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오셨다. 엄마가 오시면 대체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비슷하다.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한 두 군데 서울 구경을 시켜드리거나 외곽에 있는 절에 모시고 간다. 그리고 엄마랑 나란히 앉아 tv 를 본다. 평소에 우리집은 tv 를 거의 보지 않는데 엄마가 오시면 어쩔 수 없이 tv 를 틀게 된다. 지난 일요일에, 엄마는 '더 먹고 가' 라는 프로그램을 보셨다. 난 그 프로를 처음 시청했는데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와 강호동씨가 진행하는 요리프로그램이었다.
오래 전, tv 에서 임지호 셰프를 우연히 봤을 때 그분이 너무 경이로웠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때그때 만나는 재료들을 가지고 정갈하면서도 보기에 좋은 음식을 어쩜 그렇게 뚝딱 만들어 내는지 신기했다. 그 행위는 예술의 경지였다. 그것은 단지 음식만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자연과의 조화로움이었다. 손으로 쓱싹 만들어내는 음식들에 생생함이 있었다. 깨를 손으로 으깨어 넣는 투박함이 소금을 아주 높은 곳에서 뿌려대는 허세보다 훨씬 더 정겹고 인간적이었다.
엄마 덕분에 '더 먹고 가' 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 거기에 임지호 셰프가 나와서 더 반가웠다. 그저께 요리의 재료는 '대구' 한 마리였다. 임지호 셰프는 대구 한마리를 철저히 분해해서, 각 부위로 다양한 요리를 빠르게 쓱싹 만들어냈다. 요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했으면 저런 경지에 이르는지 존경스러웠다.
'대구' 라는 생선에 대해서는 나에게도 추억이 많다. 내가 어릴 때, 어시장에 대구가 많이 나오는 철이 되면 엄마는 그것을 통째로 사와 집에서 손질하셨다. 그 어느 부위도 버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변화시켰다. 탕을 끓이고 아가미로 젖갈을 담그고, 대구살을 얇게 저며 햇볕에 말리셨다.
엄마와 tv 를 보며 어릴 적 얘기를 꺼내자 엄마는 대뜸 이런 말을 하셨다. 옛날에 큰언니 임신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선창에서 대구를 많이 사와 그것 손질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배는 부른데 너무 힘들었다고. 그리고 손질한 대구를 큰아버지 오시라고 해서 몇 마리 드렸다고 했다. 엄마, 아버지가 정말 그랬다고? 울 아버지 너무 나빴네, 어떡해? 아버지.
내일은 '대구' 에서 만큼은 좀 나쁘셨던 아버지 기일이고, 엄마는 지금 치매를 앓고 계신다. 같이 tv 를 보며 막장 드라마의 전말을 나에게 얘기해주시던 엄마는, 요즘 드라마를 보면서도 하나도 이해를 못하시며 나에게 계속 뭔말이냐고 물으신다. 과거의 기억속에만 존재하고, 현재는 금방 잊어버리는 엄마를 보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임지호 셰프가 해 준 음식을 강호동씨는 너무나도 맛있게, 아주 많이 먹는다. 엄마는 강호동같은 자식을 원하셨다. 당신이 해 준 음식을 뚝딱 먹어 주기를(해치워주기를) 원했지만, 입이 짧았고 병약했던 아버지와 우리들은 조금밖에 먹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그 어떤 식재료나 음식을 봐도 엄마가 생각날만큼, 엄마는 훌륭한 요리사였다. 그러니 엄마에게 할 말은 이것밖에 없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한 건 다 엄마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다 엄마 덕분이예요.