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책 커버 이미지는 출판사에서 유가족들의 동의를 구하고 만들었답니다.  


 제가 책임간사를 맡고 있는 시사비평모임 '당대비평'에서 '당비의생각 시리즈 세번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만들었습니다. 웅진씽크빅 인문교양담당 산책자에서 책이 만들어졌고, 저는 이 책의 기획참여와 책 전체 편집을 담당했습니다.  

2009년 참 많은 상실과 그것으로 인한 아픔이 발생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죽음'이란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았지요. '당대비평'은 바로 그 죽음을 성찰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 용산 참사의 광경들, 두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애도와 우울, 그리고 이것을 둘러싼 정치와 기억, 역사의 관계를 살펴보려 했습니다.  

제 부족한 생각 대신, 《당대비평》 기획주간인 서동진 선생님
의 여는 말 한 대목을 인용해봅니다.

“1년이 되어가도록 장례를 치루지 못한 채 기억의 저편에서 표류하는 용산 참사, 어쩌면 회피하고 싶은 죽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박종태 씨의 외로운 죽음, 그리고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서 비롯된 노동자 가족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죽음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전임 대통령 노무현과 김대중의 죽음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 …어떤 죽음이 대대적으로 애도될 때, 그것은 단지 죽은 자의 사회적 지위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애도하는 자의 정치적 욕망이 투여되어 있음을 가리킬 것이다.

‘당비의생각’ 3권은 2009년 한국 사회의 정치적 공간을 배회하였던 죽음을 비판적 반성의 무대로 불러들이고자 한다. 그것은 죽음 자체의 문제를 떠나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인 삶의 정체성을 헤아리고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적 정치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찾아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_ 서동진:「들어가며: 당비의생각 3권을 기획하며」에서

책은 12월 7일에 공식 릴리즈 된다고 하네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당대비평 기획위원회는? 

기획주간 :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교수)  

기획위원 : 정진웅(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교수),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장), 

              송경아(소설가), 이상길(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한보희(연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강사) 

편집간사 : 김신식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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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12-0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챙겨야겠군요! ^^

얼그레이효과 2009-12-0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고맙습니다. ^^

얼그레이효과 2009-12-0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당비'가 예전처럼 다시 힘을 내려 합니다. 지금처럼 관심 부탁드려요.^^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140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웹진 <제 3 시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우리는 ‘언어-에너지’의 과다 분비를 통해 많은 상처를 안고 산다. 나는 이러한 상처의 누적이 만연한 오늘날의 사회를 ‘스팸(spam) 사회’로 명명하려 한다. 하루에 2~30개씩 쌓이는 스팸 메일. 우리는 이 메일의 운명을 안다. 예견된 폐기의 운명 말이다. 2~3초의 순간에 폐기의 미래를 빗겨나기 위해 애쓰는 ‘스팸’ 생산자들의 ‘친절’ 전략은 고도화되어 가지만, 그럴수록 가깝게 다가오는 남모를 깊은 고독과 지속되는 실망감. 그것은 곧 시각의 피로감을 유발한다. 우리는 이런 피로감을 일찌감치 예방하기 위해, ‘외면’이라는 전략을 선택한다. 길거리에서 불과 몇 십 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내 손에 쥐어지는 전단지들. 그 전단지를 개인의 손에 쥐어주어야 자신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어색한 접촉. 우리는 이 접촉을 통해 메시지의 무의미함을 체감한다. 그리고 내가 취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판별하고 학습한다. 메시지는 흩뿌려지고, 구겨지고, 거리에 쏟아진 구토물에 섞여 있다. 메시지는 오늘날 하루살이 아니 ‘일초살이’가 되었다.


이런 ‘일초살이’의 범람 속에서 내가 정작 걱정하는 것은, 구경꾼의 어떤 윤리이다. ‘말과 글’의 스펙타클이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 그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감각이 피로를 호소할 때, 우리는 이 피로감을 혐오로 교환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짧지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짜증. 이 짜증은 메시지를 전달해야지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인들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곧 구겨지고 거리에 버려질 전단지의 운명처럼, 제목만 보고 휴지통에 들어갈 스팸 메일의 그것처럼, 우리는 메시지의 비극적 운명을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사람에게도 덧씌우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경꾼의 윤리 속 내면화된 상처에 대한 예방. 이 예방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시도되는 ‘외면과 무관심’이라는 행위. 이를 통해 정작 거리에서 자신의 생존을 외칠 수밖에 없는 이들 또한 곧 폐기의 운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의미 없는 메시지의 굴레라는 구경꾼들의 인상에 갇힌 채, 의혹의 수술대에 오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칼을 준비하여, 그들을 해부하려 한다.  

 

‘난’ 보았다. 그리고 알고 있다. 의료사고로 생긴 부작용으로 사회 생활을 못하는 어느 남자의 외침을, 경찰에 연유 없이 불법 연행되어 졸지에 방화범으로 몰린 한 대학생의 울분을.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저들은 그렇게 쳐다보여질 운명이라는 것을. 결국 우리는 망각의 약을 복용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민다. 그러나 우리는 또 안다. 이는 우리네 삶의 ‘깔끔한 입’, 타자를 향한 ‘적당한’ 관심만이 내 삶의 안전망을 해치지 않는다는 ‘영민한 입’을 위한 부정과 부인의 과정임을.


‘스팸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피로감은 스스로가 ‘영민한 신체’가 되도록 부추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얻고 싶은 메시지를 얻고, 그 수확을 위해 쏟은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메시지를 과다하게 푼다. 소위 ‘뒷담화’라고 말하는 이야기 문화의 만연과 그것이 주는 상처의 과잉은 ‘스팸 사회’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순식간에 소비될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준비하기.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타인의 사생활에 별점을 매기고, 20자 평을 남기기. 여기엔 어떤 친밀성과 내밀성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있다. 말을 해야 하는 상황. 메시지가 없는 자리가 어색하고, 그것을 언어로 채워야 할 상황에서, 내 삶의 안전망을 해치지 않는 차원의 언어 공간을 창출하기. 그것을 위한 가장 손쉬운 전략은 타인의 내밀함을 교류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고로 현대인은 이장욱의 소설 제목처럼 ‘고백의 제왕’이 되어가고 있다. 짧은 시간 소비되고 잊혀질 수 있으리라 예상되는 소재들을 진열하고, 개인은 그 진열된 이야기의 풍요를 느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풍요 속에서 주고 받는 ‘빈 말’의 미래를 체화한다. 정이현의 소설 한 구절이었던가.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예의 있는‘ 거짓말이 되었다고. 진언과 허언의 경계가 사라진 언어 에너지의 과다, 혹은 그 둘의 경계를 만들어 의혹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위무하려는 개인들. 우리는 물론 이 개인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 '허언’을 둘러싼 사람들의 냉소와 체념. 그것을 도모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두렵고 무섭다. 2008년 이후,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보여주는 ‘빈 말’의 정치. ‘허언’의 운명을 타고난 ‘공약’이 “그것은 오해입니다”로 일갈되는 그들만의 소통을 생각해본다. 사람들에게 이 국가와 이 사회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가 ‘휴지통’에 쉽게 버려질 운명에 처한 지 오래인 지금. 우리 사회는 메시지라는 존재에 지쳐 있는 듯하다. 그리고 무기력해져 가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이 ‘스팸 사회’속에서 상처받지 않을 것 같은 ‘빈 말’이 환영받고, 무관심의 상처를 가진 자들의 호소와 분노는 ‘빈 말’ 취급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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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남에게 '보여주려는' 글을 썼는데, 

글을 자주 써야 겠다.

http://dangbi.tistory.com/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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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사회'에서 생존하는 전략 중 하나는 '교수 이름 외우기'다. 나는 이런 암기를 잘 하는 이들을 '명함 인간'이라 부른다. 명함에는 보통 무엇이 들어가나. 자기 이름, 자기가 다니는 직장, 자기 직책, 블로그 주소, 휴대폰 주소, 등등이 들어간다. 명함 인간들에게는 교수의 이름, 교수가 나온 대학교, 대학원, 유학 간 나라, 그 나라의 대학원, 그 교수가 쓴 논문이나 단행본 등을 외우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되면, 자신이 외운 '명함'들을 꺼내는 것이다. '명함 인간'들은 보통 술자리에서 그 능력을 잘 발휘한다. 소주 한 잔을 부딪히면서, 껄껄거리는 웃음으로 삼겹살을 잘게 썰며, 자신이 알게 된 교수의 이름과 논문을 줄줄 읊는다. "아! 전남대의 무슨무슨 교수? 아 연대의 그 무슨과 그 교수?"  

사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유형은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은 대학교 고학년생들의 어떤 열정이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교수 이름을 외우고, 그 교수가 무슨 대학을 나왔고, 어디에 유학을 다녀왔는지는 아는 건, 어떤 열정의 소산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 그런 '관계망 만들기'를 좋아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아는 몇몇 후배들은 내가 책을 빌려주니 책 앞 표지에 있는 저자의 소개만 뻔하게 쳐다보더라. 무슨 내용을 쳐다보는지 사실 함부로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던 친구들이 방금전까지 서울의 모 교수와 경남에 있는 모 교수가 영국의 무슨무슨 대학 동문이고, 어쩌고 그런 정보를 귀신같이 잘 알아서 말하던 이와 일치한다는 것을 볼 때, 나는 기분이 이상한 걸 부인할 수 없었다.  

'명함 인간'들을 탄생시키는 구조에 대해 우리는 본격적인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런 의문에 손사래를 칠 사람들이 놀랍게도 교수보다는 젊은 제자들이 더 많을 거란 점이다. 나는 늙으면 늙을수록 부패와 근접해 있다는 견해에 좀처럼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부패와 불안에 눈감으려 하는 것과 가까이 위치해 있는 이들은 나를 포함한 젊은 연구자일 수 있다. 내가 열을 올리며, "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교수가 조교한테 미용실 예약을 시키냐!"라고 말할 때, '그게 뭐 어때서'라고 쳐다보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현실은 비단 나의 억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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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벤느가 쓴 푸코에 관한 에세이, <푸코, 사유와 인간>이 산책자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이 책 작업 후반부에 참여했는데, 용어 선정과 역주 작성을 도왔습니다. 폴 벤느는 한국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죠. (이 책 번역자가 이번 푸코 책 번역자인 이상길 선생입니다)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에 수록된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라는 벤느의 글과 함께 보시면, 더 좋을 듯합니다. 벤느가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위트있고 명랑한 문체, 그리고 블랙유머같은 글 분위기를 내는 터라, 푸코를 잘 아는 분이라면, 깔깔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자인 이상길 선생은 한국언론학을 대표하는 신진학자로, 특히 국내에서는 피에르 부르디외 이론의 정통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문화연구 진영에서 몇 안되는 역사연구자이기도 하죠.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싶은 젊은 대학생들, 대학원생들이 많이 존경하는 연구자입니다. 출판계 내에서도 성실하고 꼼꼼한 역자로 정평이 나 있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책도 덕분에 두툼하게 나온 것 같습니다.   

<담론>을 쓴 사라밀즈의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요한나 옥살라의 <하우 투 리드 푸코>보다는 좀 전문적이고,  아마 책 홍보문구대로 들뢰즈의 <푸코>와 비교해 가면서 읽으면 쏠쏠한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후반기에 푸코 관련 기대작들이 출간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연대 도서관에서 매일 대출중인  서동진 선생의 박사학위논문 <자유의지, 자기계발의 의지>가 예정보다 출간이 늦어지는군요. 심세광 선생님의 번역서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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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drix 2009-10-2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상길 선생님 수업 듣는 대학원생입니다. 푸코 이야기는 좀 재미있겠네요. 저도 문화연구 연구하는 학새잉긴 한데. 꼼꼼하시기는 이루 말할 것도 없겠죠. 요즘 부르디외 공부하는 데 마치 "니들처럼 부르디외 그렇게 읽으면 딱 맞아죽기 십상이다"(물론 훨씬 젠틀하게 표현하시지만)라 하시는 것 같아. 엄밀한 글읽기와 책읽기에 대해 알려주시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반갑습니다. ㅎ

얼그레이효과 2009-10-2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