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애도가 방방곡곡에 선포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애도는 정녕 '죽음'을 위한 것인가. 외려 이 애도는 '삶'을 건드리는 것이 아닐까. 애도를 삶이란 단어와 이어 붙이려는 것은 단순히 '음모'라는 흥미로운 게임의 언어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 삼는 것은 태도다. 국가라는 녀석의 태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쓰고 싶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던 친구 녀석. 경조사로 바글바글한 때를 틈타, 상처 주는 말들, '오바스러운' 칭찬을 늘어놓는 말들을 하는 녀석이 있다. "야, 이거 나한테 다 맡겨, 이런 건 또 내가 전문이잖니?","야, 뭐하니, 얘 울잖아. 좀 잘하지 그랬냐, 아이그."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야, 너 쟤 알아?", "웃기는 녀석이네. 평소에는 그렇게 연락해도 안 보이더니, 지가 뭐라고 참 나.." 그러나 그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 알아서 완장을 만들어 차고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다.


'애도부장'으로서의 국가. 국가는 양 팔에 애도와 선도라는 완장을 차고 나타나, 죽음을 이상한 방식으로 추모하게 만든다. 외려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쓰고 싶을 정도로 펑펑 울고 싶은 사람들을 멀리 쫓아 버렸다. 남은 건,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라고 강요하는 자의 지휘, 그리고 그 죽음의 뒤에 뭔가 구린 게 있다는 뒤숭숭한 뒷담화의 실천가들. 죽음 그리고 그 죽음으로 뒤덮어야 마땅하다는 명령으로 채워진 요상한 시간. 이 시간 속에서 우리의 믿음직한 애도부장은 궁시렁궁시렁 대는 자들에게는 "어허, 어디..이런 엄숙한 자리에서..그런 망발을.."이라며, 분위기를 잡는다. 혹은 좋은 일이 있어 같이 축하해주는 왁자지껄한 광경이 있는 옆집 분위기가 거슬려 "저기요. 지금 이 분위기에 그런 웃음이 나와요"라며, 시비를 건다. 옆집은 당황스럽다. 웃고 싶은데, 내 맘대로 못 웃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애도부장이 잘 있는 사람들의 '선도부장' 노릇까지 하니, 안 그래도 튀어나온 입이 더 나올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입에 갑자기 쑥 튀어 나온 한 마디. "시체들이 살아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음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태도에 대한 비뚤어진 반항심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이 반항심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약간 허용해주길 바라는 상상.(유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시체가 살아나, "나 너 정말 아꼈던 것 알지?"라며 침 냄새나는 눈물을 흘리는 녀석 앞에 딱 나타나길. 그랬을 때 녀석이 느끼는 당혹감. 그 녀석의 뒤에는 살아있는 시체를 반기는 자들의 환호.


그러나, 지금 이 밤에 그들의 환호는 금지된 상상이다. 오직 허락된 것은 침묵. 애도라는 선한 이름으로, 영웅이라는 믿음직한 표현으로 설레발치는 녀석의 '왁자지껄한 울음'만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수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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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0-04-28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적인 것'으로서의 '국가'라고 더이상 볼 수 없을 듯해요. '국가'를 사칭한 사익추구 세력들이죠...

얼그레이효과 2010-04-28 07:47   좋아요 0 | URL
적확한 표현이십니다. 로쟈님. 맞아요, 정말 '그들만의'국가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2010-04-2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장례식이 있던 저녁, 라디오에서 나오는 '영웅', '헌신', '그토록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국가' 등의 언술로 외려 그 죽음들이 함부로-한 번 더- 살해되는 것이 못 참겠더군요. 그래서 들리든가 말든가 외쳤죠. 그 죽음은 헌신이 아닌 '희생'이며, 그들이 죽어가며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건 바로 삶일거라구요!!

얼그레이효과 2010-04-29 12:59   좋아요 0 | URL
지키고 싶어했던 건 삶. 와닿습니다.
 
컬트 영화, 그 미학과 이데올로기 한나래 시네마 7
곽한주 / 한나래 / 1995년 11월
품절


컬트 영화, 어두운 욕망을 일깨우는 문화적 마리화나 :곽한주 - 컬트 영화가 유행이라 할 만큼 자주 거론되고 있다. 여러 영화가 컬트 영화라는 이름으로 광고되고 영화 저널리즘은 이 말을 애용하고 있다. 일부 영화광들의 전유물이던 이 말은 이제 웬만한 영화 팬들에 의해서도 특정 부류의 영화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중략)그러나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를 따져 보면 과연 컬트 영화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컬트 영화를 들먹이는 영화사들의 선전문구뿐 아니라 신문,잡지의 영화 기사들은 상업주의와 선정주의에 크게 오염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개도 되지 않은 영화가 컬트 영화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소개되기도 하고 기괴한 감수성을 보여 주는,말하자면 뭔가 '튀는'영화가 컬트 영화로 대접받는 경우도 흔하다.-11쪽

컬트는 그 자체로 본질적 내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적 현상이나 체험을 가리킨다.컬트 영화란 다름 아닌 컬트의 대상이 되는 영화,즉 일부 관객에 의해 열광적으로 떠받들어지는 영화이다. -12쪽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레퍼토리 극장을 근거지로 싹트기 시작한 심야 컬트 영화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주관객인 젊은이들의 영상 체험이 축적되어 있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본격적으로 컬러 tv를 보며 자란 tv세대인 이들은 기존 영화와는 다른 새롭고 이상한 영화들에서 이질성의 쾌락을 발견했던 것이다.한 영화에서 다른 영화와의 차이를 발견해 내고 즐기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영화적 교양이 필수적이다.-22쪽

젊은이들의 컬트적 반응이 컬트 영화를 만들어 내던 시대는 지났다.1980년대 이후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면서 컬트 영화의 산실이었던 심야 극장은 거의 소멸돼 버렸다. '여행'을 떠날 만한 곳마저 사라져서 개개인이 밀실에서 비디오를 보거나 케이블 tv채널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제 컬트 영화는 집단적 체험과 참여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비디오보기에 의해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25쪽

우리에게 컬트 영화는 이미 확립된, 또는 주어진 대안적 영화군의 하나다. 컬트 영화는 이미 그런 평가가 붙여진 채 보여진다. 우리가 하는 일은 특정한 영화를 선택해서 컬트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평가를 재확인하거나, 가장 적극적인 형태라 해도 컬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들을 감별,또는 판정하는 것이다.적어도 당분간 우리는 컬트 영화 형성의 주체가 아니라 컬트 영화의 수동적 소비자일 뿐이다.(중략)단순히 개인적으로 열광하는 영화라고 해서 컬트 영화가 될 수는 없다. 컬트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28쪽

우리의 컬트 영화 문화는 시원찮은 화질의 복사 비디오를 구해 보던 일부 젊은 영화광들에 의해 독점되었던 시기를 지나 문화적 확산기에 접어드는 것으로 보인다.-29쪽

<카사블랑카>: 컬트 영호와 상호 텍스트적 콜라주 - 움베르토 에코 (한영성 역)/ Umberto Eco, "Casablanca:Cult Movies and Intertextual Collage:, Travels in Hyperreality,Harcourt Brace,1986,pp197~211. -53쪽

나는 <독자의 역할 The Role of the Reader>에서 일살적 프레임과 상호 텍스트적 프레임을 구분했다. '일상적 프레임'이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기차역에 가는 일처럼 정형화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한 정보 구조를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다소간 우리의 정상적인 경험에 의해 약호화된 일련의 경험을 말한다. 그리고 '상호텍스트적 프레임'이란 선행하는 텍스트적 전통에서 유래하고,또 우리의 백과 사전 속에 기록돼 있는 정형화된 상황을 의미한다.-57쪽

멈추어 확인하기 : (전략) 관련 있는 모든 부분마다 테이프를 멈추면서 장면마다,숏마다 우리의 원형을 하나하나 찾아 내는 일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것이다. 공동 연구의 장점을 만끽할 수 있는 연구 팀과 함께 <카사블랑카>를 꼼꼼하게 검토할 때면 항상 여러 시간이 걸렸다. 더 나아가 한 팀이 이러한 종류의 게임을 시작하는 경우 성원의 규모에 비례해 비디오테이프를 멈추는 횟수도 늘어났다.-61쪽

<카사블랑카>는 하나의 영화one movie가 아니라 여러 영화the movies이기 때문에 컬트 영화가 되었다.-69쪽

심야 영화,1980~5년:시장연구의 한 사례-그레고리 윌러 (이채훈 역)/ Gregory A.Waller,"Midnight Movies,1980~1985:A Market Study,"J.P.Telott(ed),The Cult Film Experience,Austin:University of Texas Press,1991,pp167~86. -151쪽

심야 영화 시장의 위축은 1980년대 중반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의 한 징후인지도 모른다.그것은 또 심야 영화의 체험이 갖는 상대적인 진기함이 바래면서 그 체험의 많은 부분이 비디오에게 갖는 상대적인 진기함이 바래면서 그 체험의 많은 부분이 비디오에게 자리를 넘겨 주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인터뷰해 본 극장 경영자나 상영 기획자 booking agent들은 심야 극장 시장이 위축된 것은 한때 인기가 높았던 그 많은 심야 영화들-그리고 심야에만 성공할 수 있었던 영화들-을 비디오카세트로 쉽게 구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심야 영화가 상업적으로 살아남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는 것,즉 심야 영화의 성공은 '가장 사회화된 극장 체험'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심야 영화의 독특한 현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어떤 영화가 제공되느냐에 달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호버맨,로젠바움,301)(영화 상영에 미친 vcr의 또 다른 영향에 관한 예로는 가까운 비디오 가게에서 x 등급의 성인 영화를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데서 초래된 성인 영화의 급격한 쇠퇴를 들 수 있다.)-160쪽

J.Hoberman & Jonathan Rosenbaum,Midnight Movies,New York:Da Capo Press,1991,PP.321~30. <심야 영화>후기 한정호 역 -187쪽

로젠봄 : (전략) 내 생각으로는 공동체와 관련된 현대의 모든 영화 경험은 반문화적,즉 비디오를 보는 문화적 경험에 대항적입니다.1960년대와의 연관성이 잊혀졌다 할지라도 말입니다.(중략)나는 <로키 호러 픽쳐 쇼>가 집단화된 연극적 영화보기의 마지막 순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디오가 관객을 차지하여 원자화시키기 이전의 일입니다.-194쪽

로젠봄 : 말할 것도 없이 심야 영화의 중대한 위험은 비디오입니다. 우리가 책을 썼을 때 막 시작된 배급의 한 방법이죠. 지금은 당시의 심야 극장 수보다 더 많은 비디오 대여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여점은 심야에 상영됐던 영화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유하고 있죠.-201쪽

호버만:비디오는 빌려 주고 또 가져갑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강의실의 컬트 영화가 됐듯,비디오를 통해 컬트의 위치에 오른 영화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그린 베레>입니다. -201쪽

로젠봄 : 지금은 모든 것드리 비디오화되는 그런 세상입니다.우리는 호화스런 인쇄물을 통해 새 비디오의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것들은 이미 영화로 나왔던 것들이죠.인쇄물들은 다른 영화들까지는 커버하지 않아요.그래서 우리들은 스스로 그런 것들을 발견해야만 하죠.그리고 우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겁니다.또 당신은 비평의 부재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비평의 부재가 심야 영화의 발전을 이뤘으니까 말이에요.관객들만이 남았을 때,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적 반응이 가능한 거죠.관객들이 더 이상 동일한 장소에 있지 않더라도 말입니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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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화학을 만들어라
강한섭 지음 / 삼우반 / 2004년 12월
품절


멀티플렉스 극장과 덤핑 :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비디오 시장은 쪼그라들고 극장은 호황을 누렸던 것일까? 우선 다수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교통과 상업의 요지에 새로 들어서 하나의 스크린을 가진 기존의 단일 대형 극장이 몰락한 극장 환경의(211)급격한 변화를 들 수 있겠다.1998년 4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CGV 강변 11이 개관하면서 시작된 멀티플렉스 시대는 한국의 영화문화와 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담당했다. 우선 영화 스크린 수는 1999년 588개에서 2001년 818개, 2002년 977개, 그리고 2003년 1,200개를 돌파하는 등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212)-211,212쪽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각종 편의시설과 최첨단 장비 그리고 문화오락 공간 등을 갖추면서 영화 관람을 단순한 구경에서 토털 엔터테인먼트 활동으로 변화시켰다. (중략)멀티플렉스는 원래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24시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100%상품화 전략을 가지고 출범했다.그러므로 멀티플렉스 극장은 영화 관람의 행위를 하나의 의식에서 소비로 변화시킨다.-212쪽

공급이 증가하면 수요가 따라서 늘어나듯이 멀티플렉스가 도입되면 극장 관객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비디오 시장이 단기간에 몰락하는 경우는 없다.(중략)비디오 시장의 주된 몰락 이유는 우선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으로 청년층이 비디오 볼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중략)그러나 청년들의 인터넷 사용 시간은 이미 인터넷 중독이라 부를 만큼 지나치게 증가하여 2002년부터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디오 시장의 몰락의 더욱 중요하고 심각한 이유는 극장 요금의 덤핑에서 찾아야 한다.(213) 제2부 한국영화 붐이라는 신화, 05 한국 영화 붐 연구 중에서 --213쪽

모바일과 네트의 미래 : 모니터 인간들은 극장 인간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거나 기존의 단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언어 전략을 구사한다. 우선 그들은 한 편의 영화를 작품이라 부르기보다는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로 생각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로서의 영화를 뉴스,스포츠,게임 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정보로 생각한다. (중략) 그들은 극장보다 모니터에서 영화를 더욱 값싸고 빠르게, 그리고 편하게 볼 수 있다면 사람(237)들이 구태여 극장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극장을 떠나 모니터에 정착하게 되면, 영화의 형식과 내용은 모니터 환경에 맞추어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237,238쪽

이런 주장을 펴는 모니터 인간들을 보면 극장 인간들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극장 인간들에게 영화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영화는 우선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율적이며,그래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예술 작품'이다. 작은 점 하나라도 창작자가 아니라 제3자에 의해 더해지거나 삭제된다면, 그것은 예술 작품의 자격을 상실한다. 또 예술 작품은 창작자가 처음 계획한 전시 공간에서 감상되어야 한다. 미술관과 극장은 단순한 물리적 전시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와 사회적 기능을 가진,그래서 그 자체로 특수한 의미를 가지는 상징적 공간이다.그래서 극장 인간들은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디오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그저 긴 예고편일 뿐이며,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방영하는 행위는 영화예술에 대한 배신을 넘어 절단과 살상 행위이다. 극장 인간들에게 영화는 이렇게 잡다한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고귀한 정신과 진실한 마음이 빚어 낸 예술이며 문화다.-238쪽

영화 종말론의 오래된 역사 : 텔레비전이 컬러화 되고 채널 수도 다양해진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영화는 또 다시 풍전등화의 위치에 서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영화 천재가 나타나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름하여 sfx와 키덜트 무비 시대. 영화의 제작비와 규모는 더욱 비대해지고, 이에 따라 관객수는 증가하여 영화는 더욱 거대한 산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영화 시대의 종언을 예견하는 시나리오는 계속되었다. 비디오의 시대가 열렸던 1980년대도 그랬고, 인터넷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환상이 지배했던(240)1990년대 말에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모바일 영화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또 극장이냐,아니면 모니터냐의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영화 시대의 종언과 그에 대한 반박의 역사는 영화의 탄생 직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상 기록과 상영 방식에 혁신적인 테크놀로지가 도입될 때마다 그 논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극장 인간들의 승리로 끝났다.-240,241쪽

무엇보다도 영화산업에 결정적인 변화는 극장용 영화의 전자적 배급이나 위성 텔레비전이나 기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영화의 가정적 배급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중에서 극장을 통한 영화의 전자적 배급은 이미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필름 프린트를 대량으로 복사하여 극장으로 수송하는 현재의 배급 시스템은 19세기 말 영화의 발명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 높은 비용과 관리의 복잡함으로 영화의 전자적 배급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 앞에서 급속하게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필름 영사의 종언에 불과할 것이지만, 영화의 가정 배급은 극장 붕괴는 물론, 자칫 영화산업 그 (242)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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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생각하다
수잔 리앙드라 기그 지음, 김영모 옮김 / 동문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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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문제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영화가 하나의 복합물이었기 때문이다. 즉,영화는 어느 면에서는 예술에 속하고, 어느 면에서는 기술에 속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학문에 속하기 때문이다.-15쪽

'시네마'(이미 축약된 단어)란 단어는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cine)'또는 시노슈(cinoche)'란 좀더 축약되고 대중적인 해석, 즉 '막을 펼치다',막을 만들다'로 대체되는 '영화관에 가다'라는 표현을 탄생시켰다. - 2. 영화란 무엇인가? 중에서 -22쪽

위대한 여행가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지도에 추가된 나라'로 정의한다. "시네마를 지도에 추가된 또 다른 나라와 동일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고다르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고를 무척 좋아했으며 반복하며 되풀이했다. 시네마(영화)는 나의 지리부도에 나오지 않는 나라이다. 지금 사람들은 시네마가 한 제국인지, 한 나라인지, 아니면 한 지방에 관계되는 것인지 자문한다."-24쪽

1960년대 초에 수십 명의 관객들이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광적이고 맹목적인 열정을 갖고 살았다. 울름 가의 영화 박물관에서,좀더 나중에는 샤이오 궁의 영화 박물관에서, 전문화된 영화 클럽에서(니켈 오데옹이나 시네쿠아 농),더욱이 벨기에의 브뤼셀 영화관의 원정을 통하여(파리에서 볼 수 없는 z시리즈 주말 영화로 하루에 7-8편의 영화 감상), 우리에게 유달리 눈에 띄는 몇몇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두세 가지 일을 공유한다. 즉 미국 영화에 대한 광적인 사랑(공식 비평,좋은 취미), 일부 연출가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탄(개개인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출가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과 특히 똑같은 공간의 향유.예컨대 영화관의 3-5열의 좌석은 우리들의 좌석이다.(..)분위기는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진 조직의 분위기였다.-사람들이 채(236)플(예배당)이라고 불렀다-그래서 이 예배당의 학생들은 일에 대한 정열적인 욕망을 갖고 있었다. -루이스 스코렉키,1978년 <카이에 뒤 시네마>293호, 42 영화 팬들은 존재하는가?-236-237쪽

에릭 드 쿠퍼는 1933년 영화 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일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에 일부의 문화, 즉 학식과 영화의 기쁨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였다. 종종 접근하기가 아주 어려운 이러한 약간의 보물들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지'인 호기심이 필요했다. 이러한 '진정한 의지'를 채플(예배당), 즉신,성자,예언가 목회자, 종교 재판관이 되어 버린 영화 애호와 혼동(239)해서는 안 된다. 2001년에 영화 팬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 단어는 이제부터 새로운 의미를 갖는가? 다른 목적,다른 행동 양식을 가진 영화 애호의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하는가? -42.영화 팬은 존재하는가?--239~240쪽

텔레비전의 스크린에서 상연된 영화를 안다는 것은 반역인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고다르의 지적을 되풀이하면서 많은 말을 했다.실제로 우리는 복제 영화만을 보고, 그 차이는 그림과 그림엽서의 복사품의 차이가 동일한 것처럼 오리지널 영화 자체와 복제품이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조나단 로젠바움(1998)은 다른 고려를 제시했다."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비평가들, 교수님들,학생들 모두는 비디오로 영화를 본 다음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쓴다. 마치 자신들 모두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해 있는 전이기의 결과 중의 하나이며,이것은 종종 일종의 부정확,게다가(271)일종의 이 영화들에 대한 우리들의 개인적 관계에 연관되는 속임수를 내포하기도 한다.-271,272쪽

실제로 우리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 또는 영화를 기술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영화를 조건과는 무관한 대상으로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조건에서 우리들은 영화를 보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인다. 반면에 이러한 상황들은 종종 대상으로서 우리들의 영화 인식에서 결정적이다."고다르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영화관에서 사람들은 두 눈을 스크린으로 올려뜬다. 반면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은 아래쪽으로 눈을 뜬다. 영화관에서는 우리들보다 이미지가 훨씬 더 크지만, 텔레비전에서는 훨씬 더 작다. - 49.작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당한가?-272쪽

영화와 우리들은(영화관,페스티벌,텔레비전,영화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게 좌우되지만,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프로그램 '카드'를 만들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 물론 제한해서. (274) 영화를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고독한 즐거움이 되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것은 하나의 일거리이다(단절의 의미, 홀의 개봉에서 선험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이것이 초현실주의자들이 다른 것을 보려고 다른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영화를 떠났을 때,이들이 했던 바로 그것이다. 비디오에 의해 제공된 편리함은 바로 다른 영화를 보게끔 부추겼다. 아울러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비디오는 영화 대상과의 관계를 바꾸었으며,dvd의 출현은 이것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49.작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당한가?-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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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오늘 탐사저널리즘 역사의 한 장에 와 있다. 

진실을 위해 많이 퍼뜨려주시길. 

고맙습니다.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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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디 수첩 아직 안 죽었구나
    from 자유를 찾아서 2010-04-21 07:33 
      우린, 오늘 탐사저널리즘 역사의 한 장에 와 있다.  진실을 위해 많이 퍼뜨려주시길.  고맙습니다. PD수첩.
  2. 떡찰의 날 특집 패러디 공모전, 벌써부터 뜨거워요~~
    from 승주나무의 책가지 2010-04-21 17:13 
    지금 트위터에 떡찰의 날 특집 공모전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단 19금이니 주의해서 보시고, 임산부, 노약자는 시청을 자제해주시고 19세 이하는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ㅋㅋ    우리나라에는 무명의 위대한 작가가 많다는 걸 느낍니다       부산지검 방명록에 올라온 풍자 이미지..   <트위터 관전평>
 
 
saint236 2010-04-2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봤는데 어디서 영상이라도 구해서 봐야할 듯 싶네요.

얼그레이효과 2010-04-26 12:06   좋아요 0 | URL
아구, 제가 덧글을 넘 늦게 봤습니다. 보시면 후덜덜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