건이 발생했다. 쇼스타퍼, 미스터 레슬매니아로 불렸던 'HBK' 숀 마이클스가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WWE 월요일 이벤트인 RAW에서 은퇴식을 가진 숀 마이클스는,  몇 달 후 돌아올 것이라는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정말 이 '업계'를 떠날 것임을 밝혔다. 어제 열린 WWE 최대 이벤트인 레슬매니아 26번째 행사에서, 숀 마이클스는 자신의 경력을 걸고 언더테이커와 경기를 가졌다.  

참고로,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의 경기는 레슬매니아 역사상 손에 꼽는 명경기였다. 이 경기는 챔피언쉽이 걸리지 않은 노멀 매치로서, 메인 이벤트가 된 레슬매니아 역사상 몇 안되는 희귀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2009년 레슬매니아 25에서 그 해 최고의 경기상을 받은 매치로 기록된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의 경기는, 한 해 후 더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하며, 후배들에게 이런 것이 바로 프로레슬링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은퇴식을 하기 위해 링에 들어선 숀 마이클스. 그가 쳐다보는 사람은? 



그와 함께 WWE를 오랫동안 이끌고 있었던 언더테이커. 언더테이커는 이 날 고개를 가볍게 숙인 채 

숀마이클스의 은퇴를 기념했다. 언더테이커 또한 나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곧 이 업계를 

떠날 예정이다. 아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어쩌면 WWE에 가장 큰 충성도를 보였던 두 선수였기에, 

이들의 모습은 락커룸에서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고, WWE의 브랜드를 격상시키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숀 마이클스는 은퇴식 세레머니에서, 자신의 진심을 담아, 언더테이커만큼 대단한 선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다. 



숀 마이클스가 "저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보게 될 것 같다"라고 하자 

관중석은 아쉬운 탄식과 야유가 흘렀으며, 여성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숀 마이클스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헌터' 트리플 H에게 진한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1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자신을 지지해주고 잘 대해 준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했다.  

또, 그의 비디오 영상, 그를 찍어준 카메라맨들과 주변 스태프들, 중계 아나운서 마이클 콜, 해설자 

제리 더 킹 롤러, 그리고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 되는 선임 아나운서 짐 로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숀 마이클스는 세레머니 내내 눈물을 흘렸으며, 관중들은 "감사해요 숀", "한 경기만 더" "제발 가지마"등 

을 연호했다. 숀 마이클스의 세레머니 멘트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브렛 하트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브렛 하트의 레슬링 인생을 망쳤다고 여겨진 사람 중 하나였던 숀 마이클스에게 브렛 하트의 팬들은 많은 

적의를 품고 살아왔었고, 숀 또한 그것을 알았다. 숀 마이클스는 이후 레슬매니아 14이전에 입은 허리 부상 

과 무리한 이벤트 강행으로 선수 생활 중단의 위기를 맞았고, 이 때 악동이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기를 

가졌다. 특히 신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아내의 내조 덕분에  그는 신실한 침례교 신자가 되었고, 자신의 신앙을 

경기 중 표현하며, 달라진 사람이 되었음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마이클스는 세레머니에서 살면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라고 한 브렛 하트에게 자신을 용서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브렛 하트와의 그 유명한 1997년 서바이버 시리즈 

더블 크로스 사건으로 악연이라는 관계로 살아왔던 그 둘은 결국 2010년에 그 긴 앙금을 풀었다. 

그는 또 WWE 회장 빈스 맥마흔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레슬링을 하게 해 줘 고맙다고 전했다.  



숀 마이클스는 쉬고 싶다고 밝혔으며, 특히 자신을 보살펴 준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힘들 때 지지해 준 가족들의 이름을 열거한 후, "얘들아, 아빠가 곧 집에 돌아간다"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그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신사숙녀 여러분..숀 마이클스는 오늘 이 곳을 

떠납니다..."라고 말한 뒤, 마이크를 내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그의 절친인 트리플 H가 뒤에서 와락 안았다.  


 

그리고 트리플H가 준비한 세레머니는...? 



DX를 상징하는 야광봉. WWE의 한 획을 그었던 듀오이자 팀이었던 D-GENERATION X는 숀 마이클의 

은퇴로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WWE ATTITUDE 시절부터 WWE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은 

정말 가슴 뭉클한 대박 장면일 것이다. 

 

내가 숀 마이클스를 처음 본 게, 1991년. 거의 19년을 이 레전드와 함께 했다. 이제 악동이었던 숀 마이클스는 더 이상 

링에 없다. 이제 그는 여행을 가고, 가족들과 함께 편히 지내고 싶어하는 가장으로서..한 평범한 남자로 살게 될 것 같다. 

굿바이 숀. 쌩큐 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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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3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감동의 추천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사진만 보는데도 이렇게 왈칵 해버리는데, 이 장면을 TV로 보면 더 하겠군요. 이 캡쳐는 국내방송분인가요? 국내에서 방송됐나요? 국내에서는 미국보다 2주쯤 늦게 방송되는걸로 알고있는데, 놓치지 말고 봐야겠어요. (요즘엔 정기적으로 안해주고 페이퍼뷰만 보여주는것 같던데, 레슬매니아니까 해주겠죠?)
숀 마이클스는 레슬링 선수들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에요. 저는 그가 스윗친뮤직을 날릴때마다 짜릿했죠. 저는 그의 경기하는 모습이, 그의 생김새가, 그의 매너가 다 좋았어요. 며칠전 남동생에게 은퇴할거라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아 정말 은퇴라니.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얼그레이효과님.

다락방 2010-03-3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젠가 미국에 가면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한번 꼭 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다 틀렸군요. ㅠㅠ

얼그레이효과 2010-03-31 18: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이 장면은 wwe raw 3월 29일 월요일(미국 시간) 생방송 장면이구요. 그래서 아마 xtm에서 2주 후 정도에 방송해줄 것 같네요. 저는 다운받아서 봤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개인적으로 후배들이 다 나와서 이렇게 막 챙겨주는 세레머니가 아니라, 저렇게 진솔한 내용의 멘트를 해준 자리, 그리고 되도록 음악이나 그런 것 다 줄이고, 조용히 담담하게 걸어나갈 수 있게 해준 세레머니라 더 감동적이었네요.. 브렛 하트도 숀 마이클스도..결국 wwe 자체 팜에서 키운 두 선수들이 이제 wwe 선수 자리를 완전히 다 내놓게 되었네요..진정한 세대 교체가 이뤄진 듯...이제 언더테이커 한 명만 떠나면..wwe는 전성기 시대 선수들이 거의 정리될 듯 하네요. (트리플 h야, 회장 사위라서. 아직은 모르겠구요)

얼그레이효과 2010-03-3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도 숀마이클스가 몇 달만 쉬고 곧 나올거란 예상이 많았는데, 짧은 영어 실력으로 멘트를 들어보니, 이제 선수 생활을 아예 마음에서 접은 것 같더군요. 본인이 너무 지쳤고, 이제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 멘트였습니다. 후배들도 많이 키워줬구요. 아쉽지만. 숀마이클스 마지막 경기는 레슬매니아 26이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패배로 장식한 것 자신의 입지에서 힘들었을텐데...대단한 선수인 것 같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0-04-1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만 집에 가신것이 아니라, 얼그레이님도 집으로 가셨군요.-미안합니다. 썰렁한 농을...;;- 시험기간이라 무척 바쁘신가 봐요. 그래도 가끔 들러주시옵소서. 시험기간 잘 넘기시고요. 총총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4-16 04:26   좋아요 0 | URL
ㅎㅎ 죄송합니다. 제가 졸업논문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블로그 글을 도통 못썼어요 ㅋ 활발한 활동은 가을이 되어야 이뤄질 것 같습니다. 대신 조금,조금 제가 하는 일들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인사 고맙습니다.
 

 

사실 많이 놀랬다. 어제 세경과 지훈의 장면. 어떤 사람들은 김병욱 감독의 '우울증'전력을 꺼내며, 변태 혹은 정신병자가 아니냐는 비난을 퍼부었다. 어쩌면 이러한 분노는 하이킥에 자신의 삶을 많이 겹쳐 주었던 이들이 던진 당연한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좀 크게 보자면 사람들의 분노는 '기능'에 대한 제자리를 '하이킥'이 벗어나는 데 출발한다. '기능의 제자리'란 무엇일까. 사람들의 변은 그렇다. '하이킥'은 시트콤이 아닌가. 시트콤의 기능은 무엇인가. 웃겨야 제 맛이 아닌가. 그런데 이 무슨 '병맛'결론인가. 사람들은 '달달한' 장면을 기대했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 고된 5일을 보내고 텔레비전 앞에서 '보사마'의 플로우를 기억하고, 해리와 신애의 기분 좋은 싸움을 한 번 더 보고, '지세',-'정준'인지, '지정'-'세준'인지 그 러브라인의 끝을 가늠해보며, 어찌되었든 따사로운 기운을 느껴보고 싶었을 것인다. 그러나, 하이킥은 어겼다. 사람들의 이야기대로라면 하이킥은 '시트콤'의 본분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김병욱 감독의 의도를 마음대로 해석해 보는 것이나, 대중의 분노를 이해하려는 듯한 모습 그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내게 별 의미가 없다. 다만, 사람들의 분노 속에 섰인 그 '기능'의 측면은 곱씹어보고 싶다. 사람들은 이제 문화에서 '본분'을 찾는다. 문화는 어떤 풍요로운 상상 혹은 깊숙한 절망에 대해 그 어떤 장르를 넘어가며, 자신의 왕성함을 소통할 수 없다. 사람들은 문화에서 '투자'를 찾는다. 그 '투자'만큼 '적절한 기능'을 해달라. 너무 많이 나가지도 말고, 너무 적게 나가지도 말라. 내가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니, 그 시간을 '보상'해라, 그 '돈값'을 해라.  (이건 원래 그랬지만, 오늘날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이런 '보상'의 논리에서 보자면, '하이킥'은 엄청난 돈을 빌리고, '야간도주'를 한 셈이다. 그러나, 문화의 성장은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그 '야간도주'에  있었다. 비록 어두운 밤 시간을 택해, 많은 이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밤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기억하고 있지만. 문화는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어떤 '압도적인 선'을 만들면서 우리에게 기능을 뛰어 넘는, 풍요로운 문화의 형식을 만들어 낸다. 문화 그 스스로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간 문법은 그리하여 웃겨야 할 작품에 웃겨야 한다, 울려야 할 작품에 울려야 한다는 당위론을 넘어, 그것을 분열시키는 힘에서 자신의 문법을 더욱 확장해간 것이다. 

텔레비전의 형편은 영화에 비해 여전히 그 '야간도주'를 모색할 처지가 여의치 않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관객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좋은 영화의 척도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 게시판을 통해 늘 한 편의 드라마를 '감시'하고 '간섭'하면서, 작품에 손을 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감시와 간섭을 한편으론 텍스트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뜨거운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애정 가운데 너무나 '본분'과 '기능'을 외치며, 소위 '역할론'이라는 것으로 문화의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텍스트는 텍스트 스스로에게 배반을 하고, 반칙을 함으로써 성장해왔던 것이 우리네 문화사가 아니었던가.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이런 '순수-기능주의'가 순수함의 모랄로 이어질까 두렵다. 웃김의 공간에 반드시 웃어야 함이 강요된다면, 나는 그것을 '순수'라는 이름의 문화적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언젠가 <아바타>를 보고 오면서, 그 '기술'의 광경으로 인해 같이 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우리가 영화관에 들어가, 안경을 쓰면, 원하는 다양한 결말이 있고, 그 결말 중 하나를 골라, 각자가 원하는 그 결말대로 극의 서사를 즐기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이런 '첨단적 결말'보다, 나는 또 다른 '폭력적 결말'이 좋다. 사람들이 시트콤이라는 장르에 대한 '웃겨라!'라는 당위를 앞세워 분노할 때, '하이킥'이 보여준 이 '폭력적 결말'은 한편으로 구리지만, 한편으로는 '기능'에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움을 펼치고 싶은 한 샐러리맨의 상상 같아, 또 다른 위안을 얻는다.  

몸은 칸막이로 구획된 사무실 책상 안에 묶여 있지만, 마음은 탈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칸막이에 채워진 순수와 기능, 네 본분을 하면 그거로 된 것이다라는 압력을 벗어난, 소심한 분노의 다른 형태인지 모른다. 나는 이런 도주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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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웃겨야한다는 약속된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도 그렇지만,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엔딩이지 않을까 했거든요.

사실, 현실에서 그 둘 사이의 러브라인이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죽음이라는 메타포는 반드시 물리적, 신체적 죽음을 떠나 둘 사이의 관계가 파국일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드라마를 통해 의기소침해 있던 자신의 일상에도 혹여나 숨어있는 재미 같은 것들을 찾아내려했으나, 결국 현실은 현실이다라는 결론에 더 열 받아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었어요.

그런의미에서 저는 폭력적 결말이라는 말씀에 정말 동의해요. 적당히 가려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거죠. 현실을 보상해줄 가장무도회에서 그 가면을 동의 없이 벗어던지고 추한 몰골이라는 진실을 드러내면 소리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처럼..



얼그레이효과 2010-03-29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글인데 '탁월한' 답을 얻어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멘트 고맙습니다.
 
사회학의 문제들 동문선 문예신서 234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신미경 옮김 / 동문선 / 2004년 4월
절판


사회학과 연계 학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당신의 저서 <구별짓기>는 사회학이 사회정신분석학과 흡사해지는 것은 사회학이 기호와 같은 대상에 직면할 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그 뒤를 이어 통계표와 설문조사 요약, 그리고 발자크나 졸라, 프루스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문학적 유형의 분석이 나온다. 그 두 양상이 어떻게 분절되고 결합될 수 있는가?-32쪽

그 책은 소수의 케이스에 의존하고 있는 민족지학적 관찰과,관찰된 케이스들을 존재하는 모든 경우의 우주 속에 위치시켜 그 규칙성을(32) 성립시켜 주는 통계학적 분석이라는 두 양식의 지식을 통합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다.예를 들어 부르주아 식사와 민중의 식사 사이의 대조적 성격은 다음과 같은 항구적인 특질들로 요약된다.민중들이 행하는 일체의 소비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기능이다.음식물의 경우 음식물은 든든할 것을, 속을 채워 주기를,스포츠에서 요구하는 힘(보디빌딩의 단련된 근육들)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부르주아의 경우 우선권은 형식(격식을 차린다)에게 돌아간다. 형식의 우선권은 기능을 억압하고 검열하는 일종의 미학화를 내포하는 것으로,이것은 포르노그래피를 부인하고 승화시키는 에로티시즘이나, 기능에 우선한 형식의 특권으로 정의되는 순수 예술에서 잘 나타난다. 강우량 측정의 통계학 자료처럼 그저 엄격하게 확인된 자료들을 실제로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질적 분석,(심하게 표현하면)문학적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질적 분석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관찰된 모든 실천들의 원칙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32,33쪽

사회학자의 모순 중 일부 - 경험주의 이론은 현실로부터 구조를 차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건설주의 이론은 대상을 구축,건설함으로써만이 대상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전통적으로 서로 대립해왔다.(중략) 사회계급이나 사회적 분화란 학자나 기타 사회적 행위자들에 의해 구축된 하나의 구성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계급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사회 계급은 사회학적 구성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들에 의하면 사회 계급을 만들어 내려는 학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 계급이 존재하는 셈이다.-96쪽

사회적 세상에 대한 재현은 현실 속에 이미 존재하는 분류를 단순히 기록한 것일까,아니면 분류적 도구를 적용해서 얻어진 건축물일까? 행위자들은 일생 동안 스스로를 분류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은 이미 그 자체로 분류된 사물들(행위자의 계급에 결부된 사물들)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행위자들은 타인들을 분류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타인들이란 그 행위자들이 분류한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적용시켜 감으로써 스스로를 분류하는 사람인 것이다.따라서 연구 대상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의 분류 그 자체이다. -102쪽

청춘은 단어에 불과하다 중 / 청춘과 노년을 논리적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권력의 문제,공유한다는 의미에서 권력 분할의 문제이며, 이것은 다른 영역(性)에서 도 나타난다. 연령(성,계급)에 따른 분류는 경계선을 긋는 일로서, 각자가 스스로의 자세를 정하고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하나의 질서를 생산하는 일이다.-158쪽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청춘과 노년 사이의 경계는 단순히 젊고 나이 들었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과 나이 든 이들 사이의 투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적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의 관계는 복합적이다. -158쪽

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 / 여론조사가 내포한 세번째 전제는, 만인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합의, 즉 그것이 질문을 던질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라는 하나의 동의를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241쪽

모든 경우에 있어서 힘을 행사한다는 것은 그 힘을 행사하는 사람의 권력의 합법화를 목적으로 하는 담론을 동반한다는 것, 이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힘들의 역학 관계는 그것이 은폐되면 은폐될수록 더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중략)오늘날 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발언의 등가물은 곧 여론이 우리와 함께한다이다. 여론 조사가 행사하는 근본적인 효과는 바로 거기에 있다. 하나의 통일된 의견이 존재한다고 생각하(243)게 만드는 것,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합법화이며 그 정치를 형성시켰던 힘들의 역학 관계,혹은 그 정치를 가능하게 만든 힘들의 역학 관계를 강화하는 일이기도 하다.-243쪽

여론 조사의 효과는 질문을 부과한다는 단순한 사실에 의해 도덕적인 응답을 정치적인 응답으로 변형시킨다. -245쪽

여론 조사가 제기하는 질문들은 응답자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제기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여론 조사에서 얻어진 응답들은 다양한 사회적 범주의 응답자들이 현실에서라면 기꺼이 대답하게 될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248)고 해석된다는 점, 이것이 바로 모든 여론 조사와 모든 정치적 질문(선거 여론 조사)의 유발시키는 문제 부여 효과이다. -248쪽

여론이 형성되는 상황,특히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존에 형성된 의견들, 달리 말하자면 특정 사회집단들이 지지하는 여러 의견들과 직면하게 된다.따라서 그 의견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상이한 의견을 주장하는 사회 집단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된다. 이것이 위기 상황이 생산해 내는 정치화 효과 원칙이다.(중략)실제 상황에서 의견들이란 곧 힘들이다. 의견들의 관계는 여러 집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힘들의 갈등인 것이다.-250쪽

여론 조사는 이미 형성된 의견들에 대해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며 또 그렇게 생산된 의견들을 단순히 통계학적으로 취합해서 여론이라는 인공물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설명했을 뿐이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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