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낳고 4일 동안 병원에 있다 친정으로 산후조리를 하러 갔었다. 내가 늦은 나이에 결혼 해 그 당시 엄마의 나이도 많았지만, 엄마는 꼭 당신 손으로 나를 거두어야 한다며 산후조리원으로 간다는 나를 억지로 친정으로 데려갔다.
엄마는 자연산 미역을 사서 삼시세끼 나에게 미역국을 끓여 먹이고 아이를 목욕시키고 아이의 옷을 삶고 세 시간마다 나오는 우윳병을 소독하느라 정작 아이는 꼬박 내가 돌보아야만 했다. 병원에서는 잠깐 동안 신생아실 창문을 통해서만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집에 와서야 자세히 볼 수 있었던 아이는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조그만 배냇저고리가 헐렁할 정도였다.
친정으로 온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아이는 계속 잠만 자고 푸른똥을 쌌으며 간간이 재채기를 했다. 아이가 기침을 할 때마다 저러다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닌지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빗소리를 들으며, 아이를 바라보며 계속 울었다. 내가 저 조그만 핏덩이를 온전한 존재로 잘 키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무거웠고 암울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보다 부모에게 주어진 책임이 더 우선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아이가 4학년이 되던 해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할 때까지, 나는 모든 것을 아이와 함께했다. 도서관을 다니며 같은 그림책을 읽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니고 놀이공원에 가고 여행을 다녔다. 닥치는 대로 육아서를 읽고 자주 반성모드에 돌입했으나 그것은 또 쉽게 망각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었고 내가 그런 재주가 없다는 것도 실감했다. 사랑을 듬뿍 주지도 않는, 그렇다고 완벽한 기계적 엄마도 되지 못한, 늘 어정쩡한 모습으로 이 무거운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날 날만을 기다린 것 같다.
아마도 딸아이가 자라면서 내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일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말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자식의 삶도 있기에 그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닌 한 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오래 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읽으며 그 내용보다는 공지영 작가는 ‘어쩌자고 자식을 세 명이나, 그것도 아버지가 다 다른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를 생각했다. 아이 한 명 키우기도 이렇게 힘든데 말이다. 같은 엄마로서 그녀가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이 책 속의 엄마, 공지영은 씩씩하고 당당했다. ‘자, 오늘도 좋은 하루!’라는 말로 한 걸음 내딛는 그 말 속에 자식에 대한 집착과 애증에 대한 하루치의 포기가 들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네가 엄마가 처녀 시절에 꿈을 꾸던 그런 딸은 분명 아니야. 엄마가 꿈꾸던 딸은 물론 늘 전교에서 1등을 해야 하고, 선생님들에게 칭찬은 도맡아 받고, 키는 크고 얼굴은 예쁘고(네 아빠와 엄마가 네게 물려준 유전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몸매는 미인대회에 나갈 정도이지만 그런 대회에는 결코 나갈 생각이 없이 늘 세계 명작을 읽고 있는 데다가, 영어는 기본으로 잘하고 거기에다가 약간의 프랑스어와 일본어를 하며(중국어도 괜찮아), 집에서는 동생들을 잘 돌보는 누나이고 엄마에게는 늘 대견하며 아빠에게는 애굣덩어리인.....(솔직히 숨이 차긴 하다.) 그런 딸이어야 했지. 웃지 말라구. 이런 생각을 할 무렵에는 엄마는 너보다도 철이 없었을 때였으니까 말이야.
위녕. 너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거기에 스며 있는 천사들의 속삭임과 세상 모든 엄마 아빠의 응원 소리와 절대자의 따뜻한 시선을 잊지 말아라.
-작가 후기 중에서]
이것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 아닌가!
2022년 12월 31일, 딸아이가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갔다. 캐리어 두 개를 밀며 무거운 배낭을 지고 떠나는 딸이 걱정되었지만 파리 드골공항에서 학교가 있는 도시에 도착했다는 톡을 받고 난 후부터 난 자유와 휴가를 얻었다. 하루 한 두 시간 정도 페이스톡으로 딸의 얼굴이 아닌 내 얼굴에 신경 쓰며 하는 대화가 약간 피곤하지만, 휴가를 얻은 댓가라 여기며 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공항 출발장안으로 들어가며 딸아이는 많이 울었지만 나와 남편은 울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행지에서 딸아이는 항상 엄마와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고, 보고 싶다고 하지만 솔직히 난 딸아이가 많이 그립지는 않다. 그냥 22년 만에 혼자 누리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삶이 단출하다는 것은 비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냉장고의 공간이 남아돌고 택배 상자가 도착하지 않는다. 잔소리를 하는 나의 나쁜 말이 줄어들고 그것으로 내가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얻는다. 몇 달 후에 돌아오고 결혼하기 전까진 절대 독립하지 않을 거라는 딸아이가 잠시 비운 이 집의 적막이 평화롭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아쉬울 정도로 나의 휴가는 나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딸에게는 나의 감정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친정 엄마와 전화할 때마다 엄마는 내가 보고 싶고 다녀가라고 하는데 난 엄마의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3월 1일에 남편과 여행을 다녀왔다. 둘만의 여행을 떠난 건 아이가 태어난 후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해 여행을 가면 온종일 남편이 운전을 해야만 한다. 하루 종일 운전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혹시나 운전을 하며 졸까봐 나 역시도 편안하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엔 기차 여행을 선택했다. 바다가 보고 싶어 묵호와 정동진에 갔다. 볼 것이 많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볼 것이 한 곳에 몰려있는 묵호와 정동진이 더 좋았다. 묵호는 오래 전 소설의 제목에서 알게 된 도시다. ‘묵호를 아시나요?’라고 기억했지만 실제로는 ‘묵호를 아는가’라는 심상대의 소설이다. 묵호항을 중심으로 묵호등대, 논골담길, 도째비골 그래피티가 붙어있어 구경하기 좋았다. 논골담길을 내려올 때 계속 보이는 바다도 운치 있었다.
정동진은 언제 가도 좋다. 7번 국도변에 있는 바다와 도시를 좋아해 거의 해마다 가지만 동해바다는 절대 질리지 않는다.
정동진 바다 모래사장에서 물이 최대한 신발 가까이에 올 때 핸드폰 사진의 셔터를 누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핸드폰 화면에 머물러있어 물이 들어오는 것을 직접 체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핸드폰 화면 속으로 몇 번 들어온 물이 신발 가까이에 오지 않아 계속 기다렸다. 그러다 갑자기 들이친 파도에 신발과 바지 밑단까지 완전 젖고 말았다. 놀라고 당황스러워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파도가 우리 마음대로 오지 않으며 그러한 것을 기대한 어리석음이 웃겼다. 제대로 당했다. 그래도 계획한 사진을 건져야겠다는 열정을 불태워 젖은 채로 다시 물을 기다려 사진을 찍었다. 그때가 해질 무렵이라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했다. 정동진 바닷가 벤치에 앉아 추위에 떨면서 신발을 벗고 모래를 털어냈다. 휴지로 신발을 대충 닦고 남편이 편의점에 가서 사온 양말을 신었지만 금방 축축해졌다. 그래도 재미있었고 실컷 웃었다.
리스본을 여행 중인 딸아이가 엄빠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보내 온 사진이다.
뭔 미래씩이나?
너의 엄빠는 현재도 가능하단다.
미션 클리어 그리고 투비 컨티뉴드.
기차 여행이어서 그런지 새벽에 집을 출발해 밤늦게 돌아올 때까지 찍힌 독보적 걸음수가 3만보가 넘었다. 지금까지도 다리가 뻐근하다.
이번에 내가 가져간 책은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었다.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 선택했는데 이 책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할 것이 많아 계속 읽기를 멈추어야만 했다. 내가 여행가서 보고 온 것을 난 이렇게 궁상맞고 초라한 단어로만 쓰는데 백수린 작가는 일상을 얼마나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다정하고 조곤조곤 써 내는지. 세상의 모든 작가를 존경한다.
<나의 프루스트 효과>
이제는 프루스트라는 글자만 봐도 반갑고 그를 만나러 가야 할 의무를 느낀다.
그곳이 비록 한국의 바닷가에 있는 카페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