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 주말에 전주여행을 다녀왔다. 나와 딸아이는 서울에서, 엄마와 언니는 남쪽에서 출발해 전주에서 만났다. 전주는 역사와 문화, 먹거리가 다양하게 어우러진 도시이다. ‘한옥마을’을 비롯해, 경기전, 100년이 넘은 전동성당이 있고, ‘혼불’의 최명희작가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전주에 가기 전에 읽었던 『여행길-전주.군산』은 전주에 대한 스토리가 있는 책이다. 둘러볼 만한 곳에 대한 역사와 에피소드를 먼저 소개한다.
[1930년을 전후로 한국인은 일본인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고,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형성된 교동, 풍남동 일대의 한옥군이 현재 전주 한옥마을의 시초다. -p20
경기전은 한강 이남에 유일하게 궁궐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한옥마을 초입에 위치한 경기전은 조선왕조 경사(慶事)의 기초를 잡았던 큰 집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곳이다. -p28
붉은 벽돌로 된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은 호남지역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됐다. -p39
전동성당은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였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왔다. 한국 천주교사에 기록된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p45]
『전주 여행 레시피』는 전주에 거주하는 저자가 쓴 책이라 전주의 거의 모든 구석구석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명승지뿐만 아니라 식당, 카페, 게스트하우스, 시장, 쇼핑할 만한 곳 등이 세밀하게 나와 있다.
1박 2일로 예정된 전주여행에서 첫날은 한옥마을을 둘러봤다. 한옥마을은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가는 것이 실감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10년 전 찾았던 한옥마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너무 상업적인 곳으로 변해 고즈넉한 분위기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럼에도 하루 여행하기에는 좋았다.
이번 여행에는 엄마를 위한 휠체어를 준비했다. 처음 밀어 본 휠체어는 조그마한 턱을 넘기에도 많은 힘이 들었다. 또한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사진을 찍으려 뒷걸음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휠체어로 오를 수 없는 계단은 엄마를 부축해서 올라갔는데, 그럴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휠체어를 같이 올려주고, 엄마를 부축해주고, 휠체어를 옮겨주고... 또한 온 몸에 문신을 한 청년이 다가와 우리를 도와줬을 때는 내가 가진 편견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새삼스레 느꼈다. 어렵게 차를 돌린다든가, 바짝 붙여진 옆 차를 빠져 나올 때도 누군가가 다가와 수신호를 해주었다. 사람들의 대가없는 도움과 인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여행의 묘미인 듯하다.
엄마는 독실한 불자이신데도 전동성당에 들어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셨다.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지가 이제 엄마에게는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겸허하게 순종하는 모습이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았던 곳은 ‘최명희 문학관’이었다. 작지만 정감 있게 잘 꾸며진 곳이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무 잎사귀들이 싱그러워 입구의 나무 밑 벤치에 한참 앉아 있었다. 그저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전주 여행의 둘째 날은 일요일이라 딸아이와 전동성당 미사에 참여했다. 내가 다니는 네모반듯한 삭막한 모양의 성당이 아닌 기둥이 많은 고풍스런 곳에서 미사를 드리니 더 좋았다. 그런데 미사 중 다섯 번이나 울리는 똑같은 핸드폰 벨소리에 천국에까지 다다른 나의 신심이 지옥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분이었기에 결국 옆의 사람이 핸드폰을 빼앗다시피 해서 핸드폰 소리를 잠재워주었다. 할머니 자매님이었고, 미사 중에도 꼭 전화를 받아야만 하는 절실한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를 마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익산의 미륵사지로 향했다. 절터가 넓고 한적해 마음이 저절로 한가로워졌다.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익산박물관도 건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깨끗하고 구성이 다채로워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알라딘 서재의 바람돌이님께서 올려주신 전주여행에 대한 글이 갑자기 생각나 검색해 보았다. 바람돌이님께서 좋다고 하신 곳이 전주와 익산의 중간에 있는 완주에 있어 잠시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놈의 노안이 문제였다. 내가 오스갤러리를 오즈갤러리로 잘못 읽어 언니가 네비게이션에 오즈갤러리를 입력한 것이다. 도착해야 할 곳은 완주인데 네비게이션은 우리를 전주로 안내하고 있었고, 결국 우리는 전주 한복판의 오즈 갤러리 앞에서 차를 돌려야했다. 하필 전주에 오즈갤러리라는 곳이 있었다. 언니에게 폭풍 잔소리 앞에서 난 아무 소리도 할 수 없는 죄인이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완주로 향했다. 오스 갤러리는 풍경이 너무 예쁜 카페였다. 갤러리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은 별로 없었지만 그 배경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과 호수도 무척 아름다웠고, 벚꽃나무가 있어 봄에 더 좋을 것 같았다.
짧은 이틀간의 여행으로 엄마를 만나 즐거웠지만, 헤어질 때 항상 슬퍼하시는 엄마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엄마가 가시는 날까지 건강했으면 좋겠다. 성당에서의 내 기도는 오직 그것뿐이다.
전주는 맛있는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콩나물 국밥, 전주 비빔밥, 떡갈비, 육전 등 어떤 것을 먹어도 맛있었고, 심지어 한옥마을에서 파는 길거리음식과 팥빙수도 맛있었다. 오랜 전통의 풍년제과에서 만든 수제 초코파이를 사왔는데 커피와 함께 먹으니 그것 역시 감동이었다.
지난 토요일엔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국립현대미술관-서울에서 전시하는 ‘이건희컬렉션’을 감상했다. 관람 인원이 많다는 정보에 개관하기도 전에 가서 줄을 섰다. 그래서인지 1시간 정도 줄을 선 후 입장할 수 있었다. 3시간 정도 기다릴 것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들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고 이건희회장은 그림 1448점을 기증했는데 이번엔 20세기 초중반 한국 근현대 작품 50점을 전시한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한국의 대다수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이 있어 어느 정도 익숙했다. 그 중 박수근과 김환기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변관식의 산수화에선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볼 수 있었고, 백남순의 ‘낙원’에서도 그리스의 아르카디아와 동양의 무릉도원을 느낄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우고 외운 작가들이 많아 어렵지 않고 편안한 관람이었다.
전시회를 보고 우리는 삼청동에서 칼국수와 만두를 먹고, 북촌을 조금 거닐다가 커피를 사서 정독도서관으로 갔다. 그곳 벤치에 앉아 오후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더운 날씨에도 바람이 불어 복잡한 카페보다 훨씬 쾌적했다. 책이 바탕이 되고, 사람들이 좋아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행복하다. 대화에 진솔함이 있고,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눈치 보지 않고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만남이다. 고마운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