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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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먹고, 입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 사람이라면 해야 할 당연한 행동, 예컨대 주머니에 남아있는 잔돈 정도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저하지 않고 줄 수 있는 마음,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것에는 화내고 맞서야하는 용기, 웬만하면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너무 당연해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소하게 보일 정도로 기본적인 것을 일상적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많은 사람들은 이 조차도 갖지 못해 매번 허덕이며 살아간다.

 

빈주먹(p.15)으로 태어났지만 운 좋게 석탄목재상으로 빚 없이 그럭저럭 살게 된 빌 펄롱은 아내와 다섯 아이를 둔 가장으로, 가정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모른 척하며 눈을 감고 살아야 한다. 1985, 아일랜드의 경제가 혹독하게 힘들었을 때, 자칫하면 모든 걸 다 잃을 수 있는 시기였을 때, 그나마 따뜻하게 살고 있는 펄롱이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편치 않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그에 따른 가책을 느낀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강제 세탁소(수용소)’를 소재로 했지만 그 내용보다는 빌 펄롱이라는 인물의 마음과 생각을 함께 따라가고 느끼며 읽게 된다. 매 페이지마다 멈춰 사람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하며, 거기에서 오는 수많은 상념과 심란함으로 한숨이 쉬어졌다. 밤마다 잠에서 깨어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하는 펄롱의 양심, 별로 잘나지도 않은 인생에, 자신에게 주어진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 보잘 것 없는 딱 그만큼조차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해, 침묵하고 모른 척 하며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회한이 나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다.

 

펄롱의 딸들이 다니는, 다른 딸들도 앞으로 다니기를 원하는 세인트마거릿 여자 중학교와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직업 여학교와 세탁소는 선한목자수녀회가 운영하는 곳이다. 말이 여학교이지 사실 이곳은 교화를 목적으로 들어 온 가난한 어린 미혼모들이 갇혀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는 노동을 하는 수용소에 가까운 곳이었다. 이들이 낳은 아기는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로 돈을 받고 보내진다. 선한 목자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서 아이를 팔아먹고 돈을 버는 것이었다.

 

종교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하루 세 번 울리는 종소리에 일손을 멈추고 드리는 삼종 기도에 사람들은 하느님께 무엇을 기도하는가? ‘너희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에게 해 준 것이 내게 해준 것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을 뉴로스의 사람들은 무시한다. 아일랜드 모자 보호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았으면서도 그들은 침묵했으며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미시즈 케호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 정말 열심히 살아서, 나만큼이나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딸들도 잘 키우고 있고, 알겠지만 그곳하고 세인트 마거릿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뿐이라고.”

-p.106]

 

얇은 담장 하나처럼 삶을 떠받치는 것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그 얇음은 언제라도 깨지기 쉽다. 그나마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뒤를, 주위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권력자의 눈 밖에 나서도, 알고 보면 다 한통속(p.117)’인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서도 안 된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하찮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쉽게 비난할 수도 없다. 그것이 거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펄롱은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p.116)”라고 하며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확신하지 못하고 마음의 갈등을 느낀다. 사람들의 싸늘한 태도에 신경 쓰고, 최악의 상황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고생길을 예상하며 그냥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신발도 신지 않은 세라를 데리고 나오는 그의 마음은 편해진다. 펄롱의 선택에 나는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지는 못했다. 펄롱이 자라오면서 받은 도움과 그것에 대한 빚을 갚고자 하는 그의 선택이 가져 올 좋지 않을 대가가 고스란히 그의 가족에게 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펄롱이 먼저 함으로써 세상이 서서히 달라질 것임을 믿는다.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p.54]

 

우리는 모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작가 클레어 키건의 하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녀와 여성이 수감되어 강제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의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경향신문, 2023, 12, 08)”에 대한 답과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p.24)’ 마음이 불편하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침묵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것이라도 용기 내어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펄롱을 나락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119]


-사진 출처(경향신문, 2023.12.08., 임지선 기자),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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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2-25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성탄절의 참된 의미가 새삼 무겁습니다 오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12-25 16:05   좋아요 2 | URL
마침 이 책의 배경도 크리스마스이고 지금 우리도 성탄을 맞이하고 있어 그 의미가 새로웠습니다.
작가가 주는 메시지가 의미 있어 좋았어요
서곡님께서도 남은 연휴, 잘 보내시길 바래요^^

꼬마요정 2023-12-26 0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프네요. <맡겨진 소녀>도 맘이 좀 아팠지만 이 책은 더 아플 것 같아요. 읽어보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3-12-26 05:10   좋아요 2 | URL
네, 짧은 분량이지만 의미가 많이 담긴 책이라 좋았어요.
맡겨진 소녀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서니데이 2023-12-26 0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클레어 키건의 이 책 출간 소식은 들었는데, 이번에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거군요. 아일랜드가 지금은 소득이 높은 나라지만,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크리스마스 시기가 등장해서 그런지, 연말에 읽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3-12-26 10:30   좋아요 2 | URL
지금 아일랜드의 경제가 엄청 좋다고 하는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는데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어 좋았어요.
서니데이님!
따뜻한 연말 인사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음장수 2023-12-26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수영의 시도 떠오르고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12-26 10:33   좋아요 1 | URL
김수영의 시 구절이 떠오르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자목련 2023-12-26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짧은 분량이라 읽는 건 바로 읽었는데 리뷰는 못 쓰고 있어요. 어쩌면 쓰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페넬로페 2023-12-26 10:34   좋아요 1 | URL
짧은 분량인데 저도 이 글 쓰는데 며칠 걸렸어요.
그래도 자목련님의 리뷰 읽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23-12-26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까지는 하겠는데 정말 리뷰를 완성하는 건 힘든 작업입니다.
페넬로페 님의 리뷰 완성을 응원하는 바입니다.^^

페넬로페 2023-12-26 17:54   좋아요 2 | URL
정말요.
책을 읽기는 쉬운데 매번 리뷰 쓰기가 너무 힘들어요.
페크님의 응원으로 더 열심히 읽고 글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12-26 17: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 쉽지 않은 소설이군요. 여학교를 빙자한 세탁소라니 으 ㅜㅜ 얼마전 읽은 <바람의 열두 방향> 속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모른 척 하고 지내는 편안함을 버리고, 어려운 길로 나선 펄롱이 대단합니다.

페넬로페 2023-12-26 17:57   좋아요 1 | URL
읽기는 쉬운데 매 페이지마다 얼마나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지, 클레어 키건 작가가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의미가 통하네요.
우리들을 대신해 누군가가 희생해 주는 것이 이 시대에도 많은 거겠죠 ㅠㅠ

미미 2023-12-26 1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감가는 대목들이 여럿 보입니다.
어제 용기에 관해 책에서 읽는 문장들도 떠오르고요. (하워드 진) 페넬로페님 별5개 주셨으니 저도 내년에 꼭 읽어보고싶네요~♡
연말 웃음가득하시길 바래요🙆‍♀️

페넬로페 2023-12-26 21:21   좋아요 2 | URL
책을 읽으면 주먹을 불끈 지지만 막상 용기를 내야 할 때엔 숨기 바쁜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읽으며 매번 달라져야 할텐데요 ㅠㅠ
미미님의 덕담으로 더 한층 웃음짓는 페페가 되겠습니다^^

희선 2023-12-28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일랜드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하고는 수녀원 같은 데서 일을 시키고 낳은 아이는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기도 했더군요 그걸 종교라는 이름으로... 막달레나 강제 세탁소는 실제 있었던 곳이기도 하군요

그런 곳이 있으면 있는가 보다 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살기도 바쁠 테니... 펄롱은 그런 걸 아주 모르는 척하지 않았네요 그런 거 쉽지 않을 듯합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12-28 17:41   좋아요 1 | URL
보수적인 생각이 사람을 구속시켰고, 비참하고 폭력적으로 변질된 것 같습니다.

모른척하고 살지 않는 것, 정말 쉽지 않죠^^

캐모마일 2023-12-30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일랜드 막달레나 수용소 영화로 만들어지고 역사, 미스터리 유투브로도 많이 봤습니다. 소설 제목이 낯익지만 그 내용일 줄은 몰랐네요. 장바구니에 넣어둡니다.

페넬로페 2023-12-31 00:49   좋아요 1 | URL
캐모마일 님께서는 벌써 알고 계셨네요.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고
‘필로미나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다른 영화도 있는 건가요?
유튜브로도 봐야할 것 같아요^^

책친놈 2024-03-20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단 부터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사소하다고 생각하는것들을 되짚어보게 하는 책이었어요. 저는 책의 후반부에 ‘왜 가장가까이있는게 가장 보기 어려운걸까?‘라는 부분에서 <이처럼사소한것들> 이라는 제목과 맞물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덕분에 책에대한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라 잘 보고갑니다. 읽고서 리뷰 쓰는걸 미뤄와서 반정도만 쓰고 저장해놨는데, 페넬로페님 리뷰보고 오늘 꼭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4-03-20 12:13   좋아요 1 | URL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제목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더라고요.
펄롱을 통해 저의 삶도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사회적 이슈들과 약자들에 대해 회피하고 무관심한 것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다 이처럼 사소한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더라고요 ㅎㅎ,ㅠㅠ
책친놈 님의 리뷰,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